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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J오닐, 이근수 이덕로/지식의 날개/06.2.19(일)1700시 서울집에서

저자는 너무 많은 지도자를 열거하고 있어 성공한 리더의 내면 깊이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



 서문

 링컨은 자신을 ‘거꾸로 가는 얼간이backwater simpleton’ 정도로밖에 보지 않는 군 고위장교와 각료들의 끊임없는 실책 그리고 외국의 내정 간섭과 음모에도 불구하고 연방을 단합시키고, 모든 인민을 위한 자유와 정의라는 미국의 신념과 모순되는 노예제도를 철폐하는 데 성공.

 만델라는 27년 동안의 감옥생활이 끝날 때까지 정치적 입장 포기를 조건을 단 석방 제의를 거부했다.

 레이건은 미국의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소련의 공갈에 맞서 방어무기 중심의 군비경쟁을 재개함으로써 이미 비틀거리던 소련 경제에 도전했다.

 해리 트루먼은 대통령 선거유세 과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독서가라고 해서 모두 지도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지도자라면 모름지기 독서가가 되어야 한다.”

 패튼은 나폴레옹이 한 말을 즐겨 인용하면서 “전쟁학을 배우는 올바른 방법은 위대한 지휘관들이 치른 대회전을 읽고 또 읽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 Part 1 : 훈련과 결단을 통한 성취

 조직적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 근면과 효율적 역할분담으로 국정을 운영

▶ “이제 막 인계받은 백안관은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재조직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라는 정보였다. 그것은 1953년 새로운 직무를 시작한 지 불과 몇 시간도 안 된 미국의 제34대 대통령이 수석 의전관에게서 건네받은 봉투였다.

▶ 간소한 시스템 구축 : 아이크는 모든 메모는 한 장으로 끝내라고 주문했고, 하원의원이 보낸 편지도 모두 한 줄로 요약.... 요약을 본 다음, 시간을 내서 편지 내용 전체를 읽을 필요가 있는지를 판단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화려한 서명 대신 이니셜인 DE만을 사용하여 수천 건의 서류에 결재했다. 매일 그 전날에 취해진 정부조치 중 가장 중요한 40건을 요약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 아이젠하워에게 “지도력이란 자신이 이루기 원하는 어떤 일을 상대방이 기꺼이 하도록 만드는 기술”이었다. ▶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는 같은 시스템을 사용했다. 냉전시대 초기에는 소련에 대처하는 정책이 절실했다. 3개의 특별대책반을 꾸려서 경쟁을 붙였다. 아이크는 3개 대책반이 제시한 것들 각각에서 일부를 선택하여 대對 소련 외교정책을 수립했다.

▶ 근면과 성실의 표본 : 아이크의 정치철학은 기업은 자유로울수록 좋고 정부는 작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소년 시설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정복하는 자는 도시 하나를 정복하는 자보다 위대하다”고 말해 주었다. 비판을 수용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는 일은 아이크가 오랜 기간 동안 습득한 기술이었다. 그는 처칠과 같은 유명인사를 포함하여 만만치 않은 상대방들과 당당하게 맞서며 처신해 왔다.

▶ “하루가 유쾌하고 즐겁고 만족스럽게 기억될 수 없다면 그날은 손해를 본 것이다.”

 민주주의의 설계자 토머스 제퍼슨 : 근면, 교육, 겸손 위에 세워진 명성

▶ 서른셋의 나이로 제2차 대륙회의에 참가하여 동료 의원들의 요청에 따라 약 2주일 동안 독립선언문을 작성했다.

▶ 독립선언문의 정신 : 제퍼슨은 선언문 초안에서 노예제도를 강력하게 비난했으나, 대륙회의는 노예경제를 채택하고 있는 남부의 주들을 소외시키지 않으려고 그 문구를 삭제

▶ 교육에 대한 그의 평생 신념은 1825년 버지니아 대학교를 설립함으로써 정점에 달했다. 그의 비문에 새겨지기 원했던 세 가지 업적 가운데 하나였다. (다른 두 가지는 독립선언문과 버지니아 종교자유법의 원작자로 기억되는 것) 딸에게도 편지를 보내 타일렀다. “게으름을 단호히 배격해라. 시간 부족을 불평하지 않는 사람은 잃을 게 없을 것이다. 항상 열심히 일을 해서 많은 것을 얻게 된다면 그 얼마나 멋진 일이겠느냐?”

▶ 민주주의에 대한 올곧은 신념 : “사회에서 같이 살아갈 때, 외국인이건 내국인이건 우리 모두는 지위나 직함과는 관계없이 완벽하게 평등하다.”

 로마제국의 초석 줄리어스 시저 : 목표에 대한 철저한 집중으로 제왕의 자리에 오르다.

▶ “매력적인 개성과 무한한 자기중심주의자였던 시저는 두려움과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방해가 되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 시저는 B.C. 74년 지중해 항해 도중 그가 탄 배가 해적들에게 납치되었다. 그가 귀족이라는 것을 알아본 해적들은 20탤런트를 몸값으로 요구했다. 시저는 이를 불쾌히 여기며 오히려 몸값을 50탤런트로 올렸다. ▶ 당돌한 포로 :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나게 되자 시저는 다시 돌아와 해적을 처형하겠노라고 위협했다. 물론 해적들은 그 소리를 듣고 비웃었다. 그는 공식적인 권한도 없이 일단의 전함을 이끌고 해적들을 추적했다. 결국 해적들은 체포되어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십자가형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기 전에 그들의 목은 이미 베어져 있었다. 가차없이 처단하되 불필요한 고통은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저는 냉혹한 현실주의자의 전형이었다.

