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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9 03:09

10/12/07 22차 신을 위한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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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차 인천백북스 모임 | 신을 위한 변론
- 일시 : 2010-12-07 (화) 19:00
- 장소 :
인천시 교육청 앞 파크에비뉴 빌딩 4층
- 회비 : 1만원, 학생5천원
- 연락처 : 010-8712-1429 안희찬

신을 위한 변론




선정도서

신을 위한 변론

저자 : 카렌 암스트롱
출판사 : 웅진지식하우스
출간일 : 2010-10-26
발제자: 주영준 회원 (토론 진행)

토론을 위한 질문 하나: 종교란 무엇인가?
                           둘   : 신과 영혼은 존재하는가?                    
                           셋   : 인간의 마음이란?



책소개


신과 종교의 진정한 핵심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영혼을 가꾸는 법을 잃어버리게 되었나?
천박한 이성의 시대에 던지는 가장 웅숭깊은 질문들,‘침묵의 영성’을 통해 신과 인간의 의미를 묻다


현대는 어쩌면 역사상 처음으로 신과 무관한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수천 년간 신, 브라흐만, 열반, 도라는 이름으로 신성한 어떤 것을 우리는 만나왔다. 인류는 지적인 존재이기에 앞서 ‘종교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 ‘불신 지옥’을 외치며 맹목적인 믿음을 요구하는 보수 종교인 못지않게 ‘신의 불필요함’을 외치는 전투적인 무신론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한다. 과연 종교와 신은 사라져야 할 환상일 뿐인 것일까?

이 책 『신을 위한 변론』에서 세계적 종교학자인 카렌 암스트롱은 이것이 근대의 현상이며, 종교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때론 살벌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이성의 시대에 신의 미래는 있을까? 우리는 잃어버린 삶의 반쪽, 인간을 가장 풍요롭게 하는 진정한 종교를 회복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삶과 존재의 신비가 만나는 바로 그곳, 우리가 잃어버린 출발점에 서서 종교의 다음 지평을 그려보며 답을 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믿음, 교리 같은 것이 종교 생활의 중심을 차지한 적은 없었으며, 종교의 주목적은 영혼을 가꾸는 것이었다. 인간은 종교를 통해 자신의 언어와 한계를 넘어서 초월적인 영성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근대의 시작과 함께 종교의 의미와 차원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쓰는 ‘믿음’과 ‘신앙’, ‘신비’의 의미가 어떻게 변질되어가는지, 인간 경험의 절반을 차지하던 뮈토스 즉, 신비의 영역이 어떻게 로고스(이성)에 의해 파괴되는지 꼼꼼하게 추적해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저자: 카렌 암스트롱



Karen Armstrong 세계적인 종교학자이자 종교비평가인 카렌 암스트롱은 1944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열일곱 살 되던 해 수녀로서 로마가톨릭에 귀의하지만 수녀원의 엄격한 규율 등에 실망한 후 7년 후 환속한다. 이후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지만 학자의 길을 걷지 못하고, 또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지만 지병인 간질로 인해 사직하게 되는 등 시련의 시간을 거친다. 이때의 경험을 담아 펴낸 첫 번째 자서전인 《좁은 문 사이로》가 반향을 얻어 BBC의 종교 다큐멘터리를 맡으면서 이후 본격적으로 종교비평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그녀는 방송을 위해 들렀던 팔레스타인에서 이슬람을 접하게 되고, 이후 그동안 갖고 있던 종교적 관념들이 깨지면서 다시 태어나는 ‘돌파(breakthrough)’를 경험한다. 세계종교들은 갖가지 신조와 경전을 갖고 있지만 그 속에는 공통적으로 ‘공감’이 흐르고 있음에 주목하게 된 그녀는 다양한 저술, 강연, 방송 등을 통해 세계종교의 조화와 평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 현재 미국 국회와 국무부 등의 정책 자문을 하고 있고, 유엔이 발의한 ‘문명의 화합’ 대사직을 맡기도 했다. 2008년에는 그간 종교적 자유를 위해 활동한 업적을 인정받아 프랭클린 루즈벨트 자유메달과 TED상을 받았으며, 현재 TED의 국제프로젝트인 ‘공감의 헌장’을 이끌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신의 역사》, 《신화의 역사》, 《마호메트 평전》,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 《이슬람》, 《마음의 진보》, 《위대한 전환》, 《신을 위한 전투》, 《성서》 등이 있으며 이 저서들은 전 세계 45개 언어로 번역되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역자: 정준형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책 만드는 일을 하다가 지금은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기억의 메타포》,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 등을 우리말로 옮겼고, 재미있는 어린이책을 소개하고 쓰는 일에 관심이 많다.



