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백북스

칼럼
2013.01.25 21:32

<작심하기>를 공부하기-5

조회 수 3775 추천 수 0 댓글 1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 인간의 신체적 활동과 관련해서는?
{(각성) : (취중/몽유) : (수면/혼수) : (사망)}이라는 위상으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겠고?인간의 의식적 활동과 관련해서는 {(무의식) - (잠재의식) - (의식) - (초의식)}이라는 모형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1879년 윌리엄 제임스는 다음과 같은 전제를 내놓습니다. "의식과 뇌의 작용은 서로 영향을 미치며, 의식은 그 상호작용에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도 아니고 뇌의 작용과 일치하지도 않는다." 월터 프리만은 <뇌의 마음>에서 의식은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행동을 통제하지 않지만 동역학의 차원에서 보면 의식은 '오퍼레이터'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의식이 과거의 행동이 나온 그 뇌동역학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한 의식은 그 어디에도 없는 한편으로 그 어디에나 존재하면서, 뇌의 각 부위들이 공급하는 컨텐츠를 가공한다고 말합니다.
??
우리의 신체는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자극을 받아들여 정보를 처리하고 필요한 반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감각과 지각이 자각에 이르지 않는 이유는 일상생활에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함인데 크리스 프리스처럼 이를 단순히 뇌가 침묵한다거나 거짓말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온당치 않아 보입니다. 자각에 이르지 않는 이러한 처리과정은 헬름홀츠처럼 '무의식적 추론'이라 부를 수도 있겠고 <뇌로부터의 자유>의 가자니가처럼 '비의식'이라 부를 수도 있겠고 또는 <의식의 재발견>의 후베르트처럼 '인지적 무의식'이라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름들은 의식의 앞에 '()-'나 '()-'라는 부정 접두사를 붙임으로 해서 마치 정보처리 과정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습니다.?
?? 가자니가는 <뇌로부터의 자유>에서 의식적 경험은 수많은 하위 체계를 지닌 모듈 방식으로 체계화되어 있으며 또한 의식이 뇌 전반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뇌에는 모든 종류의 국소적 의식 체계가 존재하고 이 체계들이 하나의 무리를 지어 의식이라는 것을 형성한다는 뜻입니다. 하위 체계의 국소적 경험이 비록 의식의 표면에 떠오른 자각의 수준은 아닐지라도 이들을 의식과 무관한 심지어는 상반된 듯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뇌를 통한 '나'의 입장에서 본 관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사실 신체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들 또한 엄연히 인지과정의 일부이며 그 기초로 볼 수 있는 현상들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종류의 처리과정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없애고 신체의 활동을 지나치게 뇌에 의존하여 해석하는 듯한 인상 또한 떨쳐버리기 위해서도 적절한 이름이 필요해 보입니다.
??
의식에 관한 모형 중 흥미로운 것은 에델만의 의식 모형입니다. 뇌를 가진 동물의 의식을 한 부류로 규정할 수 없다고 본 에델만은 일차의식과 고차의식으로 나눌 것을 제안합니다. 에델만 모형의 연장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의식 또는 비의식이라 부르는 하위 체계의 국소적 경험에 대해서는 '0차의식'이라는 이름이 적합해 보입니다. 그리고 뇌를 가진 동물 중에서 인간을 제외한 동물의 의식을 '1차의식'이라 부르고 '자의식'을 경험하고 추상화가 가능한 인간의 의식은?동물의 의식인 '1차의식'에 한 단계가 더해진 '2차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다만 인간에 국한시켜 얘기하는 경우라면 굳이 '2차의식'이라는 세분화된 표현을 쓰지 않고 기존의 '의식'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해도 혼동이 없으리라 봅니다.?
?? 우리는 신체의 운동이 정보처리의 결과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때 받아들인 정보가 충분치 않다면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정보를 빌려와서 기워 잇게 되는데 이렇게 정보와 정보를 기워 잇는 과정에서 착각이 유발되고 창작이 보태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보와 정보를 이어서 이야기를 지어내는 과정은 1차의식에서는 볼 수 없고 2차의식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입니다. 가자니가는 이러한 2차의식에 의한 해설 과정을 '좌뇌라는 해석기에 의한 설명'이라고 그의 책에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

?

?

---------------------------------------------------------------------------------
?? <인문학에게 뇌과학을 말하다>의 2장에서 저자는?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항상 실제 모습 그대로는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저자는 착시의 예를 들면서 이런 착시들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내가 잘못된 정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데도, 즉 대상의 실제 모습이 어떤지 알고 있는데도 나의 뇌는 계속해서 나에게 거짓 정보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나란히 뻗은 길을 바라볼 때 원근법처럼 갈수록 좁아 보이는 것 또한 뇌에 의한 거짓 정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들려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면이 있다. 2장을 마감하면서 저자는 이 장에서 평범하고 건강한 뇌도 우리에게 항상 세계에 대해 옳은 그림만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었고 우리는 우리 주위의 물리적 세계를 직접적으로 대할 수 없으므로 눈과 귀 같은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인 조잡한 감각정보들을 기초로 뇌가 세계에 대한 추론해야 하는데, 이런 추론은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으며, 게다가 우리의 뇌가 알고 있는 사실 중에는 우리의 의식적인 정신에 결코 도달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세계에 대한 옳은 그림'에 관해 구체적인 설명없이 뇌가 '조잡한 감각정보들'로부터 추론하므로 잘못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조잡한 감각정보'라는 번역의 원어는 'crude sensations'로 '원감각'으로 번역해야 옳을 듯싶다. 그리고 '뇌가 알고 있다'는 표현은 '뇌'를 마치 독립된 행위주체로 파악하도록 오도할?가능성을 안고 있어 보인다. 또한 뇌가 알고 있는 사실이 의식적인 정신에 도달하는 경우는 단지 5%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이런 현상이 일상생활의 효율과 관련해서 무슨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설명을 생략함으로써 인문학 교수를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인문학에게 뇌과학을 말하다>3장에서 저자는 나의 신체는 물리적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이지만 다른 대상들과 달리 나는 내 신체와 특별한 관계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는 닐센 등의 실험을 통해 내 손이 뇌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나는 내 손이 지금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지각하지 못한다고 얘기한다. 아마도 3장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실험은 1983년에 리벳이 행한 실험일 것이다. 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것과 같은 동작을 자발적으로 하기 직전에 뇌의 활동에 특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바였다. 리벳의 연구에서 참신했던 점은 피험자들에게 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때가 언제였는지 알려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손가락을 들어 올리려는 충동은 손가락이 실제로 들리기 0.2초 전에 일어났다. 그러나 뇌의 활동 양상은 손가락이 들리기 0.5초 전에 이미 변화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피험자가 손가락을 들어 올릴 것임을 알려주는 뇌 활동은 피험자가 그런 충동을 느꼈다고 보고하기 0.3초 전에 일어났다는 말이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선택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우리의 뇌가 이미 선택을 내렸다. 따라서 그 순간에 우리가 선택하는 것처럼 경험하지만 사실은 착각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선택한다는 것이 착각이라면, 우리가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는 생각도 착각이다. 여기서 저자는 '뇌가 선택을 내린다'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다시 한번 '뇌'를 독립된 행위주체로 파악하도록 유도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자각' 이전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해석을 포기한 채 이를 단순히 뇌의 침묵과 기만으로 치부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탐구의 문을 또한번 스스로 닫아버리고 만다. 자유의지와 이에 따른 선택의지가 착각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착각의 의미와 과정에 대해 좀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
우리가 행동을 선택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뇌는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동이 자유의지로 선택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우리가 선택한다는 것을 좀더 일찍 자각하지 못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이런 무의식적 선택은 헬름홀츠가 말한 무의식적 추론과 흡사하다. 우리는 눈앞에 놓인 대상에 대해 뇌가 무의식적 추론을 내리기 전까지는 그것을 지각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가 하려는 행동에 대해 뇌가 무의식적 선택을 내리기 전까지는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다. 저자는 방금 전에 자유의지는 착각이라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이것이 행동이 자유의지로 선택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착각이라고 생각하고 부정하는 것일까? 이랬다저랬다 하는 저자로 인해 답답해 하는 인문학 교수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저자는 뇌의 무의식적 선택이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는데 여기서 '무의식'이란 '의식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무의식이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인가? 만일 저자가 좀더 종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더라면 충분히 '0차의식'의 개념에 이를 수도 있었을 텐데 저자의 부족한 탐구 정신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대목이라고나 할까??내 의도가 적중했다면 지금 독자 여러분은 약간 혼란스러운 상태일 것이다. ... 우리의 뇌가 세계를 탐험할 때 가동되는 복잡한 과정을 우리에게 감추기 때문에 마치 세계를 직접 접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이다. ~ 저자의 의도가 우리로 하여금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었다니... 어쨌든 그의 의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뇌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감추고 있다는 저자의 설명은, 그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의 뇌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 가자니가가 <뇌로부터의 자유>에서 과학자가 뇌 촬영을 통해?아는 것은 다른 개인들의 뇌에서 관찰되는 평균적인 활동을 바탕으로 뇌 활동이 어느 위치에서 일어나는지를 확률적으로 계산한 결과일 뿐이라고 한?말은?깊이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인문학 교수는 아마도, 닐스 보어가 그의 학생을 야단쳤던 말로, 저자에게 빈정거릴지 모른다.
"
You are not thinking. You are just being logical."

