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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5 02:05

이종필 박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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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이종필 박사와 함께 대담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박사님과 나눴던 이야기들 회원님들과 공유하기 위해 게재합니다.

다음주 이종필 박사 강연 때 아래 내용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도 담아봤습니다.

요즘 근황은, 이번주에 책 '물리학 클래식'이 출판되고,
4년전 백북스에서 했던 수학아카데미 수업을 정리해 '샐러리맨 전 차장이 아인슈타인이 되기까지' 책 출판과 개인홈페이지 구축을 준비하고 계신답니다.

방송일 9월 9일(일) 오전 8시, 오후 7시 FM 90.7
방송파일 필요하신 분은 메일 주소 남겨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팟캐스트
http://cast.zauin.kr

▶이종필 입자물리학 박사 

1971년: 부산 출생
1990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입학
2001년: 동 대학원 박사 졸 (입자물리이론)
2001년~2010년: 연세대 연구원, 고려대 연구조교수, 고등과학원 연구원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특별연구원

1.박사님 안녕하세요.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입자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는 물리학자 이종필입니다. 반갑습니다.

2.물리학 얘기만 듣고도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물리학이 우리 일상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요즘 누구나 갖고 계시는 스마트폰이나 차량 내비게이션은 GPS 위성을 이용해서 손쉽게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데요. GPS 위성은 지상고도 2만 km 상공에서 시속 약 14,000km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의 영향을 받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약해지면 시간이 빨라집니다. 이 효과가 GPS 위성의 경우 하루에 약 백만분의 45초 정도 되고요. 반대로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물체가 빨리 움직일 때 시간이 느려집니다. 이 효과는 하루에 약 백만분의 7초 정도입니다. 이 두 효과를 고려하지 않으면 지상에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가 없겠죠. 이처럼 우리가 우주로 나아가려면 상대성이론을 반드시 잘 알아야만 합니다.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는 물리학 이론이 우리 일상생활과 직결되는 대표적인 사례지요.

3.최근에 물리학계에서는 우주생성 비밀 밝혀 줄 '신의 입자' 힉스 존재가 확인 돼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요. 힉스입자는 무엇입니까?
힉스 입자는 다른 모든 소립자들에게 질량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는 입자입니다. 20세기의 과학자들은 세상 만물을 설명하기 위해 총 17개의 입자를 도입해서 표준모형이라는 것을 만들었는데요. 여기에는 전자나 중성미자, 쿼크, 광자 등등의 입자들이 모두 포함됩니다. 이 입자들은 표준모형 속에서 독특한 대칭관계를 만족하는데요, 그 때문에 질량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새로운 입자를 하나 도입해서 그 독특한 대칭관계를 깨뜨려 다른 입자들이 질량을 가질 수 있게 했습니다. 그렇게 도입한 새 입자가 바로 힉스 입자입니다.
표준모형이 구축된 지가 벌써 50년 가까이 됐는데요. 지금까지 표준모형의 다른 모든 입자들은 실험적으로 검출했는데 오직 힉스 입자만 관측되지 않아서 과학자들을 무척 애태우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힉스 입자의 발견이 전 세계 과학계의 큰 경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4.힉스입자 발견으로 우주생성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하는데요. 어떤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입니까?
사실 힉스 입자 자체로서는 우주의 생성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언론에 좀 과장되게 알려진 내용이죠. 힉스를 발견한 유럽원자핵연구기구 CERN의 입자가속기인 대형강입자충돌기는 빅뱅 직후 약 백억 분의 일초 정도 되는 순간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는 백억 분의 일초가 굉장히 짧은 시간이지만 우주의 역사에서는 그 이전에도 매우 중요한 많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아무튼 이번에 힉스 입자가 발견됨으로 인해서 표준모형이 실험적으로도 완전히 완성된 셈입니다. 하지만 힉스 입자는 그 자체로 좀 모순적인 면을 갖고 있습니다. 힉스 입자의 질량은 양자역학적인 보정을 통해서 조정을 받게 되는데요. 그 보정효과가 무한대로 급격하게 커집니다. 표준모형 안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전혀 없어요. 그래서 과학자들은 표준모형을 넘어서는 새로운 물리학을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습니다.

