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작심하기>를 공부하기-3

by 주민수 posted Nov 1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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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의 차이는 곧 구조의 차이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구조를 바꾸어봄으로써 어떤 구조가 무슨 기능에 대응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겠지만 뇌의 구조를 의도적으로 변경시키는 것이 불가하므로 결국 손상된 뇌의 사례를 활용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방법론적 한계가 있습니다. 즉 손상은 비정상의 부분집합일 뿐이므로 비록 손상된 뇌의 사례를 모두 모은다 하더라도 결국 '손상지도'의 여집합이 '정상지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작심하기>의 제1장 손상된 뇌 들여다보기를 요약해 봅니다. (굵은 글씨는 제1장 본문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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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감각을 통해 세계를 탐험한다. 따라서 감각이 손상되면 물리적 세계를 탐험하는 능력이 위축된다. 물리적 세계와 우리의 정신을 연결시켜 주는 것은 눈, , 혀 같은 우리의 감각기관이기 때문이다. 이런 눈과 귀가 손상되면 정보가 더 이상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문제가 한층 흥미로워지는 것은 이런 정보가 눈에서 정신으로 전달되는 과정에 주목할 때다. 일단은 눈의 광수용체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활동이 어떻게 색깔이라는 정신적 경험으로 '환원(turned into)'되는가 하는 궁금증은 제쳐두고 정보가 눈에서 뇌로 전달되는 사실에만 주목하자. 따라서 뇌가 손상되어도 물리적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는 능력이 위축될 수 있다. 역자는 원서의 '바뀜(turn into)'이라는 단어를 '환원'이라는 용어로 번역하고 있는데 여기서 '환원'이라는 용어는 철학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오해를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다. 어쨌든 물리적 세계의 정보는 감각기관에 입력된 뒤 신경계를 통해 뇌에 전달되어 처리되므로 감각기관, 신경계 그리고 뇌의 세 부분 모두가 온전할 때 비로소 올바른 지각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뇌의 어디가 손상되었는지 안다면 그 사람의 정신의 내용물이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뇌와 정신의 관계는 그렇게 완벽한 일대일 관계는 아니다. 정신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도 뇌의 활동 양상이 바뀔 수 있다. 한편 나는 뇌의 활동 양상에 변화가 없다면 정신에도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정신적 활동이 뇌 활동의 결괴이거나 적어도 뇌의 활동에 좌우된다고 내가 믿기 때문이다. p.48의 이 문장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은 원서에서는 각주로 처리된 부분이다. 역자는 원서의 각주를 본문의 일부로 이어 붙여서 번역하고 있다. 어쨌든 2원론에 대한 저자의 정의는 '나'와 '뇌'의 구분이다. 저자는 자신이 2원론자는 아니지만 마치 2원론자처럼 '나'와 '뇌'를 구분하는 표현을 사용할 때가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경험'이라는 개념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 나의 뇌가 행하는 것은 대부분 절대로 나의 '의식(consciousness)'에 도달하지 않는다. 뇌는 알지만 나는 모르는 것이 그렇게나 많다. 한편 나는 내 자신이 나의 뇌가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의식(awareness)'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각주에 대한 번역에서 역자는 앞의 '의식'은 제대로 번역했지만 뒤에서는 '인지(awareness)'라는 단어를 '의식'이라는 용어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은 때로 위험해 보이며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왜냐하면 저자가 이 책의 주제가 '의식(consciousness)'이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기서도 '뇌'는 알지만 '나'는 모른다며 저자는 '나''뇌'를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저자 자신이 2원론자가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므로 '뇌가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표현의 '산물'이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일종의 허상이라는 의미로 보아도 무방한지 묻고?싶다. 뇌의 활동이 어떻게 경험으로 환원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작동 기제가 어떻든 간에 분명한 것은 나의 정신이 뇌에 표상되지 않은 물리적 세계에 대해서는 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오로지 나의 뇌를 통해서만 세계를 알 수 있다. 저자는 그렇기 때문에 "내가…"라는 질문의 형식을 "나의 뇌가…"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는 뇌의 특이한 행동에 대해 (1)뇌가 알지 못할 때, (2)뇌가 알면서도 말하지 않을 때, 그리고 (3)뇌가 거짓말을 할 때의 세 가지로 나누어 예를 들어가며 설명을 계속한다. (1)은 정보 전달에 장애가 있는 경우이고 (2)는 행동으로는 보여주는데 정작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이며 (3)은 잘못된 감각정보를 인지하는 경우다. 제1장의 주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자는 세 경우 모두 뇌 손상의 경우에 국한시켜 논의함으로써?더 이상의 과학적 접근을 스스로 차단하는 듯이 보인다. 만일 세 경우 모두 뇌 손상이 이러한 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의 전부라면?이들은 한낱 병증에 불과한 사례들로 신경외과적 가치는 있을지언정 인지과학적 가치는 별로 없어 보이지 않는가?
?? 뇌는 세계에 대해 완전히 거짓인 경험을 정신에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일만도 아니다. 다음 장에서 보여주겠지만, 여러분의 뇌가 멀쩡하고 완벽하게 정상적으로 돌아가더라도 가끔은 세계에 대해 거짓된 정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저자는 제1장의 결론 부분에서 비록 정상적인 뇌라 하더라도 때로는 앞서의 경우처럼 침묵하거나 또는?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한다. 다음 장에서 사용할 '무의식적 추론'이라는 개념을 전제로 한 주장으로?보인다. 여기서 잠깐 일반적인 -정신-행위의 관계를 살펴보면 아래의 도식에서 보듯이 , , 의 세 가지 경우가 가능함을 알 수 있다. 먼저 의 경우는 일상적인 경우로 뇌의 정보 처리 결과가 정신에 알려지고 이어서 행위로 연결되는 경우다. 한편 의 경우는 뇌가 정신에 알리지 않고 곧장 행위로 연결시키는 경우로 앞서 (2)의 경우인 '뇌의 침묵'과 같은 양상이다. 마지막으로 의 경우는 앞서 (3)의 경우인?'뇌의 거짓말'과 같은 양상임을 알 수 있다. 에 나타나는 '뇌의 침묵'은 저자의 '무의식적 추론/무의식적 선택'과 관련된 경우로 볼 수 있는데 여기서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가자니가의 '비의식'이라는 개념으로 치환할 경우 '뇌의 침묵'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이 가능해짐을 알 수 있다. 또한 에 나타나는 '뇌의 거짓말'은 가자니가의 '해석기'라는 개념과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인문학 교수의 질문은 이렇게 이어질 것 같습니다.


"
그런데, 무의식이란 '의식이 없는' 상태인가요 아니면 '무의식이 있는' 상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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