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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예술:형이상항적 해명 I> 조중걸 저.

때로는 나의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의 소리와 부딪히는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곤혹스러워하는 나 자신을 보곤 한다. 그 불편함 혹은 나의 이중생활의 근거가 무엇인지 헤매다 만난 작가의 작품들. 그 안에서야 비로서 나는 안도의 숨을 쉴 틈을 얻는다. 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에서부터 시작해서 작가의 모든 책들을 섭렵하며 점점 더 내면의 자유를 얻었다. 작가의 신작, 근대예술이 나왔다는 소식은 나에게 또 어떤 선물을 줄 것인지 기대부터하게 만든다. 그리고, 작가는 내가 김칫국을 마신게 아니였다는 것을 이 책으로 다시 한 번 증명하였다. 근대예술은 두 권으로 된 방대한 양이지만, 우선 르네상스, 매너리즘, 바로크로 구성된 1권에 대해서부터라도 감상을 적지 않을 수가 없다.



나에게는 르네상스인적인 요소가, 매너리스트인의 요소가, 또 바로크인의 요소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리고, 또 현대인의 요소까지도. 나는 기하학을 좋아한다. 그 완벽함에 매료되어 있었고, 소실점에서 황홀감을 느끼곤 했다. 먼 발치에서 사라지는 길의 끝이나, 일렬로 세워져 있는 잘 정돈된 정원에서 안정감을 느꼈었다. 그게 좋았다. 편안했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엉크러진 방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완벽하게 정돈된 방에서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 모순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책은 내가 왜 이런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을 좋아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되는 책이기도 하다. 책의 설명에 의하면, 나는 인간지성이 세계를 알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그 불가능성, 불확실성에 대해서, 신념에 대한 의심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분명 바닥까지 솔직하게 생각하면 후자가 맞는데, 왜 나의 머리는 전자에서 멈추고자 할까, 왜 나의 가슴은 후자가 맞다고 계속 읊어대는 것일까. 오랜 내면의 고민은 책에서 답을 찾는다.


그동안 몰랐던, 익숙하지 않았던,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좀처럼 보여지지 않았던 후기 고딕 예술들, 마니에리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뭉크와 같은 현대의 작품들을 보고 있는 착각이 들게 한다. 세익스피어의 글이 길기만하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횡설수설이어도, 우리는 여전히 그 글들을 사랑한다. 편안함을 느끼고, 이해를 하고, 아름다움을 느낀다. 딱딱 각진 기하학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마니에리즘 시대의 마니에리즘적인 작품들은 바로 우리 시대, 현대의 작품과 같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저자의 설명에 머리가 끄덕여진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건 아니건, 이건 전적으로 독자들의 목이다. 우리 선택에는 자유가 있다. 다만, 그의 설명으로 복잡한 철학이, 어려운 예술이, 심지어는 내 삶까지도 많은 부분이 설명된다면, 나는 그의 주장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예술 그 자체만을 위한 것이 된다. 예술이 도덕과 정보의 짐을 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예술은 본래 자기가 짊어질 이유가 없었던 짐을 내려놓았을 뿐이다.


비단 예술만이 그러한게 아니였다. 나 스스로가 나에게 부과하였던 짐이 있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완벽이 아니라면, 그에 가깝도록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 그 의무를 다하지 않을 때의 죄책감. 노력을 해도 도달하지 못하는 좌절은 둘째 치고, 결과가 없다면 노력도 무의미한 것인가라는 의문들. 무능하고 게을러서라는 자책까지. 내가 나에게 혹은 사회가 우리에게 부과한 것들이 사실은 근거가 없다는, 부당하다라는 것을 예술가들이 먼저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 나도 자유를 얻는다. 치유받는다. “예술은 그것이 본래 자기가 짊어질 이유가 없었던 짐을 내려놓았을 뿐이다.” “이론과 관측기록의 불일치는 단순히 과학적 오류나 무능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그랬다. 세상 뭐 그리 복잡하게 사냐며 타박 받았던 나도, 이제는 가벼워졌고, 자유로와졌다.



근대 예술을 설명하는 가운데 깨알같이 숨어있는 21세기, 우리의 모습들. 신념에 강압받지 않는 자유로운 모습들이 반갑다. 근대와 현대의 대비를 통해 더욱 생생해지는 나의 모습, 지금 21세기의 모습들이 사랑스럽다.



