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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어디로 가는가? 1

"수학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제목은 '수학의 확실성'이라는 책의 제14장의 제목입니다.

이 글은 수학의 확실성이라는 책의 내용을 소개하려는 것은 아니고, 일몰하는 서구 수학의 모습을 간명하게 스케치하려는 것에 있습니다.

이 책의 14장은 이 책의 1장에서 13장까지의 전반적인 내용을 정리하여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수학의 확실성은 완비성과 무모순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수학의 확실성은 수학이라는 하나의 체계가 자연을 해석하기 위한 기능을 완전하게 갖춘 체계(완비성)이어야 하고, 이 체계가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어야 한다(무모순성)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서구의 수학사의 결말은 유클리드 차원론을 정점으로 이루어진 수학체계는 완비성과 무모순성을 갖추지 못하여 확실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에필로그는 셜리의 시를 인용하는 것으로 이 결론의 심회를 나타냅니다.

"여기

끝없이 펼쳐진 이 광야는

너무나 광대하여

비상하는 환상조차도 비척댄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분명코 당분간은 수학연구방식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어떤 기준도 마련하지 못할 것이다." 라고 이 책의 저자는 서구 중심의 수학사에 대한 참담한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나 이 저자는 동양수학을 모릅니다.

동양수학은 동양수학사라는 책을 보면, 서구수학에 비하여 최소한 1만 년의 역사를 더 가지고 있습니다. 인도의 베다경에 이미 수리사상을 경전으로 하는 경이 있었고, 고대에 이미 급수 이론까지 경전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서구의 수리는 유클리드 이전에 아무런 바탕이 없는데 이전의 수리사상을 정리하여 유클리드가 유클리드 기하학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이전의 수리는 무엇일까요?

제가 추리하기로는 이전에 알렉산더대왕이 동방원정을 하여 인도인근까지 정복하고 중동에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합니다. 이때 인도는 불교의 성립으로 베다경을 바탕으로 한 브라만교가 위기에 처한 상황입니다. 당연히 베다경을 바탕으로 한 사상이 서쪽으로 이동했을 것입니다. 유클리드의 수리는 결국 베다경을 바탕으로 한 인도의 수리일 것이라고 추정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서구 수학사에 동양인의 이름은 한사람도 인용이 안 되고 있습니다.

동양이 다 만들어 놓은 수리를 서구인이 해석만 붙이면 서구인이 만든 서구인의 수학이 됩니다. 제국주의 시대에 다른 나라의 문물을 약탈해서 자기 땅으로 옮겨 놓기만 하면 자기 재산이라고 하던 전통이 학문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서구의 학문은 약탈을 바탕으로 한 학문인 것입니다.

저들은 동양과 아랍에서 받아들인 학문을 자기들 식으로 해석만 붙이면 자기들 것이라고 지식사를 정리한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이미 오래전에 동양에서 이미 발견한 것이지만, 실존인물인지 확실하지 않은 피타고라스라는 희랍인에게 영광을 줍니다.

희랍사의 희랍인 학자의 대부분이 실존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이들의 대부분은 가상으로 조작되었거나 인도에서 이주한 브라만교인일 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수학자 카토리(F. Catori)가 "현대수학과 대수학의 정신과 형태는 본질적으로 그리스 보다는 인도에 그 근본을 두고 있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양인 학자조차도 책을 쓸 지식사의 출발을 희랍의 모씨, 모씨를 거론하며 자신의 지식의 기원이 서구의 희랍에 있음을 밝힙니다. 이것이 지식의 사대주의인 것입니다.

나는 방사대칭차원론을 바탕으로 물리학과 수학을 정점으로 하는 학문의 기원을 동양으로 되돌리려는 것입니다.

또한 나는 방사대칭차원론으로 수학의 확실성을 보장하고, 물리학의 남은 불가사의를 해결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요?

