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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3 22:17

이기적 유전자

조회 수 3409 추천 수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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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유전자로 윤리의 진화를 설명하다'

 

 

 대학입학과 함께 아버지 서재에서 내 방으로 책 몇권을 '강제이주'시켰었다. 자세히는 기억에 나진 않지만 아마도 대학생활에 대한 설레임과 책임감을 현실화시켜주는 상징적인 행위였으리라. 그것은 '대학에 들어가서는...' 부류의 나름의 다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때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생화학을 전공하리라 마음먹고 있던  내 눈을 사로잡았다. 잘은 모르지만 유명한 책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냥 덥썩 잡았던 것 같다. 지금 책을 고른다면 서평이라도 한두번 읽고 책을 정하겠건만...

 

 그러나 책을 읽는 일이 그리 잦지는 않았다. 일단 신입생으로의 생활을 즐기기도 바빴고, 한편으로는 전공결정에 대한 압박감을 핑계로 이 책은 결국 절반정도만 읽히고 책장에 유배당했다. 책에 대해 소박하게나마 가졌던 이해도 감상도 그렇게 잊혀져갔다.

 

 그러나 시간이 그렇게 만든 것일까. 최근에 책을 다시 폈을 때에는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한숨에 책을 읽어내려갔다. 과거의 내 모습을 회상하면서.

 

 

이기적이기에 이타적인

 

 

 오랜만에 짚은 책은 제목과는 다르게 생물의 이타적인 행동의 원인을 분석하는 논리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했다. 다윈의 진화론을 설명하면서 많은 생물학자들이 맞닥뜨렸던 난관 중 하나가 생물들의 이타적 행동들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생물체들이 도대체 왜 서로 돕는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것일까? 각 개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이타적 행동은 독이 아닌가?

 

 사람들은 각각의 개체 및 개체군의 특성을 바탕으로 한 여러가지 이론들로 이를 설명했다. 그러나 도킨스는 이들이 모두 틀렸다고 강변한다. 생존의 단위가 개체나 개체군이 아니라 바로 유전자라는 것이다.

 

 도킨스에 따르면 모든 생물은 유전자가 조종하는 아둔한 로봇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유전자가 자신과 유사한, 혹은 같은 copy를 후대에-자손의 형태이건 친족의 형태이건-남기기 위한 과정이 진화의 역사라는 것이다. 우리라는 개체가 죽어 없어져도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의미가 없다. *생존의 주체는 유전자이기 때문에 내가 죽는다고 해도 나의 유전자와 유사한 개체들이 많이 살아남는다면 유전자로서는 이득이기 때문이다.

 

 즉, 생물진화의 역사는 특정 유전자가 자신과 유사한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기 위한 과정이라고 도킨스는 본다. **따라서 쉽게 말해, 세 쌍둥이 중 한명이 물에빠진 두명을 구하려고 목숨을 담보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요지다.

 

 여기서 그는 더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메이나드 스미스의 ***ESS개념, 게임이론 등을 차용해 호혜성 이타주의 등 더 많은 경우를 설명하면서 개체들이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끌어낸다. 그에 따르면 생명의 이타성의 역사는 역설적으로 유전자의 이기주의 때문이다.

 

 

서울시내의 람보르기니

 

 

 이런 도킨스의 주장은 매우 세련되고 명료해 보인다. DNA를 생존의 주체로 삼으면서 책에서 언급한 온갖 사례들로 통해 볼 수 있는 난제를 깔끔하게 극복한다. 너무나 명료하게 설명하는 바람에 내심 불안할 정도이다. 아마 신입생 때 이 책을 보았다면 도킨스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읽어보면 그의 냉철한 지성에 경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구스러운 마음이 남는다.

 

 그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유전자가 우리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유전자 환원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마 책이 발표된 시대적 배경(70년대 자콥과 모노의 '유전프로그램' 개념의 도입)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의 분자생물학적 성과와 진화적 과정의 여러 환경적, 확률적 변수를 지나치게 간과하고 있지 않나 싶다.

