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작심하기>를 공부하기-4

by 주민수 posted Jan 0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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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물리학의 해석 특히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존재가 인식을 규정한다는 고전물리학의 관점을 뒤집어서 인식이 존재를 규정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한편 의식에 관한 현대적 관점도 심리가 물리를 규정한다는 고전적 해석을 뒤집어서 물리가 심리를 규정한다고 해석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모형들이 그러하듯이 이러한 모형들 또한 시대적 양상을 반영한 것으로 진정으로 올바른 모형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존재와 인식의 문제이든 심리와 물리의 문제이든 결국은 '나'라는 존재와 '세계'라는 존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인문학에게 뇌과학을 말하다>1부 두 번째 장의 제목은 "정상적인 뇌가 우리에게 세계에 대해 말해 주는 것" 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주장하는 상태에서 받아들이는 세계가 과연 올바른 세계일까 하는 의문을 던집니다. 최근 들어 의식에 관한 문제가 뇌의 문제로 환원되면서 결국 세계에 대한 해석이라는 문제 또한 뇌의 문제로 귀착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따라서 뇌에 관한?입장이 다음 세 가지 중 무엇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보입니다.
(1) {나? = } : (나는 나의 뇌와 동일한 존재이다.)
(2) {} : (나는 나의 뇌가 만들어낸 존재이다.)
(3) { } : (나는 나의 뇌를 넘어서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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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감각이 멀쩡하고 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더라도 우리가 물리적 세계와 직접적으로 접촉할 방법은 없다
. 우리는 세계와 직접 접촉한다고 느끼겠지만, 실은 이것도 뇌가 만들어 낸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눈
, , , 혀와 몸 등의 감각기관을 통해 물리적 세계로부터 신호를 받아들이고 있음에도 이는 직접적인 접촉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서 '접촉'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contact'가 아니라 'access' 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 신경계를 구성하는 신경섬유들이 전기를 사용하여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1826년에 요하네스 뮐러가 '특수 신경 에너지'라는 이론을 제안했다. 상이한 신경마다 자신의 출처를 뇌에 확인해 주는 일종의 '코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특수 신경 에너지' 이론은 마치 고속도로를 운행하는 차가 종착지의 톨게이트에 도착했을 때 그 차의 출발점을 알리는 통행권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과 흡사하다. 그런데 신경 전류에 이와 같은 통행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뇌는 특정한 신호가 신체의 어느 부위에서 출발했는지를 과연 어떻게 알아내는 것일까?
? 전기 에너지는 광속으로 흐른다고 알려졌기에 세계를 지각하는 과정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무방했다. 1852년에 헤르만 헬름홀츠는 신경전달 속도를 측정했고 감각 뉴론을 통해 신경 충동이 1미터 전달되는데 0.02초 걸린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와 함께 그는 감각의 인지에 소요되는 '지각 시간'이라는 것을 측정했는데 이 시간은 0.1초가 넘게 걸렸다. 결국 헬름홀츠는 세계의 지각이 직접적이지 않으며 '무의식적 추론'에 따른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대상을 지각하려면 먼저 뇌가 감각에 도달한 정보를 기초로 대상의 모습이 어떻게 될지 추론해야 한다는 것이다. 헬름홀츠는 훗날 "쇼펜하우어와 그의 추종자들(예컨대 프로이트)이 같은 이름으로 말하려 했던 무척이나 모호하고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사상과 혼동되지 않게 하려고" '무의식적 추론'이라는 용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무의식을 비롯해서 감각과?지각에 대한 개념의 정의와 사용은 다양하다 못해 자못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어쨌든 여기서는 잠시 '무의식'에 관한 에델만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무의식을 가정하는 것이 프로이트의 심리학이론들을 한데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원칙으로 프로이트 시대 이래로 신경증과 최면 상태, 착행증 등에 관한 연구로부터 충분한 증거 자료가 축적되었으며 이로써 무의식적 행동에 대한 프로이트의 기본 명제가 질적으로 옳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에델만은 주장한다. 그는 또한 객관적인 과학과 언어는 모두 물질계에서의 준안정성, 즉 물체의 불변성에 의존하며 의식이론은 그 자신의 TNGS 가설에 의해 보충되는 물리학과 진화론이 마음에 관한 과학을 형성시키기에 충분하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하듯이, 어떤 하나의 실제 마음에 관한 그 어떤 과학적 이론도 불가능하다는 것이?에델만의?주장이다.