물론 지금 CERN에서 발견한 새 입자가 정말로 표준모형의 힉스 입자인가를 확실히 규명하는 것이 일단 가장 중요하고요. 이 점이 명확해지면 과학자들은 표준모형을 넘어서는 새로운 물리학을 탐색하는 데에 매진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힉스 입자는 그 자체가 표준모형의 완성임과 동시에 새로운 물리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이번 힉스입자 발견이 일각에서는 ‘현실적인 물리학과 다소 거리가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던데요. 이런 논란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원래 현대의 물리학은 인간의 거시적이고 직관적인 경험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이미 1세기 전에 20세기가 시작될 때 원자 이하의 미시세계를 탐색하면서 양자역학이 태동했는데요. 양자역학의 세계는 인간의 일상적인 직관과 너무나 다른 현상을 많이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현실적인 물리학’이라는 말 자체가 좀 맞지 않는 말이고요. 원래 현대 물리학은 그런 맥락에서 현실적이지 않은 면이 많습니다. 그래서 딱히 힉스 입자만이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니지요. 보통 사람들이 특히 현대물리학을 어렵다고 느끼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직관적이지 않기 때문이죠. 사실 그건 물리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천하의 아인슈타인도 양자역학의 확률론적인 해석을 거부하지 않았습니까. 당시에는 초일급 물리학자들에게도 현대물리학이 참 어려웠습니다. 그건 솔직히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6.그동안 이종필 박사께서는 서울대학교에서 입자물리학을 전공하고, 과학을 현 사회와 접목한 칼럼을 많이 쓰셨는데요. 칼럼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아마도 제가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에 매진했던 것이 큰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가 1990년대 초반이었는데요. 당시에도 물론 대정부투쟁 이런 것을 주로 했었지만 학생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모색하는 노력도 있었거든요. 그중의 하나가 부문계열운동이었는데 특히 이공계의 특성에 맞는 학생운동의 방식과 내용을 전문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흐름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님들에게서도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때부터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많이 가졌고요. 박사학위를 받고 보니까 내가 배운 전문지식을 사회와 함께 나눠야한다는 일종의 책임감, 의무감, 그런 게 생기더군요. 학생운동 시절에 제가 멋모르고 했던 그런 말들이 이런 의미였구나 하고 체감되기도 했고요. 어떻게 보면 제가 오래 전에 내뱉은 말들에 대한 업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로 어떤 칼럼들이 있었는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2003년에 이공계 위기와 관련해서 쓴 글이 인터넷에서 크게 화제가 됐었습니다. 아직도 그 글 때문에 저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꽤 계시더군요. 그리고 2005년 황우석 사태 때 쓴 글이 인터넷 한겨레 톱기사로 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아직 논문조작 사실이 드러나기 전이라서 여론의 99.9%가 황우석 교수를 지지하던 상황이라, 나머지 0.1%에 속했던 저로서는 그때 황우석 교수를 비판하는 글을 쓰기가 솔직히 쉽지는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신문사에서도 그런 이유로 익명으로 기사를 냈고요.

이후에는 주로 인터넷 신문인 오마이뉴스에 글을 많이 썼습니다. 2007년 대선에 즈음해서는 정치지도자가 과학에 대해서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하는지 그런 내용도 썼고, 구체적인 정부정책에 대한 비평이나 과학적 사건에 대한 해설기사도 여기저기 썼고요. 가장 최근에는 힉스입자 기사와 그와 관련된 과학토크 기사가 있겠네요.

7.물리학자의 눈으로 보는 사회현상은 과학적으로 풀이가 되는 건가요?
사회 모든 현상에 과학적 원리가 숨겨져 있다고 저는 생각하지만, 구체적인 사회적 현상을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의 원리로 직접 설명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최근에 학문의 융합이나 통섭 같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는데요. 그런 기획이 성공한다면 사회현상과 과학적 원리 사이의 간극은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제가 주목하는 것은 구체적인 과학적 사실이나 원리라기보다는 과학적 방법론인데요. 즉 과학을 과학적으로 만드는 그 독특한 메커니즘을 사회의 다른 방면에 투사해 보는 것입니다.

아주 단적인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한국 음식이 세계화되는 데에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가 정량적인 조리법이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정량적 분석과 그로 인한 재현가능성은 사실 과학적 활동의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과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식 조리법의 정량화가 가장 시급한 문제가 되는 거죠.

8.지난 2009년에는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라는 책을 저술하셨습니다. 한국 정치·사회문화를 비판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셨는데요. 어떻게 집필하게 됐습니까?
2007년 대선을 앞두고서 대통령이 되려고 하시는 분들이 과학적인 마인드로 세상을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몇 편 썼습니다. 그걸 기본으로 해서 다른 내용들을 좀 더 보충해서 책으로 내게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다분히 실험적인 책이었는데요. 방금 말씀드렸던 문제의식, 그러니까 과학적 방법론을 사회 구석구석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그런 호기심에서 시작한 작업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한국에는 유능한 싱크탱크가 거의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 정치적 아젠다가 즉흥적이면서 예측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측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 같은 과학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현실이 좀 못마땅해 보였던 거죠. 그래서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를 한 번 해 보자 하는 의도에서 그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어느 대학 교양학부에서 과학전공자를 교수로 뽑는다길래 지원한 적이 있었는데요. 이 책 때문에 제가 운동권이다, 자기네 학과에서는 정부에 반대하는 이런 꼴통 운동권을 뽑을 수 없다,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겠지만, 제가 여러 모로 아직 모자라기 때문에요,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좀 아픔이 있는 그런 책입니다.

