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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없다? 위대한 설계를 읽고...



스티븐 호킹 교수님의 책이 드디어 번역되었습니다. 사고 보니 1판1쇄내요. ^^ 다 읽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솟아오르는((?)책의 첫머리에 ‘철학은 죽었다’라는 구절을 보고 특히 그랬습니다.) 무언가를 참기 힘들어 적어봤습니다. 저는 단지 인식할 수 없을 뿐, 신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스티븐 호킹교수님과 같이, '단지 인식할 수 없을 뿐이 아니라,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유신론자와 무신론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는 것 같은데, 저 나름대로 비과학적(?) 입장에서 과학적(!) 무신론을 비판해 보았습니다. (칼 세이건 박사님의 '신이 있다는 증거가 없는 것이 신이 없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라는 견해가 과학자가 지녀야할 유신론을 대하는 태도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저는 스티븐 호킹박사님의 이번 책이 과학(또는 과학이 이룩한 업적에)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가치관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며,하지만 과연 과학이 절대성을 지니는 현실이 과학자체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과학이란, 끊임없는 회의와 의심이 본질이라고 생각하며 무언가를 확정하는 순간 과학이 아닌, 신념(또는 종교)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는 생각도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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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설계를 통해 생각해본 과학주의의 문제점>



1. 과학이론의 상대성


과학의 기본은 관찰과 관찰을 토대로 한 이론 전개에 있다. 과학이 만약 어떠한 상태에 절대성을 부여하게 된다면 이는 이후 새로운 관찰과 이론을 부정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마치 종교가 그랬듯이 하나의 과학권력이 되어 과학을 제외한 타 학문 영역을 파괴하는 파괴자가 될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기는 힘들다.



2. 관찰의 중요성


저자는 최종이론으로 M-이론 가설을 내세웠다. M-이론이 정식이론일 수 없는 것은 관찰의 한계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오감으로 관찰할 수 없는 영역을 체계화하면서 오는 오류를 극복할 수 없다. 따라서 언제까지라도 M-이론은 가설일 수밖에 없다. 땅위에 사는 동물로서 인류가 하늘을 나는 새, 또는 물 속을 자유로이 헤엄치는 어류의 감정을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체가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세계에는 눈에 보이는 세계와는 다른 법칙들로 운영된다는 상상을 해보면 어떨까?


그것이 암흑물질의 법칙이고, 그 법칙으로 암흑세계가 존재한다면 너무 확장된 가정일까?


하지만, 우리는 이미 우리우주에서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가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보다 더 큰 비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않은가?


우리가 관찰할 수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는 건 가장 쉬운 가설이고, 이러한 가설에서 당연히 신의 존재가 대두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단순한 가설을 배제한 채 기존의 관찰결과로 이루어진 가설로만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3. 보이지 않는 세계


현대과학과 새로운 이론체계는 우리의 감각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세상에 관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감각에 기반한 세상은 상식적인 세상이다. 즉, 현대과학은 상식에 반하는 세상이다. 상식에 반하는 세상을 기술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아원자 세계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아원자 세계는, 곧 ‘무(無)’의 세계인 것이다. 하지만, 현대과학은 무(無)를 인식하기를 아주 작은 있음, 곧 ‘유(有)’의 세계로 가정한다. 가정한다는 의미는 현대과학이 가설을 세우고 이론을 전개함을 말하며 진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한 예로, 중력자(graviton)에 대한 가설이다.


이책의 마지막 부분에 우리우주가 존재할 수 있었고, 물질을 만들어서 지적인 생명체까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중력이 큰 영향을 했다고 했는데... (중력을 암흑에너지의 수축하는 힘이라고 언급한 부분도 있지만...)

사실 나는 중력에 대해서 아무리 이해할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다.

중력자(重力子)는 말 그대로 중력을 전달하는 입자이다. 중력이 물질로 이루어져있음을 뜻하는 말인데, 하지만 우리는 정말 중력이 중력자에 의해 나타나는지 알고 있지 못하다. 단지, 중력은 중력자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을 ‘믿고’ 있을 뿐이다.



