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200회 정기모임
24일 천뇌모임
25일 서울백북스
3연타 입니다... 전 중간 꺼는 못 갔습니다만...
벌써 어제군요. 커피숍에서 종업원이 나가라할 때까지 있었던...
지식의 대융합이라는 책을 매개로 이인식 소장님을 모시고 융합에 대해 한 번 정리를 했습니다. 강연 내용은 전에 올린 동영상 링크를 보시면 됩니다.
후기의 핵심은 역시 강연 후, 연사와의 커피 타임?티 타임?인데요, 강연 중에 나눌 수 없었던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직접 듣는 것만은 못하겠지만, 지금 졸려서 헤롱헤롱한 가운데 몇가지를 복기하갰습니다. 완전 똑같지 않아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의 느낀 점도 덧붙입니다.
강연 중에도 말씀하신 것이지만, 우리가 왜 좋은 책을 선택할 권리 조차 박탈당했느냐 입니다. 외국에서 출판된 좋은 내용의 책이 단지 제목이 달라지는 바람에 독자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언론이나 출판계의 핵심적 역할은 제목을 정하는 것인데요, 여기에는 번역자나, 출판사, 독자 모두의 잘못이 있습니다. 번역자는 일단 번역이 잘못된 잘못이구요(물론 이건 영원히 논쟁거리이죠, 언어 문제로서), 출판사는 마케팅이나 경제적 수단으로서 도서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잘못이 있구요, 마지막으로 독자의 잘못입니다. 좋은 책 나쁜 책에 대해 기준을 세우고 골라내는 일을 못하는 잘못입니다.
자아비판은 아무도 시비를 못 걸지 않겠냐는 마음에 저는 번역자, 출판사에 대한 잘못은 차치하고 독자에 대한 비판에 대해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교양과학서, 더 깊이 들어가면 교과서의 경우에는 사실을 전달하는 데 주요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양과학서는 물론이고 교과서에는 잘못된 사항도 많습니다. 하지만 해당 분야의 과학 지식을 모르는 사람이 접하면 무조건적인 수용이 되는 것 같습니다. 설령 전문가라 할 지라도 관심사가 아니라면 교정할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책을 안 읽는다. 2. 다른 사람의 서평을 읽어본다. 3. 내가 판단해본다. 대개 2번을 선택할 겁니다. 저도 물론 그럴 겁니다. 그런데 책을 읽는 재미는 무엇보다 내가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있지만 한 분야에 대해 '득도'를 하면 다른 분야도 서서히 감 잡히지 않을까요? 쉬운 일은 아니지요. 다시 말해서 비판적으로 책을 읽어보자는 생각을 해봅니다. 원래 당연한 말이고 지당한 말이지만 과학에 관해서라면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경향이 있어서 비판적 책읽기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비판적 책읽기에 대해 생각이 나게 되었던 단초는 이인식 선생님께 드린 에델만에 대한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신경다윈주의'라는 책을 제본해서 간간이 들춰보다가 대체 에델만 박사님은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걸까 나름 고민을 하고 있어서 이인식 선생님께 여쭤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인식 선생님은 에델만에 대해 아니 그의 이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계셨습니다. 이론적으로 접근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현재는 받아드리지 못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실제로 '다윈' 개발은 이후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인식 선생님의 의견은 아닙니다. 현재 뇌과학의 주류적 입장은 아닌 것 같긴 했기 때문입니다.(확실하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조사가 부족해서 입니다. 양해해주세요) 사실 이인식 선생님의 말씀 후에 '내가 수용적인 태도를 여전히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위에 의지해서 (노벨상이나 교수, 연구소장, 피인용지수가 높은 저널 등) 무조건적인 수용입니다.
말이 길어졌습니다. 오늘 연사와의 자리에서는 여러 이야기가 나왔지만 통섭/융합의 극명한 차이 등, 개인적으로는 비판적 읽기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게 되었다는 점이 소득이라면 소득입니다.
24일 천뇌모임
25일 서울백북스
3연타 입니다... 전 중간 꺼는 못 갔습니다만...
벌써 어제군요. 커피숍에서 종업원이 나가라할 때까지 있었던...
지식의 대융합이라는 책을 매개로 이인식 소장님을 모시고 융합에 대해 한 번 정리를 했습니다. 강연 내용은 전에 올린 동영상 링크를 보시면 됩니다.
후기의 핵심은 역시 강연 후, 연사와의 커피 타임?티 타임?인데요, 강연 중에 나눌 수 없었던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직접 듣는 것만은 못하겠지만, 지금 졸려서 헤롱헤롱한 가운데 몇가지를 복기하갰습니다. 완전 똑같지 않아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의 느낀 점도 덧붙입니다.
