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작심하기>를 공부하기-2

by 주민수 posted Nov 1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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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프리스의
<Making up the mind>라는 책의 제목을 굳이 <작심하기>라고 부르는 데는 사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연구를 통해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쓴 책으로 원서의 제목을 그대로 옮긴다면?<마음 먹기/만들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 관한 서평에서도 언급되어 있듯이 저자의 '마음'에 관한?견해는 세상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불교식의 사고와 닮은 점이 있습니다. 문득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제대로 이해한다면?개인이 각자의 삶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뜻에서 <마음 먹기/만들기>라는 원제를 '마음먹기'의 한자식 표현인 <작심하기>로?바꾸어 표현해본 것입니다
.
먼저 <작심하기>의 프롤로그를 요약해 봅니다. (굵은 글씨는?프롤로그 본문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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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의 서열 구도에서 위쪽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딱딱한' 과학이라고 한다면, 아래쪽을 차지하는 과학은 '말랑한'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딱딱한/말랑한'이라는 개념이 쉽고 어려움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과 측정 방법을 가리키며 심리학은 대단히 말랑하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심리학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 우리는 모두 제각기 다르다. 그럼에도 모두에게는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정신의 속성이라는 것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바로 이런 정신의 근본적인 속성들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신의 근본적인 속성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지 자세한 설명이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이렇게 정신의 속성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없이 저자는 심리학에 대해 설명을 계속한다.
??
딱딱한 과학 분야의 측정은 객관적이다. 그래서 검증하고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자신이나 지원자를 측정의 도구로 삼는다. 따라서 주관적이며, 자료가 올바른지 검증하기가 불가능하다. 내가 여러분의 정신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려면 순전히 여러분의 보고에만 의존해야하므로 불가능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한동안 심리학자들은 행동만을 연구함으로써, 즉 움직임, 단추 누르기, 반응 시간 같은 것을 객관적으로 측정함으로써 진짜 과학자인 양 행세를 했다.
??
그러나 행동 연구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정작 인간의 경험에서 흥미로운 면들이 모두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심리학자들은 지각, 회상, 의도 같은 주관적인 경험의 문제에 다시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우리가 연구하는 정신적 대상은 다른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물리적 대상과는 완전히 다른 지위를 갖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분의 정신 속으로 직접 들어가서 여러분의 빨간색 경험을 확인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저자는 딱딱한 과학의 기술을 활용함으로써 정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정신적 대상이 물리적 대상과 달라서 여전히 문제가 남는다는 상반된 주장을 펼침으로써 혼란을 야기시킨다. 아마도?가까운 미래에 이러한 문제마저도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 해소되리라는?저자의 희망적 견해에 대한 수사학적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