현대과학이나 기존의 근대과학이나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는 단지 다른 방향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근대과학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신이 있다고 믿었던 것처럼 현대과학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아주 작은 물질이 있다고 믿고 있다는 점에서, 믿음에 기반한 학문체계란 점에서는 동일하다. 믿음에 기반한 학문체계는 또 무엇이 있는가? 신학이 있을 뿐이다.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가설을 세운다. 가설은 기존이론에 근거하거나, 인간의 상상력에 의존하는 보편적인 합리성에 근거한다. 기존이론과 합리성은 무엇에 기반하는가? 역시 이전시대의 이론과 당시의 합리성에 의존한다. 결국 인간의 이론과 합리성이라는 것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거나, 경험할 수 있는 사실들에 기반한다는 것이며 이는 철학의 역사에서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이후에 베이컨의 경험주의가 대두되게 된 배경이다.



만약에 경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가설은 어떻게 되는가? 경험이란 과학에서는 관찰을 의미하는데 관찰이 일어나지 않았거나 관찰될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질 때 하나의 이론체계는 어떤 결과를 맞을까? 가설을 뒷받침하는 신념이 강할수록 종교적 절대성을 가지게 될 뿐이다. 이 저서에서 가지게 된 또 하나의 생각은 현대과학이 절대성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4. 지식은 권력이다.


하나의 지식은 단순히 학문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해당 지식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현재의 세계는 현재의 지식으로 이루어진 권력체계이다. 그 지식이 옳은가, 그른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세의 서양세계를 뒷받침했던 이론이 신학이었던 것은 신학이 절대적으로 옳았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이었기 때문이다. 마녀사냥은 권력에 기반한 학문이 보여줄 수 있는 인간이성의 한계상황인 것이다. 권력이 천하통일의 세력확장을 꾀하는 것처럼 학문 또한 그러한 속성이 있다. 지금 천하통일을 꾀하는 또 하나의 학문이 있다. 그 학문은 철학은 죽었으며, 신학은 이미 믿음의 근거를 잃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과학이 옳다는 신념을 가질수록, 현대과학을 뒷받침하는 현대사회의 권력체계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대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채택되는 학문이 그러한 권력을 함께 향유한다. 그것이 가장 옳고 진리에 가깝기 때문이 아니다. 주류학문이 가지는 이러한 한계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학문의 종사자는 마녀사냥의 도구가 되거나,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5. 철학은 죽었다?

철학은 과학과 같이 생각하는 방법에 관한 학문이다. 철학과 비교할 때, 과학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가설을 세우고 이론모델을 정립하는 과정의 학문이고, 과정에 정밀함이 요구되는 학문이다. 철학적 입장에서 볼 때, 현대과학은 실증주의사조라고 할 수 있다. 실증주의사조는 당연히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서두에 언급한 칼 세이건 박사님의 견해가 실증주의를 정확하게 반영한다). 그리고 삶의 존재 자체에 대해 회의하거나 찬미하는 경향이 있다.실증주의자들은 결국엔 회의주의로 빠지거나, 삶자체를 찬미하는 생철학으로 나뉘게 된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삶자체를 찬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과학적 결정론으로 지적인 생명체, 즉 인류가 발생하게 된 과정을 "위대한 설계"라고 하여, 마치 신은 실제 존재하지 않지만 과학이론이 신을 대신한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저서에서의 문제점은 철학과 과학이 달라지는 지점, 즉 관찰과 실험, 그리고 실증이라는 부분이 현대의 기술적 한계 때문에 관찰이 이루어지기 힘든 이론들(다중우주론, 초끈이론, M-이론)을 설명하기 때문인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사변적으로 흐르는 데 있다.
결국 저자는 과학을 설명하면서 철학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스스로 인정했던 것처럼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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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 읽었습니다. 
고대에는 철학자가 과학을 했다고 하던데, 앞으로는 철학자와 과학자의 구분이 없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이책을 읽으며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최소한 향후 백년동안은, 아니면 그 이상의 시간동안 양자론과 상대론에 대한 가능성과 한계를
검증하는 시간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함께 해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현재의 관찰기술로는 이 두 이론들 이상을 밝혀내기 힘들다는 것이죠...
또 왜 거대강입자 가속기의 실험결과에 전세계 물리학자들이 그토록 목매도록 기다리는지도 알게 되었구요. 
그 결과 어떻든간에, 새로운 입자를 찾든 못찾든,
옳든 그르든, 단지 새로운 관찰사실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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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탄이정원 2010.10.19 00:59
    오늘까지 3번째 읽습니다. 전공분야가 아니라 저에겐 어렵습니다만, 단락마다 제목을 정하셔서 본문 내용도 소개해주시고 평가도 해주셔서 감상문이 체계적인 느낌입니다. 학습기회 감사합니다. 그래도 익숙한 분이 보입니다. 칼 세이건! 인쇄해서 찬찬히 더 읽어 보겠습니다. 감상문, 감사합니다. <그 결과 어떻든간에, 새로운 입자를 찾든 못찾든, 옳든 그르든, 단지 새로운 관찰사실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죠.> 마지막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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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탄이정원 2010.10.19 00:59
    <칼 세이건 박사님의 '신이 있다는 증거가 없는 것이 신이 없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라는 견해가 과학자가 지녀야할 유신론을 대하는 태도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오우~ 깊이 생각하게 하는 말입니다. 특히 4,5번 학습기회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아는 칼 세이건^^ 이미 알고 계실 것도 같습니다만, 위 글과 전혀 상관없이 감상문에 '칼 세이건' 이 나와서 반가움에^^아는척? 해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생각을 억압하는 일은 종교나 정치에서는 흔히 있을지 모르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이 취할 태도는 결코 아니다. - 칼 세이건 - >

