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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심장] 마커스 보그


같은 하느님을 믿는데, 같은 예수를 믿는데 어떻게 생각이 나와는 저렇게 다를 수 있을까? 생각이 들때가 있다. 사실 생각이 다른정도가 아니라 생각이 거의 반대에 가까워서 어떨땐 혐오감이 생길정도다. 나의 이런 극한 감정은 주로 이대팔(2:8)의 비율로 매끈하게 쓸어넘긴 기름기 좔좔거리는 헤어스타일의 어르신들이 마이크 잡고 된발음으로 유창하게 자신의 무식함을 태극기 휘날리는 군중들에게 설파하는 일부 종파의 지도자들에게서 유발된다. 이들은 극단적으로 반공친미 이데올로기를 숭상하며, 권력과 부를 종교를 통해 세습하며, ‘더불어 사는 세상’보다는 ‘승자가 구원받는 현실’을 옹호하며, 자기 종교만이 구원의 길이라 고집한다. 난 이들이 종교인이라기 보다는 물신적 반종교인이라고 생각한다.


마커스 보그의 [기독교의 심장]이란 책읽고 감상문을 적어보려하는데  서두가 너무 길었다.  필요없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인데, 종교인이라 볼 수 없는 ‘자칭 종교인’들을 논의에서 배제하고 싶어서다. 앞으로 논의되는 신앙인의 부류에는 위의 사람들은 배제하고 이해해 주시길.


사람들에게 종교관은 큰 차이가 있다. 뭐든 두 부류로 나누려는 좌우 두쪽으로 이루어진 뇌의 특성상 종교관도 크게 두가지로 구분되는데 흔히 보수적/진보적 신앙이라 불리는 것으로 대별할 수 있겠다. 마커스 보그는 이것을 과거의 패러다임과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구별하였다. 매우 간략히만 정리하면 이렇다. 과거의 패러다임은 성서 무오류설에 근거하며, 믿음(believing) 중심적이며 내세(afterlife)중심적이다. 이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기독교인의 삶은 요구되는 것들과 보상에 관한 것들이다. 훌륭한 신앙인이란 기독교의 핵심주장들을 잘 믿고, 이어질 보상을 의심치 않는 사람이다. 이에 반해 새로운 패러다임은 성서를 역사와 은유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새로운 패러다임아래서는 믿음이란 교리나 신조에 대한 동의라기 보다는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말하며, 세계는 이방종교와 투쟁해야하는 싸움터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은총으로 가득찬 무대라고 믿는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백수십년전에 시작되었으며, 지난 20-30년동안 성직자 및 평신도들 사이에서 풀뿌리운동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나의 종교생활에 있어 큰 두가지 걸림돌이 있었는데, 하나는 신의 실재하심에 대한 의문과 성서의 역사적 진실성에 대한 의문이었다. 진화생물학에 심취했한 나에게 있어 그 두가지는 함께 갈 수 없는 지적 장애물이었고, 보수적인 한국사회의 부조리함을 나름 느낀 사람으로서 극우적 이데올로기를 차용하는 보수종교는 이해할 수 없는 종교의 모습이었다. 나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독교는 모든 것을 일거에 해결해 주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자연과학과 충돌하지 않는 신관을 보여주었고, 아니 더 나아가 생물의 진화과정과 물리적 실재들 너머에 있는 신비한 무엇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어릴적 성당에 다니면서 체득한 하느님의 모습인 구름위에서(제3의 시공간에서) 내려다 보면서 기도하는 사람을 찾아 그의 맘을 위로하고 때로 기적같은 일을 베푸시려 세상에 내려오시는 그런 하느님을 굳이 안믿어도 된다는 해방감을 안겨 주었다. 또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신앙관은 내세적인 보수신앙보다는 현실적 삶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믿기 때문에 현실참여적이다. 따라서 부조리한 개인과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에 깊게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내게 있어 마커스보그가 말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잘 맞추어진 양복을 입는 느낌이었다. 자연과학과 충돌하지 않는 신관,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종교를 찾았고 그러한 류의 사람들과 어울렸다. 과거의 패러다임은 유아기적 미숙한 신앙관이고 새로운 패러다임은 성숙한 신앙관으로 비쳐졌다. 나의 이러한 종교적 편향이 나쁜건 아닐텐데, 이게 꼭 옳다고 생각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오류를 인정해야 할 듯 싶다. 마커스 보그는 반드시 새로운 패러다임이 옳고 과거의 패러다임이 틀렸다고 말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신앙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가 하는 점이다. 절대 진리의 세계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물리적 실재 너머에 있기 때문에 종교의 역할은 그곳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것이다. ‘너머’로 또는 ‘그 이상’(The more)로 우리를 데려다 주게끔 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살아있는 종교와 죽어있는 종교를 구별하게 하는 포인트이다. 종교가 정치적으로 진보적이고, 지성적으로 이해가 되도록 깔끔한 이론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너머’로 안내해주는 성례전으로서의 역할을 못한다면 종교적이지 않은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며, 많은 ‘진보’를 좋아하는 종교인들은 지적인 교만에서 잘 벗어나질 못하는 경향이 있다. 종교생활이 하느님의 실재하심을 신뢰하는 데서 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역사적으로 필요하다는 믿음에서 유지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역시 오강남 교수님 표현대로 심층이 아닌 표층적 종교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또 하나, 과거의 패러다임인 성서무오류설이 마치 전통적인 성경을 지키려는 노력처럼 보이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마치 학문적 최신지견이라는 생각이 있는데, 그건 오해라고 한다. 17세기 계몽주의 이전에는 성서는 있는 그대로 진리였고, 사람들은 성서를 통해 글자 너머이 거룩함을 예배했다.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성서가 오류가 있으며 새로운 해석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이에 대한 반동으로 성서무오류설이 등장했다. 그러나 성서에 쓰여진 문자 그대로를 지키는 노력은 오히려 성서의 근본적인 성례전으로서의 역할을 방해하고 말았다. 오늘날의 성서무오류설은 성경적이지도, 전통적이지도 않은 불과 수백년안된 성서해석의 한 방법일 뿐이다.


 성서적 전통에서는 두 가지 패러다임 모두가 섞여 있다. 두 가지 모두 기독교적 신앙체계의 한 방법으로서 인정되어야 한다. 다만 과거의 패러다임은 근현대의 역사속에서 잘못된 정치이론과 결합되면서 많은 폐해를 낳았다. 오늘날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과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속에서 어떤 신앙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겠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기독교의 심장]을 읽으면서 그동안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퍼즐들이 하나의 모양을 꿰어 맞추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시원하게 설명해 주어 좋았고, 한편으로 나 역시 한계가 많은 놈이라는 것을 콕콕 찝어주어 시원했다. 이래저래 시원함을 주는 책이다. 겨울 한파에 읽으면 참 좋을 것이다. 한파에 하얗게 얼어붙은 몸뚱이를 뜨거운 국물이 녹여주는 느낌을 ‘시원하다.’하지 않는가. 뜨겁지만 시원한 국물처럼 마음을 녹여서 발딱거리는 심장을 느끼게 해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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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윤호 2013.01.12 14:50
    독후감 읽는 내내 흥분이 될 정도에요. ^^

    사실 새로운 패러다임 관련하여 진보적인 목사님들의 입과 글로 소개가 되어 있지만

    이 책은 진짜 봐로 사 봐야 할 책 1순위가 됐네요.

    어쩔 수 없이(?) 적어 놓으신 서두의 내용에도 절대 공감하는 바입니다.

    이낙원 선생님 항상 좋은 독후감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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