감수: 오강남

현재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Regina) 비교종교학 명예교수로 재직.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연을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매스터(McMaster) 대학교에서 「화엄華嚴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그동안 북미 여러 대학과 서울대·서강대 등에서 객원교수, 북미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AAR)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노장사상을 풀이한 『도덕경』 『장자』, 종교의 이해와 분석을 담은 『예수는 없다』 『세계종교 둘러보기』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가 있으며, 최근 인생과 종교에서의 깨달음을 담은 『움켜쥔 손을 펴라』를 펴냈다. 번역서로서는 『종교다원주의와 세계종교』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귀향』 『예언자』 『예수 하버드에 오다』 등이 있다.



목차



추천사
옮긴이의 말
머리말

1부 알려지지 않은 신

1장 호모 렐리기오수스
전지전능하지 않은 신
신들의 전쟁과 세계의 창조
한계 너머 궁극의 실재를 보다

2장 신
인간화된 신을 파괴하다
표현할 수 없는 신의 실재
유배당한 신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계시

3장 이성
우주를 지배하는 것은 신이 아닌 정신
소크라테스, 다르게 되는 법을 일깨우다
지상에서 하늘로 - 우주론의 시작
이론이 아닌 실천 속에서 진리를 찾다
초월적 지혜에 대한 갈망, 필로소피아

4장 신앙
인간의 아들에서 신의 아들로
진화하는 경전
문자 너머의 의미를 읽다
이슬람, 카피룬에게 관대한 종교

5장 침묵
니케아공의회, 이단의 탄생
인간이 된 신
삼위일체, 셋이 아닌 하나
아우구스티누스, ‘내 안에 있는 신’
신의 침묵을 듣다

6장 신앙과 이성
이성 너머에 있는 신
상상력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영성
토마스 아퀴나스, 신의 존재를 증명하다
마음속 신의 형상을 찾아서
지성, ‘나’가 멈추고 ‘신’이 시작되는 곳

2부 근대의 신 _1500년부터 현재까지

7장 과학과 종교

근대의 종교, 신의 절대 권능에 눈뜨다
종교와 과학의 충돌, ‘도그마’의 등장
무신론자가 된 유대인들

8장 과학적 종교
이성에 대한 두 가지 시각
신은 앎의 대상이 아닌 사유의 원리
과학적 합리주의로 무신론에 맞서다

9장 계몽주의
분열하는 종교, 분열하는 사회
종교, 앙시앵 레짐 또는 해방의 힘
무신론,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다
시계공이 된 신
시인들, 뉴턴의 신에 맞서다

10장 무신론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의심의 씨앗이 뿌려지다
종의 기원과 자연선택
성서를 비판한 고등비평
신앙이라는 ‘망상’
신의 죽음

11장 모른다는 것
근본주의 운동의 태동
신이 없는 세상을 악이 휩쓸다
신을 향한 원초적 기다림
‘모름’, 인간의 조건

12장 신은 죽었나
근본주의는 종교가 아닌 정치의 문제
현대의 무신론자들
과학, 신에게로 가는 길을 보여주다
탈근대주의, 유신론과 무신론의 대립을 초월하다

출판사 리뷰

저자는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는 바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즉, ‘기존 종교에 귀의하지 않고도
인간의 가장 깊은 차원에 대답하는 신앙을 가지는 길이 있는가’하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는 선하지도 성스럽지도 강하지도 지혜롭지도 않다. 심지어 신이 ‘존재한다’고도 말할 수 없다.”
세계적인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이 최신작 《신을 위한 변론》에서 한 말이다. 한때 수녀이기도 했던 그녀는 왜 이런 놀라운 말을 한 것일까? 정말 리처드 도킨스나 스티븐 호킹의 말처럼 신은 존재하지도 않고, 더 이상 필요하지도 않은 것일까? 모두 우리의 환상인 걸까?
그녀는 이 책에서 종교와 신의 존재, 지적설계론 등을 둘러싼 최근의 논의에 일침을 가한다. 신이 우주를 디자인했다는 지적설계론자들뿐 아니라, 과학적 사실을 통해 그것들을 논박하려는 도킨스나 크리스토퍼 히친스 등의 과학주의자들 역시 신과 종교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의 편에 서든 과학의 편에 서든, 이들 ‘근본주의자’가 생각하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그처럼 인간화되고 세속적인 모습으로 변해버린 신이라면, 그런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성스럽다거나 강하다거나 지혜로운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인식영역을 훨씬 뛰어넘는 존재이기에, 오직 (인간적인 의미로는) ‘강하지 않다’ 혹은 ‘지혜롭지 않다’,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알려지지 않은 신