강연 중에도 말씀하신 것이지만, 우리가 왜 좋은 책을 선택할 권리 조차 박탈당했느냐 입니다. 외국에서 출판된 좋은 내용의 책이 단지 제목이 달라지는 바람에 독자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언론이나 출판계의 핵심적 역할은 제목을 정하는 것인데요, 여기에는 번역자나, 출판사, 독자 모두의 잘못이 있습니다. 번역자는 일단 번역이 잘못된 잘못이구요(물론 이건 영원히 논쟁거리이죠, 언어 문제로서), 출판사는 마케팅이나 경제적 수단으로서 도서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잘못이 있구요, 마지막으로 독자의 잘못입니다. 좋은 책 나쁜 책에 대해 기준을 세우고 골라내는 일을 못하는 잘못입니다.
자아비판은 아무도 시비를 못 걸지 않겠냐는 마음에 저는 번역자, 출판사에 대한 잘못은 차치하고 독자에 대한 비판에 대해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교양과학서, 더 깊이 들어가면 교과서의 경우에는 사실을 전달하는 데 주요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양과학서는 물론이고 교과서에는 잘못된 사항도 많습니다. 하지만 해당 분야의 과학 지식을 모르는 사람이 접하면 무조건적인 수용이 되는 것 같습니다. 설령 전문가라 할 지라도 관심사가 아니라면 교정할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책을 안 읽는다. 2. 다른 사람의 서평을 읽어본다. 3. 내가 판단해본다. 대개 2번을 선택할 겁니다. 저도 물론 그럴 겁니다. 그런데 책을 읽는 재미는 무엇보다 내가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있지만 한 분야에 대해 '득도'를 하면 다른 분야도 서서히 감 잡히지 않을까요? 쉬운 일은 아니지요. 다시 말해서 비판적으로 책을 읽어보자는 생각을 해봅니다. 원래 당연한 말이고 지당한 말이지만 과학에 관해서라면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경향이 있어서 비판적 책읽기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비판적 책읽기에 대해 생각이 나게 되었던 단초는 이인식 선생님께 드린 에델만에 대한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신경다윈주의'라는 책을 제본해서 간간이 들춰보다가 대체 에델만 박사님은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걸까 나름 고민을 하고 있어서 이인식 선생님께 여쭤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인식 선생님은 에델만에 대해 아니 그의 이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계셨습니다. 이론적으로 접근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현재는 받아드리지 못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실제로 '다윈' 개발은 이후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인식 선생님의 의견은 아닙니다. 현재 뇌과학의 주류적 입장은 아닌 것 같긴 했기 때문입니다.(확실하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조사가 부족해서 입니다. 양해해주세요) 사실 이인식 선생님의 말씀 후에 '내가 수용적인 태도를 여전히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위에 의지해서 (노벨상이나 교수, 연구소장, 피인용지수가 높은 저널 등) 무조건적인 수용입니다.
말이 길어졌습니다. 오늘 연사와의 자리에서는 여러 이야기가 나왔지만 통섭/융합의 극명한 차이 등, 개인적으로는 비판적 읽기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게 되었다는 점이 소득이라면 소득입니다.
사회과학과 함께 자연과학에서도 Empirical rule에 따라 논리를 제시하지만, 지나치게 조작된 개념이 오히려 독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때론 무위에 그치게 합니다.
특히 인용이 길어질거나 인용들의 구성이 논리적이지 않거나 난해할 때 독자는 추상속에서 헤메이다 소득없이 책을 덮는 경우가 많아진다고 생각됩니다.
때론 의식적인 기만행위로도 보여집니다.
한정규님 말씀과 같이 독자의 관점에서 스스로가 '득도'를 하고 다른? 관련분야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득도'상태가 아니라면 해당분야의 끝단을 잇는 연구자의 책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인용으로만 꾸린 책이 아닌, 이론적 배경으로 명료한 인용과 실예 그리고 저자만의 실증적인 Trial이 있는 책.. 아주 싱싱한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책은 좌충우돌 비판을 해도 소모적이지는 않겠지요.
인용과 인용을 얼개질하는 생계형 책들이 많습니다.
석사과정때 지도교수님께서 봄마다 전공서적을 정리하시는데 아주 간단했습니다.
한 해 동안 배송되어온 몇백권의 책중에 보시는 책은 이미 책상위에 올려져있고, "책꽂이에 있는 책중에 한글로된 책은 다 버리든지 치워라.."라고 하십니다.
인용은 말그대로 인용이지 가슴을 울리는 한 편의 시보다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과학의 속성을 말할 때,
논리적(logical), 결정론적(deterministic), 경험적 검증가능(empirically verifiable), 객관적이며 간주관적(objective, inter-subjective), 보편적(universal), 간결하며 구체적(parsimonious, specific), 수정가능(correctable) 등을 말합니다.
이를 참고하여 현재 읽고 있는 과학 관련책을 보는 것은 어떨까요.
또한 매달 도서 선정과 발표하고 토론할 때도 이점에 유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매달 읽은 책에서 한 줄이라도 뚜렷하게 정리되지 않는다면 무위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