이 책은 수학의 확실성을 추구해온 흐름이 직관주의, 논리주의, 형식주의, 집합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며, 이 각 계통의 내용과 이들이 하나의 계파가 되어 치열하게 수리를 개발하고, 서로 논쟁을 하며 이끌어 왔음을 보입니다.

이 과정에 대한 개관적인 그림을 다음과 같이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 수학이라는 구조물의 기초는 길고 가느다란 땅에 벽을 쌓아올렸다. 공간과 자연수에 관한 자명한 사실들을 벽으로 삼았다.

2. 기본체계에 철근을 보강했다.

3. 상부구조를 철근이 아니라 나무로 구축하면서 벽이 깨어졌다.

4. 기초를 더욱 보강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더 깊이 파고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부속건물을 여기저기 다닥다닥 지어 놓은 형국이고, 수학자들은 자기 건물이 수학을 지탱하는 유일한 전당이라고 생각했지만, 라인강변의 거대한 성에 위기가 닥치자, 거미들이 거미집을 더욱 보강하면서 성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자기의 집이 아직 건재하기 때문이라고 믿는 것과 같은 형국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았다.

위 비유의 1은 직관주의를 나타낸 것으로 보입니다. 유클리드가 직관적으로 자명한 것을 기초로 자연수와 공간에 대한 공리체계를 만들어 차원론을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클리드 기하학을 만든 이래 일부 수학자들은 직관적으로 자명한 공리체계가 수학의 기초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2.는 논리주의로 보입니다. 아무리 직관적으로 자명하더라도 논리적으로 무모순성을 검토되어야 한다는 생각일 것입니다.

3은 형식주의인 것으로 보입니다.

직관주의와 논리주의가 만드는 체계는 단순한 체계로 한정이 되어 광대무변한 자연의 변화무쌍한 세계를 나타내고 해석하는 완비성을 갖추지 못하므로, 이를 위해서는 무한히 다중 다양한 형식체계로 확장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1의 직관주의와 2의 논리주의는 너무 단순하여 완비성을 갖추기 곤란하고,

논리주의는 역리라는 논리 자체의 모순에 부딪혔고,

3의 형식주의는 집합론의 관점에서 완비성을 갖추지 못한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4의 집합론이 수학의 기초에 대한 탐구를 하지만, 수학의 체계라는 웅대함에 비하여 집합론의 스케일은 너무나 작다는 것입니다. 또한 칸토르가 제시한 연속체가설이 증명되지 못합니다.

여기서 내가 보는 관점은

서구 수학계에서 직관주의, 형식주의, 논리주의, 집합론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계파에 의하여 수학의 확실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고 추구해온 것으로 보이지만, 논리주의, 형식주의, 집합론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각자가 수학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갖추어야 할 하나의 부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구 수학사에서 논리주의가 역리에 부딪힌 것과 형식주의가 완비성을 보증 받지 못한 것은 서구 수학의 출발을 만든 직관주의가 만든 수학의 기본 터전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논리주의와 형식주의, 집합론의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내 생각은 위 글의 직관주의를 표현한 1의 "길고 가느다란 땅에 벽을 세웠다"라는 부분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길고 가느다란 땅에 벽을 세웠다"라는 이 말은 유클리드 차원론을 비판하는데 아주 적절한 표현입니다. 유클리드차원론은 3차원이상으로 차원을 확장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고, 몇 개로 한정된 공리들로만 수학체계를 구성하려 합니다.

직관적으로 받아들인 대상과 1대1 대응 시킨 자연수를 바탕으로 하며, 직관적으로 관찰한 공간(전후좌우)인 직육면체적인 공간을 바탕으로 공간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직관주의 수리는 더하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복소수도 더하기를 바탕으로 한 복소수가 되는 것이 뿌리 깊은 직관주의의 결과입니다. 공간도 지구표면에서 사는 인간의 관점에서 좌우대칭적으로 사고로 파악하면 직관적으로 직육면체를 기본으로 보게 됩니다.

