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공지
2007.04.20 02:28

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조회 수 2588 추천 수 0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 나카지마 아츠시

 

생산적 책읽기 라는 책에서 나온 [산월기]의 한 구절에 반하여 전문을 읽고 싶어서 찾은 책이다.

나카지마 아츠시라는 일본 작가를 들어본 일도 없었지만.

(사실 일본이름은 듣고도 못들은것 같기도, 못듣고도 들은것 같기도 한 경우가 많아서 확신은 못하겠지만, 어쨌거나 내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은 이름이었다.)

여하튼 책을 가져다 침대맡에 놓은지는 한참 되었는데

그 전에 읽기 시작한 책이 도무지 끝나지가 않아서 계속 미뤄지고만 있다가 어제야 이 책을 손에 들었다.

 

단편집이라 정말 금방 읽는다.. 하루면 될것 같다. 그런데 정말 너무 맘에 드는 책이었다.

특히 애초에 이 책을 찾게 만들었던 [산월기]라는 단편은, 지금까지 읽은 어떤 단편보다 좋았다.

별..이나 소나기..처럼 교과서에 실려도 좋을 듯한. 감성적인 면에 있어선 앞서의 단편들에 좀 떨어질까 몰라도

관통하는 철학이랄까 (실존주의? 부조리?) 하는 것은 한수 위가 아닌가 싶다.

하긴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의 교과서에 실리기엔 약간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이를 떠나서 일본작가의 작품이라는 점 때문에 아마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그러고 보니 궁금해지는데, 혹시 일본 교과서에는 실린 적이 있을까? ...

 

[산월기]에서 호랑이가 된 주인공 이징의 말은 하나하나가 매우 감명깊었지만

특히 마음에 남는 구절=표현은, '겁많은 자존심과 존대한 수치심'이란 구절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딘가 이상하게 보이는 구절이다.

무릇 존대한 것은 자존심이요 겁많은 것이 수치심이라면 모를까, 겁많은 자존심과 존대한 수치심이라..

하지만 내용을 읽다보면 꼭 맞는 구절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나를 오만하다고 자존심이 강하다고 말했지. 실은 그것이 어쩌면 수치심에 가까운 것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몰랐던 거야. 물론 일찍이 귀재라 불리던 내게 자존심이 없었다고는 말하지 않겠네. 그러나 그것은 겁많은 자존심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것이었다네...

내가 구슬이 아님을 두려워 했기 때문에 애써 노력하여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또 내가 구슬임을 어느 정도 믿고 있었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던 것이라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내가 갖고 있던 약간의 재능을 허비해 버린 셈이지. 인생은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도 길지만 무언가를 이루기에는 너무도 짧은 것이라고 입으로는 경구를 읊조리면서, 사실은 자신의 부족한 재능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두려움과 고심을 싫어하는 게으름이 나의 모든 것이었던 게지.'

 

자판을 열심히 두드려 [산월기] 전체를  옮겨놓을까 싶을 정도로, 문장들 표현들이 모두 맘에 들었다.

내 마음을 내 상태를, 아니 거의 모든 이들에게 어느 정도 이런 심정이 있겠지, 그대로 콕콕 찔러가며 그려놓은 것 같기도 했다.

 

또한, 호랑이가 된 이징이 사람을 습격하려다 그것이 자신의 친구였던 원참임을 알고는 몸을 돌려 풀숲으로 돌아가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는 말을 되풀이하여 중얼거리는 장면이라든가.

친구가 후일 자신을 다시 찾아왔다 화를 당할까봐 멀리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어

호랑이가 이미 하얗게 빛을 잃은 달을 올려다보며 포효하는가 싶더니 풀숲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라는 장면은

그 심상 그대로 눈앞에 그려지며 무엇인가 아련하고 찡한 느낌을 남겨주었다.

 

산월기 외에도 이 단편집에는 명인전, 제자, 이능..이 실려 있다.

[제자]라는 작품은 공자의 제자 '자로'의 이야기를 그린 것인데

오래 전이지만 논어를 읽을때 만났던 공자와 자로, 자공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어서 재미있었다.

