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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화학상을 받은 로얼드 호프만 교수가 쓴 짧은 글들을 모은 책 '같기고 하고 아니같기도 하고'(이덕환 옮김, 까치글방, 1996) 중에 '환원주의와의 싸움'이라는 글이 있어서 아래에 소개합니다.

화학의 모든 현상은 전자기력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물리학은 전자기력 자체를 이해하려고 할 뿐 그 법칙으로부터 얼마나 다양한 화학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아주 단순한 규칙으로부터도 얼마든지 복잡하고 흥미로운 현상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http://ko.wikipedia.org/wiki/라이프_게임). 장기나 바둑의 규칙이 장기나 바둑의 모든 것을 말해 주지는 않습니다.



글에서 “물리학자들의 환원주의는 물리학에서 멈추어버”리고 “경제학자나 생물학자와의 대화에서 나타나는 화학자들의 환원주의도 화학에서 더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환원하기 어려운 과학의 모습을 보고 싶으신 분들께 이 책을 권해 드립니다.

고원용

  "이제 환원주의(reductionism)와 이해의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학문에도 일종의 계급질서가 있고, 분야에 따라서 "이해(understanding)"의 의미도 다르며, 이해의 수준에 따라 상대적인 가치도 서로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환원주의이다. 흔히 학문의 계급질서는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이 상위에 있고, 그 밑에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이 순서대로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문학과 사회과학은 생물학으로 설명하고, 생물학은 화학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런 환원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아마도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시작된 것 같고, 콩트와 같은 프랑스의 이성론자들에 이르러서는 더욱 확고하게 되었다.
  과학자들도 이런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을 사상적인 지표로 삼아오기는 했지만, 사실 이런 철학은 과학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현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과학자들이 이런 철학을 너무 고집한다면 오히려 다른 분야와의 불협화음을 일으킬 위험성마저 있다.
나는 이제 “이해”의 실체를 이렇게 생각한다. 학문과 예술의 모든 분야에는 분야에 따라 적당한 정도의 복잡성을 가진 문제가 있다. 화학의 문제는 어떤 면에서는 물리학의 경우보다 더 복잡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각 분야에서 확립된 개념의 복잡성과 계급질서의 범주에서 “이해”를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생각이 준순환적(quasi-circular)이기 때문에 옳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이해야말로 진정 인간적인 것이며, 예술과 과학도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발전한다고 믿는다.
  이해에는 수직적 이해와 수평적 이해가 있다. 수직적 이해는 하나의 현상을 더 깊은 것으로 환원시키는 고전적인 환원주의에 해당한다. 수평적 이해는 현상을 같은 분야 안에서 분석하고, 같은 정도의 복잡성을 가진 개념과의 관계를 알아냄으로써 이루어진다.
  …
  인문과학과 자연과학 사이에 엄청난 단절이 있는 것처럼, “자연과학”의 내부에도 심각한 단절이 있다.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 같은 화학과 물리학 사이도 그렇다. 그래서 화학에서 사용하는 어떤 개념이 물리학 분야로 환원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 억지로 환원시키면 처음의 매력이 거의 모두 사라져버리게 된다. 화학에서의 일반적인 개념인 방향성(芳香性, aromaticity), 산성도와 염기도, 작용기, 치환기 효과 등이 바로 그런 예가 된다. 그런 개념을 물리학적인 입장에서 엄밀하게 정의하려고 하면 그 매력은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즉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도 없고 엄밀하게 정의할 수도 없지만 화학에서는 환상적일 정도로 유용한 개념들이 있는 것이다.
  환원주의가 흔히 “이해”에 대한 실질적인 설명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심리적인 받침대로 사용되는 경향도 있다. 예를 들면 물리학자들은 기초에 가까운 일을 하기 때문에 환원주의적인 철학을 매우 좋아할 것이고 수학자들은 더욱 그럴 것이라고 짐작하기 쉽다. 그렇다면 물리학자들이 수학자들에 대해서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만, 주변의 물리학자들에게 물어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수학자들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비현실적인 사람”, “핵심과학인 물리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현실세계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 등의 상당히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수학자들과 이야기할 때 물리학자들의 환원주의는 물리학에서 멈추어버린다. 그런 면은 화학자들도 마찬가지다. 경제학자나 생물학자와의 대화에서 나타나는 화학자들의 환원주의도 화학에서 더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실제로 환원주의적 철학에 집착하는 데에는 상당한 위험이 있다. 수직적 이해를 유일한 이해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면, 과학자와 예술가 또는 인무과학자와의 관계는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다. 예술이나 인문과학에서의 “이해”의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다. 예를 들어 부모의 죽음이나, 사회의 마약문제, 키르히너의 목각작품을 이해하는 방법이 한 가지가 아니라는 점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이처럼 환원주의적인 시각이 인정되지 않는 세상에서 과학자들만이 그것을 굳이 고집한다면, 과학자들 스스로는 환원주의적 이해가 가능한 몇 안 되는 문제로 한정되는 아주 작은 상자에 갇혀버리게 될 것이다. (저자 주: 나는 스티븐 와인버거의 ‘최종이론의 꿈’(Pantheon, 1992; 이종필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7) 제3장에서 설명한 환원주의에 대한 주장에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차례
제1부 정체 - 핵심문제
1. 쌍둥이의 삶
2. 당신은 누구인가?
3. 물매암이
4. 환원주의와의 싸움
5. 물고기와 벌레와 분자
6. 구별하기
7. 이성질 현상
8. 똑같은 분자도 있을까?
9. 어둠 속에서의 악수
10. 분자 모방

