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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존재하는 이유는 행위를 위해서라면 어떻게 행위하며 살아가야 할까? 행위의 온당성과 적합성은 무엇이고 어떠한 법칙에 근거하여 평가해야할까? 등등 누구나가 한번쯤 인식하고 회의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질문이다. 철학은 이에 대한 답을 내리고 있으니 그 현자(Philosopher)들의 세계를 여행해 보고자 한다. 이번은 저번에 언급한 소크라테스와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글을 제외하고 다른 사상가들과 현자들의 글을 명저(名著)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새뮤얼 이녹 스템프, 제임스 피저 공저, 이광래 옮김)》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삶의 양태와 행위의 정당성, 다시 말해서 세상사의 흐름과 인간 자신의 생명을 탐구하고 깊이 연구하는 것이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는 매우 유강(柔强)한 문체로 책을 써내려가고 있다. 읽는 이의 마음이 훤히 트이면서 지성과 감성 더 나아가 윤리와 도덕성이 함께 합쳐지고 이어진 커다란 냇물을 헤쳐 나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저자들은 “서양철학의 이야기는 기원전 6 세기 동안 고대 그리스에 있는 일련의 섬들과 식민지에서 시작되었다. 최초의 몇몇 사상가들은 매우 특별한 수수께끼들, 특히 <사물이란 실제로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사물의 변화 과정을 설명할 수 있을까>와 같은 것들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술회한다. 그렇다. 철학자와 사상가들의 본 목표는 사물이라는 개체적 실체의 존재성과 그 의미를 파헤치는데서 시작된 것이다. 이 사물에는 인간의 몸과 정신 그리고 외계의 삼라만상 일체가 포함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사물의 존재(Being)과 변화(Becoming)의 양단을 배회하면서 끊임없고 기나긴 사유의 도정을 걸어왔다. 그것이 고대 철학에서 현대 철학의 커다란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자들은 고대 사상가들이 해답을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서 갈무리 했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가 아는 바대로 이를 철학이라고 한다. 하지만 본인은 철학을 “행동하는 앎” 또는 “실천이 동반되는 앎”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동양의 대석학 왕양명의 지행합일(知行合一) 가르침에 의거한다. 앎을 사랑하는 것으로 또는 지혜를 추구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그것은 자신만의 주관적이고 동시에 사변적인 철학의 틀(범위)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앎을 실천에 옮기고 그러한 앎의 실천을 통해 지식과 지혜를 타인과 공유해 나갈때 진실된 철학자와 현자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지혜가 만인에게 퍼질 때 진리는 더욱 빛을 발하는 법이다.


 


철학은 밀레토스라는 항구도시에서 태어났으며 그리고 최초의 철학자들을 밀레토스학파 또는 이오니아 학파라고 부른다고 저자들은 말하고 있다. 저자들은 매우 명석한 두뇌와 총명성으로 철학사에서부터 시작하여 철학자들의 삶과 사유를 펼쳐내고 있다. 철학자들의 현학적 사상과 가르침을 핵심적으로 요약해서 정리하고 있어 읽는 이에게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오니아는 호메로스(Homeros)라는 천재를 낳았는데 이 현자가 바로 자신의 서사시에 올림포스 산의 조화로운 정경을 묘사하면서 신들의 세계를 이야기하였다. 신들의 세계가 인간과는 다를 바 없이 좀 비정하고 힘의 원리에 의해 움직일 지라도 자연에 내재한 엄격한 질서를 함유함으로써 <운명>이라는 하나의 힘, 즉 신들조차 종속시키는 힘, 모든 사람과 사물이 반드시 종속되어야하는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제안하였다. 이것은 동양철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주역(周易)과 괘적을 같이 한다. 즉, 마음, 운명, 그리고 노력이라는 세 박자가 결합되었을때 인생의 수레바퀴는 제대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좋은 마음, 좋은 운명 그리고 좋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자들은 삶의 목적과 의미를 이해하고 깨달아가면서 실천하고 행동하는 지성을 의미한다. 물론 여기에는 신(God) 그리고 부처님에 대한 믿음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중생들에 대해서 다소간의 자선과 보시가 필요하다.