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 영국을 회생시킨 원칙과 결단력

▶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은 1970년대 중반 소련 육군 저널인 <붉은 별>이 처음으로 그녀에게 붙여 준 것이었다. <붉은 별>은 데탕트가 서구 민주주의의 패배로 이어질 것이라는 그녀의 연설을 비난했다. “다른 사람들이 한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일을 해서는 결코 안된다”고 충고했다.

▶ 산도 움직이는 인내심 : “그녀는 실패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이슈가 등장할 다음 기회를 준비했다.”

 양심적 전쟁영웅 앨빈 요크 : 소신과 강한 의지로 공익에 충실했던 군인

▶ 전투가 끝나고 따져 보니 요크는 독일군 25명을 사살하고, 거의 혼자서 132명(장교 4명, 병사 128명)을 생포했다. 소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그가 35개의 기관총 포대를 무력화

 최우수 전투기 조종사 윌리엄 비숍 : 부족한 재능을 극복한 뜨거운 열정

▶ 제1차 세계대전 중 적기 72대를 격추 ▶ 제1차 세계대전 때 격추왕은 적에게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비행기 색상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독일의 붉은 남작이 그러했다. 비숍 역시 돋보이기를 원했고, 그래서 그의 뉴포트 비행기를 밝은 청색으로 단장

 작은 정부를 실현한 캘빈 쿨리지 : 근면과 인내 그리고 원칙 고수

▶ 재능보다 끈기가 중요하다 : “이 세상에 끈기를 대신할 것은 없다. 재능은 물론 아니다. 재능을 지니고도 실패한 사람은 흔하지 않은가. 천재도 아니다. 보상받지 못한 천재 역시 너무 많다. 교육도 아니다. 세상은 교육받고도 할 일 없이 떠도는 부랑자들로 가득하다. 끈기와 결단이야말로 절대적인 능력이다.”

▶ “기나긴 여정도 무수히 많은 작은 발자국으로 이루어진다.”

 역동적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 어떠한 장애물도 극복한 집념

▶ 그는 위헌이라는 이유로 미국 동전에서 ‘In God We Trust'라는 문구를 삭제하고자 했으나 이 싸움에서는 이기지 못했다.

 서부 확장의 선구자 새뮤얼 휴스턴 : 텍사스를 구한 탁월한 전략

▶ 멕시코로부터 텍사스를 독립시키는 데 결정적인 군사적 승리를 주도.

▶ 뭉쳐야 산다 : “스스로 분할된 나라는 존속할 수 없다.” 연방으로부터 탈퇴가 시작될 즈음 그는 주지사직을 박탈당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부 주지사들 가운데 유일하게 동맹에 대한 충성 서약을 거부했다.



 Part 2 : 성실로 쌓은 신뢰

 정직의 대명사 해리 트루먼 : 강한 책임감, 지성과 인품으로 권위를 세우다.

 전쟁의 천재 조지 패튼 : 대담함과 분명한 목표의식을 지닌 지휘관

▶ 충성심은 주로 부하들이 보여야 하는 성실함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충성이 아래로부터 뿐만 아니라 위로부터도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위대한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부하들에 대한 충성심이란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패튼은 퉁퉁 불은 파스타가 담긴 접시가 중앙에 놓여 있는 식탁으로 부하장교들을 소집했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파스타 한 가락을 밀어냈다. 그러나 잘 밀어지지 않자 파스타 가닥의 한쪽 끝을 잡고 단숨에 잡아당겼다. 그리고 말했다. “제군들, 밀지 말고 이끄시오.”

▶ 벌지전투에서 이틀도 채 안 되어 패튼의 부대는 독일군을 패퇴시켰다. 그 후 패튼은 보도진들에게 부하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피력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린 그놈들의 옆구리를 쳐서 완전히 얼어붙게 만들었다. 패튼이 무슨 대단한 천재인 양 말들 하지만 사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그저 명령만을 내렸을 뿐 아닌가.”

 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라빈 :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다.

▶ 끊임없는 개선 : 1975년 라빈은 미국의 중재로 수에즈 운하 지역에서 이스라엘군을 철수시키는 조건으로 이스라엘 선박의 운하 자유통항을 규정하는 이집트와의 잠정협정에 서명했다. 이 협정의 결과,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향후 국제관계에서 미국이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기로 서약한 첫 번째 양해 각서가 체결되었다.

▶ 1995년 11월 4일 이츠하크 라빈은 텔아비브에서 거행된 평화집회에 참가한 후 이갈 아미르라는 유대극단주의 학생에게 암살되었다.

 남북전쟁의 영웅 로버트 리 : 군대를 단결시킨 원칙주의 리더십

▶ 기자들은 그를 ‘리 할머니’ 또는 ‘도망자 리’라고 불렀다. 그는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소심하다는 게 기자들의 평이었다. 로버트 리 장군이 남군을 바리케이드 뒤에서 싸우도록 지시했기 때문에 비롯된 일이었다. 그는 “임무가 끝날 때까지는 꾸준히 최선을 다할 뿐, 다른 모든 것은 미래에 조용한 다수의 평가와 관대한 신의 섭리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 “쉰넷이라는 나이에도 리 장군은 다른 어떤 병사보다 더 많이 걷고 훈련했다.” 한번은 리 장군의 부대원들이 사선을 넘는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나서, 후일 이렇게 얘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난 리 장군을 위해서 싸운 거야” 리 장군은 부대원들에게 ‘흉벽’이라 부르는 바리케이드를 쌓고, 그 뒤에서 싸울 것을 명령했다. “부하들에게 이런 명령은 모욕적이었다. 그들은 신사가 어떻게 흙더미 뒤에서 싸울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다”고 스파이처 대령은 말했다. 리 장군은 부하들에게 “우리는 무장세력만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 설사 민간인들이 우리에게 항복하지 않는다 해도 그들에게 복수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늘 일깨웠다.

