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공지
2008.03.04 15:07

<신의 방정식>을 만난 날.

조회 수 3153 추천 수 0 댓글 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나에게 자신감,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던 한 권의 책,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그 책을 쓴 과학자가 쓴 또 한 권의 책. 신의 방정식.





  어려서 나는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도 많이 울었다. 주인공의 슬픔과 기쁨을 늘 같이 하면서 사춘기를 보냈다. 그 눈물이 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나는 다시 울고 있다, 내 마음과 함께. 그것도 소설책이 아닌 과학서적을 읽으면서...


물론, 우주 사진을 볼때의 황홀감은 가끔 나를 설레이게 만들기도하지만, 오늘 내가 읽는 책, 신의 방정식은 그동안 내가 무엇을 애타게 기다려왔는지를 말해주는 것 같다.




  리만이라는 이름은 딱 1년 전 조중걸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 곡률이 있는 이상한 공간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 읽었던 만화책에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리만이라는 사람이 이걸 연구한 사람이라는 건, 아인쉬타인과 함께 우리 우주의 비밀을 벗기는데 다가간 사람이라는 건 1년 전에 알았지만, 그의 업적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된 건 오늘이다.





  오늘, 신의 방정식을 펼치는데... 눈물이 나온다.




 


  141쪽에 있는 이 그림은 20년 전으로 나를 돌려놓는다. 중학교 1학년 혹은 2학년 말이다. 김미자 선생님. 한번도 시험공부하라는 말씀하신 적 없으셨고, 언제고 도구를 이용해 설명을 해 주셨던 수학선생님. 한 학기가 끝나던 학년말로 기억한다. 진도는 다 나가고, 심심하던 차에(?) 수학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갑자기 종이를 쑥딱 자르고, 풀로 붙이시더니 이상한 걸 보여주셨다. 바로 뫼비우스의 띠. 색깔이 있는 분필로 그 표면을 따라갔더니 안과 밖이 바뀌는 걸 보여주셨다. 그리고 다시 가위로 표면의 정 중앙을 따라 자르셨다. 그리곤 일반적인 원이 다시 나왔다. 난 그때 엄청 충격에 빠졌다. 평면 기하학을 이제 막 배우던 내가 어렴풋이 모든 학문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던 순간이다. 그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몇 년 후, 고등학교때, 전상희 선생님 수업 시간이니까, 필시 이건 고등학교 1학년때의 일인 것 같다. 난 미술을 어려서부터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술과목이 싫다면 제일 싫었고, 그리고 미술 숙제 또한 엄청 싫어했다. 그런데, 내가 유일하게 온갖 정성을 들여 했던 미술숙제가 있으니, 이것은 바로 기하학을 상상해서 그려내는 것이었다. 연필을 붙잡고, 생각을 하다가 내 손은 자연스레 구부러진 공간, 이상한 공간, 그리고 안과 밖이 꼬이는 공간, 이런 걸 그렸다.


  처음부터 구부러진 공간을 그림으로 그린 건 아니였다. 일반적인 도형을 그리고 싶었는데, 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내 손이 떨렸는지 선이 비뚤어졌다. 흰 종이에 검은 연필로 열심히 그리던차에, 지우개를 종이에 대고 싶지 않았다. 비뚤어진 선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두었고, 그걸 연장하니 구부러진 공간기하가 그려졌다. 그때부턴 상상을 해서 안과 밖이 연결되는 모습, 어느 한 점을 향해 질주하는 구부러진 공간도형을 그려냈던 것이다. 미술적 기교는 없는 그림이었지만, 나름 뿌듯했다. 희안한 모양이네...? 라고 자평하며, 어쨌든 숙제를 완성해서 제출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이 그림을 보시더니, 엄청나게 칭찬을 해 주셨다. 내가 미술 그림을 그리고 칭찬을 들은 건 초등학교 1학년때 해수욕장 그림을 그린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늘 미술은 나의 자신감을 발목잡는 과목이었고, 흥미도 다른 과목에 비해 적었다. 간신히 시험만 평균을 깍아먹지 않을만큼, 그냥 숙제내서 성실성에 금이 가지 않을 만큼만 유지했던 과목이었으니, 그날의 칭찬은 초등학교 이래 10년만에 듣는 그 칭찬이었으니 이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지금보니, 내가 그린 그 그림이 바로 위상수학으로 가는 첫문이었다.


