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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 조중걸 저.


책을 읽기 전.


서른을 넘기던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인생무상을 느꼈다.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생각을 하다보니,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자연스레 이어졌고, 그 즈음, 막연히 과학과 예술과 철학이 한통속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던 그때 한 권의 책을 만났다. “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 이 책은 충격 그 자체였다. 분명 예술사인데, 분명 나름 역사서인데, 나를 둘러보고 반성을 하게 만드는 책. 이건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철학에 대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책이었다.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게끔, 그것도 아주 냉렬히 비판적으로 반성하게끔 만드는 저자의 능력에 감탄하며 저자의 또 다른 책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던 중 새로운 책 “플라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출간 소식을 접했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있어 철학이란....
고등학생때 대학생때 배운 철학은 말 그대로 철.학. 문자로서의 철.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다음 중 풀라톤이 한 말이 아닌 것은?’ 으로 시작되는 시험문제와 하나라도 더 찍고 맞추기 위해 무작정 외워야 했던 내 모습이 ‘철학’에 대한 내 기억의 전부다. 한 철학자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또 그 말이 지금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한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었던 수업이기에 악숙하지 않은 철학자들의 이름과 전문용어는 철학은 참으로 지루하고 지겨운 학문으로, 그렇게 철학은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문자로만 존재해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에 대한 신뢰덕에 책 출간 소문에 덜컥 사버린다. 열어보지도 않고.
얇은 책이지만, 철학책은 철학책이다. 즉, 철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중압감에 쉽게 첫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다. 다만 책표지에 있는 제목의 문체가 이런 두려움을 넘어서게 해 준다. 마치 철학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그렇게 다가온 책, “플라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플비).


역시 이 책도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단순히 열거한 책처럼 보이는 제목이지만, 머리말을 읽는 순간 갑자기 눈이 환해짐을 느낀다. 그동안의 답답함이 왠지 이 책에서 풀릴 것 같은 느낌. 목차를 열면 기존의 철학사 책들과는 접근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된다.


책을 읽은 후 1


인류의 30,000년 역사에서 “인간의 생각“이라는 부분을 200여페이지에 압축해 놓은 책. 다 읽고 나니 책에서 인용된 오캄의 면도날과 같은 깔끔함이 그대로 묻어나 있음을 알게 된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이만큼만으로 우리의 생각과 관념이 어떤 변화를 겪어왔는지를 설명하는 책.


“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를 읽는 동안에 나를 알아가고, 나를 만나는 즐거움을 맛보았듯, 나는 “플비”를 읽으면서 우리 인류가 만들어온 인식의 흐름을 보며 나 자신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1. '실재론, 관념론, 합리론, 경험론, 유물론. 관념적 독단, 유물론적 회의'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단어들로 알고 있었는데, 내 머릿속에 혹은 내 마음 안에 들어있는 실재론적 생각들, 관념론적 생각들, 합리론적 생각들, 경험론적, 유물론적 생각들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이젠 알게 되었고, 끝없이 관념적 독단과 유물론적 회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를 발견했다. 세상은 망하게 되는 게 아닌가, 인류는 종말을 고하게 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나의 두려움과 현대를 살아가면서 겪는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 이제는 감이 온다.


2. 철학사로 보는 지금, 현대, 21세기,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이 남긴 것.


그간의 철학으로는 누가 먼저 활동한 철학자인지도 모르는 판에, 그동안 누가 어떤말을 했네... 라는 설명만 들어왔으니, 각각의 사조(? 생각)들이 어찌 연결되어 있고, 또 어떻게 철학이 발전해 왔는가를 한 눈에 꿰뚫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이 책을 읽어 가면서 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가 문화 활동을 시작한 구석기시대부터 끝없는 혼돈과 방황속에서 살고 있는 지금,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어떤 세계관 아래에서 우리의 생각과 문화 활동이 가능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왜 우리의 역사를 유명론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는지, 근대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데카르트가 왜 근대의 문을 그리고 어떻게 열었는가에 대해, 이제 수학과 과학이 가지는 위치에 대해 새로이 알게 되었고, 위대한 철학자라 불리우는 임마누엘 칸트가 흄의 경험론을 접한 후에 내뱉은 비장한 고백과 흄으로 인해 무너진 세상에 대한 절망감,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자 칸트가 시도한 구원, 즉 세계의 대통합에 대한 열망에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냉정하게 계속 해체되고 파산되어 가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내가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일지 모르겠다.


