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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일기 5] 아파야 산다/ 샤론 모알렘/ 김영사




  딱정벌레와 초록 잎 사진이 표지다. 그 밑으로 질병은 재앙이 아닌 축복이다!라는 초록 글씨가 적혀 있다. 설마 그럴라구?




  표지 상단에는 ‘인간의 질병 ․ 진화 ․ 건강의 놀라운 삼각관계’라는 부제가 놓여 있다. 숙달된 표지 디자이너가 이 책의 성격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책은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말도 되지 않는 유전병, 즉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유전자가 왜 수백만 년이 지난 후에도 유전자 풀에 남아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풀어간다.




  개인의 시각에서 보는 아픔, 통증은 신경외과의인 프랭크 T. 버토식 주니어가 쓴 「사로잡힌 몸, 통증의 자연사」가 훌륭하다. 유령통증, 타는 듯한 삼차신경통, 암, 마취,  등의 임상사례와 깊은 고찰이 담겨 있다.




  철(鐵)들면 죽는 병/혈색증/흑사병




  재무담당 최고임원인 고든은 늘 피로했고 관절이 아팠다. 의사를 찾아다녔지만 3년이 지나서야 겨우 진짜 문제를 알아냈다. 정상 수치를 크게 웃도는 다량의 철분이 혈액과 간에서 발견되었다. 고든은 녹슬어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혈색증(혈색소 침착증)은 인체 철분대사를 저해하는 유전병이다. 그의 몸은 철분을 30년 이상 축적해왔다. 도대체 혈색증 같은 타고난 살인마가 인간의 유전자 풀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것은 무슨 영문일까? 저자는 중세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흑사병의 광란을 늘어놓은 다음, 혈색증 환자가 전염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넘어간다.




  혈색증이 없는 사람은 대식세포에 철분이 아주 풍부하단다. 이 철분을 먹고 결핵 등 여러 전염인자가 자라난다. 정상 대식세포는 몸을 보호하려고 전염인자들을 잡아들이지만 전염인자들이 보약인 철분을 손에 넣도록 트로이의 목마에 태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대식세포가 임파절에 도달할 쯤이면 침입자는 위험분자로 변신해 임파계를 타고 온몸을 돌아다니게 된다.




  바로 가래톳흑사병에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가래톳흑사병의 특징이 임파절이 붓고 터지는 것이다. 박테리아가 자신의 목표를 위해 인체의 면역계를 전복한 것이다. 철분이 결핍된 대식세포야말로 면역계의 이소룡인 셈이다. 1347년이 되자 흑사병이 유럽 전역에서 행진을 시작한다. 혈색증 돌연변이가 있는 사람들은 대식세포에 철분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병에 걸리지 않는다. 비록 수십 년 후에는 혈색증 때문에 죽게 될지언정 전염병에 걸리지 않고 살아남아 자식을 낳고 자식에게 돌연변이를 물려줄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이다. 오, 이런! 지금 죽을 것인가, 몇 십 년 후에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혈색증과 감염, 철분의 관계를 새 시각으로 이해하면서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한 방혈(사혈)이라는 치료법을 새로 보게 된다. 한의사에게 피를 뽑힌 경험이 있는 분들, 귀를 세워볼 만 한다. 방혈은 혈색증 환자를 치료하는 최고의 방법이자, 침입자에게 공급되는 철분 양을 줄여 감염을 막는 효과가 있단다.




  소말리아 난민수용소에 많은 빈혈 환자에게 철분보충제를 주었더니 갑자기 전염병 감염률이 급등했다고 한다. 철분이 다다익선은 아닌 것이다. 이들은 철분 부족으로 자연 치료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빙하기를 이겨낸 당뇨병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당뇨병 환자는 1억 7100만 명으로 추산되며 2030년이 되면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주위에도 당뇨병 환자는 흔하다. 저자는 당뇨병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400년 전 독일에서 갑자기 서리가 내려 당도가 높은 아이스와인을 만든 사건과 추워지면 딱딱하게 얼어붙었다가 기온이 올라 몸이 녹으면 기적처럼 심장이 뛰고 폴짝 뛰어오르는 알래스카 숲 개구리 예를 든다.


  홍시 샤베트를 먹으려고 냉동실에 홍시를 넣으면 어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홍시에 든 당분 덕분이다.




  추워지면 수분을 빼서 설탕 덩어리 부동액으로 바뀌는 숲 개구리와 서리에 대처해 수분을 빼는 포도, 두 가지 예가 무척 생생하고 재미있다. 수분을 없애고 당분을 높여 추위에 대처하는 포도와 그렇게 하는 숲개구리, 그렇다면 인간 중에도 갑자기 닥친 빙하기에 이런 방식으로 추위에 적응하지 않았을까?