  • profile
    김형태 2013.01.25 21:32
    주민수 박사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크리스 프리스가 말하는 개념을, (무의식) 르두 - (비의식) 가자니가 - (인지적 무의식) 후베르트 와의 연관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크리스 프리스가 시각적 측면의 접근 방법인데 반해, 월터 프리먼이 후각적 측면의 접근방법을 취하는 것도
    매우 인상적이고 영감을 주는 부분입니다.

    에델만 의식 모델의 기층에 대해서는 제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입니다.
    스튜어트 카우프만의 생각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혼자서 책을 볼 때는 엄두를 내지 못할 공부 영역이었는데 함께 책읽기를 통해, 용기와 영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책읽기의 묘미를 일깨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
  • ?
    김현주 2013.01.25 21:32
    잘 정리된 글을 읽으면서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고 엄두도 못 냈던 일에 조금씩 용기가
    납니다..
    언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입장에서 뇌의 기능이나 역할에 대하여 스치듯 공부했지만
    이렇게 깊이있는 공부는 선뜻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주민수 박사님의 깔끔한 정리가 조금씩 용기내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 ?
    박제윤 2013.01.25 21:32
    우리의 뇌를 바라 볼 때에 명확히 주의해야 하는 것은 마치 지금의 인간을 위해 뇌가 진화한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게 되면 베이컨이 말한 동굴의 우상을 세우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의식과 무의식 혹은 미의식 또한 그런 시각에서 바라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하등동물에서 진화하는 동물의 뇌가 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었을 것이며, 초기 인류의 조상인 어떤 종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뇌의 작용에 근본은 의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인간 역시 우리 신경계 활동 모두를 의식해야 할 어떤 이유를 가지고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 ?
    장철순 2013.01.25 21:32
    저도 박제윤 박사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인간의 “정신이나 마음(자유의지)”에 대하여 탐구를 하는데 인간의 관점에서만 탐구를 하게 되면 “베이컨의 동굴의 우상(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정신이나 마음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 에 빠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뇌를 가진 다른 동물과 분명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자유의지가 나타나는 것을 생물학과 인식론적으로 보면 신경학적으로 풀이가 되어지는데 신경학적으로 보면 뇌를 가진 다른 동물들과 인간의 신경학적 기전은 기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으므로 “자유의지”가 꼭 인간만이 가진 것이 아니라고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식론적으로 보면 “의식”은 감각신경계가 작용을 하는 상태에서 “의지” 따른 일부가 인지되는 것이므로 “의식”에 대하여도 “인식”에 따른 포괄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인식”과 “의식”은 신경학적으로 다른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인식과 의식에 대한 저의 견해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자세히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아무튼 우리의 “정신이나 ”마음“ 또는 “나”라는 존재에 대하여 논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주관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기 때문에 관찰에 따른 것을 계량화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신경학적 정보론으로 인식현상에 대한 것의 일부는 복잡계로 설명되어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러한 것이 시각적 “인식프로그램”이나 “언어인식프로그램”과 같은 것입니다. 물론 이는 컴퓨터에서의 알고리즘에 따른 것이지만 신경학적 정보의 관점으로 보면 거의 동일한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직렬과 병렬의 행열적 알고리즘)

    그런데 문제는 뇌에서 이루어지는 인식적 알고리즘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이에 따른 판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인데, 저는 여기에 “우리의 의지적 정보”가 개입이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현재 뇌 과학이나 신경학계에서는 “우리의 의지”에 대하여 생리적 선택반응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저는 달리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분명히 “나”라는 주체적인 의지가 있다고 보고 있으며, 이 의지에 따른 정보가 인식과정에서 개입이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인식론적으로만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생리적 현상의 관점에서도 이렇게 풀이가 되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것도 다음기회가 주어지면 보다 자세히 설명을 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우리의 정신이나 마음에 대하여 논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논하던 신체(실체 물질적)와 “정신”, “마음”(비물질적)과 같이 이분법적으로 논하는 것은 바꾸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정신이나 마음은 우리 신체(생물체: 생명현상을 가진 물체)가 가진 생명현상의 일부가 나타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것은 내가 생물체로 살기 위한 의지라고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정신”, “마음”, 또는 “나”라는 것에 대하여 탐구를 하려면 생물학적인 것과 신경학적인 것과 정보학적인 관점에서 포괄적인 관점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실체”와 “현상” 또는 “신체”와 “마음”과 같이 “이분법적”으로 다루는 것에 저는 동의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정보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실존적 존재의 본질은 물리적인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쓸데없이 너무 길게 쓴 것이 아니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글은 주민수박사님의 글에 반론을 제기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단지 정신, 마음, 또는 "나"라는 것에 대한 저의 견해를 쓴 것일 뿐입니다.
  • profile
    주민수 2013.01.25 21:32
    김총무님// 월터 프리만의 후각적 측면의 접근은 뇌의 동역학적 해석에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뇌의 마음>을 읽으면서 지나쳤던 부분인데, 동물의 후각에 의한 인지를 뇌의 동역학적 패턴에서 찾는다는 저자의 의도가 오래동안 덮어놓았던 뇌동역학 책들을 다시 들쳐보게 합니다. 이번에는 뇌동역학의 갈피(?)를 잡아보려 합니다.

