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작심하기>를 공부하기-5

by 주민수 posted Jan 2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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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신체적 활동과 관련해서는?
{(각성) : (취중/몽유) : (수면/혼수) : (사망)}이라는 위상으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겠고?인간의 의식적 활동과 관련해서는 {(무의식) - (잠재의식) - (의식) - (초의식)}이라는 모형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1879년 윌리엄 제임스는 다음과 같은 전제를 내놓습니다. "의식과 뇌의 작용은 서로 영향을 미치며, 의식은 그 상호작용에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도 아니고 뇌의 작용과 일치하지도 않는다." 월터 프리만은 <뇌의 마음>에서 의식은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행동을 통제하지 않지만 동역학의 차원에서 보면 의식은 '오퍼레이터'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의식이 과거의 행동이 나온 그 뇌동역학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한 의식은 그 어디에도 없는 한편으로 그 어디에나 존재하면서, 뇌의 각 부위들이 공급하는 컨텐츠를 가공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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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체는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자극을 받아들여 정보를 처리하고 필요한 반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감각과 지각이 자각에 이르지 않는 이유는 일상생활에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함인데 크리스 프리스처럼 이를 단순히 뇌가 침묵한다거나 거짓말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온당치 않아 보입니다. 자각에 이르지 않는 이러한 처리과정은 헬름홀츠처럼 '무의식적 추론'이라 부를 수도 있겠고 <뇌로부터의 자유>의 가자니가처럼 '비의식'이라 부를 수도 있겠고 또는 <의식의 재발견>의 후베르트처럼 '인지적 무의식'이라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름들은 의식의 앞에 '()-'나 '()-'라는 부정 접두사를 붙임으로 해서 마치 정보처리 과정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습니다.?
?? 가자니가는 <뇌로부터의 자유>에서 의식적 경험은 수많은 하위 체계를 지닌 모듈 방식으로 체계화되어 있으며 또한 의식이 뇌 전반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뇌에는 모든 종류의 국소적 의식 체계가 존재하고 이 체계들이 하나의 무리를 지어 의식이라는 것을 형성한다는 뜻입니다. 하위 체계의 국소적 경험이 비록 의식의 표면에 떠오른 자각의 수준은 아닐지라도 이들을 의식과 무관한 심지어는 상반된 듯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뇌를 통한 '나'의 입장에서 본 관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사실 신체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들 또한 엄연히 인지과정의 일부이며 그 기초로 볼 수 있는 현상들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종류의 처리과정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없애고 신체의 활동을 지나치게 뇌에 의존하여 해석하는 듯한 인상 또한 떨쳐버리기 위해서도 적절한 이름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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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에 관한 모형 중 흥미로운 것은 에델만의 의식 모형입니다. 뇌를 가진 동물의 의식을 한 부류로 규정할 수 없다고 본 에델만은 일차의식과 고차의식으로 나눌 것을 제안합니다. 에델만 모형의 연장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의식 또는 비의식이라 부르는 하위 체계의 국소적 경험에 대해서는 '0차의식'이라는 이름이 적합해 보입니다. 그리고 뇌를 가진 동물 중에서 인간을 제외한 동물의 의식을 '1차의식'이라 부르고 '자의식'을 경험하고 추상화가 가능한 인간의 의식은?동물의 의식인 '1차의식'에 한 단계가 더해진 '2차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다만 인간에 국한시켜 얘기하는 경우라면 굳이 '2차의식'이라는 세분화된 표현을 쓰지 않고 기존의 '의식'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해도 혼동이 없으리라 봅니다.?