수의 확장과정에서 유클리드 차원론에 의한 수리의 왜곡을 극복하기 위해서 유클리드차원론을 벗어나는 수와 수리로서, 무리수와 허수가 나타나고, 비유클리드기하학 등이 나타납니다. 자연은 구대칭, 방사대칭적인 공간 해석이 필요하고, 수리는 유리수 등분적으로 만들어지는 유리수인 성질이 잠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앞의 글들에서 차원론이 구대칭차원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한 것입니다. 유클리드 차원론을 바탕으로 하면서 구대칭적인 요소를 보충적으로 보완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우리의 인지의 바탕이 방사대칭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블래홀전쟁과 우주의 풍경을 쓴 써스킨트가 우리의 신경망을 재배열하여야 한다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차원론은 수리의 하부 디렉터리가 아니고, 수리의 상부 디렉터리이고, 앞의 글에서 차원론을 바탕으로 수리와 물리가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앞에 쓴 글들에서 유클리드 차원론을 비판하는 내용 중에 여러 번 언급했기 때문에 읽으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앞의 제 글에서 현대물리학에서 √x12+x22+x32+x42+.....로 표현된 다차원성이 자연의 다차원성을 나타내지 못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명백히 이렇게 표현되는 다차원은 유클리드의 공간을 직육면체로 보는 공간해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단지 유클리드가 희랍에서 볼 때 세계가 직육면체로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유클리드 차원론의 장점은 계산구학에서 계산을 하는데 편리하고, 유용하다는 장점은 인정해야 하지만, 물리법칙의 세계에 오면 옳지 않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물리학은 √x12+x22+x32+x42+.....로 표현된 다차원론으로 4차원 이상의 공간은 일차원 속에 구겨져 숨겨져(Warped) 있을 것이라는 말두 안 되는 소리를 합니다.

수학의 확실성이라는 책의 15장 '자연의 위대성'에서 이 책의 저자는 서구 수학계가 수학의 확실성을 보장하는데 실패한 이래 앞으로 수학의 확실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수학의 기초를 자연의 패턴으로부터 찾아야 할 것이라는 전망을 이야기 합니다.

유클리드 차원론이래의 서구 수학이 확실성을 보장 못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 이유를 생각하면 유클리드 차원론이 만들어진 바탕원리가 자연의 패턴을 분석한 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기 보다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공간에 대해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자연수와 공간에 대한 공리를 구축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즉 자연은 자연수로 이루어져 있기 보다는 실수로 이루어져 있고, 공간은 직육면체적 패턴이 아니고 구대칭적, 방사대칭적이기 때문에 유클리드 차원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수학은 계속해서 위기를 맞으면서 수정과 보완으로 지탱하여 온 것이고, 결국 수학은 자연해석의 확실성, 즉 완비성과 무모순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서구 중심으로 이끌어온 수학은 자연의 패턴에 맞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연으로부터 수학의 바탕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판단은 올바른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서구 수학이 실패한 원인은 직관주의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두 점 사이를 연결하는 직선은 한 개다'와 같은 판단은 명백히 참이지만, '점'에 대한 정의는 직관주의의 함정입니다.

부분이 없는 것이 점이라고 정의하고, 여기서부터 라인 강변의 거대한 성을 건축합니다.

그런데 점이라는 벽돌은 부분이 없으므로 점을 적분하여 건축되는 거대한 성은 없습니다. 이것은 단지 수학자의 머릿속에만 있는 허상인 것입니다. 허상으로만 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자연의 패턴에 대입하면 모순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직관주의는 인류의 뿌리 깊은 원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직관주의의 산물을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관념에 기초한 학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오감으로 받아들여진 정보를 바탕으로 의식을 구성하고 이것으로 직관적으로 판단합니다. 이것을 직관주의의 기초라고 봅니다.