??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버림을 받으면 뜨거운 오븐에 살을 데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다. 실제로 뇌영상 연구에 따르면, 신체적으로 고통 받을 때와 사회적으로 버림받아 고통을 느낄 때 동일한 뇌 부위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고통에 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느 날 주인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주인은 산책 도중 잠시 정신을 잃었고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와 강아지가 밧줄에 묶여 철로 위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때 멀리서 기적이 울렸다. 주인과 강아지는 모두 신음 소리를 냈다. 강아지의 신음은 밧줄이 조이는 '통증'으로 인한 신음이었지만 주인의 신음은 곧 기차가 다가와 치일 것이라는 '고통'으로 인한 신음이었다. 그런데 뇌영상 연구에 따르면 위의 예에서 나타난 '통증'과 '고통'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인의 '고통'은 강아지의 '통증'과 같은 속성이라는 말인데 과연 그럴까??결국 뇌를 들여다봐서는 이 둘을 구별할?방법이 전혀 없다는 말인데
??
뇌 구조를 보여주는 영상 기술은 거대 과학이면서 동시에 딱딱한 과학이다. 이런 기술을 활용한 뇌 구조 측정은 대단히 정확하고 객관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측정이 심리학의 문제와는 어떤 식으로 관련될까? 심리학의 문제에 도움을 준 것은 뇌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스캐너가 아니었다. 뇌의 '기능'을 들여다보는 스캐너가 그로부터 몇 년 뒤에 개발되면서 전기가 마련되었다. 기능성 뇌스캐너는 혈류 변화를 감지해 현재 뇌의 어느 부위가 활발하게 돌아가는지 보여준다. 우리는 지원자가 단추를 누른다고 상상할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가 실제로 단추를 누를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뇌 활동을 측정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이런 정신적 사건을 객관적으로 확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저자는 뇌영상 연구를 통해 정신적 사건을 객관적으로 확증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도 한편 정신적 경험은 주관적 경험임을 강조함으로써 또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시킨다.
??
뇌 활동은 정신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며, 어느 정도는 주관적인 경험을 객관적으로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그러나 뇌 활동과 정신적인 경험은 똑같은 것이 아니다. 적절한 장치만 있다면 나는 뇌 속에서 푸른색을 경험할 때만 반응하는 뉴런을 찾아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정신적 경험이 뇌 활동 특히 개별 뉴런의 발화와 1:1로 대응한다는 가정을 내포하고 있어 위험한 표현으로 보인다.?하지만 인문학 교수가 반색하며 말하겠지만, 뉴런의 활동 자체는 결코 푸르지 않다. 뇌영상 실험이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은 객관적인 물리적 재료와 주관적인 정신적 경험 사이가 건널 수 없이 멀어 보인다는 점이다. 기구의 도움으로도 정신에서 벌어지는 일은 볼 수 없다. 정신의 내용물은 실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스캐너를 통해 여러분의 뇌가 활동하는 양상을 볼 수 있지만, 여러분의 정신은 '볼' 수 없다. 저자는 이렇게 푸른 색의 경험이 '창발성'으로 나타나는 정신적 세계와 물리적 세계 사이의 건널 수 없는 심각한 차이를 지적함으로써 앞서 언급했던 객관적 확증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부정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 결국 저자는 이러한 언급을 통해?정신적 세계란 착각에 불과하다는?주장을 펼쳐나갈 생각이겠지만

의식/마음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의식/마음을 기능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은 옳은 방향으로 보인다. 그런데 의식/마음이라는 기능을 단순히 뇌라는 구조의 특정 부위에 대응시키려는 생각은 합당치 않아 보인다.?이 질문은?생명은 어디에 존재하는가라는 질문과 비교해 봄으로써 그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다. 심장이 멎으면 생명이 다하므로 생명은 심장에 존재한다고 해야 할까? 생명이란 생명체 전체에 퍼져 일어나는 과정을 일컬음이다. 그렇다면 의식/마음 또한 이와 같이 전체에 퍼져 일어나는 과정으로 이해함이 옳지 않을까
??

인문학 교수는 뇌 활동을 연구한다고 해서 인간의 정신에 대해 뭔가를 알아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정신을 카메라 같은 것으로 생각하더니 이제는 컴퓨터로 생각하는군요. 이 컴퓨터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해도 낡은 은유인 건 마찬가지예요." 구조 문제와 관련해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AB가 여행 중에 같은 마을을 각자 따로 둘러보고 지도를 작성하기로 했다. 마을을 둘러본 A는 마을 안에 있는 건물의 위치를 점으로 나타내는 지도를 그렸다. 마을회관은 마을의 한 가운데에 있고 경찰서는 왼쪽에 그리고 소방서는 아래쪽에 하는 식으로. 그런데 같은 마을을 둘러본 B는 마을 안에 있는 도로를 선으로 나타내는?지도를 작성했다. 마을회관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경찰서가 있고 거기서 아랫길을 따라가면 소방서가 나오고 하는 식으로. A의 방식을 소재주의적 관점이라고 한다면 B의 방식은 과정주의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A : 기능은 구조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구조를 파악하면 기능을 이해할 수 있다
.
B : 기능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구조만으로는 기능을 이해할 수 없다
.
A : 창발성은 무지의 미화다. 즉 창발성이란 미발견 구조의 결과일 뿐이다
.
B : 창발성은 구조에서 비롯되지만 구조와는 다른 차원이다. 즉 상전이의 결과로 나타난다
.?

인문학 교수의 다음 질문은 이렇게 되지 않을까
?
"컴퓨터 회로의 활성화 지도로부터 연동 프로그램을 역으로 복원해낼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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