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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나의 마음을 만든다”를 읽고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2003(2006역)



뇌가 나의 마음을 만든다. 어떻게 만들까? 뇌가 마음을 만든다면 그 과정의 신경생리학적 기초는 무엇일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이 책을 읽어 보았다.



1. 뇌과학에서 정신질환의 활용



뇌에서 일어나는 정신작용을 이해하는데 정신질환의 연구는 매우 유용한 정보를 준다. 이것은 마치 유전자의 기능을 연구하는데 있어 돌연변이의 유용성과도 유사한 것 같다. 유전학에서 어떤 유전자의 기능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일반적인 접근방법은 그 유전자가 손상된 돌연변이를 만들거나 찾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돌연변이체에서 이상이 생긴 대사과정이나 행동은 손상된 유전자의 기능과 연관되어 있다고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사하게 뇌과학에서도 정신질환자의 손상된 뇌부위를 찾고 환자가 보이는 이상 행위와 연관시켜 특정 뇌부위가 담당하고 있는 기능을 유추해낸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연구 결과들이 축적되어 현재 뇌의 특정 부위들의 세세한 기능에 대하여 적당히 많은 것이 알려져 있다. 심지어 특정한 뇌작용은 그 과정이 일어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뇌부위들의 상세한 경로뿐 아니라 각 단계에 소요되는 시간까지도 측정되어 있다.



2. 시각경험(시각적 지각)



“... 지각을 이해하기 위한 첫 단계는 뇌 속의 이미지(뇌 속의 스크린)라는 개념은 잊어버리고, 대신에 외부세계의 대상과 사건에 대한 어떤 변형 혹은 상징적 재현을 생각하는 것이다. 글쓰기라고 불리는 짧고 불규칙한 잉크 곡선들이 물리적으로 유사성이 없는 어떤 대상을 상징하거나 재현할 수 있는 것처럼, 뇌 속 신경세포의 행동, 그 발화의 패턴이 외부세계의 대상과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다. 신경과학자들은 낯선 언어를 해석하기 위해 노력하는 암호해독자와 비슷하다. 외부세계를 재현하기 위해 신경계가 사용하는 바로 그 언어를 말이다.”



우리의 뇌가 사용하는 언어는 어떤 것일까? 우주의 또 다른 지적생명체는 우리 뇌가 사용하는 언어와 다른 언어를 사용할 수도 있을까? 우리가 ‘장미꽃’이라 하는 것을 미국이라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rose'라 하고 중국이라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玫瑰花’라고 표현한다.

내 눈 앞에 장미꽃 한송이가 있다. 나는 장미꽃의 빨간색과 그 특유의 아름다운 모양을 지각한다. 그런데 저 먼 우주에서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이 장미꽃을 본다면 나와 같은 모습으로 인식할까? 외계인을 만난 적이 없으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은 전혀 다르게 인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더 나아가 외계인은 장미꽃만은 인식하지 못하고 장미꽃과 그것이 담긴 꽃병을 합쳐서 ‘쿠이’라고 인식할지도 모른다. -참고로 ‘쿠이’는 아직 말을 못하는 둘째 아이가 자주 쓰는 단어이다.



이번에는 내 눈 앞에 호랑이 한 마리가 있다(물론 그런 상황이 실현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나의 뇌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호랑이의 누런색과 검은 줄무늬는 시각피질 V4영역에 있는 뉴런들을 자극할 것이고 보는 이를 압도하는 그 무시무시한 형태는 IT영역의 뉴런들을 활성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호랑이가 내 앞으로 다가오기라도 하면 MT영역의 뉴런들도 난리가 날 것이다. 한편 이 세가지 영역의 뉴런들이 모두 자극받았을 때 비로써 자극을 받는 뉴런들도 있을 것이다. 이 뉴런들과 직, 간접적으로 연결된 입, 혀, 성대 등의 근육이 신호를 받아 내는 소리가 바로 언어의 시발점이 아닐까?