9.노무현대통령의 서거를 과학적으로 풀이한 칼럼을 오마이뉴스에도 게재해 가장 많은 조횟수를 기록하는 등 관심을 받았는데요. 그 때 상황을 좀 이야기 해주세요.
과학적으로 풀이한 것은 아니었고요. 제 취미가 시사평론이라서 그런 글들을 오마이뉴스에 가끔 씁니다. 노무현 서거 때도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노무현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런 고민을 정리한 글이었습니다. “그들은 제2의 노무현 탄생이 싫었다.”는 제목의 기사였죠. 그게 벌써 3년 전이군요. 사건이 있던 그날 5월23일 마침 저는 외국 학회 때문에 밤 비행기로 이탈리아로 출국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날 낮에는 워크숍도 있었는데요. 아침에 그 비극적인 소식을 듣고서 하루 종일 멍했었죠. 내가 오늘 출국해도 되는 건가 뭐 그런 생각도 들었고요. 국민장 때도 이탈리아에서 인터넷으로만 볼 수밖에 없었고요.

그런데 밖에 나가 있으니까 좀 더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이 사건의 가려진 본질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의 기득권 세력들은 노무현 같은 개혁적인 정치인이 계속 나오는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고 그래서 노무현에게 없는 죄라도 덮어 씌우려고 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던 거죠.

이탈리아에서 일주일간 학회 참석하고 돌아온 뒤에 마침 예비군 훈련이 있었어요. 그날 훈련 끝난 뒤에 후배들하고 맥주 한잔 한 뒤에 집에 가서 밤새 쓴 기사가 그 기사였습니다. 한 6시간 썼던 거 같아요. 사실 그 당시에는 오마이뉴스에 거의 1년 가까이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근 1년 만에 밤새워가며 기사 써서 보냈는데, 막상 그 기사가 오마이뉴스에서는 아주 돋보이게 실리지는 않았습니다. 조회수도 얼마 안 나오고요. 그래서 그날 낮에는 계속 속상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사가 오후부터 네이버 뉴스캐스트에서 비중 있게 나갔습니다. 그 뒤로 조회수가 급격하게 올라갔죠. 그래도 며칠 전에 보니까 그 기사 지금까지 조회수가 40만 정도밖에 안 되더라고요. 제가 작년 10.26 서울시장 선거 때 쓴 기사 조회수가 80만 넘게 나왔거든요. 오마이뉴스보다 네이버가 제 기사를 띄워 준 셈이죠. 제가 오마이뉴스에 2006년부터 글을 써 왔는데요,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10.글이 게재가 되고, 어떤 일들이 벌어졌습니까?
오마이뉴스는 인터넷으로 회원가입하면 누구나 기사를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사를 본 독자가 원고료를 해당기자한테 줄 수 있도록 돼 있어요. 그 노무현 기사에 독자 원고료가 좀 많이 붙었습니다. 2천 명 정도 되시는 분들이 약 720만 원 보내주셨는데요. 오마이뉴스 역대 3번째인가 그래요. 그 때문에 유명세를 좀 치렀죠.

그리고 며칠 뒤에는 노무현 분향소가 있던 대한문 앞에다가 누가 제 기사를 플래카드로 인쇄를 해서 내걸었다고 하더군요. 오마이뉴스의 상근기자가 저한테 전화를 해 줘서 저도 알게 됐는데요. 지나가던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읽고 있는데 반응이 좋더라며 저한테 소감도 묻고, 그게 알고 보니까 전화 인터뷰였어요. 그래서 그 내용이 다음날인가 기사로 또 나가기도 했고요. 그 기사 나간 뒤에 플래카드를 인쇄하신 분이 저한테 오마이뉴스 회원 쪽지를 보냈더라고요. 허락 없이 인쇄해서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는데 저로서는 제가 더 고마운 상황이었죠.

얼마 뒤에 추모행사에 참석하려고 저도 대한문 앞에 갔다가 그 플래카드도 봤습니다. 기분이 묘하더군요. 제가 예전에 학생운동 할 때 대자보 문안을 좀 썼었는데 꼭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제 기사를 종이에 인쇄해서 사람들한테 나눠주기도 했었어요. 저도 그거 하나 받아들고 집에다 잘 보관해 뒀습니다.
그리고 원고료는 그게 제 돈이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더라고요. 저도 참 욕심이 많은 사람

인데 이상하게 그 돈만큼은 내가 쓸 돈이 아니구나 싶어서 전액을 연말에 노무현 재단에 기부했습니다. 그 기사는 지금 생각해 봐도... 제가 앞으로 다시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그런 기사였습니다.

-네티즌들과 한 포털사이트를 통해 물리에 관련된 질문을 주고받기도 하고,
시민기자활동도 하고 있는데 연구 분야 외에 이렇게 사회활동을 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한국에서는 아직 과학문화라는 것이 안정적으로 형성돼 있거나 정착되지 못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 같은 전공자들이 먼저 나서서 이것저것 좀 해야 할 일들이 많지 않을까, 그런 맥락에서 전문적인 과학적 내용으로 사회와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고요. 과학과 상관없는 일반적인 사회현상에 대한 시사평론은 말하자면 일종의 취미생활입니다. 그래서 사실 별로 전문성도 없고요. 그냥 평범한 소시민의 상식적인 생각들을 정리한 글이죠.

