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권 박사의 '물리주의'에 대하여

by 엄준호 posted Mar 2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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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심신문제와 관련하여 설명해야 하는 두가지 중요한 의문은 다음과 같다.
1. 마음은 무엇이고 어떻게 발생하는가?
2. 마음은 몸에 대해 인과력을 갖는가?


위 의문들에 김재권 박사는 어떻게 답하고 있는가?
내가 보기에 그가 생각하는 마음은 실체가 아니고 일종의 개념인 것 같다. 비록 2차속성(심성적 속성)이란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마음 또는 심성적 속성은 1차속성인 물리적 속성을 지시하는 개념 또는 언어적 표현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기능화’는 심성적 속성에 대해 개념 분석을 통해 일종의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이렇게 심성적 속성을 정의한 후 이 정의를 충족시키는 물리적 실현자를 찾아 그것이 정의내려진 속성을 발현시키는 메카니즘을 설명할 수 있으면 환원적으로 설명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김재권 박사의 기능적 환원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고통스러움’ =def  ‘세포조직의 손상에 의해서 발생되고 이어서 움츠림과 신음을 유발하는 상태에 있음’
  >>> 기능화


‘C-신경섬유의 자극’은 ‘세포조직의 손상에 의해서 발생되고 이어서 움츠림과 신음을 유발함’
  >>> 고통스러움의 실현자는 C-신경섬유의 자극
  >>> ‘C-신경섬유의 자극’이 ‘움츠림과 신음’을 유발하는 기작 설명
  >>> ‘고통스러움’이 환원적으로 설명됨


갑돌이의 C-신경섬유가 t시점에 자극되었다
그러므로 갑돌이는 t시점에 고통스럽다  .


만약 심성적 속성이 개념 또는 언어적 표현에 불과하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몸에 대해 어떤 인과력도 가질 수 없으며 그것이 가리키는 물리적 속성이 인과적 원인일 것이다.
따라서 애초부터 수반이니 환원이니 하는 말을 쓰는 것도 적절치 않다. 어떤 사믈에 이름을 붙이는 것에 수반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낼 이유가 무엇이 있으며 누가 사물의 이름을 환원하려 한단 말인가?
김재권 박사의 기능적 환원이 이런 것이기 때문에 설혹 ‘고통스러움’을 기능적으로 환원하여도 우리는 ‘C-신경섬유의 자극’으로부터 어떤 ‘고통스러움’이 느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아니 그런 예측은 기대되지도 않았다. 이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김재권 박사는 기능적 환원과 관련하여 비록 환원은 얻지 못했지만 ‘환원적 설명’은 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환원’되지 않는다면 ‘환원적 설명’도 할 수 없다. 정확하게는 처음부터 환원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지만...


사실 과학연구를 보면 바로 기능적 환원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어떤 흥미로운 자연현상이 관찰되면, 우선 그 현상의 핵심 즉 설명하고자 하는 특성을 명확히 한다. 이 단계는 ‘기능화’하는 것에 대응한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과학자들은 관심이 있는 현상을 실현하는 물리적 원인을 찾아내고 그것이 어떻게 처음에 관찰된 현상을 일으키는지 아래로부터 설명해낸다. 게다가 이러한 설명을 토대로 아직 관찰되지 않은 현상까지도 예측한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비로서 그 자연현상이 물리적으로 환원되었다고 하고 환원적으로 설명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재권 박사의 ‘기능적 환원’은 심적 현상의 발생을 설명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예측도 하지 못한다. 즉 환원이라는 말을 붙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김재권 박사가 심성적 속성을 하나의 언어적 표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면 그는 언어를 설명한 셈은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그의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의 설명을 받아들인다면 마음의 ‘자율성’과 ‘인과력’은 폐기해야만 한다. 그의 설명에서는 그것을 찾을 수 없으며 아예 바랄 수도 없다.


내가 바라는 마음에 대한 설명은 이런 것이다.
마음은 분명 뇌의 작용과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신경세포 또는 시냅스에서 일어나는 물리화학적 작용으로 환원되지도 않거니와 그와 같은 미시적 현상을 이해한다해도 어떤 마음이 생기는지 그것으로부터 예측할 수 없다. 마음은 뇌에 기반하여 나타나는 속성이긴 하나 그것을 초월한다. 마음은 몸에 대해 인과력을 가질 뿐 아니라 자율성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의 바램과 달리 우리는 외부 및 내부자극에 반응하여 움직이는 자동기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최소한 왜 우리는 자신이 자동기계가 아니며 어떤 세계를 살고 있다고 느끼는지는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정녕 어떻게 내가 지금 보고 듣고 느껴지는 이와 같은 세계가 내 앞에 펼쳐지는지 그리고 그 세계에서 내가 자유롭게 행동한다고 느끼는지 알고 싶다. 이것이 환상이 아니라면...
 
하지만 나는 아직 이와 같은 마음에 대한 설명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김재권 박사가 ‘심성적 찌꺼기’라고 표현한 그것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는 생물학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과 그 찌꺼기가 사실 우리에겐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이며 새로운 과학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