우리의 습관, 교육이 문제였다. 고딕적이란는 말에는 야만성이 포함되어 있고, 매너리즘이 형식적이라는 말에는 왠지 게으르거나 무식한 혹은 실력이 부족한이라는 느낌이 남아 있고,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포기’에는 부정적인 뉘앙스만 있다는 듯 배워왔다. 이것이 근대이념의 교육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나쁘거나 부정적인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마니에리즘에 대한 부당한 시선을 거두면서, 나는 나를 치유하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 현대가 보다 현대로와지는 것, 현대시대를 살며 나에게 남겨진 근대습성을 벗어내는 것, 이렇게 함으로서 나는 현대의 (알 수 없는)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것 같다. 환각주의, 제국주의, 매너리즘 등등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 선입견, 그리하여 나의 사고의 확장을 막아버렸던 선입견들을 배제하려고 노력하며 이 책을 읽는다면, 저자의 설명이 보다 쉽게 와 닿는다. 내 인식의 폭이 넓어지고, 몰랐던 지식을 새로 알게 됨과 동시에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 아닐까 싶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하더라도 ‘현대’는 낯설었다. 현대물리, 현대음악, 현대문학, 현대그림, 현대철학 모든 것이 다른 세계의 일 같았다. 하지만, 저자의 글들을 통해서 후기고딕양식, 마니에리즘에 편안함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서 현대가 낯설지 않은 나의 옷이라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저자 덕에 버려져있고, 잊혀져 있었던, 그리고 부당하게 욕을 먹은 이름들이 다시금 생명력을 부여받아 살아났다. 고딕 재발견, 마니에리즘 재발견! 더불어, 우리가 우리 시대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하게 되었다.



우리는 현대라고 불리우는 2014년을 살아간다. 현대, 그러면 이 순간, 2014, 그리고 곧 다가올 2015년을 살기만하면 나는 곧 현대인이 될까? 현대인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작가는 그의 저작들에서 줄기차게 세계관에 대해 언급한다. 이 시대의 세계관을 가지고 이 시대를 사는 것이 현대인이라고. 그냥 사는 것이 현대인이 아니라. 그의 기준에 따르면, 나는 때로는 현대인, 때로는 비현대인으로 살고 있다. 근대예술에 나오는 르네상스인도, 매너리스트도, 바로크인의 모습을 모두 갖추고 있는 나를 본다. 그리고 책을 다 읽었을때엔, 내가 조금은 더 현대에 나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나를 자유롭게 하는 이유였다는 것도.



이 책의 제목 앞에 ‘현대인의 시각으로 바라 본’ 이라는 문구가 들어간다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렇다. 이 책, 근대예술은 ‘현대인’이라는 시각에서 본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근대예술을 비판한다는 것이 아니다. 현대와 근대의 균형잡힌 시선으로, 근대예술에 근대라는 세계관에 우리가 무비판적이고 무한대로 근거없이 쏟아 부었던 애정을 객관화시키게 해 준다. ‘근대예술’을 읽으면서 만나는 현대인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재미이다. 현대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근대예술. 근대예술을 통해 현대를 더욱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는 아이러니. 작가의 의도는 아니였겠지만, 근대 예술 책을 통해, 나는 현대를,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근대보다는.



(덧붙임)
1. 긴 설명이 부담스럽다면, 편하게 그림을 보고, 그림 옆의 설명을 읽는 즐거움도 큰 책이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우리에게 익숙한 유명 화가들의 작품에 대해 신변잡기, 가쉽거리가 아닌 이토록 풍부한 생각거리를 주는 설명이 있는 책을 본 적이 없다. 또한, 미술관의 그림이 바로 내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한 화보는 이 책이 예술사라는 책 이외에 도록으로서의 가치도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림이 살아 있다. 그림이 가지는 아우라가 책 속에서 느껴진다. 엄선된 그림들만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된다.

2. 책 가격이 주머니 사정과 반비례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도록들과 비교해보면(웬간한 건 10만원을 훌쩍 넘는다),  이 책에 인쇄된 그림의 선명도를 생각한다면(이렇게 그림의 quality가 뛰어난 프린트는 본 적이 없다.) ... 그리고, 이 책의 소장가치를 생각한다면, 이 책이 그리 비싸지는 않다. 책이 내 품에 들어왔을때, 오히려 부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3. 아이들이 처음 그림을 접할때 이 책을 만나게 된다면, 그림 자체에 대한 감상 뿐 아니라, 삶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해 볼수 있는 기회가 같이 주어질 수도 있겠다. 내가 교사라면, 나는 이 책으로 미술사를 지도할 것이다. 또, 이 책으로 철학사를 지도할 것이다. 흥미있는 수업이지 않을가? 예술과 함께하는 철학. 철학과 함께하는 예술.



4. 내가 다시 유럽의 미술관 투어를 하게 된다면, 나는 어떤 가이드북보다 이 책을 들고, 미술관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설명하는 화가의 작품 세계를 느껴보고 싶다. 이 책을 읽기전에 만나는 작품들과 읽은 후에 만나는 작품에서 느껴지는 감동에 질적인 차이가 예상된다.



5. 곳곳에 요약되어 있는 서양예술사. 단 몇 마디로 서양예술의 각종 양식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간결하고 단순한 설명, 쓸데없이 증가하지 않는 단어들은 가히 촌철살인이 아닐 수 없다. 서양예술사를 단기간에 독파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불안속의 영혼들에게(현대예술) : 불안했던 나는 책을 읽고, 그 불안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들뜬 영혼에게(근대예술) : 그렇다. 근대 사고 방식으로의 내 영혼은 들떠 있었다. 그리고, 책을 덮은 지금은 분명 과거보다 진정하게 되었다.
앞으로 나올 고/중세 예술은 어떤 영혼들에게 바치는 서사가 될지 궁금하다. 또, 나는 어떤 방식으로 치유가 될까.

(다른 곳에 올렸던 서평을 복사했습니다. 어제 강연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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