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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4 07:50

'스피노자의 뇌'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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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뇌




안토니오 다마지오, 2003(2007역, 임지원)






들어가며




우리는 매순간 어떤 느낌을 받는다. 기분이 좋거나, 즐겁거나, 약간 피곤하거나, 나른하거나,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등등. 그리고 어떤 사물이나 상황에 대해서도 무엇인가 느껴진다. 그것은 대부분 미약하지만 때로는 격렬하기도 하다. 정확한 정의는 아니겠지만 좀 강렬한 느낌에는 ‘감정’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감정은 보통 부정적인 인상이 강하다. 감정은 쉽게 드러내면 안 되고 조절되거나 억제되어야 한다고들 한다.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니 기억과 연결되어 있는 감정을 제거하는 약이 나왔다고 한다. 이 약을 먹으면 가슴 아픈 기억을 떠올려도 슬프지 않게 된다고 한다. 난 개인적으로 먹고 싶지는 않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쓰임새도 있을 듯 하다.

늘 우리를 쫓아다니는 ‘느낌’ 그리고 ‘감정’. 이것과 관련하여 너무나 당연해서 한번도 가져보지 못했을 법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우리는 어떻게 무엇인가를 느끼는가 그리고 왜 느껴지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그 외에 스피노자의 생애 그리고 스피노자의 사상과 현대 신경생물학과의 관련성 등도 언급하고 있지만 이 부분은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1. 다마지오가 생각하는 emotion



다마지오가 정의하는 ‘감정’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개념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여기에 문제를 더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역자가 emotion을 일반적으로 쓰는 ‘감정’으로 번역하지 않고 ‘정서’라고 번역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혼동을 피하기 위해 감정 또는 정서에 대해 ‘emotion'이라고 하는 원어를 그대로 쓰기로 하자.

다마지오가 생각하는 emotion은 어떤 (내부 또는 외부)자극에 반응하여 변화하는 몸의 상태인 것 같다. 즉 자극에 반응하여 몸의 상태가 변화하면 emotion이 생긴 것이다. 따라서 emotion은 행위 또는 움직임이며(p38), 여러 신체 반응들의 묶음이다. 특정 emotion을 구성하는 반응(또는 행위)들에는 호르몬 분비와 같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얼굴 표정, 목소리, 특정 행동처럼 공개적인 것들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왜 emotion이 생기는가? 다마지오는 생물의 가장 중요한 속성을 항상성 유지로 본다. emotion은 바로 생물의 항상성 유지 기구 중 하나인 것이다. 자극은 생물의 항상성을 교란시킨다. 이에 생물은 emotion을 통해 원래의 안정된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emotion을 이와 같이 정의한다면 emotion에 근간이 되는 반응들은 생명 유지에 필요한 기본 반응들일 것임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이 기본 반응들에는 대사조절반응, 면역반응, 반사반응 등이 포함된다. 따라서 emotion은 본질적으로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이다. 그러나 개인의 발달 과정에서 학습에 따라 형성되는 emotion들도 있다. 예를 들어 사람, 사물, 장소 등에 대한 호감 또는 혐오감과 관련된 행동들이 그것이다. 특정 자극에 대한 emotion에는 이와 같은 기본 반응들의 일부와 겉으로 드러나는 다양한 행동 등이 포함된다.



2. emotion 유발 경로



내부 및 외부 자극에 의한 신호는 복내측 전전두엽 피질, 보조 운동 영역, 대상 피질 등을 거쳐 편도에 이른다. 그리고 활성화된 편도체가 신호를 시상하부, 전뇌기저부, 뇌간 등에 보내면 도파민, 세로토닌 등 호르몬이 분비되어 신체 내부 환경, 내부 장기, 근골격계, 특정 행동에 일시적 변화(emotion)를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p80



3. 다마지오의 느낌(feeling)



emotion을 feel하는 것이 느낌(feeling)이다. 무의식의 바다 속에 잠겨있던 emotion이 수면 위로 떠올라 의식의 세계로 나온 것이 느낌이다. 느낌은 이와 같이 emotion의 뒤를 따라 일어나기 때문에 시간 지연이 있다(2-20초 정도).

