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

by 설시환 posted Jul 2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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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간 동안 나는 힘이 들 때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과 밝은 미래를 더 미화해서 상상했다.
그 상상으로 내 감정을 치유했다.
시험이 끝나고 여유가 주어지자, 지금이 보였다.
그동안 내게 외면당해 왔던 지금이 보이자, 내 머릿속은 점점 ?로 가득 찼다.
난 수많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계속 속으로 묻기만 했다.
대답할 단어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고 그 단어를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지난주, 방학기간에 몇달 전 상으로 받았던 틱낫한 스님의 '힘'이란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이 책을 받았을 당시에 앞부분만 조금 읽고 책장속에 놔 뒀었다.
책을 읽다보니 생각났다.
대답할 단어가 생각 나지 않았던 것은 내안의 언어들이 어질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씩 정리를 해 두었어야 했는데 소홀했다.
관련된 언어를 접하고 스스로 글을 쓰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언어들은 정리가 된다.
언어들이 정리 되는 순간에 그동안 느끼지 못한 감사가 느껴진다.
이 책을 선물해주신 한빛찬 선생님과 이 책과 저자, 그리고 꼭 필요한 타이밍에 눈에 띈 것..
정말 축복받은 타이밍이었다.
이런 것들이 기적이 아닌가 싶다.

나와 내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고 현재, 지금에 머물지 못한다.
그들을 현재에 머물게 하지 못하고 나까지 그들을 따라가는 모습은
얼마나 무기력하고 나약하고 안타까운 모습인가.
내 안을 현재로 가득 채워 현재의 향기가 흘러 넘쳐 내 곁에만 있어도 현재를 보게 되는
그런 강한 내가 되기를 꿈꾼다.
그래서 난 지금 이곳에 집중한다.

사람들은 사람을 그릇에 비유하고 더 큰 그릇이 되려하고 되라 한다.
하지만 그릇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다.
내가 '무'가 되었을 때 온 세상을 내 안에 담고 나를 온 세상에 담는다.
담는다는 표현조차 인간의 욕심이다.
나와 모든 것은 하나라는 것을 느낄 때 하나가 된다.
인간으로 살면서 그릇이 필요 할 때도 있지만
그릇을 버려야만 담을 수 있는 것도 있다.

난 내가 깊어지길 바랬고 깊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같이 놀기도 하고 깊은 얘기도 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고 싶었다.
깊어진다는 것은 땅에 깊은 구멍을 뚫는 것 처럼
깊어질수록 어두워 지는 것 같다.
깊은 곳에서 밖을 바라보면 부질없어 보이고 역겹기도 하다.
이런 것이 진정한 깊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깊어도 빛이 강하면 깊은 곳도 밝을 수 있다.
무조건 땅을 파서 깊어지는 것은 무덤을 파는 짓이다.
내가 발하는 빛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내가 비출 수 있는 만큼 깊어져야 한다.
더 깊어지기 위해선 더 빛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깊어도 밝은 것이 진정한 의미로 깊어지는 것 같다.

어제(화)가 음력으로 어머니 생신이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서점에서 좋아보이는 책을 한권 선물해 드렸었다.
그 외에는 선물한 기억이 없다.
외동 아들로 항상 이쁨 받고 자라다 보니까
넙죽넙죽 받는 건 잘해도 주는 걸 영 못한다.
그래서 올해 초에 세운 계획 중 하나가 부모님 생신 때 시 써드리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언어 선물이 최고라고 하신 말씀에 공감해서 실천해 보기로 한 것이다.
틈날 때 가끔씩 생각해서 써 놓은 시가 하나 있었다.
어제 밤에 그 시를 최대한 고쳐서 선물로 드렸다.
어머니께선 물론 기뻐 하셨다.
그리고 나도 부모님께 선물다운 선물을 한 것 같아서 참 뿌듯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