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조회 수 383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그러나 이제 도시는 나의 굴욕과 실패의 地圖같은 것


그 門에서 나는 석양을 보아왔고, 그 대리석 앞에서 나는 부질없는 기다림을 배웠다.


여기 어제는 불확실하고 오늘은 다른 나날이


내게 모든 인간이 겪는 평범한 日常을 가져다 주었다


여기 발자국을 측량할 수 없는 미궁을 그린다


여기 잿빛오후가 약속한 내일의 열매를 기다린다


여기 나의 그림자도 또 하나의 부질없는 마지막 어둠속에 가볍게 사라져 가리라


이 도시와 나를 잇는 것은 사랑이라기보다 차라리 경악이다


아마 그래서 나는 이 도시를 그토록 사랑하는 걸까***


아르헨티나의 詩人 보르헤스의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詩의 일부분입니다.


보르헤스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느낀 절망과 고뇌를,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느낍니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그런 고비의 순간과 맞닥뜨릴 겁니다.


삶이라는 것이 어차피 희망과 절망의 외줄타기라고 할진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또 오르막이 있겠지요.


보르헤스의 표현대로 도시의 삶이란 '측량할 수 없는 미궁'을 헤매는 건 아닐까요?


굴욕과 실패, 부질없는 기다림, 마지막 어둠---. 보르헤스는 이 도시에서 절망을 읽어냅니다.


사실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어디 그렇게 녹녹한 건가요?

먹고사는 문제는 걱정 안한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로 걱정하며 살아가는 게 도시인의 삶이겠지요?





보르헤스의 표현대로, 이 도시와 나를 잇는 것은 사랑이라기보다 차라리 ‘경악'이 아닐까요?


이 도시는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주었으면서도, 참으로 많은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사실은 빼앗아간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분실했다는 표현이 맞겠지요.

내 삶의 주체는 나 자신이니까요.


인생은 농사 같아서 뿌린 대로 거두는 법. 노력한 만큼 거기에 합당한 결실을 주는 것이겠지요?


 어느 순간, 삶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했을 때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겠지만,


이 도시에 과연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이 도시엔 정말 너무 많은 아웃사이더들이 넘쳐납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삶의 아웃사이더가 되지 않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이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보르헤스의 '굴욕과 실패'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보르헤스가 말했던 '잿빛오후가 약속한 내일의 열매'가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가 아닐까요?


누군가 얘기했지요? 희망은 가난한 인간의 빵이라고. 이 도시도 따지고 보면 많은 희망의 씨앗을


곳곳에 숨겨놓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그걸 찾아내서 싹 틔우고 가꾸어서 열매 맺게 한다면,

그게 바로 우리의 것이 되는 거겠지요.

도시가 삭막하고 어둠이 깊을수록, 그 속엔 은밀한 희망과  건강한 빛이 숨어있는 거 아닐까요?

그 희망과 건강은,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주인일 테지요.

詩의 끝 구절---"아마 그래서 나는 이 도시를 그토록 사랑하는 걸까---처럼 우리는 이 도시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 도시란 결국 우리네 삶의 터전이며, 삶 그 자체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네 삶을 정말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중요한건 인생이란 누구한테나


공평하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은 땀 흘리는 만큼 결실을 주는 거니까요.


우리는 '잿빛오후가 약속한 내일의 열매'를 쟁취해야하겠지요.


보르헤스의 <불면>이란 詩에 이런 구절이 나오지요?

***포도주 빛 성긴 구름이 하늘을 모독할 때, 내 무거운 눈꺼풀 너머로 먼동이 터 오리라***


밑줄을 그을 만한 구절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7 물방울 유체역학 이중훈 2014.01.14 2481
106 일반 물은 100 도에서 끓지 않는다? 전동주 2019.10.16 927
105 미국으로 떠나시는 강신철 교수님을 조촐한 시의 액자에 그려 적다... 14 김형렬 2012.01.04 2297
104 일반 바둑과 뇌신경계 전동주 2019.12.26 181
103 백북스가 사단법인이 되면... 3 강신철 2011.12.11 4648
102 변기와 소음 - 조중걸 3 file 안치용 2012.10.01 2001
101 공지 별이 빛나는 밤에 13 박혜영 2007.11.02 4714
» 공지 보르헤스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김동성 2008.02.23 3838
99 봄밤에 11 file 이기두 2010.03.21 2176
98 공지 사람의 마을에 눈이 오다 5 옥순원 2008.01.31 4001
97 사람이 없다 10 전광준 2010.03.17 2391
96 일반 산성비누 만들기가 어려운 이유? 전동주 2019.10.16 141
95 삶의 아이러니 6 전광준 2010.05.24 2362
94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기 어려워요. 2 8 이기두 2009.11.04 2329
93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기 어려워요. 3 15 이기두 2009.11.07 2465
92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기어려워요(4) file 이기두 2010.01.24 2253
91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기어려워요(5) 4 file 이기두 2010.01.26 2203
90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기어려워요(6) 6 이기두 2010.01.31 2558
89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6 file 임석희 2012.01.21 1751
88 새해맞이 6 이병록 2013.01.02 181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 11 Next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