한편 emotion은 앞서 자극에 반응하여 유발된 신체 상태의 변화라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뇌가 emotion을 의식하기 위해서는 매순간의 신체 상태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뇌는 눈, 귀 등 감각기 뿐만 아니라 체내의 각종 감지기(조직의 pH, 혈 중 포도당 농도, 체온, 평활근의 수축 상태 등을 감지하는)로부터 오는 신호를 종합하여 신체 상태에 대한 지도(또는 이미지, 모델)를 만든다. 이것은 마치 뇌가 감각기로부터 오는 신호들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조합하여 외부 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emulation)과 유사하다. 그리고 외부 세계에 대한 이미지에서와 마찬가지로 뇌가 만드는 신체 상태에 대한 이미지도 실제의 신체 상태를 왜곡해서 반영할 수도 있다. 마약 등 향정신성 약물들이 바로 이와 같은 작용을 한다. 이렇게 뇌가 매순간 만드는 신체 지도가 느낌의 바탕이 된다. 다시 말하자면 특정한 신체 상태에 특정한 느낌이 꼬리표처럼 붙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생명체가 균형을 이룬 상태인 경우, 즉 최적의 생리적 조절 상태에 있는 경우 우리는 기쁨과 만족을 느낀다. 반대로 신체가 기능적 불균형 상태에 있을 때(예 ; 질병) 우리는 슬프거나 우울하다. 또 호랑이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극도의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공포를 경험한다.



“...느낌은 생물의 내부를 탐색하는 심적 감지기이자 진행 중인 생명 활동을 증거하는 목격자라고 할 수 있다. 느낌은 또한 우리의 파수꾼이라고도 할 수 있다.” p164



느낌이 이런 것이라면 이제 중요한 질문을 던질 때가 되었다. 우리는 왜 느낌을 가지고 있을까? 느낌이 우리에게 성취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무의식적인 emotion 또는 신체 상태의 지도화만으로도 자극 또는 상황에 맞는 적절한 반응(행동)을 유발할 수 있지 않는가? 따라서 지도화된 신체 상태가 심적 사건 즉 느낌으로 이어질 필요가 없지 않는가?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 ...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부분적으로만 옳다. 신체 상태에 대한 지도가 생명체 ’주인‘이 그런 지도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뇌의 생명 관장 활동을 돕는다는 말은 어느 범위까지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앞서 제시된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신체 상태 지도는 의식적 느낌없이는 단지 제한된 수준의 도움만을 뇌에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도들은 문제의 복잡성이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서면 혼자서 해결하지 못한다. 문제가 너무나 복잡해지면, 즉 자동적 반응 뿐만 아니라 추론 및 축적된 지식의 힘을 함께 빌어야 할 경우, 무의식적 지도는 더 이상 도움이 되지 못하고 느낌이 구원 투수로 나선다.” p208