    김현주님// <인문학에게 뇌과학을 말하다>를 읽으면서 제가 이해한 방식으로 쉽게 정리하려고 나름 노력중입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저술에서 한가지 불만인 점은 전문적인 지식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일반인에게 전달하는 교양물이다 보니 표현에 '멋'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표현의 '멋'은 표현의 내용과 형식 사이에 존재하는 '의미 불확정성 원리(?)'로 인해 내용의 모호성(엔트로피)을 높이는 결과를 빚기도 합니다.

    박제윤박사님// 진화에는 원래 방향성이 존재하지 않고 생명체에 대한 해석은 결과론적 해석이 되기 십상인데 그렇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견해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진화 과정에서는 종종 생존을 유리하게 이끄는 형질이 발현하는 수가 있는데 '의식'이 바로 그런 형질중의 하나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볼수 있겠습니다. 의식을 하나의 존재로 볼 것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의 주체로까지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 마침표가 찍히지 않은 문제라서 좀더 기다릴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장철순님// 글을 올리다 보면 어떤 때는 상대의 의견에 동의할 때도 있겠고 또 어떤 때는 반대하는 경우도 있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각자 자기의 생각을 올림으로써 사고의 지평을 넓힐수 있다는 점입니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올리는 글은 감정적인 글이 아님을 알진대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참고로 이번에 제가 올린 글은 제 나름의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 풀어가는 과정의 한 단계로, 예를 들면 위에서 기술한 의식의 모형에 관한 부분은 저 자신도 일부 동의하지 않는 내용입니다. 이 모형은 각자 장단점을 판단해 봄으로써 뒤에 나오게 될 개선된 모형과 비교해볼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제시된 하나의 예입니다.

    '인식'과 '의식'이 다른 개념이라는 말에는 동의합니다만, '나'와 '자유의지'의 문제는 다른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마침 '의지'와 관련해서 제 생각과 흡사한 내용이 월터 프리만의 <뇌의 마음>에 들어있기에 인용코자 합니다.

    "먼저 목표 지향적인 행동들이 인간과 동물의 뇌 안에서 탄생하는 과정에 이름부터 붙여주고 싶다. 그런 목표 지향적인 행동들은, 동물이 아닌 인간에 의해 행해질 때에는 종종 '자발적인 행동'으로 불리곤 한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인간만이 의지의 힘으로 행동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의지에 대한 이런 식의 이해가 조금은 껄끄럽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나는 인간과 다른 동물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목표 지향적인 행동을 설명하는 신경계의 원칙 하나를 묘사하고 싶다. 그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메커니즘도 조금 더 단순한 동물로부터 진화해왔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메커니즘 안에서는 의지(will)가 없어도 의도(intent)가 작동할 수 있다. ... 나는 동물에게도 지각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동물에게는 자각은 없다. 자각은 인간에게서만 발달되었다. 의지의 작용에는 자기인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은 자발적으로 행위를 할 수가 없다."
  • ?
    장철순 2013.01.25 21:32
    우리가 어떠한 대상에 대하여 “과학적 탐구(논리적 탐구: 객관적 진실의 관점에서 대상의 내제된 원인적 속성으로 이해하거나 밝히는 방법)” 하는데 모형화(시스템)를 하여 다루는 것은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다루어진 것의 대표적인 것이 물리학에서의 물리이론체계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는 운동역학, 전자기역학, 열역학, 중력역학이 물리상태나 현상에 대한 기본적인 모형(시스템)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각각의 모형들의 공동적 요소가 모두 에너지(작용하는 힘)로 나타나고 다루어지므로 이를 모두 합쳐서 “동역학”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동역학의 근원적 원인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 것이 “양자역학”과 “초끈이론”과 같은 모형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양자역학”이나 “초끈이론”의 모형은 완성된 것은 아니라고 저는 보고 있는데, 제가 잘못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에 대한 것의 탐구에서도 모형론적으로 다루는 것은 매우 타당하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경우에는 물리법칙 내에서 존재를 하면서 생명체라고 하는 독특한 동역학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물질들을 생화학적으로 취합하여 신체를 이루고,(탄생과 성장) 이 신체를 물질 순환시켜서 이에 따른 생화학 작용으로 신체를 유지하면서 “생명현상”이라는 것으로 살아가며, 또한 이러한 능력을 유전분리를 하여 새로운 개체로 만들어내면서 살아가므로 물리적인 관점에서는 매우 독특한 상태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는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독특한 특성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생명체의 특성은 세포구조(단백질)와 유전자(DNA와 RNA)에 의한 것으로 밝혀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경우에는 진화론적으로 가장 진화가 된 생명체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생명현상(살아가는 현상)에서도 다른 생명체와는 구분되는 부분이 있으며, 이러한 구분이 겉으로 나타나는 것은 언어(정보교류), 직립보행, 도구사용 사회적 유기적 관계(사회적 역할) 등과 같은 것이며, 내적으로는 정신, 마음, 의지, 자존감 등과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특성은 대부분 인간의 두뇌에서 이루어지는 인식적 정보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가고 있고, 인식적 정보는 신체의 신경망에 의하여 처리가 되고 다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인간의 탐구에 대한 것을 복잡하지만 크게 보아 몇 가지의 모형의 관점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1) 단세포적 세포구조와 세포적 생명현상(세포의 생명현상에서 기본요소와 자체의 상태와 외부환경에 대한 대응 관계. 세포적 생명체 탄생론)
    2) 다세포 생물체의 발현과정 (세포진화론의 관점)
    3) 다세포 생물체에서 각 세포의 유기적 관계(단세포에서 분화과정과 각 기능적 세포의 발화와 각 세포기능에 따른 정보교류의 관계 )
    4) 뇌에서 이루어지는 정보의 상태와 처리 과정
    5) 인간의 뇌에서 이루어지는 신경학적 정보의 상태와 처리과정 (뇌의 구조와 각 구조에 따른 신경망구조)
    6) 감각신경계와 자율신경계와의 관계와 이에 따른 신경정보의 상태와 신경망 구조
    7) 인식에 따른 정보처리에 대한 분류 (의식, 무의식 정보처리 과정)
    8) 정신, 마음, 느낌, 의지, (뇌에서 이루어지는 인식적 정보의 선택과 판단의 정보처리 과정)