? 우리는 세계를 어렵지 않게 바로바로 지각하는 것처럼 보일 뿐만 아니라 시각적 광경 전체를 생생한 세부까지 지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 역시 착각이다. 우리 눈의 중심에 들어오는 시각적 광경의 중앙 부분만이 상세하게 색깔로 인식된다.
윌리엄 제임스의 '주의'에 대한 주장을 상기시키는 이 대목은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부분이다. 즉 상대방의 어디를 보며 대화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 상대의 눈을 본다는 답을 듣기가 일쑤다. 이때 대답하는 사람은 흔히 상대의 두 눈을 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상대방의 한 쪽 눈일 뿐이다.
? 아무튼 이렇게 해서 우리가 우리 앞에 놓인 시각적 광경을 바로바로 완전하게 인식한다는 것은 거짓임이 드러났다. 뇌가 우리에게 광경의 핵심 정보를 지각하도록 '무의식적 추론'을 하는 데도 짧게나마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광경의 많은 부분이 흐릿한 상태다. 그럼에도 우리가 세계를 풍성하고도 세세하게 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뇌에 이미 표상된 결과물 덕분이 아니라 우리가 완전히 가동할 수 있는 잠재적 정보 덕분이다.
그러면서 변화맹시라는 현상에 대해 나의 정신이 모르는 변화를 나의 뇌가 알아차렸을까 하고 묻는다. 이어서 저자는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자극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1957년에 영화 속에 광고 메시지를 숨겨 놓고 실험했던 제임스 비커리의 '잠재의식 지각'이라는 문제를 거론한다. 이 문제는 1962년에 비커리가 날조했음을 인정하면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뇌스캐너를 사용할 수 있게 되자 연구자들은 '잠재의식 자극'에 관한 질문을 약간 다른 식으로 제기했다. "실험자가 대상을 인식하지 못할 때에도 뇌의 활동 양상에 변화를 보일까?"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한 반응이 어떤지 피험자에게 물어볼 필요없이 그저 뇌를 들여다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다이앤 벡은 이를 변화맹시 실험에 활용하기로 했다. 실험은 여러분이 실제로 일어난 변화의 절반 정도만을 감지해 내도록 세심하게 설계되었다. 여러분이 볼 때는 변화가 전혀 없는 경우나 변화가 일어났지만 알아채지 못한 경우나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여러분의 뇌는 그 차이를 알아챈다. 따라서 우리의 뇌는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다 말해 주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만일?'잠재의식 자극'으로 주어지는 시간이 0.04초 이상이면?그 자극은 의식에 의해 인지되지만 그보다 짧다면 인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저자는 실험의 예를 통해 보여준다. 이러한 임계시간의 존재는?혹시 진화의 과정에서 0.04초 이하의 자극으로 주어지는 사건은 그렇게 크게 위협이 되지 않았던?경험을 통해 형성된 것은?아닐까???어쨌든 이러한 뇌의 '불고지(?)' 문제는 깊이 숨어있는?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겪는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느 날 아침 세수를 하다가 문득 손등의 긁힌 상처를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언제 그런 상처가 생겼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상처는 아물고 있다. 상처의 치료는 내가 의식하지 못했으므로 당연히 나의 의식과는 무관한 사건이다. 그렇다면 상처를 아물게 한 장본인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뇌의 '불고지' 문제야 말로?'무의식'이라는 존재를 새롭게 조명해야 할 필요성이 드러나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뇌의 '불고지' 문제는?의식과 무의식의 관계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를 뒤집은 게르하르트 로트의 주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로트에게?마음의 영역에서 지배력으로 간주되는 것은 더이상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다.?계산에 따르면 신경 사건들의 95퍼센트가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며 단지 뇌활동의 5퍼센트만이?의식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뇌에게 의식이란 가능한 한 피해야 할, 단지 위기상황에서만 가동시켜야 할 상태이다. 인간은 부단히 새롭고 중요하고 복잡한 문제를 던지는 환경 속에 놓여있다. 따라서 의식을 계속 어느 정도 깨어있는 상태로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록 이것이 에너지 차원에서 비용이 드는 일이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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