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010.03.25 08:35

실연 失戀

조회 수 2340 추천 수 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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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운전






  오랜 만에 파란 색, 빨간 색 신호 없는 그 해의 어두운 길을 달린다. 속 깊은 얘길 나누고 오는 길, 마주 오는 차가 중앙선을 넘어오면 그럼 피하지 말자, 난 죽는거겠지.. 그렇게 달려들 것만 같은 눈 부신 전조등을 주시하며 감상(感傷)적 야간운전에 숨을 맡겼다.





 


  앵앵소리에 초록불빛 번뜩이며 119구급차가 위급한 목숨을 실어 적막한 차들 사이사이를 빗긴다. 내 아버지도 어머니도 저 차에 탄 듯 마음이 시큰거린다. 저 멀리 가버린 '번뜩이'는 내 마음 속에 기인 자국을 남겼다.



 


  센과 치히로의 물 잠긴 밤기찻길마냥 닮은 갑천역(甲川驛) 싸인을 지나자 도로 한 가운데 웬 자전거남이 곡선을 그린다. 차가 오던 말던 신호도 무시하고 유유히 차 사이사이를 지나면, 달려오는 차도 그에게는 겁나지 않았다. 그가 유일하게 겁이 났던 건 필시 사랑을 잘못 스쳐 생긴 상처일 것이다. 저것봐, 이 늦은 시간에 인기척도 없는 갑천의 밤 속으로 길 건넌단다. 상처는 그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냈다. 그 구멍만큼 휑한 밤갑천은 그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리하여 그는 조밀함 대신 공허함으로 불리워갔다.




 

  그녀 집을 스쳐지나간다. 시속 60km 내 눈은 그녀의 방에 찰나의 시선을 두었다. 우리가 입술을 스쳐간 그 해처럼, 스쳐간 품안처럼, 추억은 탄지처럼.... 그 해의 겁파마냥 믿었던 '고래의 도약'은 그렇게 찰나로 스쳐간다. 우리 삶연서(煙逝) 서로 스쳐보냈다, 야간운전의 숨 맡긴 전조등처럼, 119구급차처럼, 웬 자전거남 처럼.





 






 -듣보잡 全












 * 2년전 쓴 글인데, 간만에 꺼내 읽다.. 지금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살짝 충격을 받았습니다. '피하지말자, 그럼 죽는거겠지' .. ㅋㅋ 얼마 전부터 운전대만 잡으면 죽을까봐 무서워 불안장애로 추정하는 증세마저 생겨났다는... ㅡㅜ 오호..



 * 센과 치히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주인공 이름)

 * 고래의 도약 (타무라 시게루의 애니메이션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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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정구 2010.03.25 08:35
    상처가 아물 때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걱정이나 불안이 가시기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결국 시간이 더 흐르면 흐미한 흔적만이 남을 뿐입니다. 많이 아팠던 기억의 흔적으로. 어떤 연민이나 불안은 더러 흔적조차 남기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인생이란 지웠다 다시 쓰는 일기장처럼 무수한 시행착오로 채워지나 봅니다. 그러니 넘어지는 것을 무서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가 내게 주는 상처는 내가 나도 모르게 남에게 입혔던/입힐 상처에 대한 댓가일 것입니다. 운명은 공평합니다. 내가 흘릴 눈물 만큼의 웃음을을 주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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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광준 2010.03.25 08:35
    변선생님 주신 말씀대로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수년이 지난 지금 말씀처럼 멀쩡한데, 가끔씩 추억이 깃든 공간에 이르면 감상과 회한에 젖을 때가 있는데, 이 글 끄적거릴 때가 아마 그 때였나 봅니다. 제가 살면서 사람들에게 진 빚(준 상처)을 청산하려면 더 슬퍼해야하고, 더 힘들어야 합니다. 침묵수행을 하고 싶지만, 워낙 필부인지라 제가 내는 악 소리가 스스로 듣기에도 많이 시끄럽죠.

    이태백은 즐거울 때 시를 썼고, 두보는 슬플 때마다 시를 썼다는데, 오락가락할 때가 많은 인간이지라지만, 시와 글은 그래서 글쓴이의 마음을 찍는 사진기라는 말에 공감해요. 글이 뇌영상 사진보다는 조금은 더 낭만적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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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정구 2010.03.25 08:35
    고래의 도약 (クジラの 跳躍)
    http://www.youtube.com/watch?v=nFe6obvt3pI
    http://www.youtube.com/watch?v=T7DKN_mLSgM
    http://www.youtube.com/watch?v=9HO73WDUEcc

    상영시간 23분 / 2005년 4월 18일 출시

    한없이 투명한 에메랄드 그린… 꿈에서 본 바다 빛이다…
    왠지 모를 그리움을 자아내는 타무라 시게루의 판타지 월드. 1998년도 극장 상영작.
    <은하의 물고기>에 이어, 그림 작가이며 영상 작가인 타무라 시게루가 원작을 그리고 감독을 맡은 두 번째 작품.

    바쁘게 돌아가는 우리의 현실 세계와는 완벽하게 동떨어진 이 환상의 세게에서는 마치 진공 속의 시간처럼 정지한 듯 천천히 흘러간다. 유리 바다, 공중에 정지한 채 떠 있는 날치들, 바다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 물고기 두 마리가 노니는 투명한 몸을 가진 워터 피플, 유리 바다 방울을 타고 공중을 날아 다니는 노인, 6시간이나 걸쳐 이루어지는 고래의 도약, 이것이 ‘Glassy Ocean 세계’이다.

    <고래의 도약>(Glassy Ocean)은 타무라 씨가 그린 일러스트에 3D컴퓨터 그래픽을 합성하여 만든 작품이다.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단 한 줄이지만, 한 장을 완성하는데 많게는 40,50층의 일러스트가 합성되어 진다. 유리 그림자의 그라데이션, 주위의 선, 반사, 굴절 등 온갖 영상 표현의 요소를 컴퓨터로 렌더링해서 절묘한 투과율을 찾아 합성한다. 컴퓨터를 이용하기만 할 뿐 수작업과 다름없는 힘든 작업이다.

    천천히 진행되는 작품의 흐름 속에서, 이렇게 만들어진 투명하고 서정적인 장면들을 찬찬히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거의 정지해 있는 것 같은 ‘공간’에 일렁거리는 유리의 반사와 굴절이 생명력을 불어넣어 精中動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한편 <고래의 도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유리 바다 뒤로 흐르는 아름다운 선율이다. 독특한 세계관을 갖는 ‘타무라 월드’를 보다 잘 체험할 수 있게, ‘감싸 안는 듯한 앰비언트 사운드(Ambient Sound)’를 주축으로 하여 사운드 디자인을 하여 ‘현실감 있는 가공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특히 5.1ch이란 입체 음향을 활용하여 영상을 보는 이로 하여금 실제 유리 바다 위를 함께 걸어가고 있는 듯한 ‘현실감 있는, 자연스러운 착각’에 빠지게 한다.
    (출처: http://dvd.cinecine.co.kr/dvd_detail.asp?dvd_code=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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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광준 2010.03.25 08:35
    변선생님 ㅜㅠ 헉...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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