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009.11.19 22:24

구식 시 몇편

조회 수 2274 추천 수 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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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쓴 것이라서 좀 구식이긴 하지만
시 몇 편 올려봅니다.


소나무



알고 보면 소나무의 철학은
21세기적이다
제 한 몸 높이 솟는 일보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의 미학을 더 중시한다
時代가 이해 못하고 奇人이라 불리던
많은 眞人들이 그러했다
삶에 마디를 붙이고 줏대 있게 목 세우는 것이
대장부의 삶으로 알았거늘
허리까지 구부려
세상의 바람에 내맡기는 일도
유연한 사랑으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들어내고 지탱하는
한 축이 된다는 것을
소나무는 춥고 높고 헐벗은 곳에서 늘 
푸르게 푸르게 실천해 왔다


진정한 바보들로 가득찬
우리의 山들이
유배지에서 풀려나는 날
그 부드러운 물 같은 弘益의 마음이
세상을 채우는 날
그 날을 향하여
오늘도
나는 산에 오르고
소나무는 산에서 내려온다

------------------------------------------


뽕짝시대


나는 죽는다.
편안한 리듬의 노예가 되어
나의 순수한 인간적 고뇌
젊은 날의 부끄러운 짓
거대한 컴플랙스의
해협까지도
가식적인 恨의 사박자 리듬에 묻어버리고
당당하게 
세속의 파도 속으로 노 저어 가리


어떤 학살도
독재도
보통사람의 부조리도
적당한 박자에 섞이면
티 나지 않아
나 또한 죄의식 없이 편안한 나이와 함께
조금은
부패의 스텝을 흉내 내야지


아, 혼이 썩는다.
신나게,
가라오케의 박자 속에서
뽕짝의 
그 가소로운 거짓 설움 속에서


--------------------------------


플라스크 앞에서 2


투명한 나라여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이
아버지와 나 사이만큼
굴절된
유리벽 너머
작은 나라여


우리의 품성이 거부하는
균일 질의 냉정
색깔 없는 눈물의
응고,
너는 그 속에 산다.


별같이
바람같이
풀잎같이
새소리같이


커다란 세계여
항상 神明으로 율동 하는
그 밖, 바깥에서
빈 몸으로
우리가 춤추는

-----------------------------


플라스크 앞에서 9


플라스크 안에도 개구리들이 산다
네발을 잘 쓰는 개구리는
두발로 헤엄치는 개구리보다
항상 우수하다 운명적으로
조금 높은 돌에 앉아있는 개구리는
낮은 곳에 앉아있는 개구리보다
실제로 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리가 없어 불편하게 서있는 개구리는
그것이 자기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홀로 있는 것은 죽음보다 더 두려운 형벌 같아서
그들은 제 발로 좁은 플라스크 속으로 들어갔다


그 속에서는
우물의 법도가 자랑스럽다
그 법도는 이렇다


흐르지 말고 썩어 문드러지도록 그 자리에 머무를 것
모두 똑같은 음색과 리듬의 노래를 부를 것
평생 변하지 않은 끈을 만들고 그 끈을 붙들고 절대로 놓지 말 것


하여튼 플라스크 속의 개구리는
조금 특이하다 또한 너무나
일반적이다 


개구리 여러분
깊고 미끄러운 플라스크 속으로는
절대 들어가지 마세요
神의 실험이 끝나는 날
당신들은 영원히 폐수 통으로 던져질 테니까요
하지만 神을 욕하지는 마세요
그 폐수는 당신들이 만든 것입니다

  • ?
    이병록 2009.11.19 22:24
    우물속의 법도는
    다양성을 부정하고 획일성을 추구하며
    끼리끼리 관계를 맺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입니다.
  • ?
    현영석 2009.11.19 22:24
    "소나무는 춥고 높고 헐벗은 곳에서 늘 푸르게 푸르게 실천해 왔다"
    소나무를 한 그루를 정원에 심어야 겠어요.
  • ?
    전동주 2009.11.19 22:24
    이미 지은지 10 년도 넘은,
    오래된 것이라서 내놓기 쑥스러운 것이지만 용기를 내었습니다.
    부끄러운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신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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