    저의 경우, 주변지인에게 새로운 이론이나 인물등을 처음 듣고, 책의 본문에서 또 다시 만났을 때, 그때 처럼 반가운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경영경제 모임'에서 '피터드러커' 를 한 여성회원님께서 강신철 운영위원님께 질문시에 처음 듣고, 두번째로 책 [CEO 고전에서 답을 찾다]에서 발견, 지난 백북스 정기모임의 문국현의원님의 강연에서 집중적으로 발견, 그 때 얼마나 반가웠던지...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마냥^^ 아주 웃기는 저에요. 현재 '칼 세이건' 역시 저에게 그런 존재입니다. '칼 세이건' 에 대한 신뢰도가 급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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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탄이정원 2010.10.19 00:59
    '결국 이 우주에 우리를 위로할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 공감합니다. 사람에게 상처받은 마음은 책,음악,그림등 예술작품이나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사람의 진심' 만큼 빨리 치유해 주는 것도 없는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사람' 이 우선인것 같습니다. 좋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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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혁 2010.10.19 00:59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1885년에 신은죽었다는 유명한 선언을 했을 때, 물론 그는 신이 실제로 살았던 적이 없었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중략...실제로 우리는 종교가 지닌 놀라울 정도로 질긴 생명력은 심약한 부정이나 단순한 심리학적 의존이 아니라, 그 보다 더 깊고 단순하고 건전한 무었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믿는다. 여러가지 증거로 미루어볼 때, 종교의 가장 깊은 기원은 신비체험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종교가 계속 지속되는 것은 사람의 뇌 구조가 신자들이 신이 존재한다는 확신으로 해석되는 다양한 일체감을 경험하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앤드류 뉴버그의冊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 中 p187~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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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민 2010.10.19 00:59
    정길호님의 스티븐 호킹 ‘위대한 설계’ 독후감 잘 보았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 정길호님(이하 그냥 ‘님’으로 호칭하겠습니다.)의 글 내용이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 라고 직감하였으나, 공연히 님의 감정을 상하게 해드리는 것이 아닌가 몇일 고민하였고, 본 게시판이 논쟁을 하는 공간도 아니어서 주저하다 늦게나마 용기를 내어 글을 올립니다.

    이글은 님의 종교신념을 비판하려는 글이 아니고, 단순히 글내용의 논리중 잘못된 부분에 대한 제 개인적인 주장을 담은 글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먼저 님께서는 “<중략>...나름대로 비과학적 입장에서 과학적 무신론을 비판해 보았습니다”라고 하셨는데, 어떤 명제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명제가 도출된 분야와 동일한 논리의 수단을 사용해야 균형 잡힌 비판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과학적 문제’를 ‘비과학적’으로 비판하고자 한다는 전제부터 오류가 있다는 점을 먼저 지적하고 싶습니다.