이처럼 인간의 관점으로 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인자한 모습의 남성, 혹은 빛에 휩싸여 기적을 행하는 지고의 존재 같은 것은 모두 신을 세속화하는 이미지일 뿐이다. 하물며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거나 적을 쳐부숴주시는 신 같은 것은 정말 유치한 상상일 뿐이다. 그렇기에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사람만큼이나, 그런 종교인들의 신앙을 깨부수려고 안달하는 과학주의자들 역시 초점을 잘못 잡고 있는 것이다. 지난 몇천 년간, 사람들은 결코 신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류와 함께해왔던 ‘신’이란 어떤 존재인가? “신, 도(道), 브라흐만, 열반 등으로 불린 이러한 실재는 인간의 삶에 엄연히 있어왔지만 로고스의 관점으로 설명하기는 불가능한” 어떤 것, “저 너머 어딘가에 존재하는 외적 진실일 뿐 아니라 자기 존재의 가장 심오한 차원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즉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삶의 비극성과 한계를 초월해 더 깊고 넓은 어떤 초월적 존재(혹은 경험)와 만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신이었다. 그것은 물에 녹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물을 짜게 만드는 소금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어디에나 있는 세상의 본질이었다(58-59쪽). 따라서 근대 이전엔 진정한 의미의 ‘무신론’은 존재하지 않았다. 무신론자라는 말은 이교도나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을 비난하기 위한 의미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근대 이전의 모든 문명권에서, 수없이 많은 세대의 인류는 바로 이런 의미의 신과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신과 합일해 자기를 넘어서는 경험이 바로 ‘엑스타시스’였다.

종교는 말씀이나 교리, 믿음 따위가 아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부터 종교를 ‘믿음’이나 ‘말씀’, ‘교리’ 등으로 오해하게 된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이것은 근대 서구가 계몽과 과학을 발전시켜오면서 시작된 현상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 낭독하고 자구를 해석하는 기독교의 성서조차, 예전에는 믿음이나 말씀 등의 관점에서 이해되지 않았다. 실제로 성서는 서아시아(중동) 지역의 전통적 모티프들로 가득 찬 신화이며, 에덴동산의 이야기 역시 인류의 원죄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것은 오히려 성장통과 통과의례에 관한 ‘비유’였을 뿐, 저 옛날 어딘가에서 일어났던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성서에는 단 하나의 정통 메시지 같은 것은 없었다.” 성서는 집대성되기 이전에 J와 E로 불리는 두 기자(記者)에 의해 씌어졌고, 이들은 그 모든 이야기들을 상징과 비유로 음미할 줄 알았기 때문에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들을 집어넣는 데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당시 사람들은 경전 속 여러 이야기들을 충분히 해석해서 받아들이는 법을 알고 있었고, 종교란 공동체가 초월적 경험을 나누는 일종의 영적 수련 과정이었다.

