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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광인>을 무척 재밌게 읽었다.

이쁘고 고운 우리말도 많이 만났고 

책에 제대로 미친 자들을 보면서도 흐뭇했다.

우리 백북스야말로 21세기의 백탑파가 아닌가싶다.

 

나는 <열하광인>을 읽으면서 줄곧 품었던 의문이 있었다.

물론 첫째가는 의문은 연쇄살인범이 누구일까 하는 것이었겠지만

<열하광인>을 읽기 전부터 품었던 의문은 따로 있었다.

과연 정조의 본심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것이다.

 

우선 정조가 문체반정을 나라의 기강을 세우는 치자(治者)의 입장으로서 행한 것인지, 아니면 학자 개인의 입장으로서 연암의 문체를 문제삼은 것인지 궁금하다. 개혁 성향이 강하고 북학과 실학을 널리 받아들인 정조가 유독 그들의 문체만을 비난할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많은 연구들은 정조가 문체반정을 행한 배경을 정치적인 갈등 상황을 풀기 위한 탕평책의 일환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열하광인>에서는 벽파와 시파의 갈등이 드러나지 않고 정조가 스스로 연암 일파의 문체을 지적하여 문체반정을 행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음은 <열하광인>에서 문체에 대한 정조의 견해를 알 수 있는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대부분 정조가 집필한 1차 문헌이지만, 일기가 아닌 저서에서 정조의 본심을 읽기란 힘들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하지만 저자는 문체반정에 정조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보았다.

 

* * * 인용시작 * * *

 

문체에 대한 정조대왕과 백탑파의 관점은 기해년(1779년)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서이수 등 네 명이 검서관으로 뽑혀 규장각에 들어갈 때부터 그 차이가 뚜렷했다. 대왕께서는 갑진년(1784년)과 기유년(1789) 두 차례 문체에 관하여 하문하시면서도 패관기서와 소품을 즐기는 무리가 조선의 문풍을 어지럽힌다고 지목하셨다. 백탑 서생은 부여받은 직분에 충실하면서도 옛 것을 본받아 새 것을 만들어 내는 법고창신의 정신을 잊은 적이 없다. 

- (상) p.16
 
문장이 사람을 현혹시키는 것은 음란한 음악이나 아름다운 여색보다 심하다.
- 정조, 일득록 : (상) p.105

 

문장에서는 기(氣)를 가장 중시하는 법이니, 기가 이르는 곳이면 문장도 그에 따르게 된다. 저 형식과 틀에 얽매이는 자들은 문장을 짓는 데에 있어서도 말단적이다.
- 정조, 일득록 : (상) p. 223

 

우리나라에 흘러 들어온 성현의 경전과 제자백가의 서적이 큰 집을 가득 채우고 우마를 동원해서 운반할 정도로 많은데도 모두 묶어서 시렁에 올려 둔 채 보지 않으면서, 오직 명나라와 청나라 이래의 패관잡기 등 상리에 어긋나는 책만을 탐내어 다량으로 구하고자 연경의 서점으로 책을 사러 가는 자들이 도로에 늘어섰으니, 나는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 정조, 일득록 : (상) p. 269

 

왕은 말하노라. 문체는 한둘이 아니지만, 난삽하거나 평이함이 있을 뿐이다. 말이 어려운 것은 기이하고 말이 쉬운 것은 순하다. 어떤 것은 취하고 어떤 것을 버려야 하겠느냐?
- 정조, 책문 문체 : (하) p. 169

 

근래에는 문풍이 점점 변하여 이른바 붓을 잡은 선비는 시서육예의 문장에 바탕을 두지 않고 머리를 싸매고 마음 쓰는 것이 도리어 패가소품의 책에 있고, 발분하여 시문이나 변려체를 지으면 붓이 종이에 닿기도 전에 기운이 이미 빠져버린다.
...
내 이를 민망히 여겨 매번 연신을 대하면 문체를 변경하여야 한다는 설을 반복하여 거듭 간절히 당부하지만, 내 말 듣기를 아득히 하여 효력이 막연하다.
- 정조, 책문 문체 : (하) p. 215

 

"과인은 이덕무와 박제가를 지켜 주고 싶었느니라. 규장각 장서들이 그 두 사람의 안목에 의해 가려지고 정리되었음을 잘 알고 있느니라. ... 과연이 먼저 두 사람의 문체를 거론하여 자송문을 받음으로써, 저들이 이리위 저리위하며 다시 두 사람을 규장각에서 내쫓는다거나 위리안치 시키는 작당을 못 하도록 막으려고 했느니라.
- 정조의 대사 : (하) p. 259

 

