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by 전승철 posted Jun 2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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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탄생하고 해결되기 까지의 과정을 한편의 영화처럼 역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수학에 관심이 없는 대중들을 배려했기에 복잡한 수식이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대강의 내용이 이해되는데.. 재미있고 탄탄한 스토리는 왠만한 소설 못지않다.


 


피타고라스 이후 오일러 페르마 괴델 튜링 그리고 군론의 창시자인 갈루아 등등 수학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들을 조명하는 부분과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해결하기까지 시대별로 수학이 발전해 온 과정이 주된 내용이다.


 


3세기 그리스 수학자 디오판토스의 산수론 Arithmetica 이책이 이슬람어(아라비아문명)로 번역 되고 전승되어오다 중세말에 다시 유럽으로 전해지게 되는데 그 책의 여백에 페르마가


알듯 모를 듯 써놓은 것을 출판하면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세상에 알려진다.


 


피타고라스의 정리 x^2+y^2=z^2 이 방정식에서 x, y. z의 정수해는 무수히 존재한다. 피타고라스는 이것을 증명했다. 증명이 수학에서 같는 의미는 엄청나다. 우리는 방정식에 무수히 많은 수를 대입시키는 노력을 하지 않고도 그것이 참이라는 것을 안다.


또한 수학자들은 증명된 수학적 명제를 기초로 수학의 성을 쌓아올린다.


 


그런데 17세기의 아마추어 수학자가 x^n+y^n=z^n 에서 n이 3이상의 정수 일 때, 이 방정식을 만족하는 정수해 x, y, z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그것을 증명했지만, 여백이 없어 적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이것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이다.


 


이후 수백년에 걸쳐 수학자들이 페르마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영국출신의 수학자 앤드류 와일즈가 1993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데 성공한다. 사실 앤드류 와일즈는 <타니야마 – 시무라의 추론>을 증명한 것인데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타니야마-시무라의 추론>은 모든 타원방정식은 그에 상응하는 모듈 형태를 파트너처럼 갖는다는 것인데.. (마치 로제타석 처럼 고대 이집트 문자와 그리스 문자, 상형문자가 함께 새겨져 있어서 어느 한가지를 알면 나머지 문자를 해독할수 있다.)  하나의 수학 분야로부터 전혀 다른 것처럼 여겨지던 분야를 이해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한다.


 


1984년 독일의 정수론 학회에서 게르하르트 프레이에 의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타니야마-시무라의 추론>은 하나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리고 그것을 앤드류 와일즈가 증명한것이다.


 


증명의 수학적 과정이 자세히 소개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아마추어 수학의 경계를 벗어나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대강의 구조만 보여준다. 고맙게도..


 


이 책 초반에 피타고라스가 소개된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종교적 이유에서 자신들의 증명에 의해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무리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을 외부에 발설한 히파수스를 처형했다고 한다. 수학사 최초의 위기가 바로 이것이다.
종교와 정치사상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였던 수학이 사실은 아주 강력한 연관관계에 있다는 것. 이것이 그 시대만의 문제였을까?


 


수학뿐만 아니라 철학을 비롯한 모든 학문이 사회 문화적 토대에 연관되어 있다. 객관적인 진리 라던가 있는 사실만 그대로 본다 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개념을 통해.. 구체적으로 언어를 통해 사고하기 때문이다. 개념화 되지 않은 것 언어화 되지 않은 대상을 인간은 지각할 수 없다.


 


이집트 수학과 인도, 중국의 수학은 서로 상이한 모습으로 발전하는데 그 또한 각기 다른 사회 문화적 기반을 반영한 것이다. 그 중 가장 극적인 사건은 인도수학에서 0의 도입 이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진리 라는 말도 종교적인 유래를 갖는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말에서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뜻한다.


요즘도 모든 학문의 목표는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맑스에 의하면 객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진리효과가 있을 뿐이라고 한다.



수학에 대해 공부하면서 인문학이라고 느끼게 되는 점이 이런 것이다. 수학은 수학자체의 논리만으로 발전해온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는데.. 백북스에서 정치 종교적 발언을 금지하고 있다, 이것은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활발해야 될 질문과 토론을 경직되는 하는 것은 아닌지, 학문의 영역에서 정치와 종교를 빼고 순수하게 남는 것이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의문도 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조치가 가장 정치적인 행위이며, 종교적 편향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


 


물론 선량한 회원들을 정치적 논쟁과 종교에 기인한 소모적 싸움에서 보호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과 학습은 그렇게 보호한다고 해서 올바르게 되거나 잘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회원들의 수준을 그렇게 낮추어 보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평범한 셀러리맨인 내가 독서클럽에서 정치적 논쟁을 하고 싶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 또한 복잡한 정치적 논쟁에서 한발 비켜나고 싶은 보통사람의 정서를 갖고 있다.  
다만, 과학이 종교와 다른점이 있다면 스스로에 대해 반문할 수 있고, 외부에 대해 열려있는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게시판에서 생각의 차이,  서로의 차이에 대해 좀더 유연하고 관대한 모습을 기대한다.


beeta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