 위 문장에 따르면 다마지오는 느낌이라는 것이 복잡한 상황에서 효과적인 행동 선택(의사 결정)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느낌은 복잡한 상황에서 행동 선택에 유용한 고차원적인 정보의 통합과 emotion을 유발한 대상(상황)에 대한 심적 수준의 관심(주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의식적 느낌이 제공하는 고차원적인 정보의 통합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나는 이렇게 이해한다. 즉 우리가 살아가면서 직면하게 되는 모든 사물과 사건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특정한 emotion 반응을 유발한다. 그리고 emotion은 결과적으로 뇌의 신체 지도를 변화시켜서 느낌을 유발한다. 이제 특정 사물과 사건에 대한 감각이 느낌의 꼬리표를 달고 의식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 느낌을 매개로 유사한 느낌을 유발했던 과거의 상황이 기억에서 떠오르게 된다. 또한 현재의 상황에 대해 선택 가능한 행동의 결과들을 추론하게 되면 그 미래의 결과들도 뇌 속에서 입력 신호로 작용하여 ‘모방 신체 고리'를 통해 emotion과 느낌을 유발한다. 이와 같이 느낌을 매개로 한 의식적 과정들은 뇌로 하여금 현재, 과거, 미래의 정보들을 통합하여 신체에 유리한 즉 좋은 느낌을 유발할 수 있는 행동을 선택하도록 돕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강렬한 느낌은 애초에 그 느낌을 생성시켰던 emotion과 그 emotion을 촉발한 대상이나 사건에 주의를 환기시킴으로써 뇌가 빠르고 효과적인 행동 결정을 하도록 유도한다. 이 모든 것들은 단순한 신경 지도(패턴) 수준에서는 어려운 작업이며 느낌을 통해 접근한 의식의 영역에서만 가능한 일인 것이다. 이것이 다마지오가 추측하는 느낌의 존재 이유 즉 느낌이 진화된 이유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느낌과 관련된 글을 끝맺기 전에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느낌의 토대가 되는 신체 지도를 만드는 뇌 영역들이다. 이것에는 대상 피질, 뇌섬엽(insula), SII, 시상하부, 뇌간 피개의 몇몇 핵 등이 포함된다.



4. 마음



이 책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바로 ‘마음’을 주제로 하는 5장이었다. 그 이유는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그런지 내 책의 이 부분에는 거의 절반 이상에 밑줄이 그어져있다. 구구절절히 머리와 가슴에 와 닿는 글이었다.



1) 심신 문제에 있어서 과학자나 철학자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합의된 부분은 마음은 객체가 아니라 ‘절차’라는 사실 뿐이다. p212



2) 마음의 토대

“마음은 몸 안에 존재하는 뇌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마음과 몸은 서로 상호 작용한다.” p221



“뇌를 매개로 마음은 뇌를 제외한 몸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진화 과정에서 마음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이 몸의 유지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p221



“뇌는 두 종류의 신체 이미지 즉 신체 자체의 이미지와 특별 감각 기관(눈, 귀 등)에 의한 이미지를 생성해 낸다. 신체 자체의 이미지는 신체 내부의 무수히 많은 화학적 조건과 더블어 심장, 내장, 근육과 같은 내부 장기의 구조(상태)를 지도화하는 기초적인 신경 패턴에서 비롯된다. 다른 한편으로 특별 감각 기관에 의한 이미지는 외부 세계의 어떤 물체가 신체의 특정 부분에 물리적으로 영향을 주어 야기된 그 부위의 활동 상태에 기초한다.” p226



“나는 마음의 바닥을 흐르고 있는 기초적인 이미지는 신체적 사건에 대한 이미지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신체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든, 아니면 말단 근처에 위치하는 특이화된 감각 기관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든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초적 이미지를 이루는 것은 특정 시점에서 우리 신체의 조직과 상태를 포괄적으로 표상하는 뇌 지도들의 집합체이다. 또 다른 지도들은 바깥세상, 생명체의 껍데기의 특정 부위와 상호 작용하는 물체들로 이루어진 물리적 세상에 대한 지도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간에 궁극적으로 뇌의 감각 영역에서 지도화되고 그 결과로 마음속에 출현하게 되는 것은 모두 특정 상황 속에서 특정 상태에 있는 신체의 구조라고 할 수 있다.” p228



3) 마음의 생성에 관한 신경생물학적 설명의 한계

다마지오에 의하면 '마음은 뇌 속에 만들어지는 신체 지도 즉 신경 패턴이 심적 이미지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변환이 대체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다마지오는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 부분이 현재 우리 지식의 한계라고...



“생명체 수준에서 나는 심적 이미지가 생성되는 토대가 되는 신경 패턴의 생성 수준까지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나머지 절차에 대해서는 설명은 고사하고 제안조차 하기 어렵다.” p229



마음이 생성되는 과정의 끝부분에 대한 대학자의 솔직한 고백이 이와 같다. 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할 때 항상 무엇인가 사고방식의 전환 소위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가 너무 기존 사고 체계에 얽매여서 이 독특한 현상을 설명하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라고 말이다. 뭔가 분명 답은 있는데 그 답을 보려면 약간 생각의 방향을 틀어야 할 지도 모른다. 