  위상수학... 내가 공학도로서 부끄러운 얘기지만, 이 단어는 로켓을 해석하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을 때 처음 접했다. 그만큼 우리는 수학을 정말 잘 모른다. 그리고 몇 년 후 독일어 공부를 같이 하는 아프리카 친구의 남편이 카이스트에서 위상수학을 가르친다고해서 위상수학이라는 말을 내 생에 있어 두번째로 들었다. 그래서, 위상수학이 일반 기하학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것이 생명공학에 많이 사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이것이 우주의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가끔 블랙홀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상상을 할때, 나는 늘 그 블랙홀 안에 들어가고 싶은 상상을 했었다. 어쩌면 우리 우주(블랙홀)은 뫼비우스의 띠를 따라 움직일지 몰라.. 블랙홀안으로 가는 길이 뫼비우스의 띠를 따라 가는 길일거야. 그것이 공간이라면? 그러니까 블랙홀에 들어간다고 해도 죽지는 않을거야. 어쩌면 지금 우리가 블랙홀에 들어가고 있는데, 우리 자신이 그럴 모르는 걸 아니까? 블랙홀에 들어가면, 짠!! 하고 타임머신을 타고 갔던 나 자신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뫼부우스 띠를 따라가면, 안과 밖이 바뀌다 다시 원래의 지점으로 간다. 이만큼이 시간 여행을 한 여정이지 않을까?)


  이렇게 이상한 모습의 공간을 상상하곤 했다.

 




  황홀하고도 두려운 이 느낌!


  나는 울고 있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흐른다.


  제목은 신의 방정식인데, 나는 신의 계시와 같은 전율이 다시 느껴진다. (내 감수성이 남들보다 좀 큰건 사실이다) 20년 전 학과를 선택하려고 했을때 마치 신의 계시처럼 느껴졌던 그 뿅가는 어지러움이 다시 떠오른다.




 

 "우리는 거대한 4차원 구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원환체(도나스 모양), 아니면 거대한 클라인의 병(뫼비우스 띠의 3차원 모양)에서 살고 있을까?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과 20세기 우주론 연구에서 제시되는 가장 중요한 철학적 질문이다.


 - 신의 방정식 143페이지-"




 

  아...


  내가 무의식속에 담아두었던 20년된 고민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지금에 올때까지 늘 상상했던 것이 바로 내가 20세기 21세기에 해야 할 일인거구나!!!




  이 느낌을 다시 만난 기쁨과 동시에 현실적인 것이 머릿속에서 돌아가며 눈물이 나온다. 얼마전 내가 내 뱉었던 고백. 지금 다시 수학책을 잡으면 좋겠는데, 두려워요. 바로 이 대목이다. 아... 느낌이 마구 다가오는 것 같은데, 과연 나는 현실을 버릴 수 있을까? 갑자기 퇴직금은 얼마나 되는지, 내가 가진 전 재산은 모두 얼마나 되는지? 앞으로 내가 공부할 동안 먹고 살정도는 되는지? 이런 생각이 먼저 스친다.




  고등학교 수학, 공업수학, 위상수학, 대수학, 순열, 확율...


  수학과로 가야하나? 그러면서 천문을 동시에 해야 하나?




  기쁘다. 그리고, 그래서 두렵다. 두고 볼 일이다.