‘믿음’과 ‘신앙’이 종교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 이유

그러나 이런 종교가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본래의 뜻을 잃어간다. 오늘날 ‘믿음’이 기독교의 중심이 된 역사를 살펴보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성서를 보면 예수가 제자들의 ‘믿음(faith)’이 부족한 것을 꾸짖고, 기적을 행하기 전에 ‘믿음’을 가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저자는 다른 종교 전통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이런 ‘믿음에 대한 집착’이 어디에서 생겨났는지 꼼꼼하게 추적한다. 결론은 간단하다. 예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래 예수가 쓴 말은 그리스어 ‘피스티스(pistis)’로서 신뢰, 충실함, 약속, 헌신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것은 가난하고 배고픈 자들에 대한 헌신, 매춘부나 세리조차 돌보는 삶에 대한 약속을 뜻했다. 하지만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성 제롬)가 그리스어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피스티스는 ‘피데스(fides, 충실함)’가 되었고, 이것을 다시 동사로 옮기는 과정에서 ‘크레도(credo)’가 되었다. 그 후 다시 17세기에 제임스 왕 번역본(흠정역 성서)이 만들어지면서 ‘크레도’와 ‘피스티스’는 결국 ‘나는 믿습니다(I believe)’가 되었다. 이처럼 여러 단계에 걸쳐 조금씩 의미가 변한 결과, ‘특정한 삶에 대한 헌신’을 뜻하던 말이 ‘어떤 견해에 대한 믿음’으로 변하게 됐다(believe 역시 원래는 믿음이 아닌 충실함을 뜻하는 단어였다).
한편 17세기부터 시작된 계몽과 과학의 발전은 근간에서부터 종교적 삶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원래 인간의 한계와 ‘무지가 주는 신비’를 골간으로 하고 있던 전통적 종교생활과는 달리, 근대의 삶은 어떤 것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뉴턴을 비롯한 근대의 과학자들 모두 독실한 종교인이었지만, 이들은 우주라는 거대한 영광을 신에게 돌리기 위해 신을 ‘우주의 시계공’으로 만들어버렸다. 우주를 관상(觀想)함으로써 신비를 느꼈던 중세의 아퀴나스에서, 물리적 우주의 위대한 창조주를 만들어낸 뉴턴으로 넘어가면서 신과 종교는 본래의 색채를 잃어버렸다. 신과 종교는 이제 수행이나 실천을 뜻하는 것이 아닌, 지적인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근대인들이 우주 질서의 보증으로 신을 옹호하면 할수록 신은 사람들 바깥에 있는 어떤 것이 되어갔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는 현재 보는 바와 같다. 우주 자체가 외적 원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 현대 우주론에서 신은 ‘불필요한 가설’이 되었다. 지난 몇천 년간 사람들의 삶을 풍부하게 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던 종교의 의미를, 인류는 불과 200-300년 만에 철저하게 잃어버렸다.

종교는 영혼을 갈고닦는 ‘행동 프로그램’이다

저자인 암스트롱은 “현대의 신은 3000년을 이이온 유일신의 역사 속에서 발전되어온 수많은 신 개념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 이런 신 개념을 갖고 혼란만 거듭하며 논쟁하는 현실에 “무언가 새로운 얘기를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녀가 보기에 “종교는 본래 사람들이 ‘생각한’ 무엇이 아니라 ‘행한’ 무엇”이다. 그녀가 이 두꺼운 책 전체에 걸쳐서 수많은 종교들의 역사를 훑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은 인류의 종교생활 대부분을 이끌어왔던 종교의 ‘비결’, 즉 자신의 영혼을 갈고닦는 한편 타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할 줄 아는 방법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그런 ‘실천과 수행’ 없는 종교란 “운전 교본과 교통 법규집만 읽고서 차를 운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알라를 위해 폭약을 안고 미군에게 뛰어드는 가여운 무슬림 소년도, 세상을 이런 폭력에서 구원하기 위해 신을 제거하려는 도킨스도, 삶의 이 깊은 차원을 잃어버리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종교는 우리 마음의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도록 가르치는 실천적 수련이다.” 인류가 최근에야 잃어버린 이 깊은 차원, 하지만 우리가 다시 노력한다면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이 ‘침묵의 영성’이야말로 갈 곳 몰라 하는 현대인들을 위한 그녀의 절실한 선물이다. 딱히 특정 종교에 귀의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와 우주 뒤에 있는 신비가 어렴풋이 느껴지는 사람, 삶에 지친 내 영혼을 보듬는 방법을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던 독자라면 그녀의 잔잔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볼 수 있을 것이다.