    다만,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스티븐 호킹이 책에서 제시한 명제(‘신의 존재’)는 과학적 명제가 아니므로, 님의 비과학적 입장 그대로 수용하여 검토하고자 합니다.

    님의 글을 전체적으로 평하자면,
    첫째 글 내용중 일관된 논리가 보이지 않고,
    둘째 명제를 풀어가는 방식도 과학적 논증방법(일테면 관찰과 가설, 검증 등)을 끌어다가, 비과학적 명제에 대해 반증하려는 논리적 오류가 큽니다.
    셋째, 님의 주장을 과학적 논증으로 보기에는 비약과 함축이 너무 심하여, 제대로된 논리라고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수긍하기도 어렵고요
    제가 보기에는 글 내용의 목표를, 님의 종교적 신념에 미리 맞추어 놓고 논리를 풀아가다 보니, 이와같은 여러가지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Ⅰ. 먼저, 호킹박사의 ‘위대한 설계’는 과학논문이 아닙니다. 과학논문이라면 학술지 등에 실어야 겠지요. 이 책은 저자가 그간의 과학적 연구를 바탕으로한 개인의 과학적 확신과 종교적 견해를 대중과학 서적을 통해 알린 것입니다.

    물론 호킹박사가 세계 과학계 및 일반 대중 속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매우 큰 인물인 만큼 ‘철학은 없다’, ‘우주설계에 신의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와 같은 무신론적 입장표명은 당연히 파장을 몰고 올 수 밖에 없겠죠.

    그러나, 이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여러경로를 통해서 얼마든지 반증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학의 절대권력을 우려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Ⅱ. 님은 “과학의 기본은 관찰과 관찰을 토대로 한 이론 전개에 있다” 고 전제하고, 이어 다음단락(‘2.관찰의 중요성’)에서 “오감으로 관찰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가설은 오류를 극복할 수 없다고 단언했습니다.(그 예로 M이론은 영원한 가설일 뿐이다 라고 주장 했죠)

    요약하면, 과학의 기본은 관찰인데, M이론과 같이 관찰에 한계가 있는 이론은 영원한 가설로 존재할 수 밖에 없다라는 것이죠. 여기까지는 논리의 엇나감이 없는데,

    이후, 님께서는 암흑물질(이른바, ‘관찰할 수 없는 가설’)에 관한 가설을 등장시키면서, “...이러한 가설에서 당연히 신의 존재가 대두되었던 것이다.”라고 엉뚱하게 비관찰적 대상인 신의 존재를 언급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스티븐 호킹은 이러한 단순한 가설을 배제한 채 기존의 관찰결과로 이루어진 가설로만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라고 비판하며 신의 존재 가설을 재강조하고 있습니다.

    님의 논리전개 과정 재정리 : ‘과학의 기본은 관찰’(정의) → 비관찰적 가설 비판(M이론) → 비관찰적 가설 수용(암흑물질) = ‘신의 존재’ 도입 = 관찰가설의 편협성 비판(호킹박사의 가설)

    다시말해 님은, M이론을 비관찰 가설의 오류가능성을 들어 비판하였는데, 바로 그 비관찰 가설을 이용하여 ‘신의 존재’ 등장시키는 논리의 모순을 보이고 있습니다.

    즉, 관찰 혹은 비관찰 가설에 대한 평가를 편의에 따라 이리저리 바꿔가는 논리적 일관성을 잃고 있습니다. M이론이나 신의 존재는 공히 비관찰적 가설인데, 이를 달리 적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Ⅲ. 님의 글 중 ‘3.보이지 않는 세계’ 단락에서는 다시 괴상한 논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님의 글을 요약하면, “현대과학이 다루고 있는 아원자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無의 세계인데, 현대과학은 이를 有의 세계로 믿는다. 이와 같은 믿음에 기반한 학문체계는 현대물리학과 신학만이 있을 뿐이다“ 대충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죠.

