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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연암 박지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열하일기는 박지원이 정조 4년(1780)에 청나라 황제의 칠순 잔치 축하사절단 일원으로 압록강, 베이징, 열하까지 삼천리의 중국 여행을 다녀온 뒤 4년 동안 26권 10책으로 펴낸 기행문집이다. 청나라 문물에 대한 부러움뿐 아니라 옛 문헌에만 사로잡혀 있는 조선 사회와 사대부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거침없는 풍자로 가득하다.


교과서 속의 인물로만 남아있던 연암 박지원, 책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통해 다시 만났다.

 


연암은 머묾과 떠남에 자유로웠던 유목민이었으며, 사물의 '사이'에서 사유할 줄 알았던 경계인이었다. ‘열하일기’는 중심이 없고, 시작도 끝도 없는 '리좀(rhizome) 이며, 모든 장이 저마다 독립적인 세계를 가진 천의 고원[故園] 이다. 또 '탈주'와 '재코드화', '재배치'의 대가인 연암은 사물의 어느 한 국면에 머물지 않는 강한 호기심과, 풍부한 유머, 그리고 통렬한 패러독스로 ‘열하일기’를 채우고 있다.

 




잠행자 혹은 외로운 늑대, ‘열하로 가는 길’


18세기 지식인 연암 박지원은 중국을 여행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그날의 여정과 에피소드를 세밀히 기록했다. 여행은 압록강을 건너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매일의 여정에서 따로 글을 떼어 ‘호질,’ ‘일야구도하기,’ ‘환희기’ 등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정리한 글을 함께 실었다. ‘열하일기’는 날짜순의 여행기 7편과 별도의 문장 19편으로 구성된 방대한 저작이다. 연암의 글은 발상의 전환에 묘미가 있다.


그는 스스로를 ‘삼류 선비(下士)’라 자칭하면서 “중국의 장관은 기와조각과 똥부스러기에 있다. 화려한 건물과 잘 뚫린 도로가 장관이 아니다”고 선언한다.


중국 문명의 본질은 하찮고, 더러운 물건을 귀하게 쓰는 태도에 있다는 것이다.





한양을 출발해 연경을 지나 열하로 가는 3000여리의 여정. 그러나 연암의 목적은 관광이 아니다. 명승고적을 둘러보거나 기념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일 따위에는 애시 당초 관심이 없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하고, 보이는 것에서 숨겨져 있는 것들을 보려 한다. 그런 까닭에 사신을 비롯하여 하인들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되놈의 나라’라서 산천이며, 누대조차 노린내가 난다고 눈도 주지 않은 채 오직 목적지만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집합적 배치속에서 연암은 그 길을 함께 밟아가면서도 끊임없이 옆으로 샌다. 이질적인 것들과 접속하려는 그의 욕망에는 경계가 무궁하다.


 

“유목은 움직이면서 머무르는 것이고, 떠돌아다니면서 들러붙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온몸으로 교감하지만, 결코 집착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어디서든 집을 지을 수 있어야 하고, 언제든 떠날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그것은 세상 모두를 친숙하게 느끼는 것이지만 마침내는 세상 모든 것들을 낯설게 느끼는 것이다.





달빛, 그리고 고독


그는 술을 좋아했다. 낮잠도 많이 잤다. 사랑하고, 가난하고, 고요히 머무르고, 술을 마시고,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면서 양주도 되었다가, 안연도 되었다가 유령도 되었다가 양웅도 되었다. 그 무엇도 될 수 있었지만, 그 무엇도 아닌 존재.


그러나 이 한없는 유유자적함에는 깊은 적막과 쓸쓸함이 배어있다. 예기치 않은 복병, 우울증이 몸을 덮친 것이다.


“지난계유 갑술년 사이에 내 나이는 열에 일고여덟 살이었다. 병에 오랫동안 시달리어 음악, 서화 혹은 칼, 거문고, 공동 등 모든 잡물을 제법 좋아했을 뿐더러 더욱이 지나는 손님을 모아놓고,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옛이야기로써 마음을 여러 모로 위안시켰으나, 그 깊숙이 스며든 울적한 증세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민옹전-





 그는 우울증의 치료법으로 저잣거리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채집하여 글로 옮기는 짓을 했다. 과거시험 주관자는 박지원을 과거에 합격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데, 정작 당사자가 관문에 들어서기를 끝내 거부한다. 청년의 우울증을 거쳐 30대 젊음의 뒤안길을 통과하면서 연암은 마침내 과거를 폐하고 친구들과 함께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진정 자유로운 영혼으로 지식과 일상, 글쓰기에 막힘이 없었으며, 우정이 지상목표였을 정도로 사람을 사귀는 능력이 뛰어났다.


 


나는 너고, 너는 나다


“타고난 바탕은 막힘이 없이 통하는 장점이 있고, 재주와 국량은 교우(交遇)에 능하다. [동의수세보원]


연암 박지원, 그 대가도 담소를 즐겨 누구하고나 격의 없이 며칠이고 이야기 하는 것을 즐겼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다.