오시는 길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1135-11번지
인천지하철 '인천시청'역 하차. 5번 출구.
인천광역시 교육청 정문 건너편 파크에비뉴 빌딩 4층

  • ?
    김미선 2010.11.19 03:09
    이번 모임은 토론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토론을 진행하실 주영준 회원께서 책을 선정하고 질문을 뽑아주셨습니다.
    조심스러운 주제이지만 마지막 달은 '인간의 가장 깊은 차원'을 건드려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주 선생님께서 구수한 입담으로 흥미진진하게 토론을 이끌어주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 profile
    주민수 2010.11.19 03:09
    김총무님, 이번 모임에는 꼭 참석할 생각입니다. (정말 미리 떠날겁니다.^^)
    사실 수요일의 새벽 강의 때문에 늘 화요일엔 걱정(?)이 앞섰는데 마침 12/8 수요일은 기말고사라 시간을 늦춰서 이번 화요일 모임에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할수 있을것 같군요. 주제는 난삽해 보이지만 토론 형식이라니 많은 얘기를 들을수 있을것 같습니다.^^
  • ?
    이병록 2010.11.19 03:09
    매우 흥미있는 주제이고, 신에 종속되거나 아니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양측에서도
    읽어 봐야 할 좋은 내용인 것 같습니다. 간부들에게 이 내용을 출력하여 나눠 주었습니다.
  • ?
    손호선 2010.11.19 03:09
    다루기 어려운 민감한 주제인데.... 이 책의 접근방법이 좋은 것같습니다.
    오강남 교수의 저서나 역서는 여러개 보았는데, 기독교에 정통하면서도 여러 종교에 관용적인 분이라 좋더군요. 이번 모임에는 문제를 미리 공유해 주셔서 더 좋습니다.
  • profile
    주민수 2010.11.19 03:09
    먼저 1500년을 중심으로 책을 2부로 나눈 저자의 의도를 가늠해 보았습니다. 책을 읽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혹시 종교에 대한 인류의 인식이 르네상스를 계기로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나름대로 추측해 봅니다. 저는 르네상스의 시작이 포트-로얄 논리학이라는 한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결국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부활이 종교와 과학에 대한 인간의 사고에 커다란 분수령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첫번째 질문에 대해 저는 반대말 놀이를 통해 접근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흔히 종교와 과학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 관계로 알고 있는데 과연 종교의 대립 개념으로 꼭 과학을 생각해야 하는가? 앞서 언급한 사고의 분수령을 생각한다면 혹시 종교의 대립 개념으로는 철학을 택해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 ?
    연탄이정원 2010.11.19 03:09
    <"종교의 대립 개념으로 철학을 택해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좀 더 자세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제가 철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백북스에서 정치와 종교에 관한 논의를 금하는 것을 알고 있기때문에 조심스럽습니다만... 뭔가 하고 싶은 말씀이 더 있으실 것 같습니다. 궁금합니다. 부연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profile
    주민수 2010.11.19 03:09
    연탄이정원님, 반갑습니다. "과학이 종교와 대립한다"라는 명제를 "종교가 과학과 대립한다"로 뒤집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미신이 과학과 대립한다"라는 명제가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학과 미신은 모두 '현상'이라는 공통된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하는 관계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종교와 과학은 서로 어떤 관계일까 하는 것이 다음 문제인데, 반드시 서로 부정하는 관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종교와 철학이 '가치'라는 공통된 주제를 서로 다른 시각에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신을 위한 변론>의 전반부는 '뮈토스'에 대한 내용이고 후반부는 '로고스'에 대한 내용이 아닐까 하고 나름대로 추측해 봅니다만 '뮈토스'와 '로고스'는 둘다 얘기라는 점에서는 같지요. 다만 전자에 비해 후자는 건조한 느낌이 들지요. 세계적인 종교들이 '로고스'에 근거한 내용을 중시하고 있는데 과학이 또한 '로고스'를 기초로 한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일로 그래서 꼭 서로 대치하는 관계는 아닐수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 ?
    연탄이정원 2010.11.19 03:09
    오우~ <"미신이 과학과 대립한다."> 라는 말에 공감하면서도 재밌어서 푸핫~! 하고 웃음이 났습니다.^^
    공감 반, 웃음 반.^^

    오우~2 <종교와 철학이 '가치'라는 공통된 주제를 서로 다른 시각에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감탄을 합니다. 점점 흥미로워지는데요.^^ 감사합니다.