?? 우리는 신체의 운동이 정보처리의 결과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때 받아들인 정보가 충분치 않다면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정보를 빌려와서 기워 잇게 되는데 이렇게 정보와 정보를 기워 잇는 과정에서 착각이 유발되고 창작이 보태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보와 정보를 이어서 이야기를 지어내는 과정은 1차의식에서는 볼 수 없고 2차의식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입니다. 가자니가는 이러한 2차의식에 의한 해설 과정을 '좌뇌라는 해석기에 의한 설명'이라고 그의 책에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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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에게 뇌과학을 말하다>의 2장에서 저자는?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항상 실제 모습 그대로는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저자는 착시의 예를 들면서 이런 착시들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내가 잘못된 정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데도, 즉 대상의 실제 모습이 어떤지 알고 있는데도 나의 뇌는 계속해서 나에게 거짓 정보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나란히 뻗은 길을 바라볼 때 원근법처럼 갈수록 좁아 보이는 것 또한 뇌에 의한 거짓 정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들려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면이 있다. 2장을 마감하면서 저자는 이 장에서 평범하고 건강한 뇌도 우리에게 항상 세계에 대해 옳은 그림만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었고 우리는 우리 주위의 물리적 세계를 직접적으로 대할 수 없으므로 눈과 귀 같은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인 조잡한 감각정보들을 기초로 뇌가 세계에 대한 추론해야 하는데, 이런 추론은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으며, 게다가 우리의 뇌가 알고 있는 사실 중에는 우리의 의식적인 정신에 결코 도달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세계에 대한 옳은 그림'에 관해 구체적인 설명없이 뇌가 '조잡한 감각정보들'로부터 추론하므로 잘못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조잡한 감각정보'라는 번역의 원어는 'crude sensations'로 '원감각'으로 번역해야 옳을 듯싶다. 그리고 '뇌가 알고 있다'는 표현은 '뇌'를 마치 독립된 행위주체로 파악하도록 오도할?가능성을 안고 있어 보인다. 또한 뇌가 알고 있는 사실이 의식적인 정신에 도달하는 경우는 단지 5%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이런 현상이 일상생활의 효율과 관련해서 무슨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설명을 생략함으로써 인문학 교수를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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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게 뇌과학을 말하다>3장에서 저자는 나의 신체는 물리적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이지만 다른 대상들과 달리 나는 내 신체와 특별한 관계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는 닐센 등의 실험을 통해 내 손이 뇌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나는 내 손이 지금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지각하지 못한다고 얘기한다. 아마도 3장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실험은 1983년에 리벳이 행한 실험일 것이다. 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것과 같은 동작을 자발적으로 하기 직전에 뇌의 활동에 특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바였다. 리벳의 연구에서 참신했던 점은 피험자들에게 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때가 언제였는지 알려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손가락을 들어 올리려는 충동은 손가락이 실제로 들리기 0.2초 전에 일어났다. 그러나 뇌의 활동 양상은 손가락이 들리기 0.5초 전에 이미 변화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피험자가 손가락을 들어 올릴 것임을 알려주는 뇌 활동은 피험자가 그런 충동을 느꼈다고 보고하기 0.3초 전에 일어났다는 말이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선택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우리의 뇌가 이미 선택을 내렸다. 따라서 그 순간에 우리가 선택하는 것처럼 경험하지만 사실은 착각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선택한다는 것이 착각이라면, 우리가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는 생각도 착각이다. 여기서 저자는 '뇌가 선택을 내린다'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다시 한번 '뇌'를 독립된 행위주체로 파악하도록 유도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자각' 이전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해석을 포기한 채 이를 단순히 뇌의 침묵과 기만으로 치부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탐구의 문을 또한번 스스로 닫아버리고 만다. 자유의지와 이에 따른 선택의지가 착각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착각의 의미와 과정에 대해 좀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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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행동을 선택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뇌는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동이 자유의지로 선택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우리가 선택한다는 것을 좀더 일찍 자각하지 못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이런 무의식적 선택은 헬름홀츠가 말한 무의식적 추론과 흡사하다. 우리는 눈앞에 놓인 대상에 대해 뇌가 무의식적 추론을 내리기 전까지는 그것을 지각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가 하려는 행동에 대해 뇌가 무의식적 선택을 내리기 전까지는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다. 저자는 방금 전에 자유의지는 착각이라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이것이 행동이 자유의지로 선택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착각이라고 생각하고 부정하는 것일까? 이랬다저랬다 하는 저자로 인해 답답해 하는 인문학 교수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저자는 뇌의 무의식적 선택이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는데 여기서 '무의식'이란 '의식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무의식이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인가? 만일 저자가 좀더 종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더라면 충분히 '0차의식'의 개념에 이를 수도 있었을 텐데 저자의 부족한 탐구 정신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대목이라고나 할까??내 의도가 적중했다면 지금 독자 여러분은 약간 혼란스러운 상태일 것이다. ... 우리의 뇌가 세계를 탐험할 때 가동되는 복잡한 과정을 우리에게 감추기 때문에 마치 세계를 직접 접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이다. ~ 저자의 의도가 우리로 하여금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었다니... 어쨌든 그의 의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뇌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감추고 있다는 저자의 설명은, 그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의 뇌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 가자니가가 <뇌로부터의 자유>에서 과학자가 뇌 촬영을 통해?아는 것은 다른 개인들의 뇌에서 관찰되는 평균적인 활동을 바탕으로 뇌 활동이 어느 위치에서 일어나는지를 확률적으로 계산한 결과일 뿐이라고 한?말은?깊이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인문학 교수는 아마도, 닐스 보어가 그의 학생을 야단쳤던 말로, 저자에게 빈정거릴지 모른다.
"
You are not thinking. You are just being log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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