    이와 같이 몇 가지 모형을 저 나름대로 설정을 하고 이와 관련된 각 학계에서 발표되는 다양한 실험이나 이론들에 대하여 맞추어 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렇게 보아온 현재까지의 결과는 “의식”은 우리의 인식작용의 일부이며, 우리의 뇌의 작용에서는 “나”라고 하는 의지적 정보가 개입이 되는 것으로 풀이가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때 “나”라고 하는 것은 저의 해석은 세포적 생명현상에 따른 세포적 의지가 뇌에서 취합이 되어서 “나”라는 상태가 되고 “나”에 따른 의지가 관여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세포는 우리 몸의 전체 시스템에 의하여 작용을 하지만 분리를 하여 배양이 되는 것으로 보면 각 세포는 독립적으로도 살아가는 것으로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인 암세포로 암세포는 우리의 전체 시스템에 통제를 벗어난 독립적 생명체로 사는 것으로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전체시스템을 관장하는 것이 “나”라는 것입니다.
    이는 세포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다세포 생물체로 세포적 공동체적 삶을 산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나”라고 하는 것은 신체를 이루는 각 세포의 생명현상에 따른 공동체적 삶의 의지가 취합이 되어 복잡계적 창발현상과 같이 전체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나”가 아닐까 하는 것으로 해석이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보면 뇌에서 이루어지는 감정, 정신, 마음, 의지와 같은 것이 매우 합리적으로 풀이가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세포적 관계에 따른 정보의 취합관계가 실증적으로 증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이에 대한 것은 학계에서는 거의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만.
    하지만 일부 한의학계에서나 암전문 교수들은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얼마 전에 서울대에서 40년 넘게 면역학을 연구해온 명예교수인 소광섭박사가 림프관이외에 또 다른 관(管)이 있다는 것을 관찰하여 확인 발표 한 것으로 한의학에서 이를 “경략계”라고 하는데 소광섭 연구팀은 이를 ‘프리모(Primo)’라는 이름으로 발표를 한 것입니다. 물론 이에 대하여 의학계에서는 논쟁은 있지만 저의 견해로는 세포적 관계에 따른 정보가 유통되는 통로의 관이 아닐까 하는 것으로 조심스럽게 유추를 해보고 있습니다. 이는 ‘프리모(Primo)’를 제3 순환계의 일종으로 보는데 반해, 저의 견해로는 오히려 세포적 신경계 쪽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는 한의학에서 경락은 자극에 의하여 이와 관련된 세포가 활성화되는 것으로 보면 세포적 정보가 유통되는 통로로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즉 세포를 전체적으로 통제하는 신호전달 체계망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라고 하는 저의 해석은 세포적 생명현상에 따른 세포적 의지가 뇌에서 취합이 되어서 “나”라는 상태로 표상화 된 것이 아닐까 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혼자만의 상상입니다.
  • profile
    주민수 2013.01.25 21:32
    미선님// '지향성'이라는 개념은 참으로 이해가 쉽지 않은 개념인 것 같습니다. 월터 프리만은 <뇌의 마음>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지향성'이라는 개념은 1272년에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처음 묘사되었다. 인간과 다른 동물들이 자신의 성장과 성숙에 맞춰 행동하는 과정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지향'은 행위자 본인이 정의하고 선택한 미래의 목표 쪽으로 행동을 맞추는 것이다. 그것은 행동의 이유이며 설명인 '동기'와도 다르고, 의도에서 비롯되는 자각이며 경험인 '욕구'와도 다르다. ... 의미들이 성장하고 작동하는 그 과정이 바로 지향성이다. ... 지향성이라는 표현의 일상적 쓰임만 아니라 최근의 철학적 쓰임에서도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 하나가 바로 정신의 상태들이 의식적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 아퀴나스의 학설에서 말하는 지향성은 의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생각 대신에 의미를 창조할 행동을 요구한다." 그러면서 그는 통일성, 전체성, 그리고 목적 혹은 의도라는 지향성의 세가지 주요 특성을 얘기합니다. 한편 진화론과 관련해서 라마르크의 이론은 진화에서 의도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런데 진화에서 의도가 갖는 의미를 생각하다 보면 왠지 칸트의 합목적성이라는 개념이 떠오르는군요.

    장철순님// 가자니가가 '비의식'과 관련해서 얘기하는 '국소적 하위 체계'의 개념은 뇌 안으로 범위를 한정시킨 개념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신체적 활동을 {(각성) : (취중/몽유) : (수면/혼수) : (사망)}의 위상으로 풀어서 생각해볼 때 '국소적 하위 체계'를 굳이 뇌 안으로 한정시킬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즉 '국소적 하위 체계'의 개념은 뇌를 넘어서 우리의 몸 전체로 확장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작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뇌 전체가 아니라 몸 전체에 퍼져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즉 뇌과학뿐만 아니라 몸철학으로 주의를 돌릴 필요가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확장이 과연 세포의 수준까지 내려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의문이 남습니다. 한편 물리학자인 소광섭박사의 팀이 주장한 '프리모'라는 개념은 과거에 김봉한이라는 의사가 경락과 관련해서 주장했던 이른바 '봉한소체'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또한 해머로프와 펜로즈가 의식을 양자역학과 연관짓기 위해 제안했던 미세소관과의 관련성으로 인해 궁금증과 흥미를 더하는 주제입니다.
  • ?
    장철순 2013.01.25 21:32
    주민수 박사님 제 글에 이해를 하고 일부 동의 하는 의견을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저도 가자니의 비의식에 대한 견해는 뇌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현상 중에 것에서 의식이라는 한정된 관점에서 다룬 것이라는데 저도 동의를 합니다. 그러면 보다 넓은 관점에서 보면 뇌의 작용을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이에 대하여 저의 견해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이 풀이가 되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뇌는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대내외적 모든 정보를 처리를 하고 또 정보를 비축(기억)을 하고 이러한 정보의 처리에 따른 판단으로 정보적으로 대응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뇌에서 이루어지는 주요 역할은 정보처리를 하는 것이므로 정보의 관점으로 풀이를 할 수가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보면 뇌에서 다루어지는 정보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여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감각에 따른 외부정보에 대한 것으로 감각적 정보이고, 또 하나는 신체를 이루는 각 부분의 유기적 관계의 정보로 구별하여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의식”은 감각신경계가 작용하는 현상의 하나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이는 마취가 되거나 기절을 할 때 의식이 없다고 하며, 또한 의식적 작용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의식작용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인 마음, 정신, 의지, 감정과 같은 것은 무의적으로 이루어지는 정보와 함께 나타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정보는 어떻게 나타날까요?