▶ 리 장군은 소설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현실을 실제보다 매력적으로 포장하고, 존재하지 않는 행복을 그려 낸다. 소설은 이 세상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주어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바라도록 만든다.”

▶ 패잔병과 불우한 학생들을 위해 : 리 장군의 금언은 “항상 마부의 철칙을 기억하여 불쌍한 말들을 잘 돌보아야 한다”였다. “네가 몸담고 있는 세상에서 살아라.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아라. 또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리고 그것들을 최상의 것으로 만들어 잘 이용해라.”

 국무장관에 오른 흑인 장군 콜린파월 : 최선을 다하여 오른 최고의 자리

▶ “모든 일은 영예로운 것이다. 항상 최선을 다하라. 누군가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 배움과 성장 : 책임을 맡는 다는 것은 그 일이 유쾌하지 않을지라도 결국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뜻임을 깨달았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즉각 고쳐야만 한다. 우리는 임무수행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게다가 한 사람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다른 대다수의 사람이 희생당해서도 안 된다.

▶ 그는 누가 무시할 때마다 일일이 분노하다간 자신의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울분을 삭혔다. “나는 내 인생의 우선순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육군에서 성공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임을 확인했다. 어떤 이유든 자기파괴적인 분노가 내 목표를 이루는 데 장애가 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 “이런 인간적인 리더십은 교과서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언제나 마음속에 간직했다. 누군가가 넘어지면 그를 일으켜 세우고 사기를 북돋아 주어서 다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해주라”고 파월은 말했다.

▶ 자신의 저력을 파악하라 : “좋은 지도자는 자신의 능력을 보완해 줄 사람을 주변에 둔다.” “모든 성공적인 군사조직과 기업조직은 각기 다른 형태의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 만일 최고 의사결정자가 비전만을 가지고 있다면 그에게는 자신의 구상을 실현할 사람이 필요하다. 비전과 실행력을 다 갖추고 있는 조직에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욕구를 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중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끝이 더러운 막대기를 쥐게 되더라도, 그걸 잘 다듬어서 유용한 도구로 만들라”

 아메리카 인디언 지도자 테쿰세 : 종족의 단합을 이루어 낸 정직과 인품

 군인 정치가 조지 마셜 : 정직과 철저함으로 전승과 평화를 동시에 달성

▶ 흔들림 없는 굳은 신념 :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윈스턴 처칠이 ‘승전의 조직가’라 칭송했듯이, 마셜은 미군을 1939년 17만 5천 명에서 800만 명으로 증강했다. ‘마셜플랜’으로 알려진 수십억 달러 규모의 원조로 폐허가 된 유럽 경제를 재건하고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1953년 이 공헌을 인정받아 퇴역군인으로서는 유일한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었다.

▶ 마셜은 돌아서는 퍼싱의 팔을 툭툭치며 말했다. ‘장군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분노에 가득차서 반박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변호해 준 장교들을 포함한 이 현장의 증인들은 마셜의 군 경력은 거기서 끝났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오히려 마셜은 퍼싱의 신뢰를 얻었고, 그 후로 퍼싱 장군은 자주 마셜에게 자문을 구했다.

▶ 철저하고 단호한 정면승부 : “그는 설령 자신의 대의를 손상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진실만을 말했다. 의회는 항상 그를 존중했고, 다른 사람에게는 허락하지 않았을 많은 것을 주었다.” 전후에 하원의장인 샘 레이번이 이렇게 회고했다. 국무장관 자리를 승낙할 때도 마셜은 어떤 공직선거에도 출마하지 않겠노라고 공언함으로써 미래의 정적을 키우게 될지도 모른다는 의회의 우려를 불식시켰던 것이다.

▶ 역사에 길이 남은 바로 그 이름 :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70억 달러에 달하는 유럽 재건계획을 마셜플랜이라 칭함으로써 그것이 정치쟁점으로 비화되는 일 없이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의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선거가 있던 해에 공화당이 다수당인 의회에서 마셜이 아닌 트루먼의 이름으로 그 법안을 통과시킬 확률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 봤소?”라고 대통령은 그의 참모에게 물어 보기까지 했다.

 충직한 장군 존 퍼싱 : 필리핀부터 유럽까지 책임진 헌신적인 인물

 충직한 장군 존 퍼싱 : 필리핀부터 유럽까지 책임진 헌신적인 인물

▶ 판초빌라를 쫓아서 : 여자들과 아이들이 무장반군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퍼싱은 공격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강구했다. 그가 부대원들에게 일단 철수를 명령하자 곧 많은 모로족과 그 가족들이 귀향했다. 그러고도 산속에 남아 있는 자들이야말로 골수 반도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 퍼싱은 매우 신속하고 은밀하게 1,200명 규모의 부대를 편성하여 공격했다. 병사들의 사기를 드높이기 위해 퍼싱은 선봉에 나서서 공격했고, 결국 모로족은 단 한 사람도 투항하지 않고 모두 전사했다.

▶ 전쟁 중에 보낸 성장기 : 퍼싱은 평균을 약간 상위하는 정도의 학생이었다. 대부분의 생도들이 무사히 졸업했지만 그는 잦은 지각 때문에 낙제를 하기도 했다. 그의 성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 목표를 향해 함께 가자’라는 구절로 대변할 수 있을 것이다.



 Part 3 : 신념을 추구하는 지도자

 노예의 해방자 에이브러햄 링컨 : 자유롭고 평등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 링컨은 계속해서 외모가 말쑥하고 말도 잘 하고 교육도 잘 받은 사람들을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문제는 그렇게나 훌륭한 인물들이 전선에만 나서면 기가 빠지는 것이었다. 그들은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렸고, 중요한 순간에 퇴각함으로써 참담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 최고의 가치는 국가의 통합 : 1863년 링컨은 미시시피주 빅스버그 공격을 성공적으로 마친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에 대해 들었다. 링컨의 보좌진들은 그랜트를 총사령관 물망에서 배제하자고 건의했다. 그들이 열거한 이유는 그랜트장군이 무례하고, 복장도 항상 남루하며, 말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었다.

