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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6 09:16

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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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가 쓴 <친절한 복희씨>를 읽었다. 총 9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녀가 보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 그녀가 내린 결론은 어떤 것일까. 세상의 논리와 지식들이 몸에 베고, 그것들을 겪어내면서 이뤘을 그녀의 철학이 궁금하다. 여든이면 이미 완성되고 굳건할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삶이 모자란 나는 박완서가 남긴 활자들을 통해서 건실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9개의 단편 중 하나인 첫 번째 소설인 <그리움을 위하여>에 대한 감상을 몇자 적어본다.

첫번째 단편의 제목은 <그리움을 위하여>이다. 풍자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풍자는 주인공이 얼마나 삐딱선을 타느냐에 따라서 재미가 좌지우지 되는 것 같다. 자기애가 넘치는 주인공이 풀어놓는 이야기를 통해서 씁쓸한 비웃음을 머금는다.

두 명의 인물들을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한명은 유복한 집안의 할머니, 또 한명은 가난한 집안의 할머니이다. 둘은 사촌지간이다. 가난한 할머니는 유복한 집안의 할머니의 집에 파출부로 나가서 집안일을 도와준다. 어느 타는 듯한 여름날, 밤에 너무 더워서 옷을 적셔서 입고 잔다는 신세한탄을 하지만, 유복한 할머니는 에어컨을 틀어주지만 할 뿐, 자기집에 와서 지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의 중심사건은 옥탑방 할머니가 사랑섬이라는 곳에 휴가를 떠났을때 일어난다. 섬에서 이 할머니는 샤방샤방하고 섹시한 축에 속했나보다, 섬에서 바람도 쐴 겸 마실 다니는 동안 사랑섬의 점잖은 할아버지의 마음을 빼앗아 버린다. 할아버지는 정신 못차리고 위험천만한 폭풍우까지 뚫고서 할머니를 데려다 줄 정도로 푸욱 빠져버린다. 할머니는 이 마음에 감동해, 할아버지가 있는 섬으로 이사를 간다.

서울에 홀로 남겨진 유복한 할머니는 갑자기 떠나버린 사촌동생의 빈자리에서 쓸쓸함을 느끼며, 처량해한다. 하지만 이를 정당화 해보려 친척들에게 전화를 통화를 해가며 사정을 털어놓지만, 친척들은 모두 사촌동생편이다. 결국에는 동생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기자신과 화해하는 결론을 내린다.

"저걸 다 어쩌란 말인가. 사다만 내던지면

다듬고 지지고 볶고 맛있는 냄새를 풍기면서 제상과 손님상이 저절로 차려지던 때는 가버린 것이다. 친구들은 생전 진일을 모르는 나를 인복이 많다고 부러워했었다. 인복을 놓친 나는 지금 얼마나 불쌍한가. 엉엉 소리를 내서 울어도 시원치 않을 것 같았다. 제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는가. 나는 그동안 내가 저한테 베푼 온갖 헤택을 떠올리면서 제가 나한테 미리 아쉰 소리만 했었더라면 뭘 못해줬을까. 집도 사줬을 것처럼 내 후한 마음을 마냥 부풀렸다."
- 친절한 복희씨, 그리움을 위하여, 박완서

유복한 할머니의 입으로 전달되는 이야기는 비아냥의 냄새가 풀풀난다. 속도 없이 마냥 착하게 사는 사촌동생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서, 어쩌면 언니는 세상 사는 법대로 살아온 일반적이고 올바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도 그럴것이 주인공의 생각과 말투가 세상의 그것과 닮아 있어서, 까딱하면 그게 더 현실적인 삶의 방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빠지기도 한다. 부지런하게 남 좋은 일만 해주는 사촌동생의 모습이, 언니가 보는 모습에 맞춰서 보면 정말 바보처럼 보이기도 하니깐 말이다. 뒷통수에 빨대 꼽아서 골 빼먹기 딱 좋은 꼬라지의 동생은 이 세상에서 행복해서는 안될 존재이다. 행복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언니같은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나는 상전의식을 포기한 대신 자매애를 찾았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도 춥지 않은 남해의 섬, 노란 은행잎이 푸른 잔디 위로 지는 곳, 칠십에도 섹시한 어부가 방금 청정해역에서 낚아 올린 분홍빛 도미를 자랑스럽게 들고 요리 잘하는 어여쁜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풍경이 있는 섬, 그런 섬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에 그리움이 샐물처럼 고인다."
- 친절한 복희씨, 그리움을 위하여, 박완서

하지만 결국은 동생의 행복으로 소설을 끝을 맺는다. 그리움을 이야기하는 화자를 통해서, 작가는 노후의 전원생활을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불행해야 마땅할 동생은 지금껏 인생을 행복하게 살았고,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결말,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결말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웃을 수 있었고 위로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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