    흥미로운 주제로 유익한 시간들 갖으시길 바랍니다. 토론시간에 회원님들의 열띤 토론이 이루어질 듯합니다.
    인천백북스 화이팅!^^
  • ?
    김미선 2010.11.19 03:09
    제가 댓글을 다는 동안 벌써 글들이 달렸네요^^;

    아무튼 이번 토론은 오프라인 모임에서 얼굴 보는 회원들끼리 거의 송년회 분위기로 서로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이 주제면 최소한 적막강산이 되진 않을 거라는 심증으로 생각거리를 던져드리고 자리만 깐 것이니 회원분들의 고견은 모임 현장에서 풀어주시고,
    부디 온라인에서 미리 불을 붙이지는 말아주세요^^
  • ?
    송찬옥 2010.11.19 03:09
    "보이지는 않으나 어디에나 있는 신" 이기에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의 신을.....부정에서 맹목의 신까지....그래서 반투명 유리 너머로 짐작하던 신을 투명 유리로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 profile
    주민수 2010.11.19 03:09
    김미선 총무님, 밖에서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수업시간(?)에 참석해서 발표하라는 말씀 잘 알았습니다.--;;
    토론에는 약간의 마중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분위기를 몰랐나 싶군요. 생각을 좀더 정리해서 모임에서 말씀드리는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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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선 2010.11.19 03:09
    종교 자체에 관한 의견을 피력하신 것이 아닌데, 주제가 주제인지라 혹시나 해서 제가 지나치게 조심을 떨었습니다. 여러 회원님들이 마중물을 흠뻑 끌어올려 흥미를 돋우어주셔서 실은 고마운 마음입니다. 벌써부터 마음의 준비들을 하시니 토론 내용이 알찰 것으로 기대되는 한편으로... 날라리 총무는 책이나 읽고 갈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이정원 님, 늘 인천백북스를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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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두 2010.11.19 03:09
    위의 글이나 댓글에서 다신(多神) 내지 다신의 세계가 있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네요.
    유일신을 생각하는 것과 다신(多神)을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신(多神)의 세계를 생각한 사람들의 세계에는 축제가 있었고 문화가 역동적으로 꿈틀댔던 것이 그려집니다. .
    다신(多神)의 세계의 대표적인 예가 그리스의 고대 종교와 인도의 브라만교를 예로 들수 있고, 중국도 고대에는 다신(多神)의 세계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신을 생각했던 사회에서는 대개 철학도 예술도 문학도 역동적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외래문화나 새로 생겨나는 문화에 관대하다는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예로 들자면, 중세의 유럽과 현대의 중동의 종교사이의 갈등과는 대비되지요.

