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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6 17:37

파바로티의 '그대의 찬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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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작고한 세계적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른 노래를 한 곡 올린다.

팬으로서 그의 죽음을 추모할 노래로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 이 곡을 골랐다.


1830년 크리스마스 이브,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사는 파리 라탱 지구에서 벌어진 사랑이야기를 다룬 오페라 <라 보엠(La Boheme)> 1막 중에서 주인공 로돌포의 아리아 '그대의 찬손(Che gelida manina)'이다.


이 노래는 젊은 남녀의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연가이다. 가난한 시인 로돌포의 방에 삯바느질로 생계를 잇는 옆방처녀 미미가 초를 밝힐 불을 빌리러 찾아온다. 두 사람은 아직 통성명조차 하지 않은 사이다. 건강이 좋지 않은 미미가 휘청 하며 자기 방 열쇠를 바닥에 떨어뜨리는데, 하필 그 때 불어들어온 바람이 로돌포네 방 촛불마저 꺼버리고 만다. 두 사람이 바닥을 더듬으며 미미의 열쇠를 찾다가, 손이 서로 닿는다. 이때 로돌포, 미미의 손을 잡고 일어서며 "손이 차군요." 하며 자기 소개를 한다. 첫눈에 반한 미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설레는 순간이다.


이 곡은 모든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곡 중 하나다. 그리고, 파바로티가 역사상 그 어느 테너보다도 잘 불렀던 곡이기도 하다. 비록 지금은 가난하지만 언젠가 찾아올 성공을 꿈꾸는 젊은이의 꿈과 패기, 사랑을 시작하는 청년의 두근거림과 애틋한 마음 등 모든 것이 이제 막 전성기를 맞은 테너의 음성 속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지금 듣는 파바로티의 음성은 1972년 10월경에 녹음된 것이다. 위 사진의 음반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은 음반사 Decca의 모든 오페라 음반 가운데서도 최고 수준의 역사적 명반으로 꼽힌다. 72년이면 파바로티가 이제 막 '하이C의 왕'이라는 칭호를 들으며 세계오페라 무대의 스타로 등극하던 시절이다. 카라얀과 베를린필의 관현악도 완벽하고, 상대역 미미를 맡은 미렐라 프레니(파바로티의 고향 친구로, 세계적인 서정적 소프라노), 기타 남성가수진도 더할나위없이 좋다 (니콜라이 갸우로프, 롤란도 파네라이 등 조역으로 나오는 저음가수들조차 오페라사에 빛나는 대가들이다.)


 나는 파바로티와 프레니가 출연하는 라 보엠 공연을 DVD로 보았다. 1992년 초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한 것인데 이 음악을 워낙 좋아하였던지라, 영상에서였지만 기대도 엄청나게 컸다. 그런데, 이미 파바로티의 음성은 전성기를 살짝 지난 상태였음을 그때 알았다. 파바로티는 카라얀과 녹음한 음반에서 들려준 그 빛나는 고음, 새벽하늘 샛별의 빛같은 찬란한 울림은 내 주지 못하고 있었다. 몸도 위 음반의 표지-이때도 이미 비만이다-보다 더욱 불어나서, 큰 공에 손발만 대롱대롱 매달린 것 같은 상태였다. 당연히, 연기랄 것도 별로 없었다. 하기야, 20년의 세월이 흐른 뒤니까, 음반 그대로의 모습을 기대한 내가 욕심쟁이였다. 그 후 음악선생님께서 오래된 아이다 영상물도 보여줬는데 같은 DVD라도 그것과는 확연히 다름을 느꼈다. 실제로 보았으면 조금은 달랐을까.. 내가 뉴욕에 없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그때 이후 파바로티는 쓰리테너 공연이니 하는 보다 대중적인 활동을 점차 늘려가기 시작했다. 두시간이 넘게 마이크를 쓰지 않고 오케스트라와 맞서 극장 저편 끝까지 소리를 보내야 하는 본격 오페라는 힘겨웠던 것이다. 그의 노쇠가 안타까웠다. 라이벌인 플라시도 도밍고는 고음과 힘에서 본 손해를 소리의 깊이와 무게, 해석의 심오함으로 만회해가며 최근까지도 오페라 레파토리를 넓혀왔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파바로티의 그러한 크로스오버 활동 덕분에 클래식 애호가가 아닌 수많은 이들이 벨칸토 창법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고 오페라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이는 그의 큰 공적이다.


사실, 만능의 테너란 없다. 각자 장기가 있고, 잘하는 분야가 있게 마련이다. 파바로티의 강점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팽팽한 발성이었다. 다른 테너들은 어디선가 소리를 만들어내듯 노래했다면 파바로티는 그냥 말하듯이, 햇빛 가득한 이탈리아 어느 들판에서 멀리 선 친구를 소리쳐 부르는 듯한 자연스러움으로 노래를 불렀다. '오델로'처럼 무겁고 격렬한 역은 부를 수 없었지만, <사랑의 묘약>의 네모리노나 <라보엠>의 로돌포처럼 로맨틱한 역은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고, <아이다>의 라다메스와 같은 드라마틱한 역에서도 강력한 고음과 팽팽한 긴장감으로 독보적인 영역을 쌓았다. 주세페 디 스테파노 이후 가장 아름다운 이태리 민요,가곡집을 남겨 세계인을 즐겁게 해 준 이도 그였다.


이제 또 누가 있어 그만큼 아름답고 힘찬 <오 솔레 미오>를 불러줄 것인가.

 



그대의 찬손을 들으며 외출준비를 하는데 교차로도 들어보았으면 하는 작은 소망♡

오후에 교차로에 갈 생각을 하니 부족한 준비물들에 나는 다시한번 챙김을 다해야 할 것이다. 요즘 교차로가 고무적인 일들을 하려고 하니 설레기는 무지하게 설렌다. 학문의 즐거움. 언능 1교시 수업 끝내고 와서 서평달아야 겠다.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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