  • ?
    이병록 2008.03.04 15:07
    얘들에게 중학교 수학을 가르칠때는 수학이 논리라는 것과 그리스 철학자들이 수학을 했던 이유도 함께 깨달았다. 그러나 그 이후의 수학은 과학자들의 영역이고 우리같은 서민들은 가감승제만 해도 먹고 살기에는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유너머와 천체물리학을 보면서 내가 수학과 물리와 분리되어 있지 않는 삶이라는 것을 알았고, 일생을 연구에 바친 과학자들에 대한 존경의 척도가 달라졌다. <우주의 구조><최초의 3분>을 읽었고 지금은<오리진>을 읽고 있다. 다음에 볼 책은 <빅뱅>이다. 그때쯤이면 내가 우주의 일원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 ?
    이정원 2008.03.04 15:07
    느낌이 강하게 남습니다.
  • ?
    이재우 2008.03.04 15:07
    이 글을 읽으니까 2005년 4월 1일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의 양방언의 연주, The Valley of Swan 이 생각나네요. http://qtv.freechal.com/Viewer/QTVViewer.asp?qtvid=293499&srchcp=N&q=양방언 (45분 되는 지점에서 나옵니다.)
  • ?
    임석희 2008.03.04 15:07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로 시작해서 전 별루 맘에 안 들었어요.
    그런데,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느껴진 박진감에 감탄했습니다. 좋은 음악 올려주셔서 감사드려요~ 담에 기회 되면... 의견 교환 하고 싶습니다.
  • ?
    강신철 2008.03.04 15:07
    임석희 씨는 천재기질이 있어 보입니다. 어린 나이에 스스로 깨닫는 능력이 월등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독서클럽에 동량재가 많이 발견되어 뿌듯합니다.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나도록 가슴이 벅차옵니다. 인간 두뇌의 우수성은 분명 우주가 내린 축복임에 틀림 없습니다.
  • ?
    임성혁 2008.03.04 15:07
    임석희님 뇌과학도 공부해야죠?...느낌이 전해 오는 멋진 독후감을 보게 해 주어 고맙습니다.
    이런얘기는 닭발 먹으며 들어도 재밌는데^^..ㅎㅎ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공지 <신의 방정식>을 만난 날. 6 임석희 2008.03.04 3153
1315 자연과학 [문학일기 6] 엉클 텅스텐/ 올리버 색스/ 바다출판사 file 정광모 2010.11.30 3152
1314 공지 과학의 새로운 언어, 정보 - 한스 크리스천 폰 베이어 1 고원용 2008.02.13 3149
1313 공지 포커스 리딩 김주희 2009.01.25 3145
1312 인문사회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 노암 촘스키 1 조태윤 2009.11.16 3139
1311 공지 3천배...원성스님 윤석련 2003.06.25 3135
1310 공지 <생명의 허들> - 1리터의 눈물 어머니의 수기 1 퐁퐁이 2007.06.17 3130
1309 인문사회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 노엄 촘스키 1999년 2 조태윤 2009.08.20 3124
1308 자연과학 어느 천재 정신분석가의 삶 3 김갑중 2009.06.23 3122
1307 공지 어 머 니.. 박종두 2004.02.08 3121
1306 공지 마이크로 코스모스 - 린 마굴리스, 도리언 세이건 1 양경화 2007.06.06 3117
1305 자연과학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을 읽고 4 신동찬 2010.03.22 3111
1304 공지 The Power of Failure 문자란 2003.06.25 3109
1303 흔들리는 나, 방황하는 나, 그 이유를 찾아 떠나다 4 임석희 2009.09.08 3098
1302 공지 해마 (이케가야 유지,이토이 시게사토) 3 윤현식 2008.08.22 3096
1301 공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 한비야 2 이상희 2006.01.23 3096
1300 공지 [41] 김광규, '처음 만나던 때' 이동훤 2008.04.07 3093
1299 공지 과학으로 생각한다 2 윤성중 2007.10.19 3092
1298 공지 [32] 황선미, '마당을 나온 암탉' 1 이동훤 2007.12.23 3083
1297 공지 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조중걸 저> 1 임석희 2007.09.10 308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11 ... 72 Next
/ 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