라마찬드란은 앞서 내가 예로 든 호랑이로부터 오는 다양한 신호자극들을 하나로 묶어 ‘호랑이’로서 인식되도록 하기 위해 진화된 것이 우리의 ‘의식’이라고 말한다. 분명 이와 같은 묶음의 지각을 지닌 생명체는 진화적으로 유리한 점이 있을 것이다. 누런색만 보고 달아나는 Homo 조상보다는 누런색과 검은 줄무늬 그리고 무시무시한 형태 등을 하나의 묶음으로 지각한 후 달아나는 Homo 조상이 에너지를 덜 낭비했을 것이고 이런 점에서 생존에 유리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 에델만이 말한 ‘범주화’라는 개념이 바로 이러한 묶음의 지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3. 인간의 예술 창조



원숭이처럼 사람 뇌의 전두엽에도 ‘거울 뉴런’이라는 세포들이 있다. 이들은 내가 어떤 행위를 할 때에 발화하지만 다른 사람이 동일한 행위를 할 때에도 똑같이 발화한다. 라마찬드란은 거울 뉴런의 존재로부터 나아가 우리 뇌에는 ‘가상현실 시뮬레이션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이 시스템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판단하고 예측한다. 우리 뇌의 가상형실 시뮬레이션 시스템이 진화하는 데에는 인간의 사회성이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어쨌든 ‘가상현실 시뮬레이션 시스템’은 인간의 모방 능력을 낳았고 이것은 정보의 문화적 전달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인류의 찬란한 문화와 문명을 탄생케 했다. 그런데 ‘가상현실 시뮬레이션 시스템’은 불완전한 면이 있어서 초기에 인류는 자식을 교육시키는 소도구로서 이미지 창조 행위을 발전시켰고 이 행위가 후에 예술로 승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라마찬드란이 인류의 예술 창조와 관련한 관점인 것 같다. 즉 정보 전달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 변형되어 예술이라고 하는 문화적 장르가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라마찬드란은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예술작품들에게는 그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보편원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10가지 원리를 제시한다.



4. 자유의지는 뇌가 만들어낸 환상



우리는 우리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손가락을 움직이려는 의지를 느끼는 순간과 실제로 손가락을 움직이는 순간은 정확히 일치한다. 그런데 신경생물학 연구에 의하면 손가락이 움직이기 1초전 즉 우리의 의지가 생기기 직전에 readiness potential이라고 하는 뇌전위가 탐지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행위는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뇌의 어떤 명령에 의한 것이 되고 만다. 라마찬드란은 이에 대해 “명령을 내리는 주체는 뇌이며, 우리의 자유의지는 사후의 합리화 대상일 뿐이거나 단순히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자유의지가 진화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에는 특별한 기능이 있는가?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라마찬드란은 이 책에서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다만 양자역학에서 그랬듯이 인과관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급진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라고만 언급하는 정도이다.



5. 자아



자아란 무엇인가?