 

 특히 내가 보기에 도킨스의 주장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유전자의 중복성을 간과한 것이다. 타종간 동일하거나 상당한 비슷한 정도로 나타나는 hox gene등의 존재와 전체 유전자의 유사성에 대한 고려는 논외로 하더라도, 도킨스의 주장이 맞으려면 유전자의 변이 정도=표현형의 변이 정도라는 수식이 성립해야 한다. 즉, 도킨스는 자연선택을 받는데 기준이 되는 외부적 특질(얼마나 생식력이 뛰어난지,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등)은 표현형인바, 이 외형적 특질의 변이 정도가 유전자의 변이 정도와 동일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가지의 표현형조차 여러가지 유전자가 같은 형질을 중복적으로 표현하여, 한가지 종류의 유전자를 기능불능 상태로 만든다고 하여도 표현형에는 변화가 없는 경우가 많이 있다. A, B, C라는 유전자 모두가 D라는 특질 한가지를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A가 불능이 되어도 표현형에는 이상이 없다. A, B, C라는 유전자를 모두 가진 부모로부터 A나 B라는 유전자 중 하나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지 않았어도 외형적으로는 부모와 동일한 특징을 보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도킨스는 유전자가 얼마나 닮았는가, 즉 양적으로 얼마나 한 개체와 다른 개체의 유전자가 비슷한가에 중점을 맞춘다. 그에 따르면 어미 개체와 새끼 개체는 부모의 유전자의 절반을 새끼가 받으므로 50%의 유전적 연관도를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50%의 유전자를 받았다고 해서 특징이 50%가 유전 되는 것은 아니다. 도킨스의 말마따나 유전적 연관도가 개체들끼리 이타적 행동을 하게 만드는 척도라면, 겉으로 나타나는 특징 이외에 본능적으로 유전적으로 비슷한 개체들끼리 서로를 인식하는 육감이라도 있다는 것인가? 자연선택의 대상은 정녕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인가? 정말 우리는 유전자가 조종하는 생존 기계일 뿐인가?

 

 

 '이기적 유전자'는 차로 비유하자면 서울시내의 람보르기니 스포츠카 같은 느낌을 준다. 그의 주장은 남성적이고, 힘있고, 분석적이고, 환원주의적이며, 다양성과 우연보다는 하나의 진화적 경향과 논리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련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이 '차'가 수많은 우연과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서울시내를 무사히 거쳐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굳이 그와 오랜시간 논쟁을 벌인 굴드와 르원틴의 연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너무, 너무 말끔하다. 뉴턴 물리학이 떠오를 정도로.

 

 그의 이런 경향은 책의 마지막 두개의 장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그는 문화마저 유전적 요소(meme-모방자-이라는 용어를 동원해서) 로 비유하며 결론적으로 동물의 행동 하나하나를 다 유전자의 연장에서 볼 수 있다는 사회생물학적 주장을 편다.

 

 물론 개인적으로 아직 대가의 연구성과를 제대로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을만한 위치는 아니지만, 도킨스보다는 그의 오랜 숙적이었던 굴드나, 르원틴, 린 마굴리스, 매클린톡 등이 더 끌림을 고백해야겠다. 정치적이라 말해도 어쩔 수 없다. 다양성, 환원주의에 대한 반대, 우연의 강조... 도킨스의 논리는 우승열패를 부르짖던 스펜서 할아버지나 다국적 기업들의 신자유주의를, 굴드는 진보정당의 메시지를 대변하는 것 처럼 들린다. 저자의 냉철함은 선망하면서도 만일 생물학자로 남게 된다면, 도킨스보다는 굴드나 매클린톡과 같은 학자로 남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우연은 아닌 것 같다.

 

 

 

 

 

 

 

 

 

 

 

* 그러나 도킨스는 유전자에 '의식'이 있는 것처럼 표현했을 뿐이지 실은 '무의식적으로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표현은 하나의 비유일 뿐이다

 

** 이는 해밀턴의 kin selection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r x b - c > 0

(여기서 r은 내가 구하려는 개체의 유전적 연관도, b는 상대가 받는 이득, c는 내가 입는 손실)이면 이면 이타적 행동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 Environmentally Stable Stratagy (개체들이 진화적으로 균형을 이루게 하는 생존 전략) 스미스의 '생존게임이론'에 중요한 개념이다.

 

 
  • ?
    송윤호 2008.02.13 22:17
    매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토론회때 직접 뵙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요 ^^
    전공시험에만 신경쓰고 진정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생명과학부 후배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겠습니다.

    좋은 독후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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