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주의의 모험과 초자연주의와 신비주의의 구분

by 미선 posted Jun 1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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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헤드의 과학철학 노트2]


<초자연주의>와 <신비주의>의 구분 그리고

화이트헤드가 추구한 <합리주의>의 모험 



현대를 사는 우리로서는 적어도 <합리주의>rationalism와 충돌하는 <초자연주의>supernaturalism만큼은 이를 거부하거나 폐기처분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초자연주의'란 신이든 인간이든 그 어떤 존재든 간에 자연과 세계의 인과적 법칙들을 간헐적으로라도 깨트릴 수 있다고 믿는 사조를 말한다. 하지만 이는 고대인들의 신화적 사유로부터 비롯된 것일 뿐이며, 오늘날에는 판타지를 즐기는 예술과 유희에서나 필요할 뿐, 이를 신념으로 지니기엔 매우 부적당한 것이며, 불통스런 현실을 볼 때 그 폐해도 만만찮다.

초자연주의는 신화적 세계에서 필요했던 것이며, 이는 우리에게 그 시대의 문맥에서 독해될 수 있는 <의미>로서만 수용되면 될 것이다. 물론 문화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가 고발했던 신화가 은폐하고 있는 희생제의는 폭로되어야 하겠지만.. 암튼 현대에서는 더이상 초자연주의는 합당하지 않을 뿐더러 폐기되어야 할 사조다. 우리는 더 이상 중세의 삶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하지만 반면에 우리는 이 점에서 <초자연주의>와 <신비주의>mysticism 역시 
가능한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점을 잘 구분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때론 신비주의마저 혐오하려는 측면도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이를 구분할 것인가?

내가 볼 때 우리가 추구하는 <합리주의>rationalism는 신비주의와 동전의 양면에 해당한다고 여겨진다. 쉽게 말해 "인간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 있는 차원의 <신비주의>란 다른 말로 하면 아직 우리가 성취하지 못한 <미지의 합리주의>인 것이며, 그나마 우리가 성취할 수 있고 발견할 수 있는 <합리주의>란 다른 말로 하면 이 땅에 <노출된 신비주의>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신비는 늘 해명을 기다린다.”
 
따라서
“신비를 신비로만 남겨두려는 것도 신비에 대한 반역이자,
인간 지성의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우리는 언제나 합리적 해명을 열망한다.
 
다만 인간의 합리적 분석 이후에도 항상 이를 빠져나가는 미완의 모호성 또한
여전히 남아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신비주의를 거부하지 않을 뿐이다.
왜냐하면 항상 우리 앞에는 완전무결함이 놓여 있는 게 아니라
언제나 최선을 지향하는 경주와 노력들이 있는 것뿐이기에..

인간은 아직 여전히 완전무결한 합리적인 존재는 결코 못된다. 화이트헤드는 말하길, "인간은 간헐적으로만 이성적일 뿐,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는 말은 분명한 거짓이다"고 하였다. 인간은 여전히 비이성적인 경우일 때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만일 인간 인식의 한계를 자각하지 않는 그러한 <절대적 확실성>은 그야말로 위험한 독단에 사로잡힐 수 있다. 서구 근대 모더니즘의 폐해가 바로 이것이었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현대에선 포스트모더니즘이 일어난 것이기도 했었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하는 합리주의는 결코 완결된 합리주의일 수 없다. 오히려
"완결된 지식에서는 통찰의 느낌은 사라져 버린다." 거기서는 더이상의 발전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이해는 불완전한 과정상의 이해"일 뿐이다.

사유는 끊임없이 모험의 과정 속에 놓여 있을 뿐이다.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합리주의는 사상을 명석하게 하려는 하나의 모험이며, 끊임없이 전진할 뿐 결코 멈추는 법이 없는 하나의 모험이다. 그러나 이 모험은 부분적인 성공도 중요시하는 모험이다.” (PR 59).