실제로 에델만은 생각의 방향을 약간 틀었다. 에델만은 뇌에서 만들어지는 신경 패턴(C')에서 마음(의식, C)이 생성되는 과정을 ‘현상적 변환’이라고 이름붙였다. 에델만에 의하면 C는 C'에 수반되는(동시에 출현하는) 부수적 현상이다. C의 출현은 인과적이지도 필연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C'와 C의 관계가 진화학적인 유용성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심지어 우리가 C를 어떤 신체 상태의 원인으로 설정해도 논리적으로 모순되지 않는다. 은유적으로 표현하자면 마음은 ‘쓸모있는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에델만의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마음과 몸이 서로 상호 작용한다는 다마지오의 생각도 그리고 물리화학적인 신경 패턴으로부터 마음이 출현하는 과정도 매우 정교하게 설명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왠지 2% 부족한 느낌이고 생각을 좀 더 틀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냥 느낌말이다. 그것도 비전문가의 느낌...



4) 지각의 현실성

우리 몸과 외부 세계가 비록 뇌가 수행하는 신경생물학적 과정의 창조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의 실재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지각 대상과 이에 대응하는 신경세포들의 발화 패턴의 밀접한 연관성은 오랜 진화과정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 자신과 관계를 맺는 사물의 상호 작용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이 사물은 우리 신체의 설계에 따라 신경 패턴으로 지도화되어 제시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물의 현실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 사물은 실제로 존재한다. 또한 사물과 우리 사이의 상로 작용의 현실성 역시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물론 이미지 역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이미지는 그 사물을 반영하는 거울상이 아니라 그 사물이 촉발하는 뇌의 창조물이다. ........

길고 긴 진화의 역사 속에서 우리와는 독립적인 어떤 사물의 물리적 성격과 그에 대해 우리가 보일 수 있는 반응 사이에는 일련의 대응이 이루어져 왔다. 이 대응 목록에 따라 적절한 조각을 선택하고 조립함으로써 특정 사물을 나타내는 신경 패턴이 형성된다. 한편 우리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사물에 대해 비슷한 신경 패턴을 형성한다. 따라서 서로 비슷한 신경 패턴에서 서로 비슷한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사람이 마음속에 어떤 사물을 그대로 반영하는 그림을 만들어 낸다는 기존의 개념을 아무런 저항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p231-232



5) 개념, 개념의 개념, 개념의 개념의 개념

뇌는 우리 몸과 외부 세계를 반영하는 신경 패턴을 개념(관념)화한다. 그리고 그런 이 후에는 내부 및 외부로부터의 신호가 없어도 이 개념들을 다시 조합하여 새로운 개념들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들은 무한히 반복될 수도 있다. 우리의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 세계는 이렇게 출현하는 것이다.



“우리의 창조적인 상상력 덕분에 우리는 사물과 사건을 상징화하고 추상적 개념을 나타낼 수 있는 추가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앞서 논의된 신체에서 비롯된 기초적 이미지들을 작은 조각으로 쪼개고 그 조각들을 재구성할 수 있다. 어떤 사물이나 사건도 숫자나 말과 같이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심상을 환기시키는 기호로 상징화할 수 있고, 이 기호들은 방정식과 문장 등으로 결합될 수 있다. 또한 이 기호들은 구체적인 대상과 사건, 그리고 마찬가지로 추상적 대상과 사건을 나타낼 수도 있다.” p236   



