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vs철학 기쁨의 후기^^

by 한정규 posted May 0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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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블로그에 감상평으로 쓰다가 간략한 후기 비슷하게 적어요. 사실, 철학자 혹은 인문학자이신 강신주님의 말씀이 강렬해서 이끌려서 적어요. 메모를 안 하고 그냥 줄줄 웃으면서 듣다가 4시간만에 복기를 한 것인지라 내용에 정확도는 약간 떨어집니다만, 분위기만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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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혹은 인문학자 강신주가 쓴 '철학vs철학'이라는 책을 얼마 전에 구입했다. 페이지 수로는 900페이지나 되고 값은 35,000원 정도. 인터넷으로 구매해서 저렴한 가격에 사긴 했지만. 오늘, 모임에서 저자를 모시고 강의 한다고 하시기에 용케 찾아갔다. 



철학vs철학이라는 책은 일반 독자를 위한 일종의 철학사이다. 그러나 강의에서는 책 내용보다는 이 책을 쉽게 읽기 위해 저자의 도우미 같은 내용을 다루었다. 대략 3시간의 강의인지라 몇 줄로 요약하는 게 어려울 줄 알지만, 나의 넘쳐나는 기억의 일부를 아웃소싱을 주기 위해 남겨보자.



서양의 철학을 관통하는 두가지 학파나 주장이 있다.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는 개인의, 나의, 기쁨을 중요시해야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반대로 스토아 학파는 모든 일은 예정되어있기 때문에 어떤 기쁨이든 슬픔이든 받아들이라고 주장한다. 



세상에는 기쁨이나 그런 것, 슬픔이나 그런 것 두가지만 존재한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쫓아가라고 한다. 슬픔을 주는 것이 있다면, 그 것과 멀어지거나 그 것을 제거하도록 요구한다. 일례로 자살은 최후의 행복권인 셈이다. 현재 사는 것이 슬픔을 준다면 기꺼이 죽어야 하는 것 말이다. 반대로 스토아 학파는 모든 사람들은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쓰고 위치에 맞게 기쁨이나 슬픔을 받아들이면서 연기하는 배우처럼 행동하며 살아야 한다고 한다. 저자는 인문학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면, 에피쿠로스 학파에 관심을 갖는 게 어떠냐고 말한다.



이 흐름이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에도 유지된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말해주었다. 스피노자는 서양에서 최초로 나와 타자에 대한 개념을 세웠다. 그리고 이 것은 굉장히 혁명적인 일이다. 관계의 외재성과 관계의 내재성. 유한자인 인간은 절대적으로 관계의 외재성을 갖는다. 그리고 스피노자가 이것을 주장한다. 신이 아닌 이상 외부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에티카는 총 5부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적어도 죽기 전에 3부, 4부는 읽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저자는 강조했다. 스피노자가 단순히 '사랑'에 대해 말을 하고 있지만,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동양철학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먼저 시작은 '도'였다.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장자'라고 했다. 그만큼 도를 잘 아는 사람이다. 함부로 '도를 아십니까?'하고 달려들면 안된다! 



공자 이야기부터 했다. 공자는 나와 너를 구별짓고 그 사이의 관계를 '도'라고 말해서 철학자가 된 사람이라고 평했다. 서양에서는 스피노자가 꺼내기 시작한 말을 공자는 좀 많이 앞서서 말한 셈이다. 나와 너의 사이가 바로 '도'에서 중요시 하는 것이다. 또 이런 말도 했다. 아침에 도를 알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 서양의 진리와는 다른 개념이다. 진리는 깨달음을 얻으면 바로 죽어도 되지만, 공자는 아침에 깨닫고 낮에 사람을 만나 널리 알리고 저녁에 죽으라고 했다. 어때 근사하지 않은가. 



기억에 남는 말이 하나 있다. 



너와 나 사이의 섬에 있고 싶다. 



노래 가사에도 나오고 저자가 좋아하는 이성복 시인의 시 구절도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 이성복



'사이'라는 것, 나를 버리고 '사이'가 되는 것

너 또한 '사이'가 된다면 나를 만나리라.



이 시를 이해한다면, 사이의 관계를 이해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공자의 원리는 이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원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렇게 훌륭한 원리를 발견했던 공자의 말에도 함정이랄까 무시무시한 폭력이 들어있다. 내가 남과 원하는 것이 같지 않다면? 강요를 하거나 폭력을 행사해야만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것이다. 



이 것을 문제 삼은 사람이 장자이다. 예를 들었는데, 하나는 '바닷새 이야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조삼모사'이다. 바닷새 이야기는 기니까 생략하고, 조삼모사를 설명해보면 이렇다. 원숭이에게 아침에 먹을 것 3개를 준다고 하니 반발이 심하다 하여 4개를 주고 저녁에는 3개를 준다고 한 것이 피상적인 뜻이다. 실은 조삼모사는 원숭이랑 협상을 한 것이다. 원숭이 입장에서 무엇인가를 생각해 준 것이다. 그냥 사람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원숭이를 확 떄려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를 더 준 것이다. 자신의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제안을 통해 상대와 자신 사이의 섬까지만 도달한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먹을 것이 총 7개라고 가정할 때, 아침에 몽땅 7개 달라고 그러고 저녁에는 없지만 원숭이가 더 달라고 떼를 쓰면 어떻게 될 것인가이다. 동양적인 관점에서는 '끝났다'라고 한다, 3,4, 그리고 7개를 아침으로 준다는 심정으로 제안을 해서 일이 되지 않으면, 끝난 것이다. 더 이상 없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있을 때만큼 한 것이고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 진인사 대천명의 정신이 잘 드러난다는 것이다. 


잠깐 사족을 붙이자면, SF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의 한장면이 떠오른다. 전 우주를 장악하려는 황제에 맞서 제다이 마스터 요다가 열심히 싸운다. 그런데 열심히 싸우다가 잘 안 되니 요다는 '휴..할 만큼 했군'하고 싸움을 그만둔다. 이 장면을 볼 때 나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싸움을 포기하다니. 무슨 포기야!! 라고 갑갑해 했다. 그러나 오늘 강의를 듣다보니 내가 그동안 동양의 정신을 잊고 살았구나 하는 반성이 생기고, 오히려 조금이나마 동양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얻은 결론은 최선을 다해 하고 즉, 갈 때까지 해보고 안되면 말고



무섭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