  저자는 현대에 수분의 과도한 제거와 고농도 혈당이 있는 질병에 유전적으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약 1만 3000년 전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빙하기의 후손들이라면 이건 우연의 일치일까? 라고 물으며 가설로 당뇨병 덕분에 유럽 조상들이 급작스런 빙하기의 갑작스러운 추위를 이겨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다. 무척 뜨거운 가설이다. 그러면서 진화란 경이롭지만 일종의 타협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캐나다 당뇨병협회는 냉동 개구리 연구에 자금을 지원한다. 숲개구리같이 추위에 강한 동물은 고혈당으로 인한 부동 성질을 이용해 살아남는다. 혹시 아는가? 달나라의 추위를 견디는데 고혈당 방법이 쓰일지?




  콜레스테롤의 딜레마


  초록색 잎에만 햇빛이 중요한 건 아니다. 생화학적 차원에서도 인간과 태양이 중요한 양방향 관계에 있다. 햇빛은 인체의 비타민D 생성을 돕는 동시에 체내에 저장된 엽산을 파괴한다. 비타민D와 엽산은 둘 다 건강에 필수 요소이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체내 비타민D는 콜레스테롤을 변환시켜 만든다. 최근 콜레스테롤이 악당으로 알려졌지만  콜레스테롤은 세포막 형성과 유지에 꼭 필요한 성분이다. 뇌의 신호 발송 기능을 돕고 면역 시스템이 암 등의 질병을 예방할 수 있게 해주며 에스트레겐, 테스토스테론 등 호르몬의 주원료이다. 체내 형성되는 비타민D의 필수 성분이기도 한데 그 화학과정에 햇빛이 꼭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광합성과 비슷하다.  




  엽산은 체내 세포가 분열할 때 DNA 복제를 돕기 때문에 세포 성장 체계에 필수다. 그렇다 보니 인간이 빠른 속도로 자랄 때, 특히 임신 중에 중요하다. 인간의 다양한 피부색은 노출된 햇빛의 양과 연관이 있다. 검은 피부는 햇빛에 타지 않기 위해 그리고 엽산 손실을 막기 위해 적응한 형태이다. 피부색이 검을수록 흡수되는 자외선이 줄어든다.




  아프리카에서 진화한 인간은 털이 없어지면서 아프리카의 강렬한 태양에서 쏟아지는 자외선에 피부가 많이 노출되자 건강한 아기 출산에 필요한 엽산 저장분이 위협을 받았다. 따라서 빛을 흡수하고 엽산을 보호해주는 멜라닌이 많은 검은색 피부가 선호되었다고 한다.




  일부 인간군이 햇빛의 빈도와 강도가 덜한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검은색 피부 기능이 지나치게 작동한 나머지 엽산 손실은 막을 수있게 되었지만 비타민D 생성도 차단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흰 피부를 향한 진화 압력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숙주조종과 후생유전학


  이쪽 글이 특히 재미있었다.


  ‘세균과 인간’장에서는 흥미진진한 숙주 조종 사례들을 볼 수 있다. 유충이 호랑거미를 조종하여 고치를 지을 거미줄을 치게 하는가 하면, 개미 뱃 속에 있던 벌레가 개미의 뇌 속으로 들어가 풀잎 꼭대기로 올라가 양에게 먹히는 자살을 감행하게도 한다.


  ‘콩 심은데 팥 나는 사연’에서는 미국 듀크대학에서 2003년 연구해 유전학계를 발칵 뒤집은 갈색 날씬이 쥐 연구가 흥미있다. 이 갈색 날씬이 쥐의 충격적인 출생의 비밀은 부모가 모두 노란색 뚱보 쥐, 그것도 대대로 노란색 뚱보 쥐 가문 출신이다. 그런데 어떻게 갈색 날씬이 쥐가 탄생할 수 있을까? 




  지난 5년에 걸쳐 진행된 획기적인 연구에 따르면 특정 화합물이 특정 유전자에 달라붙어 그 유전자가 표현되지 못하도록 억제할 수 있음이 입증되었다. 유전자에 결합된 화합물은 해당 유전자를 켜고 끌 수 있는 유전적 스위치 역할을 한다. 놀랍게도 우리가 먹는 음식이나 피우는 담배 등 환경 요인에 의해서도 스위치가 켜지거나 꺼질 수 있다니 놀랄 밖에.  ‘수신’과 ‘제가’의 범위를 음식과 사회 환경 분야까지 넓혀야 할 것 같다. 이런 연구결과가 전체 유전학을 변모시키고 있다.




 원서인 Survival of Sickest는 2006년 출간되었다. 저자인 샤론 모알렘은 인체생리학, 신경유전학, 진화의학의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데 미국에서는 진화의학이라는 분야도 만든 모양이다. 번역자는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한 통번역사인데 문장이 깔끔하고 잘 읽힌다.


  


  개인에게 고통인 병치레를 하면서 그 병을 낳은 진화 역사를 고민한다면 도통한 경지겠지만, 선조들의 눈물겨운 생존 전략을 보면 질병에게도 조금은 관대한 마음이 든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일이 어찌 국제 관계에서 만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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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록 2010.11.19 07:44
    매우 흥미있는 책을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은 무슨 책을 구상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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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모 2010.11.19 07:44
    앗,,안녕하십니까...글로나마 인사를 드립니다. 뭔가를 쓰고는 있습니다만 어렵습니다.
    진해나 근처 모임이 있으면 꼭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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