그렇기 때문에 그가 추구한 합리주의는 근대 합리주의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후기 합리주의>에 속한다. 데이빗 그리핀이라는 학자는 이러한 화이트헤드의 입장을 <건설적 포스트모던>이라고 명명한 적 있다. 그런 점에서 아예 합리주의 가능성까지도 부정하는 자끄 데리다 같은 <해체적 포스트모던>과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화이트헤드가 말한 합리주의는 진리보다 <오류>error를 더욱 중요시하는 그러한 합리주의다.

“오류를 두고서 겁내하는 것은 진보의 종말이다.
진리를 사랑하는 길은 곧 오류를 보호하는 것이다.”(MT 16).

 “오류는 보다 고등한 유기체의 징표이며,
상승적 진화를 촉진시키는 교사다."(PR 320)

 "오류는 우리가 진보를 위해 치르는 대가인 것이다.”(PR 350)


화이트헤드는 그 자신의 철학조차도 결코 예외로 두지 않았으며, 만일 자신의 이론에서도 오류가 발견될 경우에는 얼마든지 수정 또는 폐기 처분하길 그 자신 역시 바라고 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렇지 않고 우리의 온갖 다양한 경험들을 일관된 종합적 비전 속에서 잘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까지도 보다 합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조명해내고 있는 한에서는 자신의 철학을 써먹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그는 항상 우리 모두가 실험과 검증의 비판적 태도를 지닐 것을 그 역시 바라고 있는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대화록>에서도 말하길, "사상의 생명력은 모험에 있다. 이런 생각은 내가 평생을 두고 해온 말이다. 그밖에는 거의 말할 것이 없다. 관념(ideas)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관념(ideas)은 끊임없이 새로운 국면에서 고쳐보도록 해야 한다. 어떤 참신한 요소를 때때로 그 속에 끌어들여야만 한다. 이를 중지할 때 관념도 정지되고 만다. 인생의 의미는 모험이다(The Meaning of Life is Adventure)"라고 얘기한다. 또한 "항상 단순성을 구하되 이를 의심해볼 것!"을 권고하고 있다.

세계 안의 진정한 합리주의자라면 바로 이 같은 절묘한 차이를 잘 구분하여
자신이 쌓아가고자 하는 학문에 진정한 균형 감각을 확보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본다. 
현대에서는 더이상 <초자연주의> 같은 사조들은 분명하게 폐기되어야 할 것들이며,
이제는 완결된 합리주의가 아닌 최선의 합리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그나마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볼 때 <신비주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합리적 분석의 극한에서 마주할 때 바로 그 지점이야말로 진정한 신비로서의 감각 느낌 역시 가장 고양되게 느껴질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나는 건강한 과학자들이 이 우주와 자연세계에 대해 느끼는 경이로움과 경외감은 적어도 초자연주의를 신봉하는 우매한 종교인들의 그것보다는 적어도 훨씬 더 바람직하며 깊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면에 '종교=초자연주의'라는 식으로만 이해하려는 일부 과학자들의 협애한 종교 이해와 오만한 태도 역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알고 보면 종교의 세계 역시 다양하며 그 역시 진화과정 속에 놓여 있을 뿐이다. 건강한 종교와 과학은 얼마든지 함께 갈 수 있다!)

인간이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닌 한 결국은
합리주의와 신비주의는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갈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 자신의 오류와 비극에 대한 경험과 반성적 성찰을 통해
적어도 합리성과 충돌하는 초자연주의 같은 것들은 분명하게 정리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것이 그나마 이전보다 더 나은 최선의 합리주의를 추구하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P.S * 대전에서의 화이트헤드 철학 첫모임 정말 반가웠습니다.
덕분에 대전 백북스홀도 구경할 수 있었고 박성일 원장님도 뵜었네요 ^^
또한 과학 전공자분들 외에도 몇몇 다양한 분들도 함께 참여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백두 철학을 포함해 매주 즐거운 과학 철학 토론을 나눌 수 있으니 참 좋습니다.
그럼 담주 토욜 9시30분에 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