▶ 정의가 물결치게 하라 : 정기적으로 17마일을 걸어 군법원에 가서 재판절차를 보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쇼토는 썼다.

 공군 창설의 아버지 빌리 미첼 : 선견지명과 불굴의 행동력으로 전쟁사를 다시 쓰다.

▶ 1921년 그는 당시 국방의 선봉인 해군의 취약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1921년의 폭탄투하 시험에서, 군 고위 장성들의 예상을 깨고 미첼의 조종사들은 나포된 독일 전함 오스트프리슬란트를 침몰시켜 버렸다.

▶ 굳건한 인내력 : 1924년 급성장하고 있는 일본의 공군력을 경계해야 한다는 내용의 323쪽짜리 보고서를 펴냈다. 그 보고서에서 그는 언젠가 진주만과 필리핀의 클라크 공군기지에 대한 일본의 공습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1925년 해군의 수상비행기가 실종되고 비행선이 폭발했을 때, 미첼은 언론에 “이 사건은 범죄에 해당하는 태만일 뿐 아니라 해군성과 국방성이 저지른 국가방위에 대한 반역에 해당하는 부주의의 결과와 맞먹는다”고 말했다. 그는 구두선언과 더불어 공군의 발전적 분리를 방해하는 군부의 움직임을 비판하는 6천 자에 달하는 반박문을 제시했다.

▶ 쉰여섯의 나이로 일찍 영면했을 때, 의회는 그의 ‘공군력에 대한 선견지명’을 기려 사후에 훈장을 추서했다.

 최초의 흑인 조종사 벤저민 데이비스 2세 : 전쟁과 인종차별을 극복한 영웅적 행동

▶ 1943년 12월 제15공군 사령관인 아이라 이커 장군은 데이비스에게 B-24같은 중폭격기 호위임무를 맡은 다른 백인 비행단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이 백인 비행단은 개인의 영예를 위해 적기를 격추하는 데에만 신경을 곤두세우지 자신들에게 부여된 궁극적인 임무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승무원이 11명씩이나 배속된 중폭격기가 25대 모두 격추되기도 했다.

▶ 목표를 향한 의지와 분투 : 데이비스에게 모범을 보인 인물은 아버지인 벤저민 데이비스 1세장군 이었다. 그는 피부색 때문에 웨스트포인트에 진학하지 못했지만, 사병으로 입대하여 미군 최초로 흑인 장군이 된 사람이었다. “그들이 깨닫지 못한 것은 내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그들의 냉대쯤은 충분히 견딜 만큼 강인하다는 사실이었다”고 데이비스는 말했다. 그는 20세기 들어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최초의 흑인이었다.

 아프가니스탄의 투사 아메드 샤 마수드 : 압제에 저항한 판지셰르의 사자

▶ 1980년대 그가 소련의 공격을 아홉차례나 물리치자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그를 ‘판지셰르의 사자’라고 불렀다. 그는 탈레반과 알카에다도 5년 동안이나 궁지로 몰았다. 그는 미국이 그의 반소련, 반탈레반 전사들을 포기한 이유도 모른 채 죽었다. 탈레반을 만들어 낸 악명 높은 파키스탄 정보기관을 지원한 미국을 이해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 남북전쟁의 승장 율리시스 그랜트 : 전쟁을 종식시킨 투지와 집념

▶ “병법이란 정말 간단한 것이다. 적이 있는 곳을 찾아내고 가능한 한 빨리 접근해서 심각한 타격을 가하는 것, 또한 이를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게 바로 병법이다.” 1862년 2월 포트헨리와 포트도넬슨에서 남북전쟁 최초의 북군 승리를 이끌어 냈다.

▶ 목표는 오직 승리뿐 : 링컨은 여러 지휘관들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 조지 매킬렐런은 전투에 적극적이지 못했고, 조지프 후커는 챈 설러즈빌에서 패배한 다음 굴욕적인 후퇴로 링컨을 당혹하게 만들었으며, 조지 미드는 게티스버그 전투 후에 로버트 리 장군을 추격하지 않아 링컨을 분노하게 했다. 링컨은 조지 워싱턴 이후 최초의 중장으로 진급시켜 북군 총사령관에 임명했다. 그랜트는 명령체계를 간소화하기 위해 19개 군을 신속히 자신의 휘하로 통합시켰다. 영토 획득 같은 전략적 목표는 전 남군의 궤멸이라는 오직 하나의 목표로 대체되었다. “체격이 당당하고 위엄에 찬 버지니아 상류가문 출신의 멋진 귀족 리 장군이, 중서부 가죽공장 주인의 아들인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한 것은 하층민이 상류사회로 뛰어오를 수 있는 아메리칸 드림을 보여 준 것이었다.”

▶ “그랜트는 역사상 최고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우리 시대 최고의 군인이다. 그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목표인지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소한 것들은 포기했다. 설사 자신의 계획이 잘못되어도 그는 절대로 동요하지 않고,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여 결국에는 승리했다.” 이것은 북군 장군 윌리엄 셔먼의 평가이다.

 체코의 지도자 바츨라프 하벨 : 정치변혁을 이루어 낸 펜의 힘

▶ “아무리 숭고한 대의라 하더라도 그것을 위해 살지 않는다면 그것에 대해 글을 쓸 수 없다. 위대한 인간이 되지 않고서는 위대한 시인이 될 수도 없다. 인간은 세계에 대한 강한 책임감, 즉 자신보다 더 높은 그 어떤 것에 대한 책임감을 스스로의 내면으로부터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한다.”