    이런 문화현상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이야기 하지 않고, 유일신의 입장에서만 신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위의 글 중에 " 그렇다면 우리 인류와 함께해왔던 ‘신’이란 어떤 존재인가? “신, 도(道), 브라흐만, 열반 등으로 불린 이러한 실재는 인간의 삶에 엄연히 있어왔지만 로고스의 관점으로 설명하기는 불가능한” 어떤 것, “저 너머 어딘가에 존재하는 외적 진실일 뿐 아니라 자기 존재의 가장 심오한 차원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라고 말한 부분은, “신, 도(道), 브라흐만, 열반 등으로 불린 이러한 실재는"에서 신= 도道= 브라흐만= 열반과 같은 도식을 만드는데, 구체적인 각 종교의 특성에 대한 고찰없이 동일시 하는 것을 각 종교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예를들어, '도, 열반의입장에서는 '저 너머 어딘엔가 존재하는 심오한 ...'것이 도, 열반이라고 말하는 것을 받아 들이기 곤란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위의 글을 중심으로 볼 때, 이 저자의 글은 여러 세계의 다양한 종교를 고찰한 일반적인 "신"에 대한 변론이 아니라, 이 저자가 속한 그 세계만의 "신"에대한 변론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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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록 2010.11.19 03:09
    이기두 님의 다신에 대해서 공감합니다. 우리나라의 신만 세어봐도 집안의 부뚜막에서 장독에까지 다양한 신(대감)이 있었고, 마을의 당산나무에서 서낭당, 산신, 용왕 등 다양한 신을 섬겨왔고, 인도에는 3억 3033개의 신 중 한분의 신만 모셔도 힌두교라고 합니다. 물론 몽골시대에도 샤머니즘의 종교관을 가지고도 타 종교에 관용을 배풀었습니다.
    로마에 이어 구미가 세계를 지배하면서 신의 대명사가 어느덧 야웨신으로 굳어져 감을 느낍니다. 문제는 이런 종교적 지혜가 없는 상태에서는 유일신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신을 거부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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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영준 2010.11.19 03:09
    종교에는 인간의 출현이래 모든 학문과 사상이 용해되어 있다 봅니다. 모든 성경들은 보조적 역활이며, 인간의 깨달음은 언어, 문자가 아닌 인간의 삶속에서 체험과 체득으로 이루어 진다 함니다.
    현대의 보편화된 다양한 지식들이 과도하게 나열되게 되며는 가볍게, 즐거운 마음으로 토론을 즐기자는 총무님의 의도를 벗어날 수 있으므로,
    현재 본인의 삶속에서 노력하는, 노력하려는, 실행되는 또는 습득하여 체화된 그러한 류의 토론이 좋을 듯 싶습니다.
    저도 책이 오늘서야 배달되어 이제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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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영준 2010.11.19 03:09
    토론시 논쟁이 될 수 있는 것은 누가 어떠한 종교적 해석을 객관주의적으로 설명한다 한들, 결국은 자기의 삶의 실존적 체험이라는 주관주의적 해석으로 받아들일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 생각됨니다.
    따라서 혹시라도 논쟁이 발생된다면 주관주의와 객관주의적 해석이 서로 융합하는 변증법적인 과정으로 사고가 확장되어간다는 열린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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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탄이정원 2010.11.19 03:09
    이미 불이 붙은 것 같습니다.^^ 이 열기 그대로 모아 모임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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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선 2010.11.19 03:09
    천문 뇌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참석했던 한 분이 착잡한 심정을 올리신 글을 보았습니다. 어쩌면 소외라고 표현할 수 있을 그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저도 처음엔 백북스 사람들이 다 화성인 같았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다가 어찌어찌 한 지역 모임의 총무가 되어 있는 지금도 솔직히 자신이 이방인 같을 때가 많습니다. 저 괴물 같은 공부 열정들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이 분들은 무얼 찾아 여기까지 오는 것일까... 책을 논하는 것...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의 사치가 아닐까 의문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정말 한가한데 세월 보낼 데가 없어서 독서 모임에 열심히 나오는 사람... 저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돈이 많고 시간이 많은데도 하필 책을 찾는 사람은 더 경이롭다고 해야할지 모릅니다.

    저는 백북스 관련 모임에 참석한 날은 잠을 잘 이루지 못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자극을 받아 생각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기계처럼 '순조롭게' 넘겨야 할 일상 속에서 자극은 늘 두려운 복병이기에 새로운 글 한 줄을 만나는 것도 사실은 많이 무섭습니다. 어떤 소설가는 누군가의 베갯머리를 불편하게 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고 했던가요? 저 자신은 책 읽는 대신 책 만드는 데 손 좀 보태고 남의 잠자리를 불편하게 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제 잠자리의 안락을 꾀하는 얍삽한 사람이지만... 그래서 백북스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을 읽는 '용감한' 시민들이 사라지면 실업자가 될까봐...^^;

    종교에 관한 일회적 토론 모임 자체는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고 공허할 수도 있지만, 책의 옮긴이 말에서 얼핏 보이는 '신 모양의 구멍'이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 있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 모임 출석 여부를 떠나 회원님들이 하룻밤쯤 내 가슴의 구멍은 내가 어쩌고 사는가 더듬어볼 계기가 될 것이라고... 그러니 사고 친 기분이라도 너무 전전긍긍하지 말자고... 백북스로 인해 자극받고 온 또 하루, 긴 댓글들을 바라보며 변명을 주저리주저리 보태봅니다^^;

    (에고, 글을 올리셨던 분께서 밤새 글을 지우셨네요. 다른 분의 후기로 오해하지 마셔염...^^;;)
  • profile
    주민수 2010.11.19 03:09
    이번 <신을 위한 변론>의 토론에서는 "인간의 마음이란?" 세번째 질문으로 인해 <마음>에 대한 얘기가 제법 풍성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면 자연히 <뇌>에 대한 얘기가 빠질수 없겠고요. 그렇게 한번 <뇌/의식/마음>의 간략한 향연을 펴보는 것도 좋을듯 싶습니다.^^
  • ?
    김미선 2010.11.19 03:09
    소문에(?) 마음 관련해서 인도 유식唯識 사상에 관해 말씀해주실 분도 계시고...
    저한테 숟가락만 들고 가도 되냐고 물으신 분들, 걱정 안 하셔도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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