그리고, 철학이 존재론과 인식론으로 구분될 수 있다는 것. 존재론과 인식론에서 다루는 주제가 어떻게 다른지 또, 각각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즉, 세계에 대한 총체적 설명을 하기 위해 인류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세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과연 인간은 그 무엇인가를 알수있는가에 대한 물음과 그 답들이 철학의 주요 과제였다.


인간은 본래 원인과 결과를 엮는데에 천부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무런 정보가 없던, 동굴 생활을 하던 시절부터 우리는 어떤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묶어 어떤 법칙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개발해 왔을 것이다. 당연히 이런 능력은 우리의 생명력을 높이는 데에 많은 기여를 했을 것이다. 이제 이러한 법칙은 각 시대별로, 혹은 각 철학자 나름대로 이름을 달리 해왔음을 알게 되었다. 즉, 살아가는데 있어 이렇게 유용한(또는 생존에 유리한) 정보들이 때로는 이데아로(플라톤), 때로는 엔텔레케이아로(아리스토텔레스), 때로는 함수로(데카르트), 때로는 인과율로(흄), 때로는 종합적 선험지식으로(칸트), 때로는 언어(비트겐슈타인)으로, 그리고 현대에서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달리 불려온 것이다. 이제 우리가 알고 있는 세게, 즉 천국이나 신이나 지옥 같은 상상의 세계가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는 감각인식을 통해 접수되는 객관적 정보에 의해 과학이라는 언어로 표현되는 세상으로 한정지어 진다. 즉, 세상을 안다는 것은 과학을 통해 세상을 알게 된다는 뜻이 된다.(비트겐쉬타인)


이제 세상은 과학으로만 설명되어야 한다. 과학이 아닌 것은 존재하지만 보여져야 하는 것들이라고 비트겐슈타인이 설명하였다. 아직 내 몸과 마음이 100%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무슨 뜻으로 그러한 말을 했는지, 그 언어는 이해가 된다. 비트겐슈타인이라는, 고리타분했던 철학시간에서 조차도 언급이 되었던 적이 없던, 인물의 진가를 이제야 발견하게 된다. 이제 세상은 과학이라는 객관적 언어로 말해질 수 있는 부분만이 언급되어야 하며, 말하지 말아야 하는 부분(에술, 철학, 논리, 형이상학 등)은 이제 스스로의 존재가 증명되기 위해선 보여져야 한다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3. 반복되는 세계의 통합과 파산. 그 구성과 해체.


먼 과거 우리 인류가 가졌던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존경으로 우리 세계는 통합되었었고, 개별자의 존재와 가치에 눈을 뜨는 순간 우리 세계는 해체되었다. 인류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엇에 관심을 가졌는지, 무엇이 진리라고 느꼈는지는 이러한 통합과 파산, 또는 구성과 해체를 반복해온 역사다. 나는 관념론자로서 또 인본주의자로서 우리 세계가 통합되고 구성되길 희망하는 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비록 세계의 파산과 해체의 시기임은 인정하지만, 또다른 구성과 통합을 바라보는(또는 기다리는) '파산과 해체'의 시기, 그 말미에 살고 있기를 나는 희망한다.


절망의 시대. 상실의 시대.
이 시대에 내가 살아가야 하는 올바른 방법, 시대착오적이지 않게 최대한 잘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아니, 이것은 욕심이 아니라, 그렇게 사는 것이 현대를 가장 현대스럽게 사는 삶의 방식일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망해가는 것 같은 세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이 파산과 해체라는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 와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로 눈을 돌리고자 한다. 내게 남은 것은 이제 그것밖엔 없기에.


