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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8 12:04

이기적 유전자 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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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 이상임 옮김







이 책은 나에게 있어 체증(滯症) 같은 존재였다.
그간 지인으로부터 여러 차례 독서권유를 받았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보니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버린 것이다.
그래서 늘 마음 한켠에 그 잔상(殘像)이 남은 터에 이제야 ‘권유의 빚’ 을 갚았다.
(마치, 온천탕에서 묵은 때를 밀고 난 후의 시원함, 그리고 맥주한잔의 여유...)

사실, ‘이기적 유전자’ 에 대해서는 일찍이 많은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미 잘 아는 이야기라 착각을 할 정도로 익숙한 이론이었으나,
정작 책을 읽는 동안 ‘만만찮은 책’ 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1976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지금껏 몇 차례의 수정을 해오는 동안,
국내에서는 2010년 판이 가장 최근의 개정본이다.

한번 읽는 것만으로는 놓치는 부분이 많았기에
결국, 두 번을 읽는 무리수를 두었음에도 아직 낯이 선걸 보면,
‘썩어도 준치(청어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 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책이다.

이 책은 제목과 동일하게 ‘이기적’ 으로 쓰여졌다.
생물학 관련된 법칙들과, 이름도 생소한 동, 식물계의 표본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 흔한 도식(圖式)이나, 삽화 하나가 없다.
오직 문어체(文語體) 상으로만 개념을 설명한다.
지금이야 그나마 인터넷이란 정보의 매개체(媒介體)가 있어 찾아보기가
수월해졌지만,
그 이전에는 동, 식물 도감(圖鑑)을 일일이 찾아가면서 읽어야하는
나름의 인내심과 수고를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본문의 난해함 보다도 최신개정판으로 만들면서 책 뒤편에 첨부한
보주(補註, 본문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여 권말(卷末)에 붙여 놓은 것) 의 내용들이
더 까다롭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고 우울증에 걸려 자살을 고민했다는
어느 독실한 크리스찬(Christian, 기독교 신자) 독자의 일화(逸話)를 읽으면서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것이라 나름 이해가 갔다.
‘이기적 유전자’ 가 주장하는 바는,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 식물은 유전자가 만들어 낸 기계일 뿐’ 이라는
것이다.
세상 만물은  ‘신’ 이라는 절대자의 은총으로 만들어진 산물이기에
인간은 그 어떤 것보다도 고귀하다는 절대적 믿음을 평생 동안 가져온 사람이
저명한 학자로부터 그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주장을 접하면서 일순간 받은 충격은 
상당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정신적 주화입마(走火入魔, 정신적 충격으로 온몸의 기와 혈이 막히는 증상) 에
빠져버린 형상인데,
히파수스(Hippasus)의   무리수(無理數, √2=1.414213…,  π=3.141592…)  발견,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의   지동설(地動說),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종(種)의 기원,
쇼펜하우어(Schopenhauer, Arthur)의   염세(厭世)사상,
니체(Nietzsche, Friedrich Wilhelm)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 등을
무방비상태로 접했던, 당시 사람들이 받았던 충격과 유사했을 것이다.

이채(異彩)로운 점은,
아마도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이와 같은 정신적 충격을 받은 독자들을
배려한 까닭인지는 모르겠으나,
기존의 원본에는 없었던 이타주의(利他主義)에 대한 일말의 긍정과 희망을
12장과 13장에 새로운 주제로 담았다는 것이다.


도킨스의 기존 주장은 다음과 같다.
대략 40억년 전 스스로를 복제하여 사본(寫本)을 만드는 능력을 가진 원시분자가 
원시스프(primeval soup) 라  불리는 원시의 대양(바다)에 생겨났고,
이 자기복제자는 자신의 사본을 복제하는 과정에서 보다 안전한 대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유전자의 시초이고, 각각의 세포라는 울타리를 만들어서 상호간 융합,
복합, 협력, 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일정한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것이 오랜 세월동안 진화해오면서,
오늘날의 동, 식물계의 종(種)을 형성해왔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인간’ 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고유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입력해 넣은
로봇기계(운반자)와 같은 소모품의 존재라 설명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유전자의 보존을 위해서 각 분자들은 이기적 본능에 의해
자신들의 사본을 만들어 가는데,
여기에는 비정한 경쟁,  끊임없는 이기적 이용,  그리고 노림과 속임수로
가득 차있고,
유전자는 스스로를 유지하려는 목적 때문에 본래 이기적이며,
자신의 이기적 유전자를 지키기 위해 생물체의 몸을 빌어 현재에 이르고 있고,
동물의 이기적 행동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타적 행동을 보이는 것도 ‘자신과 공통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행동일 뿐’
이라는 것이다.

