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학습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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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그곳에 가면 사랑에 빠진다. 그게 문제다!

 


나에게 호주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가 있고, 달링하버가 있는 그런 곳이다.


한손에는 거품 보글보글 카푸치노 한잔, 다른 한손에는 빨간색 서류가방 하나 들고 아침마다 서점으로 일하러 가던 그 곳. 영어를 늘리겠다며 귀에 꽂아 듣는 라디오 뉴스. 마틴 플레이스 옆 매일 지나치는 7(seven) 방송국, 지하철을 타기 위해 매일 가던 울월스 앞 타운 홀 역. 매일 역 앞에는 이름모를 음악가들이 그때그때 자신이 가장 잘 연주 할 수 있는 음악 멜로디들로 가득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커피한잔 마시고, 어제 들어온 책들을 정리해 문서로 작성하면 바로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저녁 7시가 되어 끝나는 서점은 보완장치를 켜고, 내가 문을 잠그고 집으로 가면 됐다. 집으로 가는 그 시간들도 아까워 지하철 안에서 봐주는 영어 책들. 9개월 전 호주에서의 나의 모습은 호주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기억하느라 눈을 굴리는 것이 아닌, 책속의 영어 글귀들을 한자라도 더 넣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1년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호주라는 낯선 땅에서 묵을 수 있는 집이 있고, 서점과 같은 좋은 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달링하버와 낭만의 나


일이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아 용기를 잃거나, 외로움이 물씬 느껴질 때는. 달링하버에 커다란 칩스 한 봉지와 중국 음료인 밀크 티 한잔을 가지고 아름다운 야경을 혼자 즐겼다. 길거리에는 연인이 함께 데이트를 즐기거나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들이 가득이었는데, 모두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데 나는 가만히 굳어져 있는 것 같았다. 꼭 영화 속의 빠른 재생 장면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내 옆에는 먹을 것도 있고, 홍콩 야경 다음으로 아름답다는 달링하버 앞에서 낭만적이게 야경을 보고 있는데 내 맘은 그리 좋지 않았다. 적막하고, 쓸쓸했다. 내가 왜 그런지도 모르게 그때는 그냥 그랬다.





시간이 지나 한국에서 친구라도 호주에 온다고 하면 나는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는 듯. 그들이 호주에 있다가는 일정에 맞춰 저렴하지만 시드니에서 볼 것은 다 볼 수 있는 반짝 스케줄을 짜줬다. 그리고 저녁에는 친구와 함께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째즈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시거나 와인을 즐겼다.





호주에서 커피나 와인 등의 음료 값은 정말 쌌다. 물 한잔 사먹는 것만큼 저렴할 지경이니 호주에 온 이상 와인이나 커피는 항상 마셔줘야 했다. 그래서 나는 모처럼 휴일을 즐길 때는 신문을 하나 들고 분위기 좋은 한적한 카페에 가서 미네랄워터보다 레드 와인 한잔을 마시곤 했다. 그러다 배고프면 웨지스 한 바구니를 주문해 샤워크림에 스위트 칠리소스를 듬뿍 찍어먹었다.

 

호주워킹홀리데이 생활 1년 중, 친구와 함께 했던 짧은 5박 6일은 분위기도 좋고, 사랑하는 친구도 있고, 맛좋은 음료수도 있는. 좋은 이야기도 함께여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맘 편히 친구한테 호주에서 있었던 일들 모두를 하소연했다. 내가 정말 잘 지내고 있는 게 맞는지 제3자의 눈을 통해 검증 받고 싶었던 것이다. 친구가 10시간이 넘는 나의 호주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주기 위해 했던 “와 역시 김주현이네” 라는 말 한마디는 나를 두 달 동안 또 열심히 달리게 했던 원동력이 되었다. 





 ▲집을 구하기 위해 길거리 게시판의 광고들을 계속 보고 다니고, ▲안 되는 영어로 호주인들에게 전화를 하고, ▲지도를 들고 찾아가 몇 채씩이나 집을 보러 다니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영문 이력서를 작성하고 ▲하루에 100곳도 넘는 곳에 연락처를 남기고, ▲한 달 후에 연락 오면 바로 인터뷰를 보러 가던 때였다. 인터뷰를 얼마나 많이 보러 다녔는지 이제는 사장이 물어보지 않은 말들도 술술 요리조리 대답 하곤 했다. 그래도 일하러 오라는 연락은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동안 외국인 샵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나의 목표들은 서서히 희미해지고 나는 당장의 생활을 위해 드라마 ‘파리의 연인’ 의 여주인공 강태영이 한기주의 집을 청소 했던 것처럼 하루에 4채의 집을 가정부가 되어 파트너와 함께 하루 종일 홈 청소를 하고 다녔다. 그러고는 밤에는 야구장 내 펍 바닥을 덜덜덜 거리는 기계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청소했다.   

 

세상에 가장 힘든 것이 무소속이 아닐까.. 호주에 온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안정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니 정말 한심했다. 호주에 가면 계획한 대로 다 잘 될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부터 충분히 일자리와 집을 준비하지 않은.  돈 없는 외국 생활은 정말 나를 작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평생 그 패배감에 사무칠 것 같아 돌아갈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고. 내가 그 넓은 호주 땅 어느 도시에서 살까. 어디서 일자리를 구할까. 오늘은 무엇을 먹어야 하나. 등의 살 궁리에 하염없었다. 





