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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3 22:18

이보디보

조회 수 3458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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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디보


 

 

'생명과학의 새로운 종합 - 거대 학문의 탄생'


 

 

 

 학부 1학년을 마치고 전공을 선택할 때 이과대 신입생들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기 마련이다. 보통 1학년 1학기가 끝나면 학생들은 물리/천문/대기과학을 지망하는 일군의 학생들과 생물/생화학/화학 등을 지원하는 학생들로 갈라지게 된다. 전자의 경우에는 학생들이 비교적 자기 주관이 뚜렷하여 학과선택에 주저함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마지막까지 고심한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생물/생화학에 공통적으로 관심이 있어 이 두개 중 선택을 하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과 선택에 관해 친구들과 여러모로 이야기 하던 중 한가지 재미있는 지원 경향을 발견했다. 내가 볼 때에는 생화학과와 생물학과의 교육과정이 큰 차이는 없는데 유독 생화학과의 인기, 특히 커트라인이 유달리 높았던 것이다.

 

 직접 생화학과를 지망하는 학생들을 만나서 이야기 해보아도 정작 학생들은 두 과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하면서 생화학과를 유달리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참 재미있는 일이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학생들은 고교시절까지 배워왔던 생물학을 다소 고리타분하게 생각하고 이름부터 새로운(!) 생화학을 무언가 전혀 다른 첨단분야로 생각하고 있었다. 잘 모르겠다. 선배들이 그렇게 소개를 해 주었는지 아니면 학생들이 그렇게 오인했는지는. 아니면 황우석을 통해 부풀려진 분자생물학에 대한 환상이 깃든 생화학이라는 이름 때문인지는.

 

 돌이켜 생각건데, 이렇게 생물학이라는 이름이 고리타분하게 비추어진 대에는 고교 교과서에 있는 동식물에 관한 내용이나 고생물학(주로 지질학에 언급되지만)과 멘델 유전학, 발생관련 내용 등과 동일시 된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반면에 유전자, 분자, 핵산등을 집중해 다루는 과목들이 즐비한 생화학과가 낭만적으로 보이지 않았나 싶다.

 

 역설적으로 우리학교 생물학과도 진화관련, 동물행동학, 생태학 관련하여 변변한 강의조차 없는 미시적인 커리큘럼 위주지만, 이렇게 진화론, 발생학, 고생물학 등이 대학 신입생들에게 조차 '구식' 취급을 받는다니 참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사실 생물학에서 진화의 문제는 항상 논의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항상 생물학에서 밝히고자 하는 궁극적 요소는 진화였다. 1930-40년대에 집단유전학과 자연선택론을 중심으로 유전적 변이의 누적이 개체 변이 및 대진화를 일으킨다는 '진화적 종합'이 이루어진 이후, 진화를 설명하는 방식을 두고 신다윈주의, 단속평형설, 창발설 등 아직도 이론이 끊이지를 않고 있으며, 윤리적 행동의 진화적 설명도 여전히 큰 관심의 대상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진화생물학이 이루어온 학문적 성과들은 이러한 '진화적 종합'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분자생물학과 유전학의 발전이 이러한 진화의 과정 뒷받침했다. 그러나 이 '종합'도 완벽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분자생물학과 유전학은 이러한 진화의 과정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고생물학에서 불 수 있듯이 구체적인 형태들이 실제로 어떠한 과정을 통해 변화했는지 그 과정을 보여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화석을 기반으로한 고생물학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었고, 실질적으로 이론적 설명은 분자생물학이,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은 고생물학이 담당하는 이원적인 구조로 진화생물학은 남을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분자생물학은 진화를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한정된 종에서 이루어지는 형질 변이를 연구했고 고생물학은 큰 단위에서의 진화, 즉 대진화를 설명하는 것에 집중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설명할 듯 했던 '진화적 종합'도 사실은 반쪽짜리 종합이었던 셈이다. 더군다나 진화적 종합에는 발생학이 있을 자리가 없었다. 종합 당시 유전학은 통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론을 사용하는 강력한 학문이었지만, 발생학은 형태형성장이라는 추상적이고 수학적으로 정량화하기 힘든 개념을 위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논리적으로 설명하기에는 발생은 너무나도 복잡했다.

 

 따라서 발생학은 유전학에 밀려 진화적 종합에서 설 자리를 잃고, 몇몇 종의 배아나 난자를 조작하여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형태변화에 그 관심을 국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0년대를 거치면서 발생학과 진화를 연관지어 설명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발생학적 지식을 강력하게 발전한 분자생물학과 유전학의 힘을 빌어 연구한 결과 놀라운 사실들이 밝혀져 나왔던 것이다. 비로소 떨어져있던 여러개의 학문들이 하나의 거대학문으로 종합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진화발생생물학, 즉 이보디보(EVO DEVO)이며, 이 책은 이 학문에 대한 outline을 잡아주는 대중적 입문서에 해당한다. 