6) 빈 서판이 아닌 기초적인 밑그림이 그려진 서판

“지금 이 시점에서 나는 이 논의에 관련된 또 하나의 중요한 한계점을 추가해야 할 듯 하다. 마음이 몸에 대한 뇌의 표상에서 생성된 개념에 기초하여 만들어진다고 할 때, 뇌는 맨 처음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 상태로서 몸에서 들어오는 신호를 새겨 넣을 ‘빈 서판’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뇌는 빈 서판으로 출발하지 않는다. 우리 존재가 탄생하는 그 날부터 뇌에는 우리의 몸이 어떻게 관리되어야 하는지, 즉 생명 작용은 어떻게 운영되고 외부 환경의 다양한 사건들은 어떻게 처리되어야 할지에 대한 지식이 스며들어 있다. 탄생 시점부터 수많은 지도화가 일어나는 장소와 신경의 연결 부위가 존재한다. .....

간단히 말해서 뇌는 처음부터 선천적인 지식과 자동화된 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몸에 대한 수많은 관념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 그 결과로 몸에서 들어오는 많은 신호들이 앞서 우리가 논의한 바와 같이 관념이 되며, 그것이 뇌에 의해 매개되는 것이다. 뇌는 몸이 어떤 상태를 취하고 어떤 방식으로 행동할지 명령을 내리고, 몸에 대한 관념은 그러한 몸의 상태나 행동 방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 충동과 정서가 이러한 대표적인 예이다.” p237



7) 마음의 의의

“몸에 자리 잡고 있고 몸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우리의 마음은 몸 전체의 하인이다.” p239



8) 자아

“이제 자아 감각이 이 절차(마음의 생성)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봐야 할 차례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정위(定位)가 될 것이다. 자아 감각은 뇌의 마음에 나타나고 있는 진행 중인 모든 활동이 특정 생명체에 관련된 것이며, 그 생명체의 자기 보존 욕구가 현재 표현되고 있는 대부분의 사건의 기본적 원인이라는 개념을 절차의 심적 수준 내에 도입한다. 자아 감각은 심적 계획 절차가 그와 같은 요구의 충족을 향하도록 이끈다. 이러한 정위가 생겨나는 것은 느낌이 자아 감각에 기여하는 일련의 작용에 통합되어 있으며, 느낌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생명체에 대한 관심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심적 이미지가 없다면 생명체는 안녕은 차치하고 생존에 필수적인 대규모의 정보 통합을 적시에 이루어 내지 못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아 감각이나 자아 감각을 포함하고 있는 느낌이 없다면 그와 같은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정보의 심적 통합이 삶의 문제, 즉 생존과 안녕의 성취로 향하지 못할 것이다.” p241-242



9) “ ....마음은 수많은 뇌의 영역들의 공동 작업의 산물로서 출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어느 정도 합리적이다. 그와 같은 뇌의 영역에서 지도화되는 신체 상태에 대한 세부적인 정보가 축적되어 ‘결정적 수준’에 이르게 될 때 마음이 출현한다. 우리가 지금 인식하고 있는 지식의 간극(심적 이미지의 생물리학적 구성에 대한)은 어쩌면 이 축적된 정보의 복잡성, 그리고 지도화에 관여하는 뇌의 영역들 간의 상호작용의 불연속성에서 조금 더 나아간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p241  



5. 다마지오의 감정, 이나스의 감정

(여기에서 감정이라 할 때, 다마지오의 경우는 emotion/느낌, 또는 느낌만을 그리고 이나스의 경우는 그대로 감정을 의미)