일자리를 구한다며 오늘도 하루 종일 씨티를 걷고 다니던 중, 어느 작은 마을에 아담한 햄버거 가게에 들렀다. 한눈에 봐서도 호주 아저씨 혼자 운영해도 딱 알맞은 그런 곳이라 이력서는 낼 필요가 없었다. 햄버거가 5불이라 제법 저렴한가 싶어 주문을 했다. 음료는 2불이었는데 그 2불이 아까워서 괜찮다고 말했다. 일은 구하지도 못했는데 배가 고파서 햄버거를 사먹어야 하는 내가 너무 처량했다. 하지만 어차피 고생하러 온 것. 편하게 살려고 왔으면 호주에 오지도 않았다는 초심의 마음을 기억하며 웃으며 다시 씩씩하게 햄버거를 먹었다. 그리고 다음에 내가 취해야 할 행동들의 계획을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데 아저씨가 물었다.





“크리스티나. 너 왜 그렇게 슬픈 표정을 하고 있니?”


“호주에 온지 한 달이나 됐는데 일자리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집도 다시 구해야 하고, 내게 남은 건 10불 뿐이예요.”


 


항상 씩씩하자고 다짐했던 내가 그때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슬퍼 보이는 표정이었나 보다. 어떤 사람들은 “너 정말 누가 살짝 치기만 해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다”고 말해줬다. 햄버거 가게 아저씨는 나를 위해 일자리를 구해주겠다며 이력서를 가져가고 코카콜라와 샐러드를 주며 나를 달래주었다.


토닥토닥 “모든 게 다 잘 될 것이라고.”





햄버거 아저씨와의 인연은 이것 뿐 이었지만 그 때의 그분은 당시 나에게 희망을 안겨준 고마운 분이었다. 혼자 먹는 식사가 외롭지나 않을까 재밌는 이야기들로 잠시나마 나를 웃음 짓게 했던 햄버거가게 아저씨.


 


근데 내가 다시 아저씨와 함께 햄버거를 먹을 기회가 있을까..





이후,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돌아온 2006년 12월 중순. 나는 송윤호 총무가 100권 독서클럽에서 리처드 도킨스 ‘조상이야기’를 발표한다는 말을 듣고, 그의 발표를 듣기 위해 친구와 함께 대전으로 내려갔다. 한국에 온지 딱 일주일 만이었다. 그리고 8개월 뒤 나는 다시는 호주에 올 일이 없다고 다짐했던 붉은 땅을 독서클럽 5명의 대원들과 함께 밟았다. 정말 감동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어떻게 호주 사막 한가운데에서 쏟아지는 밤별들을 볼 수 있을까..  이것은 바로 내가 꿈에서만 그리던 이야기였다. 정말 워킹홀리데이에서부터 인연이 돼 준 호주가 나의 20대에 힘을 주기 위해 계속 이끌어 주는 듯 하다. 진정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말이다. 2007년, 내가 호주에 다시 가는 일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예상 밖이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신기한 일 또 하나. 교차로 발제를 하면서 고병권 박사의 저서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를 읽는데 그의 책 25장쯤에서 놀라운 글귀 하나를 발견했다.


“너는 무엇을 먹고 마실까보다 누구와 먹고 마실까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 시절, 그 좋은 달링하버에 차 한잔과 고독과 함께 낭만적으로 홀로 앉아있는데 왜 그리 적막하고, 쓸쓸했는지 몰랐는데 이제야 알았다. 나는 그때 누구와 함께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  


 


나는 이제, 절대 혼자 여행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내일 독서산방에서 뵙겠습니다. 우리들의 호주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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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원 2007.09.29 02:23
    멋지고 감동적인 에세이네요. ^^ 고병원 님이 말했듯이 과거는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나봐요. 100북스 회원님들의 과거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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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윤호 2007.09.29 02:23
    김주현 회원은 항공우주연구원의 대학생우주홍보대사로 만나 그 인연으로 독서클럽에서 나의 발표에 초대를 했고, 그 후 8개월이 지난 지금 김주현 회원은 우리 클럽의 여러 보석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에세이 잘 읽었어요. 그래요...우리는 함께 여행하는 겁니다. 책으로 세상으로...그리고 다시 우리에게로... ^^ 내일 독서산방에서 함께 호주 여행을 떠나 봅시다.
  • ?
    오영택 2007.09.29 02:23
    내일 들려줄 호주이야기가 정말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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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준호 2007.09.29 02:23
    힘겨운 고독, 가슴아픈 사랑, 쓰라린 패배...
    이 모든 것들은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보물들이 아닐까요?
    이런 보물같은 추억들이 있기에
    유리창에 흐르는 빗물을 보면 그리운 이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흐르고,
    따스한 커피 연기사이로 떠오르는 고난했던 옛시절의 기억에 미소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느낌들이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황량할까요?
  • ?
    조동환 2007.09.29 02:23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저에겐 호주라는 곳이 한번쯤 가보고 싶은 나라였는데,
    부럽습니다. 또한 그곳에서의 생활이 제가 생각하는것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
    느껴지는군요.
  • ?
    김세환 2007.09.29 02:23
    필을 뽑아내어서 가지런히 해부하여 포장해 내놓은 글 솜씨가 프로보다도 대단한것 같네요.
    토론준비나 설명도 너무 좋았습니다.
  • ?
    이명세 2007.09.29 02:23
    외진 곳에서 막막해 했던 그 기분들이 이 글 속에서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울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기에 더욱더 강해질 수 밖에 없는... 이제 건강히 돌아왔으니 당신이 승리자아니겠습니까.. 허허
  • ?
    김주현 2007.09.29 02:23
    독서클럽을 만나 꿈을 향해 질주하고.
    때론 지난 날을 돌아보며 성장한 내 마음을 다독이고.
    그렇게 벌써 시작 아닌 시작. 저는 또다른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훗날, 아쉬운 만큼만 제가 성장할 수 있도록.
    그만한 일을 성취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하겠습니다.
    많이 질책해 주시고 조언해 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댓글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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