포털사이트에 글을 쓴 것은 네이버에서 <오늘의 과학>이라는 코너를 진행할 때 20여 편 쓰기도 했습니다. 저 말고 다른 분들도 함께 필진으로 참가했었는데요. 그 코너의 반응이 좋았어요. 나중에 책으로 나오기도 했고요. 그때 그 코너 책임자가 잘 아는 학과 후배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과학> 시작할 때 그 친구 부탁을 거절하기도 힘들었죠.

-지난 2009년부터는 대중들에게 물리학을 가르치기도 위해 고등수학부터 대학수학까지 일반인을 대상으로 가르쳤는데요. 반응이 어땠습니까?
그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은 어느 인터넷 독서동호회 때문인데요. 그 동호회 회원들이 과학에 아주 관심이 많아서 교양과학책들을 상당히 많이 읽으셨더라고요. 그런데 그 중 한 분이 과학적인 내용을 수학적으로도 직접 이해해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는 일반상대성이론에 나오는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이라고 있습니다. 질량이 있으면 시공간이 휘어진다는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을 집약한 방정식인데요. 이것을 직접 수학적으로 풀어보고 싶다고 하셔서, 그러려면 고등학교 수학부터 다시 해야 한다, 그렇게 제가 말씀을 드렸는데 그게 게기가 돼서 한 달에 한 번, 12개월에 걸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안하신 분의 이름을 따서 그 프로젝트를 “샐러리맨 전 차장이 아인슈타인이 되기까지”라고 불렀는데요. 당시 그 동호회 회원 60명이 수강신청을 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덕분에 12번 강의를 무사히 마쳤고요. 그 과정을 제가 따로 원고로 정리해 뒀는데요. 빠르면 올해 안에 책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11.이종필 박사께서 처음 물리학을 선택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본래 기초과학에 흥미가 있으셨나요?
어릴 때에는 로봇태권V나 마징가Z를 만드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중학교 때는 학교 친구들하고 일종의 스터디그룹을 만들었는데 그게 “사이언스 클럽”이었습니다. 일본에서 나온 문고판 책 읽고 토론하다가 나중에는 같이 놀러만 다녔었죠. 고3 때는 제어계측공학과나 컴퓨터공학과도 잠깐 생각해 봤는데, 역시 물리학과에 가야 보다 근본적인 과학의 이치를 알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른데, 그때는 서울대 물리학과가 나름 인기학과였습니다. 학력고사 점수 배치표를 보면 최상위 3개과 중에 하나였거든요. 저런 데 가서 공부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은 생각도 좀 있었죠.

12.물리학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물리학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만물의 이치를 다루는 학문인데요. 특히나 제 전공인 입자물리학은 그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고 그 속에서 자연의 질서와 조화 혹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참 매력적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물리학은 일종의 예술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제 주변에도 보면 물리학자들 중에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런 현상이 우연이 아니라고 봐요.

-물리학을 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호기심이 많은 것 같은데요. 이종필 박사의 학창 시절은 어땠나요?
고등학교 때는 학교 문예부 활동을 했습니다. 학교 축제 때 시화전이나 시 낭송회 같은 걸 했었죠. 그리고 학교 외부에 있던 문학 써클 활동도 했었고요. 그건 독서토론 써클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동네 화류계에서 좀 잘나가던 편이었죠.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고등학교 때의 그런 경험들이 지금 제가 글쓰기를 하는 데에도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13. 기초과학이 가지는 가치에 비해 한국의 기초과학은 대중들의 관심이 적은 것도 사실이고, 그 현실이 좋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어떻습니까?
네이버 <오늘의 과학> 연재할 때인데요. 거기에는 초등학생들이 많이 들어옵니다. 한번은 이런 댓글이 달렸더라고요. “저 같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세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성인 기자분들도 저한테 똑같은 요구를 하십니다. 힉스의 발견이나 입자가속기 관련 뉴스가 나오면 기자분들이 저한테 항상 요구하는 게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달라”는 겁니다. 글로 원고청탁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고요.

아시다시피 이 세상에는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인간으로서 꼭 알아야 할만한 가치 있는 것들이 무척 많습니다. 그런데 유독 왜 기초과학은 초등학생이 이해하는 수준만 허용이 되는 건지 저로서는 그걸 이해할 수가 없어요. 기본적인 인문학적 소양이 없는 것은 부끄럽게 여기면서도 학창시절에 다 배웠던 기본적인 과학지식을 모르는 것은 오히려 당당하게 여기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예를 들면 고사성어를 잘 모르면 무식하다고 구박받지만 열역학 제2법칙을 모른다고 흉보는 사람은 없어요. 오히려 그걸 아는 게 이상하다고 여기는 풍토 아닙니까. 지난 20세기만 해도 과학문명의 세기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더하겠죠. 그런데 한국의 식자층이 과학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우리는 여전히 야만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14.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일단은 우리가 과학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생력을 갖출 기회를 잡지 못한 이유가 크다고 봅니다. 그리고 대중의 인식이 바뀌려면 먼저 깨어 있는 사람들이 나서야 하는데요. 여기에는 정부나 과학자들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나라에서 과학자들을 대접해 주지 않으니까 사회 전반적으로 과학이나 과학자들을 좀 우습게 아는 경향도 있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자들이 정말 사회에서 존경받고 인정받기 위한 노력, 사회와 소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탓도 무시할 수 없죠.