만약, 중세 유럽에서 이와 같은 이론이 주창(主唱)되었다면.
아마도 도킨스는 마녀사냥 식의 극형에 처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도킨스 이전에 찰스다윈이 ‘종의 기원’ 을 출간함으로써
도킨스는 다윈이 만들어준 안전지대에서 비교적 손쉽게 이기적 유전자론을
설파(說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진화의 과정’ 을 설명한 생물학 책이다.
그렇기에 굳이 철학이나 도덕에 입각하여 접근할 필요는 없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런 불만 섞인 질문을 하고 싶을 것이다.
인간이 이기적 유전자에게 조종당하는  주체(主體)가 아닌,
객체(客體)일 뿐이라면,
'마더 테레사(Theresa)와 같은 희생과 헌신의 삶이나,
 부모의 자식사랑이나, 효(孝)와 같은 이타적 가치들을
 어찌 설명할
것인가?'

이에 대한 도킨스의 기존 주장은,
동정심과 연민이 많은 이타적인 사람도 동종의 유전자를 퍼뜨리기에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이기적 선택방식의 일환이거나,
돌연변이 유전자의 특수 작용일 뿐이고,
부모 자식의 상호적 보호관계 역시, 이기적 유전자의 안전한 보존을 위한
원초적 프로그램의 일환이라 설명해왔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12장과 13장에서는 기존의 주장보다는 한결 유화(柔和)된
태도를 보인다.
특히, 12장에서는 게임이론(Theory of games)을 통해
‘마음씨 좋고, 관대한’ 개체가 이득을 보는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까지 했다.


사회생물학(sociobiology)적 측면에서 이 책을 살펴보면,
인간의 행동방식이 사회성 곤충인 개미나 꿀벌이나, 여타 다른 종의 동물들의
생존방식과 비교해서 어떤 점에서 같고, 어떤 것이 다른가? 를 고민하게 된다.
그러면서 인간의 복잡해 보이는 행동방식도 해당의 관점으로 살펴보면,
비교적 단순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은 다른 동물계와 비교하여 독특한 존재이기는 하다.
그러나 동물계의 일반 법칙을 완전히 벗어나서 존재하는 종은 아니다.
인간 역시 이기적 유전자가 만들어놓은 본능(本能)이라는 테두리안에
구속되어 있으면서,
그 본능의 명령을 거역하는 이성(理性)이란 독특한 특수성이 함께 존재한다.
인간의 삶 속에는  치열한 생존경쟁이 있고,  냉혹한 권모술수,  약육강식이 따르지만,
그 이면(裏面)에는  따듯한 동정심,  연민,  자기희생,
지구 라는 공동체 공간에서의 공리공생(公利共生같은 
이타적(利他的) 가치들이 함께 공존(共存)하고 있다.
이것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靈長, 영묘한 힘을 가진 우두머리)’ 이라
부르게하는  오만함의 근거이자, 논거(論據)일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오랜만에 손때를 묻혀가며, 긴 시간을 투자해서 읽은 책이다.
두 번을 읽었으면서도, 책의 개념이 깊은 사유로 그 정리를 어찌 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함을 느낀다.
이것은 나의 생물학적 지적능력이 부족한 것을 탓해야 할 것이다.


2008년 인가?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 해프닝(happening) 을 본 기억이 난다.
전작인 식스센스(The Sixth Sense) 에 비하면,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작품이었지만,
유독 인상 깊었던 장면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본 서평을 마친다.

선생님 : 과학에 관심을 가져봐, 꿀벌이 사라지는 원인이 뭘까?


학  생 : 자연의 섭리는 완전히 이해될 수 없어요!


선생님 : 좋은 답변이야!  그 말이 맞아!

           과학자들이 책에 쓸 원리는 알아내지만, 

           그것은 이론에 지나지 않아!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해!

           좋은 과학자가 되려면,

           자연의 법칙(섭리)을 존중해야 돼..!


 선생님 : 자, 과학 조사의 법칙이 뭐라고?


 학  생 : 변수를 확인하고, 실험을 계획한다.

 
         신중한 관찰과 측정 후에 실험 결과를 분석한다.





** 개인적평점 : ★★★★



** 표현의 언어 중, 가장 마음에 남는 구절 **

“오늘날 자기 복제자는 덜거덕거리는 거대한 로봇 속에서 바깥세상과 
 차단된 채 안전하게 집단으로 떼 지어 살면서, 
 복잡한 간접 경로로 바깥세상과 의사소통하고 원격 조정기로 
 바깥세상을 조종한다.
 그들은 당신 안에도 내 안에도 있다.
 그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론적 근거이기도 하다.
 자기 복제자는 기나긴 길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이제 그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며, 
 우리는 그들의 생존 기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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