연암은 늘 남들과 함께 식사하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함께 식사하는 사람이 언제나 서너 사람은 더 됐다. 연암과 홍대용, 정철조 외 그의 친구들은 그저 교양과 사교를 위한 사귐이 아니라 매번 만나면 며칠을 함께 지내며, 고금의 치란과 흥망에 대한 일로부터 조수, 문자하고 산학에 이르기까지 꿰뚫어 포괄하지 아니함이 없는 새로운 지식인 집단이었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황도, 적도 등 지구과학을 토론하며 뜨거운 우정을 나눈다.





또한 음률의 천재인 홍대용은 ‘구라철사금’을 해독해 사방에 퍼뜨리거나, 풍금의 원리에 변론하는 등 음악사적으로 탁월한 자료를 많이 남겼는데, 홍대용이 죽은 뒤 연암은 집에 있는 악기들을 버리고 한동안 음악을 듣지 않았다.


쉰을 넘어서야 비로소 벼슬길에 올라 선공감 감역, 안의현감 등을 지낸 연암이 꿈에 나온 죽은 친구들을 위해 고기 생선, 과일 등을 갖추어 성대한 술자리를 차리도록 하고 평복차림으로 몸소 술잔 술을 가득 따라 올린 후 한참 앉아 있다가 서글픈 기색으로 음식을 아전과 하인과 함께 나눠주었다는 대목을 보면 연암 박지원의 친구사랑을 한없이 느낄 수 있다.


그밖에 연암은 문장에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제자뻘 되는 친구들에게도 극진한 정성을 다해 맞이하면서 환대에 응답했다.





천 개의 얼굴, 천개의 목소리


연암 박지원은 어떤 소재든 그에 알맞은 리듬과 악센트를 부여하는 것이 장기다.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고. 특히, 눈에 자주 띄었던 부분은 외래어와 속어의 적절한 남발이다. 고문을 소개하면서 적절히 외래어를 섞어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묘한 밸런스를 이루면서 신선한 느낌을 준다.


철학, 정치, 천문, 지리, 풍속, 제도, 역사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날카로운 분석과 정통 논문, 수필, 소설, 시화까지 넘나드는 자유분방한 ‘연암체’ 문장은 당대 젊은이들 사이에 대유행했다. 지금은 참신하고 사실적인 표현으로 ‘근대를 열어젖힌 걸작’이라는 평을 듣는 ‘열하일기’는 당대에는 “옛 글의 권위를 허물고 선비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문체반정(文體反正:문체를 정통고문(正統古文)으로 되돌리려 한 운동)’의 주범으로 몰리기까지 했다. 근대에까지 금서처럼 쉬쉬하며 필사본으로만 떠돌던 ‘열하일기’는 1911년에야 비로소 조선광문회에서 처음 단독 출간됐다. 완역본은 1968년 민족문화추진회가 발간한 고전국역총서본과 1983년 박영사판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절판돼 구할 수가 없다.





“진실로 능히 옛것을 본받으면서 변화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면서도 법도에 맞을 수만 있다면 지금의 글이 옛글과 같게 될 것이다. 하늘과 땅이 비록 오래되었지만 끊임없이 생명을 내고, 해와 달이 비록 오래되었지만 끊임없이 생명을 내고, 해와 달이 비록 오래되었어도 그 광휘는 날마다 새롭다. 책에 실려 있는 것이 비록 방대하지만 가리키는 뜻은 제가끔 다르다. 때문에 날고 잠기고 달리고 뛰는 온갖 생물 가운데에는 간혹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 있고, 산천초목에는 반드시 비밀스런 간혹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 있고, 산천초목에는 반드시 비밀스런 영(靈)이 있게 마련이다. 썩은 흙에서 지초(芝草)가 나오고, 썩은 풀이 반딧불로 화한다”[초당집서] 

 


연암 글의 특이성은 대상과 소재에 따라 변화무쌍한 변이 능력에 있다. 이 글을 법고창신 (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으면서 새것을 창조한다. 이렇게 해석하다 보면 변증법적 조화와 통일로 오인되고 만다. 이글은 ‘언어가 어떻게 하면 끊임없이 생명을 내고, 날마다 그 광기가 새로운. 그래서 썩은 흙에서 지초가 나오고, 썩은 풀이 반딧불로 화하는 삼라만상의 무상한 흐름을 능동적으로 절단, 채취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그 핵심에 있다. 외부와 내부를 넘나들면서 끊임없이 차이를 만들어 내는 변이, 그것이 바로 연암체다.





‘연암이 얼마나 ‘유머의 천재’인지 널리 알리고 싶었다고’ 말하는 프롤로그의 글귀처럼 이 책은 말 그대로 작가의 의도가 충분히 반영된 책이라 할 수 있다.


연암의 글쓰기와 저자의 글쓰기는 모두 즐겁다. 어떤 문학 또는 문화에 있어서 점점 쇠퇴하고 있는 재미를 다시금 수면위로 떠올린다. 책은 문학, 학문 등에 초점을 담은 설명보다 조금 다른 시각에 대한, 또 다른 삶의 다른 시각, 이렇게 역설적인 말들로 다시 문화와 앎의 단계로 진입하는 재미를 알게 해준다.


식물에게 빛과 물이 필요하고 동물에게도 영양분과 수면이 필요하듯이 사람에게도 돈을 비롯한 재미(열정과 지식이 더해진)가 필요한 시대에 우리에게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은 그런 ‘재미있는 물’과 같은 요소가 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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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차로 9월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마감 김주현 2007.09.16 3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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