제2부 화학의 표현방법
11. 화학논문
12. 화학논문의 역사
13. 표면 아래
14. 화학의 기호언어
15. 분자는 어떤 모습일까?
16. 표현과 현실
17. 발버둥
18. 이드의 표출

제3부 분자의 합성
19. 창조와 발견
20. 합성 찬가
21. 큐반과 합성의 예술
22. 아가니페 분수
23. 자연적/비자연적
24. 점심식사
25. 자연적인 것을 좋아하는 이유
26. 야누스와 비선형성

제4부 뭔가가 잘못될때
27. 탈리도마이드
28.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제5부 도대체 어떻게 일어날까?
29. 메커니즘
30. 살리에리 증후군
31. 정적/동적
32. 평형과 섭동

제6부 화학에서의 삶
33. 프리츠 하버

제7부 확실한 마술
34. 촉매!
35. 삼중 해결책
36. 카르복시헵티다아제 효소

제8부 가치, 피해 그리고 민주화
37. 티리언 퍼플, 대청, 인디고
38. 화학과 산업
39. 아테네
40. 화학의 민주화적 성격
41. 환경에 대한 관심
42. 고대 민주주의에서의 과학과 기술
43. 반(反)플라톤주의 : 과학자(또는 기술자)가 세계를 지배하면 안 되는 이유
44. 환경문제에 대한 대답
45. 화학, 교육 그리고 민주주의

제9부 이원자 분자의 모험
46. 다양한 모습의 C₂

제10부 생동하는 이원성
47. 창조는 어려운 일
48. 또 다른 이원성
49. 악마의 속성
50. 긴박하고 생명으로 가득한 화학?
51. 케이론

감사의 글
역자 후기

  • ?
    임석희 2008.12.01 00:54
    갑자기 고대 민주주의에서의 과학과 기술.
    이게 확~ 들어옵니다. 주문하러 쑝~~~ ^^
  • ?
    장종훈 2008.12.01 00:54
    과학자들은 저런 글 안쓰나..하고 내심 궁금했었는데, 역시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자들은 과학 자체에 대해서도 저런 고민을 하는구나 싶네요.

    어쨌든, 환원주의라고 부르는 방식이 과학 안에서 유용한 건 사실이고 다만 다른 학문에서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고 더 유용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한다- 라는 원론적인 얘기를 되풀이하게 되겠지만.. 우린 가끔 이걸 잊어버린다는 점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종종 들을 수 있으면 정신건강에 좋겠죠. ^^

    그런데, 이런 류의 '이런 태도는 경계하고 지양해야 한다'는 글을 보면 정말 저런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_- 평균키 178.6cm에 63.5kg을 가진 사람이 없는 것처럼, 저런 글에서 가정하는 것 같은 극단적인 - 환원주의 킹왕짱..이라든가 - 입장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는 걸까요? 존재하지 않는 라이벌과 싸우는 느낌이 들 때가 가끔 있습니다. 흐흐..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고원용님. ^^
  • ?
    이기두 2008.12.01 00:54
    구체성과 보편성의 사이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깊게 파고 들어 가야 하기도 하고, 근원을 사색하기도 해야 합니다.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환원주의와 구체적 사실을 밝혀 나가려는 탐구가 동시에
    과학을 만들어 가는 방향이라고 봅니다.
    싸움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서로 상보적인 관계일 듯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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