    - 먼저 님께서 정확하게 이해해야할 것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과학적으로 그 실체를 검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원자인 ‘전자’도 19세기말 톰슨의 ‘음극선’ 실험을 통해서 확인되었습니다. 아인쉬타인의 상대성이론의 경우도 수리방정식으로 가설을 먼저 입증하고, 나중에 특수상대성 그리고 중력에 의한 빛과 공간의 휨 현상과 같은 일반상대성 일부를 사람들의 눈으로 확인(체험)할 수 있게 되었죠.

    즉 사람의 오감으로 관찰할 수 없는 가설도 수학적 또는 정교한 실험을 통해 얼마든지 입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M이론,초끈이론 ,다중우주론 등은 아지까지는 명확하게 증명되지 않은 과학적 가설입니다)

    나의 증고조 할아버지를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내가 있음에 그 존재을 부정할 수 없는 논리와 마찬가지로 , “아원자의 세계는 無의 세계가 아니라, 논리적,실증적 有의 세계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님의 ‘3.보이지 않는 세계’는 심한 논리의 비약이 이상한 결론을 도출하고 있습니다.

    님께서 정의한 것과는 달리, 현대과학은 ‘믿음에 기반한 학문’이 아닙니다. 도대체 ‘믿음에 기반한 학문’이라는 용어가 어디에 근거가 있는 용어인가요?

    학문체계와 믿음은 서로 다른 범주의 개념입니다. 과학은 검증을 통해 보편적 진리나 자연법칙을 입증할 뿐, 믿음이라는 주관적 신념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님께서 언급하신 ‘신학’도 철학적 사변을 통해서 신의 존재와 말씀을 연구하고 증명하려는 일종의 ‘학문’입니다. 따라서 교회나 불가에서 행해지는 절대믿음 혹은 개인적인 영적체험을 다루지는 않습니다.

    요약컨대 현대물리학과 신학을, 용어도 낯설은 ‘믿음에 기반한 학문체계’로 갑작스럽게 한데 묶는 과정도 납득하기 매우 어려울 뿐아니라, 비약이 너무 심해 논리형태를 갖추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런 이상한 논리의 카펫을 밟고 신은 등장하지 않으며, 신의 존재를 입증하기도 어렵습니다.

    Ⅳ. 님께서는 ‘4. 지식은 권력이다’에서 “권력이 천하통일의 세력확장을 꾀하는 것처럼 학문도 그러한 속성이 있다. 지금 천하통일을 꾀하는 또 하나의 학문이 있다. 그 학문은 철학은 죽었으며, 신학은 이미 믿음의 근거를 잃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라며,

    “이러한 학문이 현대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권력과 손을 잡게되면 학문의 종사자는 마녀사냥의 도구가 되거나,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의역)”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님의 주장과 관련해서, 유물론이 위정자들의 정치권력의 도구로 이용된 역사적 사례를 상정해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유물론과 같은 학설이 권력의 속성을 스스로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과학분야에 있어서는, 그 시대의 주류를 이루는 과학이론(지동설, 진화론 등)이 동시대 사람들(또는 그후대)의 신념과 사고체계에 강한 영향을 줄 수 있다 하더라도, 정치 혹은 그와 유사한 권력체계의 절대화(천하통일) 속성과 동일시하는 것은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매우 불합리하고도 위험한 생각입니다.

    현대물리학의 주된 연구대상인 양자역학을 권력과 일부과학자들이 핵폭탄제조에 활용하여, 정치적 세력 확장에 악용했다고해서, 양자역학 연구자체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과학은 우주의 이치를 하나씩 밝혀가고자 하는 인간의 신념을 실현하는 순수한 학문일 뿐, 연구결과의 악용을 우려하거나 저지하는 노력은 별개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줄기세포,인간복제 등 바이오테크 분야 등에서 제기되는 과학윤리를 관련지어 논의할 수 있겠으나, 본 책에서 다루는 분야와 거리가 있어 제외하겠습니다.

    Ⅵ.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견해 몇자 적습니다.