▶ 공산주의 옹호론자들과 논쟁할 때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하벨은 이념논쟁을 벌이기보다는 항상 실제 상황만을 언급하며 토론을 이끌어 나갔다. 그리고 공산주의 정책이 실패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간주되는 사실들을 토론에 활용했다.

▶ “결과에 관계없이 작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을 주장하는 것이 공허한 담론으로 사람들의 양심을 속이는 것보다 수천 배 가치가 있다”고 하벨은 말했다.

 아이티의 해방자 투생 루베르튀르 : 노예봉기를 독립운동으로 승화시킨 자유의 정신

▶ “나를 전복시키긴 했지만 당신들은 자유라는 나무의 가지 하나만을 겨우 잘랐을 뿐이다. 이 나무는 뿌리부터 다시 자라 더욱더 많아지고 울창해질 것이다.

 민권운동가 넬슨 만델라 : 인종차별 철폐를 관철시킨 불굴의 투쟁

▶ 1950년대 초반 그는 수도 요하네스버그에 최초로 흑인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만델라는 “폭력에 대한 책임은 국가에 있다. 투쟁의 형태를 결정하는 것은 억압하는 자이지 억압당하는 자가 아니다. 따라서 폭력을 거부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정부에게 달려 있는 문제이다. 이것이 내 대답이었다”고 술회했다.

 위대한 인디언 시팅불 : 백인의 지배에 맞서 인디언의 통합에 헌신하다.

▶ “총은 누구라도 쏠 수 있었다. 시팅불은 이를 용기 있는 행동으로 보지 않았다. 그에게 그것은 그저 싸움에 불과했다. 생사를 건 싸움은 자기 확신을 바탕으로 한 용기 있는 행동일 때만 보상받을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 진정한 승자의 자세 : 제7기병대를 200명 이상 사살했다. 시팅불은 캐나다까지 내몰렸다. 그 후 5년간 그의 부족은 기아와 병마에 시달려야 했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시팅불은 미국 정부군에 투항하고 네브라스카주의 군 교도소에 투옥되었다. 2년 후 석방되어 2개의 다코타주에 걸쳐 있는 스탠딩락 인디언 보호구역에 살고 있는 부족민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 “시팅불은 인디언의 진정한 영웅이었고, 지금도 추앙받는 존재이다. 그는 위대한 전사 이상의 어떤 존재였으며, 높은 수준을 지닌 인디언 문화를 상징하는 위대한 인물

 존경받는 퍼스트레이디 엘리너 루스벨트 : 박애와 인권에의 헌신은 대통령을 넘어섰다.

▶ 1940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엘리너 루스벭트의 연설은 대통령의 연임 선례를 막으려던 정당 내 경쟁자들을 잠재웠다.

▶ 1943년 엘리너는 흑인 상사가 군기지 내에 있는 흑백차별 시설물에 대해 폭로해 온 편지를 읽고 분노했다. 그녀는 편지 쓰기 운동을 강력하게 전개하여 결국 며칠 만에 국방부는 이에 관한 훈령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군사기지 내에서 ‘백인 전용’ 또는 ‘유색인 전용’을 표시한 위락시설 표지판을 전부 없애라는 명령이었다. “이것은 군대 내 인종차별을 없애는 첫 단추였다”고 굿윈은 썼다.

▶ “나의 생애가 보여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가치는 특별한 재능이 없더라도, 자신이 그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는 결의에 차 있고 소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어떤 어려운 장애물일지라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인생을 좀더 폭넓고 풍족하게 살아갈 길을 찾을 수 있다.”



 Part 4 : 성공의 길을 밝히는 혁신과 전략

 대제국의 건설자 알렉산더 대왕 :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략가

▶ B.C. 329년 봄, 알렉산더는 굶주림과 설맹에 시달리는 군대를 이끌고 눈 덮인 중앙아시아의 힌두쿠시 산맥을 넘었다. 인고의 업적은 한니발의 알프스 횡단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라는 데 역사학자들도 동의한다고 전한다.

▶ 매일 밤 포루스는 전투 준비를 했지만 알렉산더군은 소란만 피우고는 재빨리 퇴각했다. 이러한 ‘신경전’은 포루스가 반격을 하지 않을 때까지 며칠이나 지속되었다. 결국 지친 포루스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게 된 날, 알렉산더는 포루스가 진을 친 강둑을 포위하고 그의 군대를 격멸했다.

▶ 그는 사람을 다루는 정치적인 감각은 있었지만 행정에는 문외한이었다. 알렉산더는 동방을 함락하기에 앞서 마케도니아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직접세를 폐지했지만 이로 인해 국가재정은 거의 파탄 지경에 몰렸다. 어릴 적 친구인 하르팔루스를 제국의 재무장관에 임명했지만 그는 막대한 금액을 횡령했다. 알렉산더는 또 다른 치명적인 판단착오를 범했다. 군사들을 폭우와 진흙 구덩이를 뚫고 인도까지 진격시킴으로써 군대를 한계 상황까지 몰아붙인 것이다.

▶ “투쟁하라, 탐색하라, 찾아내라, 그리고 포기하지 마라.”

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 :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여 대업을 이루다.

▶ 워싱턴 자신은 형 로렌스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로렌스는 영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농장을 성공적으로 경영했으며, 지주 가문의 여성과 결혼하고, 영국군에서 눈부신 활약을 했다 이 모두는 워싱턴이 일생 동안 이루고 싶었던 것이었다.

▶ “죽을 각오로 달려들어 성공을 쟁취하려 애쓰지 않아도 한 걸음씩 나아가면 결국 성공에 이르게 된다.” ▶ 무엇보다 그는 역동적이고 새로운 경험들을 찾아다녔고 게으름이라면 질색을 했다. 한번은 “낭비한 시간은 영원히 되찾을 수 없다”고 양자에게 써보낸 적이 있을 정도다.

