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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아인슈타인
방정식에 도전”샐러리맨의 늦바람
(1)

BY 이종필   l 
2010.02.09



‘샐러리맨 전 차장이 아인슈타인이
되기까지’ 연재를 시작하며


 


 


1. 첫
만남                                                                                  



 


 


 


샐러리맨 전 차장을 처음 만난 것은 2008년 9월 말의 어느 날이었다. 2008년 9월은 전 세계 모든 입자물리학자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달이었다. 왜냐하면 사상 최대의 입자가속기인 대형강입자충돌기(LHC, Large Hadron Collider)가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에서 그 달에 (정확히는 9월10일) 가동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때를 맞춰 교양과학책 <신의 입자를
찾아서>를 몇 주 전에 냈던 나는 덕분에 여기저기 대중강연을 다녔다. 이 엄청난 기계가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를 알리는 것이 강연의
주된 목적이었다.


 


그 ‘여기저기’ 가운데는 책읽기 인터넷 동호회 모임이 하나 있었다. 1년에 100권의 책을 읽으면서 학습공동체를 만들자는
기치를 내건 ‘백북스(100books)’였다. 백북스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과학 분야에 관심과 조예가 깊었다. 어지간한 회원들이면 섭렵한
교양과학 서적들이 나보다 훨씬 많았다.


 


9월 말의 그날, 나는 백북스 서울모임에서 입자물리학과 관련된 강연을 하기로 돼 있었다. 모임의 장소는 세종문화회관 뒤로
한참을 들어간 길 끝편에 있는 어느 건물 지하였다.


 


그날 모임에서는 나만이 강연을 한 것은 아니었다. 백북스에서는 일반회원들이 모임에서 발표하는 일이 흔히 있었다. 그날도
너댓 명의 백북스 회원들이 다양한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전 차장은 그 중에서 첫 번째 발표자였다. 훤칠한 키에 시원시원한 용모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도
넘쳐났다. 그런데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그가 발표한 내용이었다. 영사기에 비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는 거의 모두가 사진이었다. 그 사진은
호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담고 있었다. 그는 지난 여름 일주일 가량 휴가를 내서 혼자 호주에 별을 보러 갔었다.


 


‘어떻게 혼자서 저런 여행을 갔다 올 수 있을까?’


 


나는 그 용기가 부러웠다.


 


2008년 9월26일 발표 중인 전 차장

어느 독서토론 모임에서 샐러리맨 전 차장을 처음 만났다. 모임에서 호주 여행 경험을 발표하던 그는
물리학 연구자인 내게 "호주 여행 때 한 연구소에서 보았던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꼭 이해하고 싶다"고 대뜸 말했다. 샐러리맨과 물리학자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고 이어졌다.


 



 그런데, 그의 발표가 끝날 무렵 그의 이야기는 잠깐 옆으로 샜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주변에 있던
호주국제중력관측소(Australian International Gravitational Observatory)를 발견하고 일정에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는 아주 익숙한 공식 하나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중력관측소 어느 벽면에 적혀 있는 것을 직접 찍어 왔다고
했다. 그 식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집약된 아인슈타인 방정식이었다.


 


평소에도 전 차장은 일반상대성이론과 중력, 그리고 우주의 신비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중력센터에서 마주친 아인슈타인
방정식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그는 일반상대성이론이 세상에 나온 지 꼭 100년이 되는 2015년까지 이 식을 이해해서 풀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전 차장이 중력관측소에서 찍어 온 아인슈타인 방정식. 이 방정식의 의미를 설명하는 휠러의 문구가 보인다. "물질은 공간이 어떻게 굽어라 말하고 공간은 물질이 어떻게 움직이라 말하네."

전 차장이 찍어 온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 이 방정식의 의미를 설명하는 휠러(Wheeler)의
말이 보인다. "물질은 공간이 어떻게 굽어라 말하고 공간은 물질이 어떻게 움직여라 말하네."


 


2015년이라…. 어느새 세월이 그렇게 흘렀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2008년 가을의 어느 날 내 머릿속에는
아직도 2010년 이후의 시대는 입력되어 있지 않았다. 3년 전인 2005년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나온 지 정확히 100년이 되던 해라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사망한 지 정확히 50년이 되던 해이기도 했다) 세상이 한바탕 떠들썩하기도 했었다. 유엔은 이를 기려 2005년을 세계
물리의 해로 정했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나도 국립서울과학관에서 전시했던 아인슈타인 특별전에 가 보기도 했다. 얼마 안 있으면
또 그런 일들이 주변에서 벌어지겠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도대체 앞에 있는 저 사내는 무슨 생각으로 그 때까지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풀어보겠다고
하는 것일까?