"그러나 그 겨울 자송문을 쓰도록 명한 것이 정말 그 총애의 연장선상이었을까."
- 이명방의 대사 (저자의 견해) : (하) p. 262

 

* * * 인용끝 * * *

 

 


연암은 노론 벽파로 분류되긴 했으나 연암의 제자들은 정조에게 꼭 필요한 인재들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정당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적었으리라. 집안 내력에 의해서 정당이 갈리거나, 특히 스승의 학풍을 거역하는 것은 반역으로 여겨져 매장될 일이었다. 율곡 이이는 서인들과 친했지만 정치적으로 서인과 가까웠다 할지는 의문이 드는데, 오히려 동인에 의해서 서인으로 몰려 서인의 핵심인물이 되었고 이후 율곡의 제자는 줄줄이 서인이 되었다. 연암 박지원에게는 관직에 오른 노론 출신의 친척들이 있었으나 연암 자신은 출세에 뜻을 두지 않았고 실학자들과 어울려다니며 북학에 뜻을 두었다. 연암이 벽파로 몰리긴 했으나 정치적으로 벽파와 뜻을 같이 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정조 집권 당시 노론 벽파 세력은 정조의 신임을 얻던 학자들 중 특히 연암의 열하일기를 두고 문체에 대한 트집을 잡아 당쟁을 일으키려 하며 왕권을 위협하고 있었다. 정조는 탕평과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어쩌면 자신의 손발이 될 지도 모를 연암을 스스로 쳤다 (문체반정). 정조가 나서서 행한 문체반정으로 당쟁이 확대되지 않고 마무리되었지만 이후 벽파가 득세하는 가운데 정조는 오히려 시파의 지지마저 잃어버린 듯하다.

 

다음은 규장각 관장을 지내신 정옥자 선생의 책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정조시대를 포함 진경시대 연구의 권위자라 할 만하고 저자도 참고문헌 부분에서 정옥자 선생의 연구가 황금시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

 

* * *


정조의 문예사상과 규장각 (정옥자 지음)

정조가 즉위 초부터 문풍 내지 문체에 대한 여러 가지 언급을 하고 명청의 패관잡설에 대한 금단 조치를 취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문체 문제가 정계에 대두된 것은 1792년 (정조 16년)이었다.
                                                          (중략)
가까운 신하인 남공철을 처벌하여 다른 선비들 내지 나이 어린 학생들로 하여금 타산지석을 삼도록 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남공철과 이상황에 그치지 않고 연행 도중의 김조순에게도 취해졌다.

* 남공철 : 영조 때 문형을 지내고 정조의 스승이던 남유용의 아들. 박지원의 제자로 북학파의 한 사람이며 당시 제일의 문장가였다.
                                                           (중략)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어디까지나 치자(治者)로서의 정조의 입장이었고 개인으로서의 정조는 당대의 대학자였다. 따라서 그는 신사조(新思潮)에 민감하게 반응해 북학자들을 등용, 규장각을 통한 문물의 개화에 몰두하면서 청 문화의 수입에도 열정을 쏟는다.

                                                           (중략)
정조가 의도한 바 '문체반정'의 기치를 내건 탕평책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어 노론계의 많은 인물들이 시파로서 정조의 지지자로 전향하고, 끝까지 당론을 고수한 무리들은 벽파로서 강고하게 자기 위치를 지키게 된다. 한편 실학파로 불리는 기호남인들은 정조의 옹호를 받으면서 미약한 정조의 세력기반의 한 귀퉁이를 고여주는 버팀돌의 역할을 했으니 채제공, 이가환, 정약용으로 이어지는 일군의 학자군이 그들이다.

 

* * *

 

과연 정조의 본심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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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동환 2007.11.13 08:27
    공감가는 부분이 많네요. 이쁘고 고운 우리말을 만나는 기쁨. 책에 미친자들 ㅋㅋㅋ
  • ?
    이상수 2007.11.13 08:27
    저도 문체반정에 대해서 궁금하여 찾아 본적이 있습니다.

    연암 박지원 일파는 노론쪽에 속했고 그들은 서학을 단지 서학을 접할 때는 신문물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정신 정도로만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소품식 문제등을 받아들여 북학을 하고자 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하려했을뿐 종교적이거나 그 이상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실학사상에 가깝다고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실제로 서학을 종교로 받아들인 남인들이었다고 하는데 노론쪽 사람들의 세력을 줄이고 견제하기 위해서 탄압이었지 않았나 하는 내용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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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원 2007.11.13 08:27
    그나저나 소립님, 아이디를 바꾸셨네요. ㅎㅎ
  • ?
    전지숙 2007.11.13 08:27
    그러내요..백북클럽..21세기 백탑파.
    모든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과 가르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모두 수용하는 이시대의 백탑파.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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