우선 사전적 정의를 보자. “사고, 감정, 의지 등의 여러 작용의 주관자로서 이 여러 작용에 수반하고, 또한 이를 통일하는 주체이다. 따라서 그것은 그때그때의 사고 ·감정 ·의지의 각 작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속성과 동일성을 지니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매순간 다른 느낌을 경험하고 생각을 하며 무엇인가를 하려 하고 또 무엇인가를 기억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매순간의 다름속에서도 우리 각자는 조금도 당황하거나 어렵지 않게 한 인간으로서, 통일체로서의 우리 자신을 경험한다. 자아와 관련하여 명확한 답을 주고 있지는 않지만(과학자로서 그는 그렇게 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음 글은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자아가 앞에서 살펴 본 구체성, 자유의지, 일체성, 연속성과 같은 일련의 특징으로 정의된다면 이런 각각의 특징을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과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과학자가 ‘생기’에 관해서 논하지 않거나 ‘생명’이 무엇인지 묻지 않듯이, 자아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사라지거나 적어도 뒤로 물러날 것이다(우리는 생명이 DNA 복제나 전사, 크렙스 회로, 젖산 회로 등의 일련의 과정들에 느슨하게 적용되는 단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모든 정신작용의 기초는 통합, 연결 또는 묶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여기 사과가 있다. 붉음에 반응하여 어떤 뉴런들이 활성화되고 사과의 형태와 관련하여 또 다른 뉴런들이 자극받는다. 이렇게 하여 사과를 보는 순간 동시에 활성화되거나 시차를 갖는다 하더라도 연관성있게 활성화되는 뉴런들의 발화패턴이 사과에 대한 시각적 지각의 본질이다. 또 지나가는 강아지를 본다고 하자. 색, 모양, 움직임, 저장된 강아지의 기억 등에 대응하는 뉴런들이 동시에 활성화되거나 적어도 연관되어 활성화된다. 그 뿐이다. 강아지에 대한 지각은 연관되어 즉 묶여져 반응하는 뉴런들의 발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자아도 마찬가지이다. 매순간 달라지는 외부 또는 내부 자극에 반응하여 시차는 있겠지만 사고, 감정, 의지, 기억 등에 관여하는 연관되어 활성화되는 거대한 뉴런들의 그물망이 형성된다. 물론 이러한 활성화된 뉴론 그물망은 매순간 변화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매순간 형성되는 거대한 발화 뉴런들의 그물망도 서로 완전히 독립적인 것은 아니다. 일정부분 이전 그물망과 중첩되어진다. 자아의 특성인 통일성은 뉴런 발화의 동시성과 연관성이 그 본질이 아닐까 생각한다.

개별적인 지각, 감정, 기억 등은 모두 연관된 뉴런들의 특정한 발화패턴이며 그 중 가장 거대한 패턴이 바로 자아와 연관된 것이 아닐까?

이러한 개념은 지작의 개별성(주관성) 즉 qualia의 본질도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사과를 보고 그것이 붉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이것은 뉴런들의 구조, 시냅스, networking 등에 있어서의 개인간 미세한 차이를 반영한다. 즉 연관되어 발화하는 뉴런들의 패턴이 약간씩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주관적 감각의 본질이다.



6. 글을 마치며



‘뇌과학을 공부해보자.’하고 마음먹은 뒤 읽은 세 번째 책이다. 원래는 에델만의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를 읽을 예정이었는데 어려워 잠시 접어두기로 하고 이 책을 잡았다.

책은 다 읽었지만 아직 처음에 가졌던 의문 즉 뇌가 어떻게 마음을 만드는지에 대한 답은 명확하지 않다. 다만 책을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주로 철학적인 주제들이었다. 아름다움, qualia, 자유의지, 자아...

옛날 자연과학은 철학과 하나였다. 근세를 지나 현대에 이르면서 자연과학은 철학에서 분리되었다. 21세기에는 뇌과학을 매개로 자연과학과 철학이 다시 많은 부분에서 융합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를 읽기 전에 역시 에델만이 쓴 “뇌는 하늘보다 넓다”를 먼저 읽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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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우 2007.01.22 09:00
    엄준호님의 독후감은 항상 저를 채찍질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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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경화 2007.01.22 09:00
    며칠 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었는데 책을 덮고 나니 인간이란 게 과연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계속 맴돕니다. 제가 이해하고 있는 인간의 정의가 달라지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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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래석 2007.01.22 09:00
    독후감 속에 책의 내용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깊이 느껴집니다. 뇌에 대한 님의 생각은 잘 나타나있지 않지만 책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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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수 2007.01.22 09:00
    라마찬드란의 두뇌 실험실을 읽고 있는 중입니다. 역시 라마찬드란 이란 말이 나옵니다.!!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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