15.외국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는 것과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것이 사회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하는데요. 어떤 현실입니까?
뭐...한마디로 말하자면 국내 박사는 인간취급을 못 받는 게 현실입니다. 특히나 최근 대학가에 영어강의 열풍이 불면서 미국 박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최상위권 대학에서도 영어로 전공강의하면 알아 듣는 학생들이 극소수라고 하는데 왜 영어강의에 목을 매는지 저로서는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요즘은 대학에서 교수초빙 공고를 낼 때 영어강의 우대 조건이 많이 붙습니다. 심지어 해외경력 몇 년 이상을 지원조건으로 걸기도 하고요. 그만큼 국내 박사들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겠죠.

16.현재 꾸준히 얘기가 나오는 이공계 위기론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10여 년 전부터 나돌던 이공계 위기가 전혀 해결되지 않고 지금까지 밀려 온 셈이죠. 지금은 의대 아니면 누가 이공계 가려고 합니까. 대학에서 구조조정 같은 거 하면 제일 먼저 손대는 곳이 순수학문분야잖아요. 물리학과가 퇴출 0순위입니다. 학생들 취업에 도움도 안 되고 밖에서 연구비도 많이 못 따오기 때문이죠. 언제부터 대학이 이렇게 대기업을 위한 직업훈련소로 전락해버렸는지 그저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얼마 전에 듣기로는 서울대 물리학과도 요즘에는 대학원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별로 없어서 특히 실험실 운영하는 데에 애를 먹는다고 하더군요.

17.이공계에 대한 편견, 인식이라고나 할까요? 어떻게 하면 좀 바꿀 수 있을까요?
일차적으로는 정부에서 획기적으로 정책을 바꿔야 합니다. 돈이 없다는 건 핑계에 불과합니다.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인드가 없는 거에요. 대통령 공약사항인 4대강 사업한답시고 22조원이나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그 돈이면 힉스입자 발견한 가속기를 약 2대는 건설할 수 있고요, 지금 화성에 가 있는 NASA의 큐리오시티 10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좀 더 직설적인 예를 들자면, 이웃나라 일본은 자국 물리학자인 고바야시와 마스카와 교수에게 노벨상을 안기려고 1994년부터 입자가속기와 입자검출기를 건설합니다. 가속기 건설에 300억 엔, 검출기 제작에 100억 엔, 연간 유지비 30억 엔 해서 총 700억 엔 정도 들었는데요. 한국 돈으로 1조원도 안 되는 돈이죠. 이 실험은 2000년부터 본격적인 데이터 분석을 시작해서 2008년에 결국 고바야시- 마스카와 교수한테 노벨물리학상을 안깁니다. 10년 넘는 세월 동안 1조원도 안 들여서 노벨상을 만들어 낸 셈인데요. 우리도 22조원 아니 10조원이라도 10년 동안 기초과학에 쏟아 부었으면 노벨상 하나는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요?

예전에 있었던 BK21 사업 같은 것도 연간 3천억 원으로 7년 동안 2조원 정도밖에 안 썼습니다. 지금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하고 있는 과학벨트의 기초과학연구원도 본 궤도에 올랐을 때 한해 예산이 전체 연구단 다 해서 7천억 원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냥 7천억 원이라고 하면 천문학적인 액수로 보이겠지만요. 우리나라가 한해 국방비로 쓰는 돈만 20조원 가까이 됩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때 수립한 국방개혁 2020 방안을 보면 2006년부터 15년 동안 총 680조원 정도 쏟아 붓기로 돼 있었거든요. 지금은 많이 축소가 됐습니다만, 15년간 680조원이면 매년 40조원이 넘는 돈입니다. 만약에 기초과학분야에 매년 40조원이 아니라 4조원만이라도 쏟아 부었으면 우리나라에서도 진작에 노벨상 받았을 거에요.