    칼세이건의 1985년 기퍼드 강연내용을 읽어보면(‘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첫장부터 끝장까지 자연신학을 포함한 일체의 신학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단지 ‘신의 존재’ 영역만 남기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서양종교의 “흰수염을 기른 덩치가 커다란 남자 신에 대한 존재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미래에도 존재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의 앎의 영역이 넓혀질 때마다 신의 영역은 좁아지고, 과학적 경험과 종교적 경험이 서로 일치해 감을...”라며, 결국 '신의 존재'에 조차 강한 의구심을 갖습니다. (1985년 기퍼드 강연 내용 중)

    이와같은 내용을, 기퍼드 강연 뿐아니라, 그의 저서와 여러 칼럼, 강연을 통해서 일관되게 주장합니다. 이는 학계와 종교계에서도 아주 잘 알려진 사실이죠.

    칼세이건이 믿는 신은 오로지 광대하고 숭고한 우주 그자체입니다. 우주에 대한 놀랍고도 경이로운 체험이 바로 종교적 체험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스피노자, 아인쉬타인의 종교관과도 상통합니다.

    아인쉬타인은 “나는 어떤 인격신도 믿지 않는다. 굳이 나의 믿음을 묻는 다면, 그 대상은 바로 광활한 우주의 질서와 법칙 뿐이다.”와 같은 말을 말했습니다.
    스티븐 호킹박사의 “우주설계에는 신의 개입을 필요로하지 않는다”라는 발언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됩니다.

    ***************************************************************************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맹이 하나를 던져봅니다. 호수에는 파문과 함께 살짝 물기둥이 솟았다 사라집니다.

    물기둥은 짧은 순간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있는 곳이 어딘지, 나는 어디서 왔으며, 결국 어디로 가는지, 몹시 궁금해하고 두려워하다 곧 평온한 수면으로 사라집니다.

    우주는, 우주질서와 법칙은 아주 자연스럽고 고요하며 의문이 있을 수 없는 그 자체입니다.

    저는 두려움과 설레임으로 항상 보곤합니다.. 곧 내가 돌아갈 장엄하고 경이로운 그곳을...


    Ⅶ. 마치며.
    글을 쓰고 난 후, 다시 걱정이 되었습니다. 공연히 님의 글을 멋대로 난도질하지 않았나 하고 말입니다.

    사실 제가 논리적 오류 운운했지만, 정길호님께서 바쁜 와중에 크게 비중두지 않고 간단히 쓴 독후감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저의 능력부족으로 정길호님의 글을 여러번 읽어야 해석이 가능하였습니다.
    그런데, 읽을수록 글 내용과는 상관없이, 왠지모르게 님께서는 매우 순수하고, 항상 사고하는 진지한 신앙인으로 보였습니다.

    저는 님의 글을 통해서, 자신을 다시한번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며,
    그점에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읽으시길 바랍니다.
  • ?
    연탄이정원 2010.10.19 00:59
    인간의 겪는 오류는 대개 세가지라고 합니다.

    첫째는 무지의 오류, 즉 너무 많은 지식 중에 일부만 알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입니다.
    둘째는 확신의 오류, 자신이 아는 것만을 너무 확신한 나머지 발생하는 오류입니다. (확신의 오류는 무지의 오류와 동일하다고 보여집니다.)
    셋째는 미지의 오류, 지식의 전체량이 얼마인지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즉 인간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류로, 이미 알려진 지식에 한정되어서만 판단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류입니다. <정길호님의 말씀中>
    *************************************************************************************
    감동입니다. 첫째, 둘째, 셋째, 놓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확신의 오류는 무지의 오류와 동일하다', 감탄을 합니다. 미지의 오류, "유명한 석학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겸손' 이 그냥 그냥 하는 말인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자신이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라는 한 회원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위의 글들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 ?
    이재민 2010.10.19 00:59
    정길호님 안녕하십니까?
    이제야 글을 보게 되었네요.

    저의 답글에 대한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님께서 정의하신 인간의 오류에 대해 절대 공감합니다.
    뭐, 첫째, 둘째, 셋째 모두 동일한 내용이라 봅니다.

    결국 거대한 우주섭리를 지구생명체의 편협한 감각으로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르죠.

    한편, ‘인간의 오류’를 생각하면서, 다시한번 ‘신의 존재’라는 명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되네요.