두 학자가 설명하는 감정은 차이가 있다. 우선 다마지오는 감정을 emotion과 느낌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이나스는 이것이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나스에게 감정은 운동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전운동 영역에 속하는 것이며 일종의 고정행위패턴(FAP)이다. 이런 측면에서 감각이 전달되어 운동을 유발하는 것이라면 감정은 일종의 감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나스는 감정을 전역적 감각(global sensation)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다마지오가 말하는 emotion은 감각에 반응하여 변화된 신체 상태이다. 여기에는 근육을 사용한 운동도 포함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생리적 반응들도 포함된다. 이러한 운동과 반응들은 생명체의 항상성 유지를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emotion이 의식의 맥락 속에 들어 온 것이 느낌이다. 아마 이나스의 감정은 이 느낌과 가까운 개념일 것이다. 이나스의 감정은 운동을 유발하는 FAP이기 때문에 이나스는 하등동물도 감정적 요소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다마지오는 하등동물의 emotion은 인정하지만 느낌은 인정하지 않는다. 하등동물은 자극에 반응은 하지만 그것을 느끼지는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와 같이 두 학자는 감정의 개념에 대해 견해를 달리하기 때문에 감정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관점이 좀 다르다. 다마지오에 따르면 감정(emotion/느낌 시스템)은 복잡한 상황에서 고차원적인 정보의 통합과 emotion을 유발한 대상(상황)에 대한 심적 수준의 관심(주의)을 불러일으킴으로써 행동 선택(의사 결정)을 돕는 역할을 한다. 이나스도 감정이 행동 선택(의사 결정)을 돕는다는 데에는 의견을 같이 한다. 그러나 방법이 다르다. 이나스의 감정은 감정을 유발한 대상이나 상황과 관련된 정보를 압축하고 요약함으로써 행동 선택의 범위를 좁혀 뇌의 부담을 덜어 주고 행동 전략 선택을 돕는다.  

감정과 관련하여 두 학자간에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도 있지만 분명 의견을 같이하는 부분도 있다. 우선 두 학자 모두 감정에는 선천적인 것과 학습으로 얻어지는 것이 있음을 인정한다. 또한 감정이 생겨난 진화생물학적 이유는 생명체의 생존과 안녕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마지오는 이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만 이나스에게 감정은 효과적인 운동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생명체가 왜 운동을 하겠는가?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다. 즉 두 학자가 생각하고 있는 감정의 의의는 동일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마지오는 emotion이 의식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이 느낌이라고 했는데 이때 무의식영역의 감각 정보가 그대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 emotion이 포함하는 감각 정보들이 심적 수준으로 넘어갈 때 그것은 요약문이나 약어처럼 된다. 나는 이것을 emotion에 느낌의 꼬리표가 붙는다고 표현하고 싶다. 다시 말해 신체가 감지한 수많은 감각 정보들이 ‘행복하다’, ‘즐겁다’, ‘슬프다’, ‘우울하다’ 등으로 단순하게 축약되는 것이다. 감정에 대한 이런 개념은 이나스가 주장하는 바와 동일하다.

  

6. 다마지오의 에델만 비판

에델만은 자신의 뇌과학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인공지능로봇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논문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수식들로 가득 찬 공학 관련 내용들이다. 다마지오는 에델만의 이러한 노력이 분명 뇌에서 수행되는 절차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심화시키고 어쩌면 이 로봇이 우리 뇌의 유용한 보충 수단이 될 수도 있다고 긍정적 평가를 내리면서도 이 로봇은 우리가 살아 있는 것과 같은 의미로 살아 있지 않으며 우리가 느끼는 방식으로 느끼지 못하리라고 예견하면서 분명한 한계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한계를 뇌와 보잉777의 차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지적한다. 그 핵심은 이런 것이다. 보잉777은 수많은 구성 부품들의 정교한 상호 작용의 결과로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지만 그 구성 요소들은 어느 것도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다. 반면에 뇌를 구성하고 있는 신경세포들은 모두 그들이 일부를 이루고 있는 신체와 똑같이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다. 이 세포들은 모두 자기 보존을 위해 산소와 영양분을 필요로 하고 탄생하고 사망한다. 또한 이들은 스스로의 생명을 돌보아야 하며, 그 생명은 스스로 소유한 유전체의 명령과 주위 환경의 상황에 의존한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보잉777과 마찬가지로 에델만의 인공지능로봇은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에 대한 접근 방법으로써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끝맺으며