▶ 워싱턴은 기본적으로 영국군의 전통을 선호했지만 인습에 얽매인 지휘관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그는 실전에 임할 때 프렌치 인디언 전쟁에서 배운 치고 빠지는 전법을 구사하곤 했다. 엄격하게 정해진 대형을 짜서 교전하는 전투방법밖에 모르던 병사들에게는 전대미문의 전술이었다. 그러나 이 치고 빠지는 전법으로 워싱턴은 뉴저지의 트랜턴과 프린스턴에서 치른 두 번의 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을 때, 미국 시민들은 오랜 우방인 프랑스를 지원하기 원했다. 워싱턴은 신생 국가인 미국이 타국의 분쟁에 끼어들기엔 아직 국력이 충분치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중립을 지켰다. 제퍼슨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프랑스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워싱턴은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여 미국이 전쟁에 말려들지 않도록 주력했다.

 천년왕국의 기틀을 다진 콘스탄티누스 대제 : 쇠락하는 로마제국을 부흥시킨 온건 개혁주의자

▶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301년 맥주에서 흉갑에 이르는 수백 가지 품목의 가격 상한선을 정하는 칙령을 발표했다. 또한 목수, 제빵사, 미장공, 석공, 교사, 마부 등 수십 개의 주요 직종의 임금도 통제했다. 칙령은 재앙이었다. 상품이 모두 암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품귀 현상을 빚었다.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법의 공정한 집행조차 어려웠다. 결국 정부는 손을 들었다.

▶ 시장의 안정을 위해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사람들이 통화의 가치를 신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견고하다는뜻의 솔리두스라는 이름의 새 금화를 발행했다.

▶ 그는 30년간 분할 통치체제였던 로마제국을 한 사람의 통치자 밑으로 통합시키고 경제 안정, 종교의 자유, 인간에 대한 인도적 처우, 안전한 국방, 건전한 정부를 위해 광범위한 개혁을 주도했다. 그의 개혁은 천년왕국을 구가한 비잔틴 제국의 기틀이 되었다.

▶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매사를 서둘렀다. 그는 군인이었고 명령하달식으로 통치했다. 반면에 콘스탄티누스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강제보다는 설득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원만한 대민관계가 국민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기독교도 박해가 국가를 운영하는 데 얼마나 커다란 짐이 되고, 많은 선량한 국민들을 소외시키는가를 목도했다. 그는 또한 기독교도들의 강한 믿음에 감명받았고, 기독교도들에게 자신을 유일한 황제로서 강력하게 지지해 줄 수 잇는 잠재력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는 그들의 특성을 분석했다. 기독교도들은 조직화되어 있고 매우 의욕적이며 보호자에 대한 충성도가 높았다.

▶ 긴 안목에서 문제에 접근했다. 일단 그는 죄인을 경기장으로 보내는 것을 막았다. 이 정책으로 검투사들의 공급이 차단되었다. 경기는 시들해졌고 결국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광대한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권력을 분할했지만, 그가 은퇴하자마자 그의 체제는 무너졌다. 황제의 자리를 노리는 군사 지도자가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 324년 콘스탄티누스는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이름을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바꿨다. 또한 군의 지휘체제도 분할하여 보병사령관, 기병사령관, 야전사령관을 각각 지명했다. 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독립적인 ‘정보부대’를 설치했다.

 도쿄 공습의 영웅 제임스 둘리틀 : 제2차 세계대전의 흐름을 바꾼 항공전략가

▶ MIT에서 항공공학 대학원 과정을 마친 최초의 조종사가 되었다.

 인도의 황금시대를 연 악바르 대제 : 제국 중흥을 이룩한 화합과 포용

 전쟁론의 저자 칼 폰 클라우제비츠 : 통찰력과 유연성을 겸비한 전쟁 전문가

▶ “클라우제비츠가 말하고자 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점은 ‘전쟁이란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전쟁은 본질적으로 복잡하고 역동적이며 환경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같은 일을 반복해서 수행하는 기술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 “클라우제비츠와 프로이센의 참모들은 적과 초전을 치른 이후에도 사용될 수 있는 작전계획을 수립하지 않았다. 그들은 포괄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예견하지 못한 기회를 포착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전략은 장황한 행동계획이 아니다. 전략이란 끊임없이 변화하는 전쟁 속에서 하나의 중심적 사고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라고 웰치는 썼다.

▶ “실수를 저지를지언정 신속하게 행동하는 것이 우유부단하게 굴다가 결정적인 때를 놓치는 것보다 훨씬 낫다.”

▶ “인간이 활동하는 분야 중에서 대담성이 필요한 것이 전쟁터이겠는가, 집안이겠는가? 공간과 시간, 군사력의 크기를 아무리 치밀하게 계산하더라도 이를 분명히 넘어서는 어떤 힘이 있다. 그것이 대담함이다”라고 그는 썼다.

▶ 클라우제비츠는 혼돈으로 치닫는 전투의 와중에서 가장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유연성이라고 믿었다. 그는 “침착함은 예측하지 못한 사태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증대시킨다. 전쟁에서 천재성은 신이 내린 은총이 아니라 노력에 의해 개발될 수 있는 것이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려면 창의력보다 탐구력이, 전문적이기보다는 포괄적인 접근이, 열정보다는 냉철한 사고가 요구된다”고 썼다.

 컴퓨터 제독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 : 국방 전산화에 기여한 첫 번째 프로그래머

▶ 어떤 악천후 속에서도 정확하게 함포를 발사할 수 있는 각도를 찾아내도록 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마크 원 컴퓨터를 사용하여 함포의 발사각들을 찾게 되었다.