물론 예전에 비하면 절대적인 액수가 증가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국군장병들 먹이고 재우고 무장시키는 데에는 아낌없이 돈을 쓰면서도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기초과학을 이렇게 홀대하는 것은 그만큼 기초과학을 절박한 문제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나마도 돈 몇 푼 쥐어주면서 항상 투자효과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너네한테 천 원 줄 텐데, 1년 뒤에 얼마로 갚아 줄래? 라고 요구합니다. 그런데 기초과학에는 그런 거 없거든요. 기초과학은 주식하듯이 돈 넣고 돈 먹는 그런 투기가 아닙니다. 한 국가가 문명국가로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꼭 지출해야만 하는 비용입니다. 장병들 먹이고 재우면서 2년 뒤의 투자효과 이런 거 요구하지는 않잖습니까? 과학자들에게 쓰는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생각해 보시면 지금까지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학자들을 우대하고 책임졌던 경우가 거의 없어요. 가장 가까운 예가 세종대왕이 집현전 열어서 학자들 모은 정도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대한민국 현대사를 보더라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이런 것은 했지만 국가가 국책사업으로 학문을 장려하고 학자들을 보살핀 예가 없습니다. 마침 지금 대선정국이 한창입니다만, 앞으로 대통령이 되시려는 분들은 꼭 이점을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18.대체적으로 물리학 연구 환경은 어떻습니까?
-응용과학은 지원이 많은 편이나 기초과학은 상대적으로 지원이 덜 된다고 하던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야 물론 기초과학이 당장에 돈벌이가 안 되기 때문이죠. 공학 쪽에서 만지는 돈은 저희보다 최소 10배라고 보시면 됩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정부에서 생각하는 기초과학과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기초과학의 개념이 다르다는 겁니다. 정부가 생각하는 기초과학은 외국에서 로열티를 받을 수 있는 원천기술을 의미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저희처럼 우주와 만물의 근본적인 이치를 따지는 입자물리학 따위는 사실 정부가 생각하는 기초과학의 카테고리에서 생색내는 정도로만 위치할 뿐이죠.

기초과학은 비유적으로 말해서 원석을 캐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기업은 그것을 가공해서 돈을 버는 역할을 하는 거고요. 그러니까 정부는 당장에 돈벌이는 안 되지만 원석을 캐내는 그런 분야를 지켜줘야 하거든요. 그게 바로 정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한국은 정반대이죠. 대부분의 정책들이 별로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 대기업들을 위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초과학의 존재이유는 돈벌이가 아닌데 그걸 전혀 이해를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기초과학은 말하자면 인간 인식의 경계를 확정짓는 프런티어입니다. 우리 인류가 어디까지 알고 있다, 이것을 결정짓는 역할을 하는 것이 기초과학이란 말이죠. 프런티어는 그 뒤에 뭐가 있는지를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기초과학이 나중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 이런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겁니다. 인식의 경계로서의 기초과학은 기존의 모든 질서와 관습, 말하자면 게임의 룰을 완전히 새롭게 세팅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폰이 좋은 예가 되는데요. 한국 업체들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편리한 기술을 개발할 것인가를 고민하잖아요. 그런데 아이폰은 그 편리함이라는 개념 자체를 바꿔버린 겁니다. 그것이 인식의 프런티어가 하는 역할이에요. 경기의 규칙을 완전히 바꾼다는 거죠. 규칙을 새롭게 만드는 자와 남이 만든 규칙을 충실히 따르는 자가 게임을 한다면 그 결과는 안 봐도 뻔한 거 아니겠습니까.

기초과학에 대해서 또 하나 잘못된 관념이 있는데요. 흔히들 기초과학은 당장에는 필요 없지만 나중에 중요하다, 뭐 그런 생각들을 갖고 있습니다. 제 생각엔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예를 들면 후쿠시마에서 원전사고가 났을 때 방사성 물질이 어떻게 확산하는지 우리는 전혀 예측도 못하지 않았습니까? 쓰나미나 기상재해에 대한 정확한 예측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우주공간 자체가 이미 중요한 영토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모든 문제가 기초과학과 곧바로 직결되는 문제라는 거죠. 기초과학은 당장의 국민생명과 국가안보를 위해서도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결국은 정책 결정권자의 철학, 인류사의 발전과정과 그 속에서의 기초과학의 위치에 대한 통찰력과 마인드가 가장 중요합니다.

19.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기초과학분야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큰데 반해
(노벨물리학상 수상도 심심치 않게 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는 지원에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기초과학분야를 더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무엇보다 기초과학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많아져야 합니다. 어느 분야든 자생력을 가지려면 임계점 이상의 인력이 필요한데, 한국의 기초과학 인력은 그 임계점에 한참 못 미치는 것 같습니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 물리학과의 교수 숫자를 보면요, 제일 많은 서울대가 45명 선입니다. 카이스트가 30명 내외이고 연고대가 20명 조금 넘는 수준이에요.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는 100명이 넘는 물리학과가 꽤 있습니다. 2008년에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고야 대학의 경우 professor 직함을 단 사람이 60명 정도 됩니다. 그 중에서 입자물리 전공이 20명 가까이 되고요.

제가 이런 말씀 드리면 어떤 분들은 한국의 인구나 경제규모로 봐서 그 정도면 되지 않냐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방금 말씀드렸듯이 임계점 이하의 숫자는 별 의미가 없어요. 그리고 남들 하는 만큼만 하면 절대로 남들을 앞설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한국이 성공한 분야들은 말도 안 되게 비대칭적으로 인력과 자원을 집중해 왔습니다.

