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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일기 2] 마녀의 한 다스/ 요네하라 마리/ 마음산책


  동시통역사의 글


  동시통역사의 글은 재미있다. 언어의 감옥에 갇혀 사는 인간의 언어를 통역하면서 양 쪽 세계의 블랙홀을 시원하게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한 통역사가 영국 앤공주와 마사회장의 대화를 통역하였다. 귀족 교양의 하나로 말의 생태를 잘 아는 앤공주와 낙하산 장성의 대화는 순조롭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앤공주가 영국식 유머를 했다. 통역사 잠시 궁리하다가, 이 유머를 그대로 옮기면 쉽지 않겠다고 짐작하고 간단하게 말했다. “방금 앤공주께서 농담을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자 마사회장은 무릎을 치며 폭소를 터트렸다. 상대방을 유쾌하게 웃긴 유머의 효과에 놀란 앤공주만큼이나 통역사도 놀랐다. 한국식 낙하산의 비밀을 하나 훔쳐 본 것이다. 


  요네하라 마리는 일본의 러시아어 동시통역사다. 옐친이나 고르바초프가 지명해서 통역을 요청할 만큼 동시통역의 대가지만 통역과 문화에 얽힌 대중서의 저자로도 이름이 높다. 그녀의 글은 재미있으면서도 가슴이 찡하는 울림이 있다. 

  일본인 N씨와 러브호텔 

  2차대전에서 소련군의 포로로 수용소로 간 일본인 N씨가 있다. N은 일본군에게 이지메를 당하다 수용소장이 구해줘서 겨우 살아난다. 소장 사택에서 일을 하며 소장의 인격에 감복한 N은 귀국해서 사업에 성공하고 수용소장 가족을 초청한다. 소장은 이미 죽었고 부인과 자녀들은 있다. 소장의 은혜를 갚으려는 N, 컨테이너 한 개 분량의 선물을 준비하고, 자신이 세운 러브호텔을 통째로 비워 묵게 한다.


  이 러브호텔은 방 하나를 내장공사하는데 4억원이나 들 정도로 초호화판이다. 르네상스식 방이 있는가 하면, 모던한 분위기의 방 한가운데 요트 모양의 침대가 떡하니 있는 식이다. 소장의 손자아이들은 탄성을 지르며 펄펄 뛰었다. 침대가 돌아가질 않나, 흔들리지 않나. 천장에는 대형 거울까지 붙어 있으니.

  그런데 통역사의 고민, 러시아에는 러브호텔이라는 실체가 없고 말도 없다. 개념이 먼저인가, 실체가 먼저인가, 언어학의 고전적 난제에 봉착한 통역사는 그냥 호텔이라고 말했다.




  이 가족들이 귀국하기 전에 도쿄의 특급호텔에 묵었다. 아무리 봐도 밋밋하다. 며느리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흐음, 이건 일본의 보통 호텔인가 보지. 역시 N씨의 호텔과 비교하면 수준이 많이 떨어지네.”



  문화와 인간에 대한 색다른 통찰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저자가 겪은 실화를 중심으로, 베를린의 조선인, 모스크바의 베트남인, 시베리아의 프랑스인 등을 ‘평가의 방정식’, ‘맛에 대한 편견’ 등 다양한 주제 속에 녹여 풀어낸다. 술술 넘어가는 가운데 문화와 인간에 대한 통찰이 번뜩인다. 책의 부제가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문화인류학’이다.




  요네하라 마리는 어린 시절 체코에서 국제학교를 다니면서 러시아어를 배웠다. 일본으로 돌아와 독신으로 살면서 소수자와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56세에 난소암으로 죽은 그녀가 쓴 책이 10권 남짓하다. 최근에는 그녀의 ‘팬티 인문학’이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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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선 2010.10.02 18:44
    소통이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개인들 사이에도 양쪽의 블랙홀 사이를 능글맞게 중재하는 동시통역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백북스 게시판에는 뭐니뭐니 해도 독후감이 제격이겠죠.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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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주 2010.10.02 18:44
    신문에서 우연히 그녀의 책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독후감을 보니 꼬옥 읽어보고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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