▶ 한 컴퓨터가 영어를 이해할 수 있다면 다른 것들도 그럴 수 있다고 추론했다. 그녀는 동료들에게 일반 상용 컴퓨터 언어를 개발하자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코볼

▶ 마크 투의 문제점을 찾다가 계전회로안에 들어 있는 나방을 발견했고, 그 나방을 치운 후 그녀는 이를 작업일지에 기록했다. 그녀와 동료들은 이후로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 이를 ‘버그’라 불렀다.

 전략정보국 창설자 윌리엄 도노번 : 미국의 정보전 우위 확립에 기여

▶ “그는 굉장한 독서광이었고, 남북전쟁 중 모스비의 특공대가 활용했던 전술을 이용하여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전략정보국 게릴라 전술의 기초를 닦았다.” 전략정보국은 공식적으로는 1942년 중반가지 설치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략정보국의 실제 창설일은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한 1941년 12월 7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날은 “미국은 다른 열강이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며 이를 무시했을 경우 고통이 뒤따를 것”이라는 도노번의 경고가 현실로 명백히 드러난 날이기도 했다.

▶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도노번과 사이가 나빴으며, 결국 1945년 전략정보국을 해체했다. 그러나 트루먼은 1947년에 중앙정보부(CIA)를 창설했다.

 군사전략가 존 보이드 : 현대 전술이론의 최고봉

▶ 완벽을 위한 그의 열정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가 있다. 보이드는 펜타곤의 구내식당에서 국방부 계약 담당 장교와 싸움을 벌였다. 고성이 오갔고, 그는 마침내 피우던 시가를 상대방 장교의 가슴에다 찔러 넣어 넥타이에 구멍을 냈다.

▶ 보이드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은 ‘에너지 기동이론’을 만든 것이었다. 이 개념은 현대의 최고 전투기 개발의 배후에 있는 핵심 공학개념이다. 이것은 또한 보이드와 그의 팀이 F-16 전투기를 설계하는 데 중요한 돌파구가 되었다.

▶ 보이드의 가장 위대한 유산은 ‘OODA 루프’ 이론일 것이다. 그 이름은 “식별하고observe, 겨냥하며orient, 결정하고decide, 행동하라act의 머리글자를 따서 붙여졌다.



 Part 5 : 위험 속에서 기회를 찾다

 행동주의자 레흐 바웬사 : 비폭력 반체제운동으로 쟁취한 자유 폴란드

▶ 1980년 파업 기간 동안 그단스크 조선소에 걸려 있던 ‘21개 조항’은 지금은 유네스코의 ‘세계의 기억’ 카탈로그에 역사 문서로 등록되었다.

 대공황을 극복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개인의 장애와 국가의 위기를 넘어서다.

▶ 취임사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단 한 가지는 두려움”이라고 말했다.

▶ “이것은 대담하고 지속적인 실험이다. 하나의 방법을 찾아 시도하고, 그것이 실패하면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또 다른 방법을 찾아 다시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시도하는 것이다.”

▶ 진주만 공습 후 “이 사건으로부터 배운 교훈을 우리가 잊지 않는다면 전사한 군인들의 목숨은 헛된 것이 아니다. 이제 지리적 위치 하나로는 전쟁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배운 것을 잊지 않는 것이 전사자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이다. 또한 이는 전사자의 자손과 우리 자손들에 대한 신성한 의무이기도 하다.”

▶ 액설로드는 “프랭클린의 궁극적인 목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가 아니라 전후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 터키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 터키의 미래와 지신의 꿈을 위해

▶ 무스타파 캐말 아타튀르크는 오직 평범한 사람만이 만인을 즐겁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위대한 인물들은 그저 적한테나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 미드웨이 해전의 영웅 체스터 니미츠 : 격려와 팀워크로 얻은 승리

▶ 미국 함대사령관인 어니스트 킹제독과 세 명의 고집불통 제독들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해야만 했다. 그들은 ‘황소’ 윌리엄 홀시제독, ‘지독한’터너제독, 그리고 ‘미치광이’ 홀랜드 스미스 제독이었다.

▶ 진주만에서 장병을 다룰 때 중요한 교훈을 터득했다. 만일 자신이 누군가를 힐책한다면 그 사람은 망가지고, 한 사람을 항구 한구석에 사장시키면 결과적으로 해군이 훌륭한 인재 하나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 황소 제독 윌리엄 F. 홀시 : 전통적 사고를 뒤엎으면 돌파구가 보인다.

▶ “새벽 공습을 감행한 것은 해군의 모든 규칙과 전통을 깨뜨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적이 예상한 것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항공모함들을 전선 후방에 두지 않고 일부러 해안기지의 전투기들에 노출시켰다”라고 자서전에 밝혔다.

▶ 위험을 두려워 말라 : ‘황소’라는 별명을 얻은 홀시는 전쟁의 열기를 헛되이 바다에 쏟아 붓지 않고 오로지 적에게 집중시켰다. 잠재적 반대급부가 클수록 위험부담을 감수한 그의 저돌성은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그는 트라팔가르 해전을 앞두고 넬슨 경이 한 말을 즐겨 인용했다. “자기의 함선을 적의 함선과 나란히 배치하기만 하면 실수를 저지를 함장은 한 사람도 없다.”

▶ 솔로몬 제도에서의 전투 기간 중 휴식시간에 홀시는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구축함 한 척을 호주의 시드니로 보낸 지휘관의 한 사람이었던 알레이 버크를 만나게 되었다. 버크가 말했다. “제독님, 제 부하들은 몇 달 동안 맥주나 위스키 한 방울도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좋아, 버크. 귀관이 이겼다. 귀관의 부하들은 잘 싸웠고, 병사들을 좀 풀어 주었다고 해서 귀관을 책망하진 않겠네.”