예를 들면요, 조선 산업은 한국이 세계최강입니다. 세계 10대 조선소에 한국 조선소가 5개나 들어 있고요, 세계 1위부터 4위는 모두 한국 업체입니다. 상위권에 있는 현대, 삼성, 대우 중공업의 경우를 보면요. 각 회사별로 선박설계 전문 인력이 1000명이 넘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 설계인력이 일본 전체를 합쳐서 2000명 수준이거든요. 한국과 일본의 인구나 경제규모, GDP 등등을 고려하면 한국의 선박설계인력은 말도 안 되게 많은 셈입니다. 물론 그 때문에 조선업의 중복과잉투자 논란도 있지만, 어쨌든 이렇게 우수한 인력이 많기 때문에 한국이 조선업 세계 1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겁니다. 만약에 우리가 일본과 비교해서 경제규모나 인구비례에 맞게 선박설계인력을 유지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반도체 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도 안 되게 공격적이고 비대칭적인 투자를 해서 메모리분야 세계1위를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인구비례니 경제규모니 하는 평균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얼마나 그 분야를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하는 비전과 철학과 마인드의 차이입니다.

한국은 자원이 별로 없기 때문에 결국은 고급인력으로 먹고 살아야 합니다. 21세기는 지식기반 경제사회라고 하지 않습니까? 결국 우리가 살 길은 고급인력에 대한 비대칭적이고 집중적인 투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니에요. 매년 국방비의 10%만 아껴서 기초과학에 써도 연간 2조원을 쓸 수 있습니다. 2조원이면요, 그 중의 1조원으로 연봉 1억 원짜리 교수 1만 명을 고용할 수 있는 돈입니다. 나머지 1조원으로 건물이나 장비를 갖출 수 있고요. 기초과학분야의 가장 성공적인 연구소라고 할 수 있는 카이스트 부설 고등과학원의 경우 1년 예산이 200억 원도 안 됩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돈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고 마인드와 철학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우리나라가 이제는 그렇게 가난한 나라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는 국회에서 기초학문 특별법이라도 좀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초과학이나 기초인문학을 국가에서 책임지는 거죠. 기초학문이 선진국에 비해 한참 처져 있기 때문에 굉장히 비대칭적인 투자를 해야 엇비슷하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20.최근 광고를 봐도 "아이들에게 과학을 돌려주자" 라는 문구도 있듯
인재개발은 꼭 필요한 부분인데 실상은 어떻습니까? 정부의 지원도 있나요?
영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많이들 진행하고 있는데 잘 되는 경우도 있지만 단순한 선행학습에 집중하거나 좋은 상급학교 진학이 목표인 경우가 많습니다. 제 생각에는 공교육의 초점이 영재들에 맞춰지면 안 되고요, 영재들이 배출될 수 있는 전체적인 확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상황은 보통의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여건도 안 되거든요. 한국의 공교육은 사실상 상위권 학생 중심으로 돌아가잖아요.
그리고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만, 대학에서도 ‘교육’이라는 개념이 점점 사라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키워서 길러낸다기보다는 학생이 똑똑하고 능력이 있다면 알아서 크겠지 하는 생각이 의외로 팽배해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 대학가는 취업이 지상과제이기 때문에 대학의 학사 일정이 기업들 일정에 종속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인재개발은 불가능합니다. 인재양성의 가장 기본단위가 대학인데요. 대학교육이 정상화되지 않고서는 기초과학의 발전도 요원한 일입니다.

21. 최근에는 교통방송 <여균동의 오늘>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세상이 과학이다>라는 코너에 출연하고 계신데요. 어떤 것 입니까?
세상만사에 숨겨진 과학적인 원리를 따져보는 코너입니다.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33분부터 50분까지 진행되는데요. 이제 겨우 10회 정도 했습니다. 안철수 현상을 과학혁명에서의 패러다임 변화와 비교해서 따져 보기도 했고요, 핵폭탄의 원리나 양학선 선수 3회전의 비밀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뭐 그런 내용입니다. 저도 라디오 방송은 처음이라 아직은 좀 적응할 시간도 필요한 거 같습니다.
그리고 제 방송분량만 따로 모아서 팟캐스트에 올리고 있습니다. 아이튠즈 팟캐스트에서 이종필로 검색하시면 오늘의 과학 코너에 쉽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22.이번에 책도 저술했는데요. 어떤 내용입니까?
책 제목이 <물리학 클래식>인데요. 이 방송 들으실 때쯤에 아마 서점이나 인터넷에 깔리기 시작했을 겁니다. 이 책은 20세기에 출판된 물리학의 위대한 논문 10편을 골라서 알기 쉽게 설명한 책입니다. 음악하시는 분들은 지구가 멸망할 때 지구를 탈출하는 우주선에 바흐의 평균율 피아노만 챙기면 클래식 음악을 모두 복원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우주선에 20세기의 물리학 논문을 10편만 싣는다면 어떤 논문을 실어야 할까 하는 생각으로 책을 쓰게 됐습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트랜지스터, 팽창하는 우주 등 20세기 물리학의 중요한 성과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논문을 통해 발표되었는지 해설한 책인데요, 한마디로 말해서 현대물리학의 원전을 쉽게 풀어서 썼습니다. 약간 어려운 면도 있겠지만, 물리학에 대한 기본적인 사전 지식 없이도 읽을 수 있도록 썼으니까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3.가만히 보니 이종필 박사가 참 바쁘게 사는 것 같은데요. 일하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아까 말씀드렸던 “샐러리맨 전 차장이 아인슈타인이 되기까지”를 무사히 출판하는 게 우선 시급하고요. 다른 두 분들하고 청소년 대상으로 물리학 강의한 것을 책으로 펴는 작업이 하나 있고요, 로저 펜로즈의 <시간의 윤회>라는 책을 번역했는데 그건 아직 초벌번역 상태라 마무리 작업이 좀 필요합니다.
그리고 천문학자인 이명현 박사님 등과 함께 과학문화 전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주 거창한 건 아니고요. 대중 강연이나 과학토크처럼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일들부터 하고 있고요. 마침 지난달에는 과천과학관 천체투영관에서 과학토크가 있었습니다.