 

또한 호메로스의 자연적 세계관에는 물질적인 자연 법칙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변덕스런 의지의 작용이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세계는 의지의 표상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운명이나 마음의 변화만이 모든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와 결부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대표적으로 철학사조에서는 자유의지라고 말한다. Free Will이 그것이다. 이 자유의지는 세계를 이루는 커다란 힘이요 원동력이다. 세계를 구성하는 힘에는 인간의 마음, 운명 그리고 의지(노력)가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마음은 존재의 구성여건이며 운명은 존재에게 다가오는 문제들이며 의지(노력)는 바로 존재의 모습을 펼쳐보이고 문제들을 해결하는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운명에만 모든 것을 맡겨서도 안되고 자신의 노력만 의지해도 안되며 자신의 마음에만 무조건 의지해서도 안된다. 우물의 한 길 속은 알아도 사람의 마음 속은 한치도 알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인간의 마음이란 심원(深遠)하기가 한이 없어 인류의 고대 성현들은 주역(周易)이라는 점술을 통해서 하늘에 물어 현재의 문제와 상황 그리고 자신들의 마음의 향로를 결정하였을 정도다. 마음에 이끌리지 말라는 선사들이 가르침이 있는가 하면 일체유심조라고 하여 모든 것이 사람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체유심조의 진실된 의미는 세계가 바로 마음의 화현(化現)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 마음이라는 것을 심오하게 깨닫지 않고서는 결코 마음을 좋은 의도와 좋은 방향으로 100% 쓸(用)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운명도 제대로 모르며, 마음도 제대로 모르며 의지(노력) 또한 확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호메로스는 여기서 운명과 의지라는 두 가지 커다란 개념을 제시하여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후에 나온 철학자 헤시오도스는 신들과 운명에 대한 개념을 일대 변혁하였는데, 그는 신들으로부터 모든 변덕스러움을 제거하고 일련의 도덕적 일관성을 부여했다. 여기서 헤시오도스는 이야기한다. “아직도 신이 자연을 통제한다는 생각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사물들의 본성 속에 있는 이러한 인간적 요소와 우주의 도덕적 법칙의 비인간적 작용에 관한 강조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말이다. 이는 도덕적 질서가 변덕스럽거나 신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계산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을 위해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아무튼 헤시오도스에게 있어서 “우주란 하나의 도덕적 질서”인 것이라는 것에 저자들은 의견을 모으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우주의 도덕적 질서라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말이다. 동양철학 주역(周易)에서는 길흉과 선악 그리고 호오(好惡)가 항상 순환하면서 음양법칙으로 이 우주를 연출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신들도 운명에 영향을 받는 존재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 운명이 아무리 험난하고 가파를지라도 꿋꿋이 견디어 나가면 결국 좋은 운을 맞이 하게 된다는 것이 동양철학의 현자들의 이야기이다. 인간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은 마땅하고 당연한 이치이다. 하지만 그것이 운명과 시대적 사조에 맞지 않다면 과감히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대의명분과 도덕적 믿음이 있는 일이라면 운명이 안좋아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운이고 도덕적 믿음이 훌륭하다고 해도 시대적 사조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은인자중해야 한다. 그러나 시대사조가 아무리 어렵고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추구해야할 바라면 목숨을 걸고 자신의 의지와 노력을 발휘하여 행동에 옮겨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삶에는 정답이 없는 것이다. 모두가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거대한 우주적 역사의 수레바퀴를 구성하는 바퀴살에 지나지 않는다.

 

서양과 동양의 철학자와 현자들의 가르침을 관통하는 하나의 순일한 가르침이 있는데 그것은 어느 한 가지 가르침에만 집착하지 말고 두루 원융하게 화합해서 해석해 보라는 것이다. 논리적인 판단력이 되었던 통합적 직관력이 되었든 사사물물의 존재성에서부터 인간들 간의 관계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많은 지적 정보와 지혜를 근거하여 파악되고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고대 서양철학자들이 말한 운명, 의지(노력) 그리고 도덕률 등에서부터 동양의 현자들이 말하는 ‘시대의 사조’, 마음(心)이라는 것을 잘 헤아려서 우리 자신에게 펼쳐지는 상황과 사건들을 해결하는 해법 키로서 사용해야할 것이다.

 

이후 세 명의 유명한 밀레토스 철학자인 탈레스(Thales),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아낙시메네스(Anaximenes)가 출현하였다. 이 밀레토스 학파의 철학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사유의 문제였다는 것. 그래서 철학은 순수하고 자유로운 탐구의 분위기에서 이루어지는 근본적인 의문들에 대한 사유를 의미했다고 저자들은 말하고 있다.