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엘 사다트 : 국위와 평화를 동시에 얻은 정치 달인

▶ “사다트는 30여 년 동안 계획적으로 평가절하를 받아 왔다. 정치권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일했는데도 중요 회의에서는 항상 제외되었다.”고 애커맨은 말했다.

▶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대학교 외교학과 교수인 아론 클리만은 “이스라엘도 그를 과소평가하기는 마찬가지였다”라고 말했다.

 중세의 여장부 아키텐의 엘레아노르 :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여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 남아메리카의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 : 스페인으로부터 남미제국의 해방을 주도

▶ “나는 스페인 제국의 굴레를 부수기 전까지는 한시도 쉬지 않겠다고 너와 내 조상들의 신께 맹세한다.” 1812년부터 1824년까지 볼리바르는 오늘날의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의 혁명운동을 이끌어 내어 ‘해방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 “나는 스페인 왕의 행복을 위해 잔을 듭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와 아메리카 전체의 자유를 위해 더욱더 높이 잔을 듭니다."

 대중과 함께 한 대통령 앤드루 잭슨 : 미국 성공사를 닮은 자수성가형 정치인



 Part 6 : 동기부여와 배려로 얻은 승리

 혜안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 :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헌신적 노력

▶ 병사들이 참호 밖으로 빠져나와 이동할 때 특히 희생이 크다는 것을 알고 처칠은 공병부대에 적 참호를 분쇄할 장갑차를 만들도록 명했다(1916년 솜전투에서 최초로 ‘탱크’가 등장했는데, 그때까지도 탱크는 해군 소속 자산이었다). ▶ 처칠은 또한 장차 전쟁에서 항공전력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는 해군 항공대를 출범시켰다.

 위대한 제독 호레이쇼 넬슨 : 부하 장병과 조국에 모든 영광을 돌리다.

▶ “장교가 부하의 건강을 유지시키는 것은 의사가 환자를 낫게 하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 유럽을 정복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혁명의 혼란에서 프랑스를 이끌다.

▶ “ 무엇보다 말은 적게 할수록 좋다. 침묵은 지식을 과시하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 “불가능이란 소심한 자의 망령이며 겁쟁이의 피난처다. (불가능이란)단어는 오직 자신이 무기력하다는 고백에 불과하다.”

 완벽한 전략가 버나드 로 몽고메리 : 최소 희생으로 최대 승리를

▶ 몽고메리가 늑장을 부린다며 호되게 비판했던 처칠은 나중에 “엘알라메인 이전에 우리는 승리를 맛보지 못했다. 그러나 엘알라메인 이후 우리는 패배한 적이 없었다”고 기술했다.

▶ “지휘관은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어떻게 싸울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적군이 처음부터 그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도록 해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 미국적 가치를 재창조한 로널드 레이건 : 미국 정치 변화와 냉전 종식에 기여한 대중주의자

 죽지 않는 노병 더글러스 맥아더 : 대담성과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한 전쟁영웅

▶ 맥아더는 웃으며 말했다. “물론 나는 폭탄이 투하되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정확한 곳에 떨어지고 있지요. 그곳이 어딘지 조지 케니 장군에게 알아보라는 것입니다.”

▶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쉬어At Ease』라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그는 임무를 부여한 다음에는 결코 진행 상황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마감시간에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의 요구는 오로지 임무를 완수해 달라는 것이었다.”

▶ “평시에는 장교와 신사가 필요하지. 하지만 전시에는 반항아와 개자식이 필요한 법이라네.”

 걸프전의 주인공 노먼 슈워츠코프 : 군에 대한 영원한 애정과 헌신

▶ “이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군대를 떠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언젠가 자네가 좀더 진급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그 문제를 고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잊지 말게. 자네가 그만둔다면 그런 나쁜놈이 이긴다는 것을.”

▶ “당신의 젊은 부하장교들이 당신을 실망시켰다고 자책하며 스스로도 위축되어 있을 것을 생각해서라도 그들에게 좀더 긍정적으로 대해 주어야 할 것이오.”

 최고경영자 엘리자베스 1세 : 합리와 중용으로 건설한 대영제국

▶ 메리는 아버지 헨리 8세가 장려했던 청교도 개혁을 거꾸로 돌리고 다시 가톨릭을 국교로 삼으면서 나라를 황폐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적대세력을 박해하고 살해함으로써 ‘블러디 메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 엘리자베스는 국교회를 부활시키면서도 메리의 장례식을 가톨릭 의식에 따르도록 허용함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신중하며 빈틈없는 사람인지 보여 주었다.

▶ “나의 개인적인 의지를 존중하지만 말고, 당신들이 생각하는 최선을 내게 충언하라.”

 국제사면위원회의 지네타 사강 : 인권신장에 앞장선 불굴의 여전사

▶ 수수께끼 같은 친구가 그녀의 감방으로 종이쪽지를 끼운 빵 한 덩이를 넣어 주었다. 쪽지에는 ‘용기’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코라지오’가 적혀 있었다. 자신이 잊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준 이 메시지는 인간 존엄성과 자유를 빼앗긴 평범한 사람들인 ‘잊혀진 수감자’를 위해 일하는 그녀의 평생의 투쟁을 상징하게 되었다.

▶ “불의 앞에서 침묵하는 것은 압제자와 공모하는 것이다.”

 대초원의 정복자 칭기즈칸 : 전쟁과 통치의 핵심을 간파하여 세계를 정복하다.

▶ 칸은 누구든지 사회봉사 활동, 즉 군대가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공익을 위한 일에 참가하도록 요구했다. 싸울 수 없다면 공공사업이나 칸에 봉사하기 위해 일주일에 하루치에 해당하는 노동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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