오마이뉴스 대선 칼럼진 일도 이제 좀 열심히 해야죠. 여야 각 후보들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으니까요, 특히 기초과학의 중요성이나 아까 말씀드렸던 마인드의 문제, 그런 것들을 좀 정리해 볼 생각입니다.

24.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일단 제가 물리학자이니까... 일생일대의 좋은 논문을 쓰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습니다. 2009년 노무현 기사 같은 그런 물리학 논문을 하나 남기는 것이 학자로서의 욕심입니다. 먼 미래의 누군가가 21세기의 위대한 논문을 소개할 때 자기 논문이 포함되는 게...그게 아마 모든 학자들의 욕심일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한국에서 과학문화를 새롭게 만들고 뿌리내리게 하는 데에도 계속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한국에서도 일종의 르네상스 운동 같은 게 필요하다고 봐요. 인문학이나 과학이나 예술이나 모든 분야를 초월해서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한국도 진정한 문명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그 속에서 과학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나중에라도 한국형 싱크탱크를 하나 만들고 싶어요. 이건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를 쓸 때의 문제의식이기도 합니다. 그걸 통해서 과학과 사회의 다른 분야를 진정으로 통섭시키는 일을 한번 해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세계적으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싱크탱크를 길러 내는 게 장기적인 계획 중의 하나입니다.
  • ?
    송윤호 2012.09.05 02:05
    김 기자 ~
    아주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었구려 ^^
    잘 읽었어요 ^^
  • ?
    임석희 2012.09.05 02:05
    벌써부터 물리학클래식 정기강연이 기다려집니다..
    그래도 되지요? ^^
  • ?
    이기두 2012.09.05 02:05
    “샐러리맨 전 차장이 아인슈타인이 되기까지”를 오랫동안 공을 드리고 계시네요.

    좋은 책을 곧 만나게 되는 것을 기대합니다.
  • profile
    김형태 2012.09.05 02:05
    김주현 회원님 고맙습니다.
    소중한 이야기를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배려 해 주신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녹음파일 부탁드립니다. 제 메일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rlqjs@daum.net

    이종필 박사님과의 인터뷰 질문과 답변 모두, 명문장이라 감탄하면서 읽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거인 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세상과 소통하시는 모습에서 귀한 배움을 얻습니다.
    이종필 박사님의 원대한 포부를 응원합니다.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 ?
    문경수 2012.09.05 02:05
    주현..

    어디서나 그 열정이 꽃을 피우는 구나.

    인터뷰 내용 잘 보고 간다.

    잠깐 기자시절 생각나네..ㅎㅎ
  • ?
    현영석 2012.09.05 02:05
    열정이 빛과 소리를 내는 군요.이종필박사-김주현기자 인텨뷰.
    공부 잘하는 사람이 물리학 할수 있다.이종필박사 경력란에 대학때 데모 엄청했다는 이야기는 빠졌군요. 물리 즉 세상이치를 알면 12.19대선도 보인다 이야기 일듯. 저는 연구년중에 9월부터 3개월동안 카자흐스탄 자동차산업 프로젝트가 생겨 매일 열심히 책상 앞에 붙어있습니다. SKYPE 시작, ID가 yshyun88입니다. 같이 공짜영상통화 한번 해 보시지요.
  • ?
    김현주 2012.09.05 02:05
    자신이 잘 할 수 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참으로 멋있고 행복한 일입니다..
    인천에서도 그런 분을 뵐 수 있겠네요..
    이종필 박사님의 좋은 강의 기다리겠습니다..
    김주현 기자님 감사합니다..
  • ?
    김주현 2012.09.05 02:05
    반갑습니다^^ 따로 메세지 주신 분들을 포함해 방송파일을 전달했습니다. 이종필 박사께서 파일을 갖고 있으니 추후에 받아보실 분은 박사님께 문의하면 될 것 같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박사님 목소리가 좋으신데 직접 들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조만간 박용태 피디님 집 양평에서 출판기념회 겸 식사를 조촐하게 할 예정인데.. 시간되시는 분은 오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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