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이는 앞에서 구분한 것과 같이 보면 신체를 이루는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유기적관계의 정보에 의하여 나타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신체를 이루는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유기적관계의 정보는 무엇일까요? 신체는 우리의 몸 전체를 살아있는 상태로 유지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의 장기나 기능으로 서로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작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신체를 이루는 각 부분의 유기적 관계의 목적은 우리 몸이 생명현상으로 유지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유기적 관계는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이는 우리 몸이 살아가는(생명현상) 것을 보면, 어느 특정부분만 유기적 관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가 유기적으로 관계가 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몸 전체의 관점에서 유기적 관계가 조율이 된다고 할 수가 있으며, 이 조율은 신체를 이루는 각 부분의 정보가 뇌로 모여 이루어진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뇌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대내외적 모든 정보를 처리를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체를 이루는 각 부분은 기능에 따른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세포 단위로 보면 세포배양이나 암세포를 보면 세포는 독립적으로 살기도 하므로, 신체에 세포는 기본적으로 독립적으로 살지만 몸 전체의 조율에 의하여 각 기능을 발휘하면서 살아간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즉 세포의 관점에서 보면 몸을 기반으로 한 세포적 공동체적 삶을 산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세포적 공동체적 삶을 살기위해서는 각 세포의 상태가 조율되어 기능을 발휘하여야 하므로 각 세포의 상태 정보가 뇌로 전달이 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각 세포의 정보가 뇌로 어떻게 전달이 되어지는가에 대하여 궁금하던 차에 북한의 한의사 김봉한이 한의학의 관점에서 “경략설”을 제기하고, 우리나라의 소광섭 연구팀이 토끼에서 경략이라고 볼 수가 있는 “프리모”를 발견을 하므로 저는 이를 “세포적 정보망(세포적신경망)”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보면 뇌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현상에 대하여 매우 합리적으로 풀이가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간략히 설명을 하면 “대뇌피질”은 감각신경계의 정보가 처리가 되어지는 것이고, “세포적 정보”는 “소뇌”로 모이고, 세포적 정보(세포적 생명의지)가 취합된 것에 따른 것이 우리의 의지가 되며, 이 의지가 감각적 정보를 비교 판단을 하여 이에 대응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의지(취합된 세포적 생명의지)”와 감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정보의 판단이 “우리의 의지”와 부합하면 만족감이나 행복감으로 나타나고 부합하지 못하면 불안, 슬픔, 등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저는 보고 있으며, 이러한 비교 판단이 이루어지는 부분이 뇌에서 “시상하부영역”이라고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정은 대부분 시상하부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데, 이곳은 뇌의 중심부로 대뇌와 소뇌, 간뇌가 모두 모이는 부분이므로 뇌에서 이루어지는 정보의 되먹임현상에 의하여 이 곳에서 감정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의식의 기저에 있는 것은 “우리의 의지(의지적 정보)”라고 보며, 뇌의 인식작용에 대하여 세포적 단위까지 확대를 하여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나”라고 하는 주체적인 의지가 “세포적 생명의지”가 정보의 상태로 모인 것이 뇌에서 복잡계적 창발현상과 같이 “표상화”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은 우리는 알게 모르게 살고자 하는 본능(생존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우리의 모든 삶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풀이가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몰론 여기에는 근원적인 “생화학적 작용”과 “세포적 생명의지”와 “세포적 공동체 삶” 그리고 “생리화학적 작용기전”에 대한 원인적인 것이 함께 풀이가 되어져야 하겠지요, 이에 대하여 저는 “세포적 생명의지”는 생명체 탄생론(세포탄생론)으로 합리적으로 풀이가 되어지고, “세포적 공동체삶” 진화론에 따른 다세포생물체의 진화로 합리적으로 풀이가 되어진다고 저는 보고 있으며, 그리고 “생리화학적 작용기전”은 학계에서 발표가 되는 것으로 계속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보다 자세한 저의 견해는 기회가 있으면 다시 설명이 되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물리이론에 대한 것을 보면 저는 기존의 “양자역학적 서술방법”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원리적으로는 오류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물리적인 것을 수리적으로 다루는데 물리상태를 수리적으로 잘못 규정을 한 것에 따른 오류에 의하여 잘못된 원리적 개념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것은 지금 책으로 쓰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므로 책을 출간하기 전에 주민수 박사님의 조언을 듣고 싶은데 부탁을 드려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바쁘시지 않다면 도움을 청합니다.
  • ?
    장철순 2013.01.25 21:32
    미선님의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짧은 저의 의견에 궁금증 가지신 것에 동감 합니다.
    제가 인간에 대하여 이와 같이 풀이를 하게 된 것은 조금 복잡한 관점에서 풀이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자세히 설명을 드리려면 복잡하고 많은 분량의 글이 됩니다. 그러므로 간략히(?) 설명을 하면 다음과 같은 근거에 의한 것입니다.