공자는 자신의 제자들 중 안회를 가장 높이 평가하고 인정했지만, 지극히 현실적이고 지력만능주의(?) 같은 것에 젖어 있던 당시의 나로선 (어쩌면 지금도?) 자공이 가장 맘에 들었었는데 자로도 아마 나와 비슷했던지 안회의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고, 또한 자로도 안회보다는 자공을 더 높게 평가했다는 내용이 있어서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

 

[이능]이라는 작품은 이능을 중심으로 사마천의 이야기가 교차저술(?)돼 있는 단편이다.

이번 역시 우연의 기이함에 나를 놀라게 했던 단편이기도 했다.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읽게 했던 산월기..를 소개한 것은 생산적 책읽기라는 책이었는데

여기에 소개된 이능이라는 작품은.. 최근에 읽은 [사마천 사기]란 책에서 큰 줄기를 이루던 바로 그 사건, 이릉의 난을 또 다른 관점에서 그려놓은 작품이 아닌가. 정말 신기한 일이다. 전혀 다른 경로를 통해 그려온 두 선이 다시 여기서 크로스!! 된다는게.

 

평소 저자의 말, 역자의 말..등은 참고삼아 꼭 읽기는 하지만, 그 상당 부분이 무엇을 도와준 누가 고맙고 그런 경우가 많아서 좀 그랬는데, 이 책에는 감수자의 말이 맨 앞에 들어있다.

전혀 몰랐던 나카지마 아츠시라는 작가에 대한 소개 (그는 한문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 와서 용산국민학교, 경성중학교를 다녔다 한다!! 한국에서의 기억을 더듬어 쓴 글이 소개돼 있지 않아 아쉬웠다. 그는 중국 고전, 기담의 일화를 재구성하여 작품화한 것이 많은데 - 산월기도 그중 하나 - 한국에서 학교를 오래 다녔으면서 한국 설화와 역사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듯 하다. 아쉽..) 등이 잘 되어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아.. 독후감을 쓰려고 감수자의 글을 다시 한번 들추다 보니, [산월기]가 일본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건 뭐, 책을 발로 읽은 것도 아니고..실컷 읽어놓고 교과서에 실린적 있을까 궁금해진다..라니..ㅠ.ㅠ
  • ?
    양경화 2007.04.20 02:28
    산월기라.. 정말 재밌을 것 같군요!! 나도 읽어봐야지.. 발로 말고 눈으로요. 하하.. 재밌었어요.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78 공지 ‘에델만’이라는 산을 오르며... 5 엄준호 2007.04.27 2725
977 공지 FAB -닐 거센펠드 2 양경화 2007.04.26 2342
976 공지 [22] 에릭 뉴트. '미래 속으로' 2 이동훤 2007.04.25 2337
» 공지 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1 정현경 2007.04.20 2588
974 공지 [21] 짐 콜린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이동훤 2007.04.17 2392
973 공지 도시풍수 (조선일보 4.14일자 발췌) 1 최윤배 2007.04.15 2275
972 공지 10대들의 뇌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 바버라 스트로치 4 양경화 2007.04.15 2719
971 공지 '도시 풍수'를 읽고 2 강민균 2007.04.14 2884
970 공지 최창조님의 '도시풍수'를 읽고 노승엽 2007.04.13 2390
969 공지 탐독(221) -이정우- (AGORA) 2 이재우 2007.04.12 3201
968 공지 도시 풍수를 읽고 1 이병설 2007.04.12 2284
967 공지 도시 풍수 - 최창조 2 양경화 2007.04.11 2478
966 공지 도시풍수...after 2 최윤배 2007.04.11 2105
965 공지 붓다의 가름침과 팔정도를 읽고 4 박혜영 2007.04.10 2368
964 공지 도시풍수 - 10 2 정영옥 2007.04.10 2181
963 공지 도시풍수(220) -최창조- (판미동) 2 이재우 2007.04.10 2335
962 공지 [20] 제레미 리프킨, '바이오테크 시대' 이동훤 2007.04.09 2216
961 공지 도시풍수 2 조동환 2007.04.09 2170
960 공지 [55] 올 댓 와인(조정용) 3 서윤경 2007.04.05 2526
959 공지 뜻으로 본 한국역사(2??) -함석헌- (한길사) 이재우 2007.04.01 234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58 Next
/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