독후감이 또 길어졌다. 괜찮다. 이 글은 나와 같은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한 글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책을 읽은 후 공개를 전제로 글을 쓰는 것은 분명 내 생각을 정리하고 이해를 깊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어려운 책이었지만 나름대로 큰 소득이 있었던 책이었다. 특히 감정과 관련하여 이전에 읽은 이나스의 ‘꿈꾸는 기계의 진화’와 비교하며 읽으니 좀 더 흥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나스의 책을 읽은 후 사실 마음 속으로는 약간 불만같은 것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이나스가 정신 작용의 너무 많은 부분을 ‘운동’과 연관시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분명 운동의 조절은 뇌를 포함한 중추신경계의 중요한 기능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나에게 다마지오의 이 책은 훨씬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운동’만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확실히 감정에 대한 전문가답게 논리가 훨씬 정교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더구나 본론에서 요약하지는 않았지만 맨 마지막 장의 ‘행복한 끝맺음’이란 단원은 특히 많은 공감을 주었다. 다마지오는 여느 철학자(이렇게 불러도 될 것 같다)와는 달리 인간을 생물이라는 토대위에 놓고 그 미래와 지향점을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계획)

다음으로는 솜즈(뇌와 내부세계)를 읽을 것이다.

그리고 라마찬드란, 올리버 색스 등의 책을 토대로 실질적인 신경생물학적 연구 결과들을 정리해 볼 생각이다. 이 작업이 끝난 후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것이다. 뇌과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후 읽기 시작한 모든 책들을 다시 읽을 계획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저자들의 생각과 이전의 나의 생각을 다시 비판적으로 반추해 보면서 현재의 나의 생각을 정리할 것이다. 되돌아보면 정신작용에 관한 나의 생각도 그런데로 많이 앞으로 나간 느낌이다. 물론 재정리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잘못 이해되었음을 알게 되겠지만 그래도 공부를 시작하기 전보다는 앞으로 나아간 자리에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보람이다. 나아가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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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상수 2007.07.24 07:50
    독후감을 일단 눈으로 주욱 살펴보았습니다. 집에 가서 찬찬히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개념, 개념의 개념, 개념의 개념의 개념" 에서 저는 갑자기 박문호 박사님께서 강의하시는 btn 동영상에서 들었던 "폐루프"라는 단어와 알고리즘 같은것이 떠 올랐습니다. 저런 반복적인 개념의 기능을 구현하려 할 때, 계속 부 프로그램으로 구현된다면 한 차원의 개념이 늘어날 때 마다 부 프로그램도 늘어 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부피가 계속 커질수 밖에 없을 것인데 이런 방법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램 알고리즘에 "재귀호출"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반복적으로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을 자기가 자기를 호출하여 계속 계산하는 것입니다.

    기능1 () {
    기능1()
    }
    기능1()

    기능1()이라는 함수가 한번 실행되면 기능1() 이라는 코드가 있어 또 다시 기능1()을 호출하게되고 끝나라는 조건이 없는 한 자원이 한계까지 끝없이 반복적으로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갑자기 엉뚱하게 떠오른 생각에 불과하지만 뇌는 생각을 만들어 내었고 인간의 생각으로 컴퓨터라는 것을 만들어 냈는데(폰 노이만이라는 수학자가 처음 컴퓨터를 설계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의도적이었던 아니었던 간에 뇌의 기능적인 구조와 생각의 구조들이 반영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사실 유뇌론에서 요로다케시가 돈이나 기타 다른 교환이 뇌의 정보 전달에서 나왔고 결국 도시는 뇌의 부산물이며 자연에서 도시화되는 것을 뇌화라고 표현하였던 것을 이제 제가 느낀것이 아닌가 생각도 됩니다.
  • ?
    이재우 2007.07.24 07:50
    모든 책이 그러하지만 특히 뇌 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게 되는 저의 모자람, 부족함과 함께 그것의 가득함을 위한 인내의 기쁨에 무한한 즐거움을 갖게 되는 듯 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이미지는 그 사물을 반영하는 거울상이 아니라 그 사물이 촉발하는 뇌의 창조물이다.' 란 말처럼 별일 없는 일요일 오전 시원한 도서관으로 뇌가 만들어 놓은 세상을 들여다보기 위해 피서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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