 


보통 사람들은 일반상대성이론의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구경할 기회조차 거의 없다. 아인슈타인하면 으레 E=mc²을 떠올리는데
이는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이미 나온 식이다. 혼돈을 피하기 위해서 전 차장이 보여준 방정식은 아인슈타인 장 방정식(field
equation)이라고도 부른다. 이 식 하나가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인 일반상대성이론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개 대학의
물리학과에서는 일반상대성이론을 대학원에서 가르친다. 나도 박사과정 때 일반상대론 강의를 들은 기억이 난다. 학부 때는 특수상대성이론만 배운다.
그나마도 국내 대학에서 일반상대성이론 강좌가 상시적으로 개설된 대학(원)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물리학과에서 학사로 졸업한
사람들도 일반상대성이론을 배울 기회가 없고, 대학원에서 석사나 박사를 해도 일반상대성이론을 배울 기회를 갖기란 쉽지 않다. (물론 나는 이런
현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샐러리맨이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풀겠다?


 


field equation2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 대부분의 교과서와 논문에서는 이 모양으로 표현한다.


 


나 또한 전공이 입자물리학이라 일반상대성이론에 그리 밝지 못하다. 우주론이나 중력이론을 전공하지 않고서는 자세히 모르는
것도 당연할 법하지만, 요즘은 한 분야의 성과가 다른 분야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며 서로 상호작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특히나 우주론이 가히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요즘 같은 때는 더욱 그렇다) 일반상대성이론 정도는 이론물리학자라면 최소한 필수교양 정도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도 따로 시간을 내서 필요한 부분을 다시 공부하곤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들이지만, 전 차장은 아내와 두 사내아이를 둔 평범한 직장 샐러리맨이었다. 어느 경제신문사의
광고부에서 일하는 그는 나보다 두 살 많았다. 문과 출신이라 수학에 관한 한 말 그대로 ‘일자무식’에 속했다. 하지만 그는 일주일 휴가를 내서
호주에 별 탐사를 갈 만큼 정열이 넘쳤다. 그리고 백북스 일에도 무척 열심인 것 같았다. 그런 전 차장은 백북스 사람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아
보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샐러리맨 전 차장을 처음 본 인상은 ‘열혈남아’ 그 자체였다.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시작된 뒷풀이는 같은 건물 위층에 있는 순대국집에서였다. 나는 아직도 그 집 순대국을 좋아한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멀뚱거리는 내 옆으로 전 차장이 술잔을 들고 다가와 인사했다.


 


“발표 잘 들었습니다. 어떻게 휴가까지 내서 그 먼길을….”


 


“박사님, 혹시 아인슈타인 방정식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역시 열혈남아답게 그는 단도직입적이었다.


 


“그야 어렵지는 않지만….”


 


“그럼 제가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풀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흠….”


 


잠깐 말끝을 흐린 내가 짧고 거친 숨을 내쉬며 말했다.


 


“고등학교 수학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그래요?”


 


잠깐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그다운 반응이 나왔다.


 


“그럼 고등학교 수학부터 좀 가르쳐
주십시오.”


 










이종필
“우주를 만들 때의 신의 뜻을 알고 싶은 아인슈타인의 후예. 대통령에게도 과학을 가르치고 싶은 물리학자.”


고등과학원 연구원 (물리학) | 입자물리이론 연구 중 | 네이버 ‘오늘의 과학’ 격주 연재,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등 저술 
  • ?
    서지미 2010.02.09 21:54
    강문식선생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더불어
    지난 1월 29일 서울 정기강연에서
    발표하신 "상대성 이론".
    아주 잘 들었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간단명료하되 핵심이 살아 움직이는.발표.
    "감동적이었습니다"
  • ?
    문건민 2010.02.09 21:54
    저도요, 그 날 상대성 이론 발표 정말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종필 박사님 글도 재밌네요, 잘 읽었습니다.
    한 사람의 열정이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좋은 공부 기회를 주는 것,
    멋진 일입니다.
  • ?
    정보라 2010.02.09 21:54
    아이에게 본보기가 되었던 시간 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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