 

 이런 발전을 촉발한 것은 초파리의 발생을 조절하는 유전자들의 발견이었다. Homeobox gene은 초파리의 발생을 통제하는데, 발생시 만들어지는 신체의 각 부위들이 어떻게 바뀌어나가는지를 결정한다. 예를들어, A-B-C-D-E라는 유전자가 있다면, A는 머리의 발현을, B는 목의 발현을, C는 몸통, D는 날개, E는 다리를 발현시킨다. 여기에서 배아의 어떤 부위에서 어떤 유전자가 발현되느냐에 따라서 앞으로의 형태가 결정되게 된다. 만일 돌연변이가 생겨 A하는 유전자가 E라는 유전자가 발현되어야 할 곳에서 잘못 발현되면, 머리가 두개 생기는 셈이다. 이런 조절 유전자들을 툴킷 유전자라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유전자 세트가 상당히 유사하거나 동일한 형태로 상이한 동물군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초파리와 쥐의 눈을 발현시키는 유전자는 매우 유사해서 쥐의 눈 발현을 통제하는 유전자로 파리의 눈을 발현시킬 수도 있으며, 곤충류의 다리 등 신체말단을 형성시키는 유전자는 인간의 손과 발을 형성시키는 유전자와 상당히 유사하다! 이와같이 이러한 툴킷 유전자 세트는 광범위한 종에 걸쳐 중복적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것은 생물들이 진화과정에서 변이를 통해 많은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누적시켜, 상이한 유전자들을 가지게 됨으로서 진화가 일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같거나 비슷한 툴킷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이를 발현시키는 regulatory gene의 변화로 진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같은 유전자를 발현시키는 패턴을 조절하는 유전자들이 바뀌어 다양한 형태의 생물들이 진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동물들의 진화과정을 추적한다. 예를 들어, 갑각류의 아가미를 형성하는 유전자와 파리의 날개를 형성하는 툴킷 유전자가 동일하기 때문에 상동성을 감안했을 때, 갑각류의 아가미가 파리의 날개기관으로 진화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저자는 전형적인 진화생물학의 관심사인 캄브리아기의 생물학적 대폭발에서부터 인간의 진화까지 다양한 주제에 접근한다. 현존하는 생물체에서는 그 배아 및 유전자를 이용하고, 멸종한 동물들은 유연관계에 있는 생물들을 이용하여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이처럼 EVO DEVO는 전혀 다른 분야로만 여겨졌던 생물학의 분야들이 한가지 줄기아래 통합되는 거대 학문이다. 아직 생겨난지 20년도 되지않은 젊은 학문이지만, 짧은 시간에도 엄청난 학문적 성과를 이루어내어 주목받고 있다. 앞으로도 이보디보의 성과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지 장담을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여태껏 분리되어있던 생물학의 분과들을 하나의 흐름아래 묶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큰 성과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의미만으로 EVO DEVO가 주목받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EVO DEVO는 진화론 논쟁에서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반론을 게시하던 창조론자나 지적 설계론자들을 부인할 수 없는 증거로 확실히 확인사살해주는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진화를 '유전자의 빈도 변화'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 발현의 변화'로 생각하면서 기존의 진화론을 제고하게 만든다. 근본적인 이의를 제기하는 셈이기에 그만큼 큰 임팩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유전자환원주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주는 측면으로 EVO DEVO를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런 해석은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언급했듯이 유전적 연관성을 정량화 하는 것이 어느정도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주요 유전자는 다종간에 공유된다)을 제기하여 주며, 이블린 폭스 켈러가 '유전자의 세기는 끝났다' 등에서 접근했던 '유전자에 대한 발생학적 접근'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발생과정에서 환경적 변수를 고려하려 해석되었을 때, EVO DEVO의 연구성과들이 유전자와 환경의 영향에 대해서도 그 관계를 정립하는데에 크게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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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록 2008.02.13 22:18
    이기적 유전자와 이보디보의 두개의 독후감을 보았는데,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군요.
    이기적 유전자를 읽어는데 몇 달 지나가니 기억되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 ?
    송윤호 2008.02.13 22:18
    생명과학부 학생들 생물학 과목을 구식취급하는 '놀라운 일'에 대해선 무척 공감하게됩니다.
    일단 생명과학부 학생들도 학문보다는 취업 위주로 전공을 선택하기에 생물학과 보다는
    생화학과의 유리한 점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겠지요.

    독후감 잘 봤습니다. ^^ 더 많은 독후감을 기다리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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