    단세포에서 진화를 하였든, 6천년전 흙으로부터 빚어졌든 태초 인간은, 자신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을 가슴 깊이 품은 채, 수천 수만년의 삶을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인간의 의식은 우주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15세기말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했을 때, 그리고 19세기 다윈이 진화론을 펼쳤을 때, 일반인의 조롱과 ‘신의 영역’을 범하지 말라는 종교권력의 끊임없는 압박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인류는 과학史의 질곡과 함께,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되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과 인간영역의 경계가 있는 것일까요?
    인간은 금단의 선을 넘어 신의 영역으로 향하고 있는 것인가요?

    개인적 생각으로는, 종교계가 인간의 탐구심 경계하고, 저지하려는 것은 오히려 ‘신’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은 그자체로서 ‘신’입니다. 찰나같은 생애를 마친 인간이 영원한 자신의 품으로 돌아와 모든 것을 알게 될 때까지 초연히 지켜볼 뿐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요 몇 년 사이 물리학계에서는 강입자가속기(LHC)의 충돌실험을 통해 힉스입자를 발견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힉스입자는 완벽하게 정적인 대칭상태(특이점)에서, 대칭이 붕괴되는 단초를 제공하는 ‘질량관련 입자’로, 학계에서 이전부터 예견되어 왔었습니다.

    이로써, 137억년전 원자보다 작은, 한 개의 점(특이점)이 빅뱅으로 터져나와 현재의 우주 만물을 구성하고, 지구생명의 탄생기원을 마련하게 되는 과정을 적어도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즉, 이 우주는 ‘신’이 설계하고 창조한 것이 아니라, 우주자체가 내재하고 있었던 ‘자발적 대칭붕괴’ 메카니즘에 의해 우주가 창조된 것으로 강하게 예측하는 것이죠.

    한편, 이와같은 현대과학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정치, 종교, 사상적 목적이나 이해관계가 아닌, 우리의 존재기원을 밝히려는, 인간본능에 내재된 ‘탐구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비록 앞으로의 실험과 관찰들이 그동안 과학적 성과와 가설들을 모두 부정하게 되는 결과를 던져주더라도, 인간은 탐구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은 원래부터 그렇게 탄생되었으니까요.

    약 10여년전 스티븐 호킹박사가 인류 역사상 가장 신에 가까이 가있는 사람이라고 비유된 적이 있었습니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스티븐 호킹은 인간지식의 보잘 것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스티븐 호킹이 우주설계와 관련하여 언급한 ‘신’은, 근원적인‘신’이 아니라, 인간이 빚어낸 ‘인격 신’일 것이라 저는 믿고 있습니다.


    수천년을 그래왔듯이, 15세기에도 태양은 매일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고 있었으며, 인간이 끝없이 걸어도 땅은 평평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관측도구도 없이, 눈으로 천체를 관찰하고 몇개의 수식만으로 지동설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생각과 세상의 틀을 바꾸었습니다.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다중우주’니 ‘평행우주’니 하는 황당한 주장이 다시 나왔습니다.

    주장의 황당함이 지동설의 15세기, 진화론의 18세기와 맞먹습니다.
    그러나 그때와는 달리, 이제는 세상이 인간의 상식으로 조롱하거나 선을 넘지말라고 협박하지 않습니다.

    현대물리학에서 예측한 것들이 정확하게 검증된다 하더라도, 인간은 오만해 질 수 없습니다. 오히려 ‘위대한 설계’ 그 숭고함에 다시한번 몸을 추스르며 경건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많이 알게될수록, 인간의 앎이 보잘 것 없으며, 우주 또는 신은 훨씬 더 먼 곳에 있음을 자각할 테니까요. 마치 오래전에 인간이 별과 달을 따려 했던 것 처럼말이죠. 적어도 물리학에 있어서 만큼은...

    정길호님! 님의 ‘인간의 오류’와 관련해서, 제 마음속에 무겁게(?) 남아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지난번 언급드린 과학윤리와 관련한 것인데요.
    이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
    다시 읽어보니, 두서없는 글이 되었는데, 시간이 없어 그냥 올립니다. 오류가 많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라며,
    이제 정길호 님의 생각을 충분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강조하는 바가 부분적으로 조금 다를 뿐, 글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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