이것은 자연에서 받아들인 정보를 우리의 뇌 속에서 심상과 개념을 만드는 과정에서 방사대칭적인 자연이 좌우 대칭적으로 편집된 것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구의 표면에서 살고 있고, 좌우대칭적인 몸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좌우 대칭적이고 직육면체적인 수리가 계산하기 편하고 생각하기 편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편리함과는 다르게 자연은 방사 대칭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판단은 법칙적인 세계에서 벽에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서구수리의 직관주의를 바탕으로 한 물리학을 겉보기 물리로서 변화량-작용, 에너지를 중심으로 하는 물리학이라고 표현한다면, 동양의 물리사상은 성찰주의라고 할 수 있고, 성찰주의는 속보기 물리로서, 바탕구조, 정보, 엔트로피 중심의 물리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양의 사상서를 보면, 동양의 사상가들이 직관적인 판단의 잘못을 지적하는 방법으로 사상을 펴왔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례로, 불교에서 육조대사라고 칭하는 혜능의 회상에서,

아마도 휴식시간에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보고,

바람이 움직인다, 깃발이 움직인다, 라는 논의가 제자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이 때, 스승인 혜능대사는

너희의 마음이 움직인다, 라고 논평합니다.

즉 우리가 외부의 대상을 직접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형성된 정보를 인지한다는 관점입니다.

이것을 성찰주의라고 나는 이 글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직관주의의 잘못된 점을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뉴턴의 중력해석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중력이라는 것이 두 물체가 서로 당기는 힘이다. 이로서 '만유인력'이 중력이라고 합니다. 중력은 질량에 대하여 중력가속도라는 비율로 중력이 작용한다고 합니다. 중력가속도라는 측정값은 정확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데이터 분석이 옳다고 해서 그 이론이 옳다고 보장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만유인력이라는 이론이 서로 떨어져 있는 두 물체가 어떻게 서로 잡아당기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물체가 서로 당겨지려면 스프링이나 고무줄처럼 당기는 힘을 만드는 어떤 매개체가 필요합니다. 두 물체가 아무 매개물 없이 당여지지는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의 물리학이 인정하는 것으로 뉴턴의 만유인력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물리학적으로 중력을 증명하는 이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즉 직관은 법칙을 발견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런데 중력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아인슈타인은 질량이 시공을 휘게 하고, 휘어진 시공을 따라서 물질이 이끌려 이동한다는 이론을 만듭니다. 이렇게 되려면 휘어진 직물 같은 시공의 곡면이 전자기적으로 또는 다른 실체에 의해서 중력 방향으로 편향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즉 자기가 단극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소망과는 다르게 지구의 자기는 단극자가 아니고, 쌍극자이고, 쌍극자인 동시에 단극자여야 한다는 아인슈타인의 소망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물리학자들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위대한 이론이라고 합니다. 옳은 데이터를 대입하여 계산상으로는 옳은 결과를 만들어 내니까요. 앞에서 보았듯이 말도 안 되는 뉴턴의 만유인력도 올바른 데이터분석을 적용하면 계산상 올바른 결과를 계산해 냅니다.

계산상 옳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고 그 이론이 물리적으로 옳다는 논리는 안 된다는 것을 이미 보았습니다.

이것이 직관주의의 한계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직관주의 물리학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가 볼 때 뉴턴의 이론만큼이나 연금술적입니다.

상대성이론을 비판하고 극복해야 하는 이유는 썩은 고목을 베어내야 새 묘목이 자랄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 이어 직관주의 수리를 바탕으로 한 상대성이론이 왜 과학이 아닌지 다시 한 번 지적을 하겠습니다. 제가 끊임없이 상대성이론을 비판적으로 본 근본적인 이유가 수학의 확실성을 읽는 과정에서 상대성이론의 오류의 원인이 직관주의 수리에 바탕을 둔 것이 원인이 있음을 밝혀진 것입니다.

나는 직관주의의 종착점이며, 정점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극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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