그래도 여전히 나는 그립다. 우리 다음의 세계가.
누군가 이 세계를 통합해 주길바라는 희망의 끈은 놓을 수가 없다. 꿈이라도 꾸고 싶다.


4. 현대인으로서의 나


나는 어찌하다보니 과학기술이라는 데에 발을 담그고 살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왜 과학적 기질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조차 시도한 적이 없다. 그러나 “플비”를 읽는 동안 내가 왜 과학과 수학을 좋아했고, 그리고 또 얼마나 그 학문이 가지는 선험성과 보편성에 무한한 신뢰를 해 왔는지, 그러한 신뢰가 알게 모르게 붕괴되는 현실에서 느끼는 자괴감과 혼돈이 내 삶에 어떻게 녹아 있었는지를 보았다.


즉, 21세기를 살아가면서 최신의 기술을 다루는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의식은 뉴턴이 세상을 뒤집어 놓았던 전근대적 사고를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고,
그래서 나의 삼십년 인생은 어떤 보편개념을 찾기위해 헤매고 다닌 시간들이었다는 것도 깨닳았다. 최근 공부를 더 하면서 알게된 우연의 세계, 과학이 우연이라니!! 필연이나 보편원칙이 아닌, 그 우연성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겪는 갈등. 현실과 내 이상과의 괴리가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상당부분이 비스겐슈타인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 현대 라는 것을 뜻하리라. 현대물리, 현대화학, 현대미술, 현대음악... 현대라는 말이 붙을때마다 경험하는 그 난해함의 기원을 이 책 “플라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이제 나는 과학이 지닌 태생적 한계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과학이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과학이 지닌 의무감의 무게를, 마음의 짐을 서서히 내려 놓는다. 진실은 없고, 진실을 추구하는 나 자신만의 소중함을 깨닳는다. 현재에 충실하는 나 자신이 이제 내 삶의 목표가 되고 있다.




책을 읽은 후 2


어려운 말들이나 전문용어로 사람의 기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 삶의 태도를 생각하게 하는
정말 친절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철학을 이제 바로 내 곁으로 아니 내 삷속 깊숙이 들어오게 되었다.
철학을 죽은 학문이 아닌 살아있는 학문으로 설명해 주신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새로 나오게 될 책, 플라톤에서 데리다까지.(비트겐슈타인을 제대로 안 적이 없었던 것처럼 지금은 데리다 역시 누군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이 나오면 역시 열심히 읽고 공부할거다) 이 책이 벌써부터 기다려 지는 것은 무언가를 또 알아가는 즐거움, 특히 나 자신을 알게 되는 즐거움이 미리 기대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살아있는 철학을 느끼고 싶은 분들게 권한다. 혼란스럽고 어렵다고만 느껴지는 철학이 한 줄에 꿰어질 것이다.


전혀 과학을 업으로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직관에 의해 “등거리 이론”을 만들어 낸 니꼴라우스 쿠자누스에게 경외감을 보내며...
과학기술에 몸 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플라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과학을 하는 올바른 자세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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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혁 2009.09.08 22:30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가볍지 않은 주제임에도 글이 '안정적이다'란 느낌입니다.
    '누군가 이 세계를 통합해 주길바라는 희망의 끈'...잘 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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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영균 2009.09.08 22:30
    오늘부터 조중걸 선생님 강의가 시작하는데요.
    임석희님의 독후감이 좋은 예습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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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영석 2009.09.08 22:30
    로켓트발사를 위해 나로도에서 지내는 동안 100북스에 못다한 열정, 책, 지식에 대한 뜨거움이 섬섬히 묻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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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향수 2009.09.08 22:30
    오늘 철학강의를 듣고와서 읽었습니다. 정말 살아있는 독후감이네요,
    교수님이 강의 때마다 독후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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