    생리적인 관점
    우리는 생명체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신체)는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읍니다.
    세포는 모든 생명체의 기본구성요소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즉 단세포 생명체이든 다세포 생명체이든 기본적으로 세포단위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대부분의 생명체는 세포적 생리활동(생화학작용)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세포 생물체의 세포는 생식세포라고 하는 단일세포에서 같은 유전자를 가진 상태로 분화를 하여 다세포 생명체로 이루어진 상태로 살아갑니다.
    이를 진화론적으로 보면 단세포 생물체도 자체상태를 분할하는 유전번식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관찰이 되어집니다. 대표적인 것이 대장균과 같은 것이지요. 그리고 분할 번식을 한 세포도 독립된 생명체이지요, 그리고 이대 번식(증식된)한 세포도 같은 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볼 수가 있겠지요, 그러므로 대장균과 같은 세균은 기하급수적으로 증식을 하지요, 하지만 증식을 하는데는 외부의 환경과 물질이 필요하므로 번식과정에서 단세포들이 밀집이 되게 되면 중앙에 있는 세포는 물질(먹이)을 유입하는데 제한이 있게 될 것입니다. 즉 공간적으로 3차원적인 상태로 번식 증식이 되면 외각에 있는 세포와 중앙에 있는 세포의 환경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앙에 있는 세포는 외각에 있은 세포들 사이나 또는 세포들에 의하여 물질을 유입을 하여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세포적 협동적 삶에 의하여 다세포 생물체로 진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즉 같은 유전자를 가진 세포끼리 합동적으로 생존을 하기위하여 위치에 따라서 각 기능이 진화가 되어서 다세포 생물체로 진화가 되었을 것으로 볼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볼 수가 있는 근거는 지금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곰팡이의 종류일부는 번식을 하다가 먹이 환경이 좋아지지 않으면 서로 모여서 다세포 생물체와 유사하게 변하여 일부는 줄기와 같이 되고 일부는 생식세포와 유사하게 포자로 변화하여 번식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보면 같은 유전자를 가진 세포들끼리 번식을 하기 위하여 공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진화가 된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단세포 생물에서 다세포생물체로 진화가 이루어진 것의 단초를 유추할 수가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세포 생물체의 세포를 보면 세포를 띠어내어 배양이 되는 것을 보면 다세포 생물체의 세포도 독립적인 세포적 생물체로 볼 수가 있겠지요, 다만 다세포 생물체에서 각 세포는 다세포 생물의 전체적인 기능에 의하여 살아가는 것으로 진화가 되었으므로 단세포 생물체와 같이 살지는 않지만 배양이 되는 것으로 보면 분명히 다세포 생물체도 독립적인 생명현상으로 살아간다고 할 수가 있으며, 또한 다른 세포들과 유기적으로 상호관계로 살아간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보면 다세포 생명체는 세포적 공통체적 삶을 산다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즉 다세포 생명체의 각 세포는 위치와 기능에 따라서 공동체적 삶을 사는 것으로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생명체는 생명체 정의로 보면 자체의 생명현상 상태와 이 생명현상을 유전적으로 분화를 하여 살아가는 것이라고 되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다세포 생물에서도 기본적으로 이를 충족하는 것으로 진화가 된 것이라고 볼 수가 잇으므로 다세포 생명체에서는 번식을 전담하는 기능을 가진 생식세포가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즉 다세포 생물체의 세포의 대표로 생식세포가 번식을 담당하는 세포로 진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보면 다세포 생물체는 분명히 세포적 공동체적 삶을 산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다세포 생물체에서는 경쟁과 조화라는 두 가지 양상으로 살아간다고 할 수가 있으며, 이중에서 생명체의 정의로 보면 조화가 우선되는 세포적 삶을 산다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수가 있는 것이 세포가 자살을 하거나 백혈구와 같이 희생이 되는 세포가 있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경우에는 이기적이지만 측은지심이라는 것도 생기게 된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도 다세포 생명체로 세포적 공동체적 삶으로 살아간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세포적 관계
    그러면 다세포 생명체가 세포적 공동체적 삶을 산다면 각 세포의 기능과 상태가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살아야 하는데 이러한 것은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하여는 두 가지의 관점으로 볼 수가 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생리적인 것에서 생화학적 반응에 따른 것과 또 하나는 전체적인 조화의 관계로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생리적인 것에 따른 생화학적 반응은 기본적인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는 무리는 물질대사를 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먹이를 선택하거나 위험에 대처하는 것을 취하는 것은 분명히 공동적으로 대처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다세포 생물체로 진화를 하는 과정에서 외각의 세포는 외부환경에 대하여 인식을 하는 세포로 진화가 되고 인식에 따른 정보를 자체의 전체적인 것과 비교를 하여 판단을 하여 대응하는 것으로 진화가 되므로 인식적 정보를 처리하는 기능을 가지는 신경세포로 진화가 된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감각세포이겠지요, 그러면 감각세포로 유입되는 환경의 정보에 대응하는 것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이는 다세포 생명체에서는 전체적(공동적)으로 대응을 하여야 하므로 각 세포의 정보도 취합이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생명활동을 하는데 에너지가 부족하면 먹이가 필요하므로 먹이를 선택하고 섭취를 하라고 하는 것은 라고 신호를 보내는데 어디로 보내야 할 까요? 이는 감각정보가 처리가 되는 것이 뇌에서 이루어지므로 신체의 각세포의 상태에 따른 정보도 뇌로 보내지고 감각세포의 정보와 비교 판단을 하여 다시 신체의 각 기관의 세포로 전달이 되어지는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인식작용과 이에 따른 행위를 보면 인식적 정보가 되먹임 현상과 같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신경학적으로 밝혀진 것입니다. 따라서 다세포생물체에서 뇌가 형성이 되는 과정에 대하여도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모든 생명체는 생명의지와 인식기능으로 살아간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즉 생명의지는 생명체를 물질대사를 통하여 자체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거나 이러한 기능을 유전번식을 하여 계속유지를 하고자 하는 “지향성”이라고 할 수가 있으며, 이러한 상태를 생명현상이라고 하며, 이러한 생명현상을 하기 위하여는 생명체의 외부환경이나 생명체 자체의 상태를 인식을 하고 대응 하는 것으로 살아간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생명현상으로 살고자 하는 지향성을 생명의지라고 할 수가 있으며, 이를 실현하는 것은 인식행위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생명체는 생명의지와 인식기능으로 살아간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세포가 선택적으로 화학반응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이때 생명의지는 궁극적으로는 물질의 속성에 따른 화학적인 것과 세포적 구조에 의하여 가지게 된(발현된)것으로 보고 있읍니다. 이는 생명체 탄생론으로 어느 정도 설명이 되어진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저의 견해는 확실하게 가지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복잡하므로 생략을 합니다.
    따라서 세포적 생명의지는 생명체의 가장 작은 단위로 볼 수가 있으며, 다세포생물체에서는 세포가 공동적 삶을 산다고 보면 전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세포적 생명의지가 취합이 되어서 나타난다고 할 수가 있으며, 이러한 것은 뇌를 가진 생명체에서는 뇌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생존본능이라고 하는 것은 “세포적 생명의지(세포적 생명현상의 지향성)”가 정보의 상태로 취합이 되어서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가 있으며, 감각신경계의 정보에 따른 인식(인지, 기억, 판단) 관점에서 보면 선택적 인지, 또 판단의 과정에서 세포적 생명의지가 취합이 된 정보가 개입이 되는 것으로 볼 수가 있으므로, 저는 “세포적 생명의지”가 있으며, “세포적 생명의지”적 정보가 취합이 되어서 감각신경계의 정보나 뇌에 저장된 기억이라는 정보에 대응하는 것으로 나타날 때 “나”라는 것으로 인식적 정보의 상태로 “표상화”되어 나타난다는 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또한 “세포적 생명의지의 정보”가 뇌로 전달이 되어져 취합이 되기 위해서는 정보의 유통경로가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기존의 의학계(서양의학계)에서는 정신 마음과 같은 것에 대하여 아직은 알 수가 없다고 보아서 “의지”와 같은 개념에 대하여도 인정을 하고 있지 않지만, 동양의학에서는 모든 병은 마음에 의한 것이라는 관점에서도 다루므로 마음에 따른 “기”가 유통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게 되므로 이를 경락이라고 보는데, 북한의 김봉한 한의사가 경락계를 실존하는 것으로 주장을 하고, 우리나라의 학자들이 이를 관찰하여 “프리마”라고 하는 것으로 밝혀내므로, 저는 세포적 정보가 전달이 되는 유통망이 혹시나 이 경락계가 아닐까 하는 것으로 유추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저의 이러한 유추는 실증적으로 증명이 되어야 하겠지요, 그래서 저도 이와 관련된 다양한 학문적 발표에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는 중입니다.

