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자연과학
2009.10.11 00:47

'생명 40억년의 비밀'을 읽고

조회 수 2911 추천 수 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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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티의 글은 흥미로우면서도 담담하다. 그것은 40억년이나 되는 생명의 긴 역사에 비해 너무나도 짧은 생을 사는 한 호모사피엔스 개체로서의 겸손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생명의 이야기 중간중간에 포티의 유머가 독자의 흥미를 잃지 않도록 돕는다. 180센티미터 길이의 사암에 들어있는 수생 전갈 슬리모니아 표본이 포티의 조수 발등을 찧었는데 엄지발가락이 몇 주 동안 퍼렇게 멍이 들은 것을 두고 죽은 지 거의 4억년 뒤에도 여전히 해를 입힐 수 있음을 증명한 셈이라는 말에 깔깔거리고 웃었다.


 진화론의 기본적인 요체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느낌으로 알 지도 못하고, 목적론에 길이 든 나로서는 수 많은 종들의 탄생과 멸종, 종들간의 관계 속에서 자꾸만 헤멘다.


 눈이 달린 최초의 개체는 그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것을 발달 시켰다라는 식의 이야기는 여전히 내게 편리하지만 진화론은 그것을 뒤집어서 우연히 눈이라는 기관을 얻은 개체가 그 환경에서 이점을 얻었고 그래서 후대가 발전했다는 식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 세부적인 단계나 절차에 대해서는 여전히 내게는 모호하다.


 우연이라도 막연한 어떤 때에 갑자기 생겨나는 것은 아니고 더 복잡한 기관의 탄생 이전에는 덜 복잡하지만 그 재료가 되는 것들이 준비된 상태에서라야 우연이 일어나는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여전히 내게 가장 모호한 것은 최초의 기생생물이나 공생관계의 생물이다. 엄밀히 말하면 다른 개체를 먹어야 사는 생물은 모두 다 기생생물이라고 말하면 너무 냉소적일지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최초로 다른 생물을 먹는 생물이 생겨 났을 때 그 세계에 그들이 먹을 수 있는 생물이 없었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먹이를 먹는 생물이 먹이가 될 생물이 탄생하기 전에 생겨날 가능성이 있을까.


 수정을 위하여 동물을 유혹하는 모양을 만들어내는 식물의 재능은 어떠한가. 유혹하려고 만든 모양이 필요로 하는 동물을 질겁하게 만든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이런 황당한 상상을 하는 것은 그들이 공생관계의 생물의 존재를 알고 또 서로가 필요로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지는 내 마음 때문이다.


 그들 유전자에는 그들 삶에 이롭거나 해로운 다른 종의 존재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을까. 군비경쟁으로 비유하는 날카로운 이빨과 그것을 방어하는 두터운 껍질의 관계는 한 개체가 타 개체와의 관계를 인식하는 것처럼 유전자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하게만든다. 


 확실히 환경에 유리한 종이 살아남는 우연의 장에서 수 많은 실패작들이 사라지고 꽤나 성공적인 종이 생겨나는 생명의 역사에는 그렇게나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로 돌아와서 사고와 인식능력을 갖춘 한 인간 개체가 그 유전자의 후손을 생산하는 일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선택하는 성향을 선호하는 유전자를 가졌다면 그 개체의 이상한 유전자는 그 개체를 끝으로 더 이상은 번성하지 못할것이다. 현실에는 안정적이지 못한 반짝하고 사라지는 원소처럼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단 한 번도 후대를 양산하지 못한 이상한 개체는 사라질 것이고 그런것의 화석이 발견되어 우리를 놀래켜 줄 확률은 거의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이제 나는 아주 희한한 것에 의문을 품는다. 생물의 본성이 생존과 번식이 맞다면 그것은 왜 그럴까. 왜 그것들은 살아남으려고, 번식하려고 용을 쓰는 것일까하는 것이다.


 용을 쓴다는 표현은 다분히 인간적이다. 창공을 날던 새가 전깃줄에 걸려 죽을 때 악의에 차서 '젠장! 성가신 호모사피엔스 때문에 죽게 되다니!!'하고 스스로의 죽음을 안타까워할까.

 그렇다고 셰익스피어의 이야기처럼 "잠시 주어진 시간 동안 뽐내고 으스대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영영 사라져 버리는 가련한 배우, 아무 의미도 없는 소음과 노여움으로 가득한, 바보 천치의 이야기."라고 인간들의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자는 것은 아니다.

 조금 진부하지만 시간과 공간, 생물 종의 탄생과 그 환경이 조화로운 어마어마한 확률로서 태어난 이 삶의 기회를 멍청하게 생각없이 으스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껏 즐기고, 슬퍼하고, 깨닫고, 재능을 키우고, 나름의 가치관으로 나름의 이로움을 다시 보지 못할 우리의 환경에서 실현해 보자는 것이다.

 세상만사가 다 우연인데, 가치를 부여하면 다 필연이 된다는 황석영의 이야기(또는 인용된 원본)는  생명의 역사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과 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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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광준 2009.10.11 00:47
    마지막 부분- 어마어마한 확률로서 태어난 이 삶의 기회를 멍청하게 생각없이 으스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을 접하니, 생뚱맞을 수도 있지만, 엊그제밤 EBS에서 방영한 수작'스트레이트 스토리' (The Straight Story, 99년작 데이빗 린치 감독)가 떠오릅니다. 몇해전 본 영화인데, 보고 나서 비슷한 생각에 빠져든 적 있습니다. 극중 Alvin Straight 와 님의 글이 닮은 까닭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 삶의 방향과 행동에 변화를 갖는 하나의 방편으로서 열독의 고백을 들으니, 탐독의지가 솟구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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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찬 2009.10.11 00:47
    곰티비에서 무료로 스트레이트 스토리를 상영해서 보게되었습니다.
    멎진 영화를 보게됐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이 겹쳐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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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원 2009.10.11 00:47
    좋네요~ ^^ "마음 껏 즐기고, 슬퍼하고, 깨닫고, 재능을 키우고, 나름의 가치관으로 나름의 이로움을 다시 보지 못할 우리의 환경에서 실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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