 

탈레스는 “다양한 사물들 간에는 차이점들이 존재하지만, 그것들 모두에는 어떤 근본적인 유사점이 존재한다는 생각, 다시 말해 다자(the Many)는 일자(the One)와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의 생각으로는 모든 물질적 실재의 근저에는 몇 개의 단일 요소들, 몇 개의 <재료>들, 즉 그 자체의 행동이나 변화의 원칙을 내포하는 어떤 재료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일자 또는 재료는 물이었다.”라는 학설을 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근대철학 사상가들 중의 한 분인 바슐라르 가스통이라는 정신분석 철학자가 펴낸 네 권의 지수화풍(地水火風)에 관한 서적들 중에서 물(수)에 대한 이론을 제일 먼저 발표한 철학자가 바로 탈레스인 것이다.

 

탈레스의 제자가 바로 아낙시만드로스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제 1의 실체를 <비결정적 무한성(the indeterminate boundless>이라고 표현함으로써 특정하고 결정적인 사물들과 그것들의 근원을 분리했다. 실제적인 사물들은 특정한 것인데 반해 즉 그것들의 근원이 비결정적이며 사물들이 유한한 데 반해, 근원적인 재료는 무한하다”고 갈파하였다. 불가(佛家)의 깨달음을 얻어 견성(見性)을 하게 되면 결국 공(空)이라는 시공을 초월한 세계를 경험하는데 이는 비결정적 무한성을 의미한다. 물론 본인은 아낙시만드로스가 깨달음을 얻었는지에 대한 자료와 단서가 부족하고 확실히 알지는 못하나 비결정적 무한성이라는 말은 공성(空性)의 특성이며 본질들 중의 하나이다. 세계를 꿰뚫고 들어가면 허무계를 지나가야 하고 허무계를 지나가면 시공을 초월한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이곳에는 한편으로는 시공을 초월하여 텅 비워있으며 한편으로는 현상계가 너무나 명료하다. 그래서 과거 한국의 유명한 고승께서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일갈한 것이다. 하이데거도 이러한 현상계의 사사물물이 명료하게 현전(現前)하는 것을 현존재(DaSein)라고 말한 것으로 안다. 여하튼, 아낙시만드로스의 비결정적 무한성이 양자역학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시공을 초월한 세계가 비결정적 플로우를 따르고 있다는 내용과 일맥상통한다고 보여진다.

 

저자들의 책에서 아낙시만드로스의 사상을 더 읽어보도록 하자. “비결정적인 무한성을 근원적이며 파괴될 수 없는 제1실체로 묘사하면서도 그는 이 실체가 영원한 운동을 갖는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 운동의 결과로 다양한 특정 요소들이 그 근원적 실체로부터 하나의 <분리>로 생겨나며 이처럼 <하나의 영원한 운동이 있어서 이를 통해 삼라만상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생략...)” 상당한 식견(識見)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는 불가(佛家)에서 금진, 미진이라고 하는 현대물리학의 쿼크 소립자에 대응되는 것을 말하는 듯 보인다.

 

한편, 아낙시메네스라는 철학자는 우주만유가 공기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공기는 다시 말해서 호흡(Breath)이다. 선(仙), 불(佛), 요가(YOGA) 수행자들 모두가 호흡수련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아낙시메네스의 학설 또한 의미가 있다고 보여진다. 인도 우파니샤드에서도 신(God)은 대호흡이라고 말하기도하고 큰숨결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으로 안다. <영혼이 공기로써 우리 모두를 결합시키는 것처럼 호흡과 공기는 전 세계를 에워싸고 있다>고 아낙시메네스는 갈파하였다.

 

저자들은 이 세 명의 철학자들, 즉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의 사상을 이렇게 정리한다. “사물의 제1실체로서의 물과 무한성과 공기에 대한 그들 각자의 생각이 유용하든 유용하지 않든 밀레토스 학파의 실제적인 중요성은 그들이 최초로 사물의 궁극적 본성에 관한 의문을 제시했다는 점이며, 또한 처음으로 무엇이 실제적으로 자연을 구성하는가에 대한 불완전하지만 직접적인 탐구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본인은 이 세 명의 철학자의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우주를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한 각각의 다른 시각이라는 점에서 좋은 관점을 주고 있다. 따라서 어느 한 철학자의 생각도 배제해서는 안된다. 헤겔의 정반합적 사유를 통해서 계속 의식의 향상과 상승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신선한 창조적 의식을 얻어야할 것이다. 인도의 성자들이 수행하는 쿤달리니 요가는 바로 이러한 의식의 참신성, 즉 창조적 의식과 의식의 다양성을 골자로 하는 수행비결임을 인식한다면 서양철학자들의 얼마나 다양한 사유와 의식체계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고 체인함으로써 그 중요성을 우리 학인들이 스스로 깨달아 나아야 하리라 생각해 보면서 글을 갈음한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영호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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