    저의 설명이 제대로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짧게(?) 함축적으로 쓰려다보니 조금 난해한 글이 되어 죄송합니다.

    아무튼 저의 견해에 관심을 가져 주신 미선님께 매우 고맙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혼자만의 생각 이였는데 이에 대하여 설명을 하게 하여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 ?
    장철순 2013.01.25 21:32
    미선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기”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에 대하여 우선 사과를 드립니다.

    동양사고에서 가지는 개념들은 과학적으로 보면 모호함이 많습니다. 특히 “기”라 개념은 매우 포괄적 개념이므로 과학적 용어로는 적당하지 않는 것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다만 동양의 “경락”을 설명하기 위한 부분에서 사용된 것뿐입니다. 즉 기라는 개념은 동양에서는 여러 가지의 의미로 사용이 되는데 그중에 하나가 “흐름”이라는 것으로도 사용이 되므로 유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경락을 세포적 의지정보가 흐르는 통로가 아닐까 하는 관점에서 설명을 한 것이지 “기”에 대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기”라는 용어를 사용을 한 것은 저의 잘못입니다. 그러니 “기”에 대한 것은 제외를 하고 논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리(理) 개념은 원리적(原理的) 측면에서는 과학적으로도 합당한 개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양적 사고의 관점에서 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 인간에 대하여 탐구를 하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인류의 화두 중에 하나이므로 서로 공통된 의미로 다루어 질수가 있는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즉 분석학적으로는 서양의 과학적 사고가 합리적이지만 전체적인 관점(큰 틀)에서 원리적으로는 동양사상의 관점으로 다루어지는 것도 합리성을 가진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언어적 개념(단어의 의미)에서 보면 우리나라와 같은 곳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개념이 서양의 언어적 개념보다 분명한 측면이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번역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서양언어(주로 영어권)의 개념은 우리나라의 언어보다 모호함 있다고들 하므로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동서양을 따져서 논할 문제는 아니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언어적 개념은 근원적으로 모호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우리의 인식적 사고(주관적 사고)와 사회적 통념에 의하여 의미가 부여 되는 것이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언어적으로 다루거나 논하는데 역시 모호함은 내재 되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음성언어로 다루거나 문자언어로 다루는데 사용되는 용어(단어)의 의미(개념)나 문장적으로 이루어진 것에 대하여 다루는데는 단어적 개념이나 문장적 의미를 올바로 파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의지”라 용어(단어)도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가 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즉 의지는 어떠한 주체적인 것이 선택적으로 어떠한 것을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보면
    “세상의 모든 개체적인 것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 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화학반응을 보면 원자적 속성이나 분자적 속성에 따라서 선택적 화학반응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보면 원자나 분자들도 선택적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는 선택적 화학반응을 하며, 이는 원자나 분자가 가지고 있은 속성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물리적인 화학반응을 의지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는 조건이 갖추어지면 화학반응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명체에서는 이러한 생화학반응이 약간 다르게 일어납니다. 이는 생물체도 기본적으로는 물리적 화학반응에 의하여 생화학작용이 이루어지지만, 때에 따라선 물질을 선택을 하고 화학반응도 필요에 따라서 선택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명체에서는 이러한 선택적 반응을 “자유의지”라고 하는 것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의지를 인간상태에서만 국한을 시켜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즉 인간의세포도 나름대로 생명의지를 가지고 있다, 라고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포적 생화학작용만으로 보면 세포의 생명현상도 생화학반응에 따른 결과이지 의지적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생리학자들은 대부분 생명현상을 생화학적 기전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포 학자들이나 신경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세포의 생명현상을 생화학적 기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고는 있지 않습니다. 즉 세포는 생화학적 기전을 바탕으로 살아가지만 또 다른 것이 개입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세포적 생명의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체 탄생론에 대하여 연구를 하는 학자들은 어떻게 유기화합물이 세포와 같은 상태에서 생명의지를 가지게 된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 탐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에 대하여 현재까지는 유기화합물중에 다양한 단백질의 구조에 의하여 생체막이 형성이 되고, 막내부와 외부환경 물리적으로 격리된 상태가 되므로 막내부의 물리적환경(화학적 변수)에 의하여 막에 분포한 단백질이 변수를 가지므로 물질대사가 선택적으로 이루어지고, 생체막이 여러개 모인 상태로 다중막으로 이루어지므로 내부의 각막내부의 생화학반응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이과정에서 세포내부의 다양한 물질상태인 효소, RNA, DNA, 등이 형성이 되므로 세포가 탄생이 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러한 종합적인 과정에서 세포적 생명의지가 발현되는 것이 아니가 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아직까지는 이론적으로 정립되어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관점에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세포적 생명의지는 분명히 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세포적 생명의지가 인간상태의 의지와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다세포 생물체로 세포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포적 생명의지가 취합이 된 것이 “나”아닐까하는 것은 세포의 상태를 보면 우리는 분명히 세포적 공동체적 삶을 산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외부환경에 대응하는 것도 공동적으로 대응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이는 생리적 활동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즉 우리 몸의 수많은 세포들은 각기 위치에 따라서 자기 역할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감각세포에 따른 외부환경의 정보에 대하여 대응하여 공동적으로 대처를 하면서 살아갑니다. 예를 들면 몸에 에너지가 부족하게 되면 음식을 찾게 되고, 이 과정은 신체의 여러 기관이 공동적으로 행하게 됩니다. 즉 음식을 찾기 위하여 우선 감각세포가 동원이 되고, 음식물을 찾으면 음식물을 만들거나 먹는 행위로 이루어지며, 음식물을 먹는 행위도 입과 소화기관과 합동으로 음식물을 이를 행하게 됩니다. 이밖에도 우리의 신체는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갑니다. 따라서 신체는 각부분의 기관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데 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컨트롤 센타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뇌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신체의 각 장기는 주변장기들의 환경에 따라서 스스로 대응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도 대응을 할 필요가 있으므로 이에 대한 정보를 뇌로 보내야 할 것입니다. 이때 뇌에서 이러한 신체의 정보를 개별적으로 대응을 하는 것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외부환경에 대하여는 전체적인 것으로 대응을 하여야 하므로 이때는 신체의 각 기관의 정보가 취합적으로 이루어져서 공동대응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때 정보가 취합이 되어져 외부환경에 공동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라는 것으로 작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신체 내부적으로 보면 “나”라는 존재는 없습니다. 단지 세포와 각 기능에 따른 각장기의 상태로의 세포적 의지외이에 따른 정보만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외부에 대하여 공동적으로 대응을 할 때 정보가 취합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나라는 것인 의지적 정보의 상태로 표출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이 우리나라의 어느 부분에 있는 것입니까? 아니지요 우리나라 전체의 지역과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것을 대함민국이라고 하고, 다른 나라와 구분이 되어질 때 대한민국이 의미를 가지는 것과 같이 외부환경에 공동적으로 대응을 하는 취합된 정보에 의하여 “나”라는 것이 표출이 되고 지기인식으로 인식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세포적 생명의지는 인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자율신경계와 같이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세포적 생명의지를 취합하는 것을 인식을 하므로 “나”라는 자기인식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취합된 세포적의지 정보가 취합이 되어서 전체적으로 대응을 할 때 대응되는 정보의 상태가 “나”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감각적 정보(오감에 따른 정보)에 따른 것을 비교 분석 판단을 하거나 유추적으로 추리를 할 때 개입되는 취합된 정보에 의하여 “나”라는 것으로 표출, 또는 인식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라고 “자각”을 하는 것은 뇌에서 이루어지고, 세포적 생명의지에 따른 세포적 자각과는 다른 상태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월터 프리만”의 “자기인식”은 감각적 정보에 대응하는 취합된 의지적 정보에서 유효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으며, 세포가 자기인식을 하는 것은 세포적 차원 또는 기능적 세포차원에서의 문제라고 봅니다. 이는 “나”라는 자기인식과 세포적 자기인식은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내요, 저도 복잡하고 난해해서 저도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하지만 탐구하는 재미는 있네요, 저의 실생활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된지만· · · · ·

    긴 글을 너무 자주 올리는 것은 아니지 모르겠습니다.
    주민수 박사님과 회원님들께 죄송합니다.
  • profile
    주민수 2013.01.25 21:32
    맞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펼치는데 사과는 필요없겠지요.^^
    여기서 잠깐, 세포를 국소적 하위 구조로 보는데는 아직 문제점/가능성이 있는것 같습니다.
    문제점은 미선님이 얘기했듯이 세포 기반의 의지 문제가 세포간의 협력/충돌 현상에 대해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성은 세포간의 상호 작용이, 물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근거리 질서(short-range order) 외에도 원거리 질서(long-range order)의 형태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원거리 질서의 경우라면 세포간 상호 작용의 거리가 상당히 길어질 수 있겠고 그렇다면 이 문제는 clustering의 문제로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런데, 아~ 카우프만의 <다시 만들어진 신>에 자기조직화와 관련해서 세포 문제에도 적용이 가능한 임계 네트워크에 대한 내용이 있는것 같군요.
  • ?
    장철순 2013.01.25 21:32
    제가 사과드리는 것은 이 마당은 지정된 책을 중심으로 책의 내용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가 이를 확대해석을 하여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것과 같은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인문학적으로는 동서양의 모든 것에 대하여 서로 논의가 되어지는데 반해 과학적인 것에 대하여 논할 때 동양사상적인 것으로 논하게 되면 이는 매우 비과학적인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 의견을 전개하는데 쓸데없이 동양사상의 관점에서 다루어지는 “경락”이나 “기”로 예를 들은 것은 제가 실수를 한 것과 같은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따라서 제가 사과를 드리는 것은 저의 자격지심에 의한 것이므로 개의치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주민수 박사님의 의견에 저도 동의합니다. 물리적 관점에서 신체적 작용을 보면 근거리 질서(short-range order) 와 원거리 질서(long-range order)의 형태로 볼 수가 있겠지요. 그런데 이러한 질서가 단순히 생리적인 생화학적 반응에 따른 것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근거리 작용(국소적 작용)은 생리적인 생화학적 반응에 의하여 이루어질 수가 있지만, 원거리 작용이나 전체적인 작용의 관점으로 보면 이는 생리적인 생화학적 반응으로 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에는 어떠한 정보형태가 교환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카우프만(Stuart Alan Kauffman)의 <다시 만들어진 신(Reinventing theSacred)>이라는 책에서 복잡계적 창발현상으로 자연계를 설명을 하는 것에 대하여 저는 전적으로 동의를 합니다. 다만 이 책에서 말하는 “나”와 “신”, “우리”라는 개념에 대하여 기본적으로는 동의를 하지만 일부 다른 견해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다른 견해가 “나”와 “신” 그리고 “우리(주로 인간사회의 관계성)”에 대하여 복잡계적 창발현상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정의를 할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의 일부가 제가 말한 “나”라는 것입니다. 이때 “나”는 세포적 생명의지가 정보의 상태로 뇌에서 모여 취합이 되어서 창발현상과 같이 전체에 따른 하나의 의지로 발현이 되고 감각신경계의 정보와 대응 될 때 “나”로 자기인식이 이루어지므로 “나”라는 “의지”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창발현상은 대부분 많은 가지 수(단순하지만 많은 집합적 관계)에서 발현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세포적 생명의지에 따른 정보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많은 세포 수에 따른 것으로 정보의 상태로 뇌에서 모여 취합이 되어져 나타날 때 창발 현상적으로 나라는 의지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증거로 뇌의 작용의 예로 들어서 설명을 한 것입니다. 다시 이에 대하여 간략히 설명을 하자면 뇌는 정보의 상태를 처리하는 기관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호르몬” 또는 “신경전달물질”과 같은 물질적인 것이 개입이 되어있지만 이도 정보전달을 하는 매개물질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가 있으므로 뇌는 정보처리를 하는 기관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뇌작용을 보면 우리가 인식은 하지 못하지만 신체대부분을 콘트롤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가 있으므로 세포간의 근거리작용은 생화학반응에 따른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여도 뇌와 작용에서는 정보가 전달되어지는 것으로 볼 수가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포간에 있어서 협력과 충돌과정에서도 전체적인 어떠한 정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암세포와 같은 것은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정상세포가 어떠한 원인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정상세포가 독립된 단세포 생물체와 같이 변화여 무한증식을 하여 발생을 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암 발현인자의 관점에서 보면 암 발현인자는 매우 많은 것이 관련이 되어져 있다고 하는데 이 암 발현인자가 세포의 협력적 정보처리를 하는 부분에 영향을 주어서 세포가 협력적 정보를 취하지 못하므로 세포적 생명의지만으로 충실히 생리 활동을 하므로 단세포 생명체와 같이 증식이 되는 것이 아니가 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는 세포내부의 기능이 다되거나 망가지면 이 세포는 소멸하므로 암세포로 전환이 안 되지만 세포끼리의 협력적 정보 시스템만 망가지면 세포의 생리기능은 온전하므로 협력적 정보 없이 세포적 생명의지에 충실하여 암세포로 전환이 되는 것으로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세포적 경쟁이나 충돌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포의 경쟁이나 충돌로 보면 암세포는 보다 많이 발생을 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는 것으로 보면. 세포적 협력적 정보는 분명히 있어야 하는 것이 되고, 세포적 협력적 정보는 국소적인 정보와 함께 전체적인 정보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며, 국소적인 정보와 전체적인 정보가 조화를 이루는데 뇌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세포는 세포적 생명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 세포적 생명의지정보가 뇌로 모여 협력적 정보로 이루어지고 다시 각 세포로 전달이 되므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면서 또한 협력정보에 의하여 희생되는 세포도 발생이 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다세포 생물체는 세포적 공동체적 삶으로 살아간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는 생명체는 물리적인 화학작용으로 살아가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에 세포적 생명의지라는 것으로 표현을 하는 것으로 다세포 생물체에서는 의지적 작용이 생리적 정보로 작용으로 되는 것으로 유추를 하여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포적 생명의지정보가 뇌로 모여 감각신경계의 정보와 대응하여 나타날 때가 “나”라고 하는 자기인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하는 것입니다. 이는 의식이 있을 때만 자기인식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합리적인 것은 “나”라는 것의 발현과정도 합리적으로 설명이 되어지고, 뇌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현상이 합리적으로 풀이가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즉 인식, 의식, 무의식, 본능, 다양한 감정, 정신, 자유선택의지 등에 대하여 합리적으로 풀이가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이렇게 이루어지는 생리학적인 생화학적 관계로 증명이 되어야 하겠지만 현상적인 관점에서는 대부분 합리적으로 풀이가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한번 “세포적 생명의지정보”가 취합된 것이 “나” 또는 “나의 의지”라고 설정을 하고 위에 나열된 것들을 풀이를 하여보면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과 “우리”에 대한 것도 복잡계적 창발현상으로 나름대로 풀이가 되지만 이에 대한 것은 기회가 주어지면 설명을 하겠습니다.

    또 긴 글이 되었네요! ^ ^ · · · · · · ·

  1. 제64차 인천백북스 '장하석의 과학철학' 발제 후기

    Date2015.02.19 Category칼럼 By주민수 Views1963
    Read More
  2. 老子 2章

    Date2014.11.01 Category칼럼 By주민수 Views2889
    Read More
  3. 인지과학 인천모형의 제안-8 : 마음이란 무엇인가?

    Date2014.02.22 Category칼럼 By주민수 Views2699
    Read More
  4. 인지과학 인천모형의 제안-7 : 의식이란 무엇인가?

    Date2014.01.27 Category칼럼 By주민수 Views3044
    Read More
  5. 인지과학 인천모형의 제안-6 : 생명이란 무엇인가?

    Date2014.01.27 Category칼럼 By주민수 Views2186
    Read More
  6. 인지과학 인천모형의 제안-5 : <마음의 탄생> 요약-3

    Date2014.01.20 Category칼럼 By주민수 Views1819
    Read More
  7. 인지과학 인천모형의 제안-4 : <마음의 탄생> 요약-2

    Date2014.01.20 Category칼럼 By주민수 Views1910
    Read More
  8. 인지과학 인천모형의 제안-3 : <마음의 탄생> 요약-1

    Date2014.01.12 Category칼럼 By주민수 Views2216
    Read More
  9. 제55차 주민수 박사님 <현대과학철학 논쟁> 발표자료(첨부)

    Date2013.09.15 Category칼럼 By김형태 Views3228
    Read More
  10. 인지과학 인천모형의 제안-2

    Date2013.07.06 Category칼럼 By주민수 Views2358
    Read More
  11. 가자니가의 <뇌로부터의 자유>를 읽고-1

    Date2013.06.23 Category칼럼 By주민수 Views2132
    Read More
  12. 인지과학 인천모형의 제안-1

    Date2013.05.06 Category칼럼 By주민수 Views2515
    Read More
  13. 제50차 <인문학에게 뇌과학을 말하다>의 발제 자료

    Date2013.04.20 Category칼럼 By주민수 Views2855
    Read More
  14. 진공 놀이공원의 앨리스와 상대론

    Date2013.02.28 Category칼럼 By주민수 Views2242
    Read More
  15. <작심하기>를 공부하기-6

    Date2013.02.24 Category칼럼 By주민수 Views2058
    Read More
  16. <작심하기>를 공부하기-5

    Date2013.01.25 Category칼럼 By주민수 Views3775
    Read More
  17. <작심하기>를 공부하기-4

    Date2013.01.07 Category칼럼 By주민수 Views2749
    Read More
  18. <작심하기>를 공부하기-3

    Date2012.11.19 Category칼럼 By주민수 Views3551
    Read More
  19. <작심하기>를 공부하기-2

    Date2012.11.11 Category칼럼 By주민수 Views3072
    Read More
  20. <작심하기>를 공부하기-1

    Date2012.11.04 Category칼럼 By주민수 Views2857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2 Nex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