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떠나시는 강신철 교수님을 조촐한 시의 액자에 그려 적다...

by 김형렬 posted Jan 0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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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券山의 지기

                                                     김형렬 



고비같은
사막에



모래
언덕의 마른 산 하나 있었습니다.




현인들이 책 나무를 심고 이름을 백권산이라 했습니다.



 



현인들은



산의
주인 되기를 마다했습니다.



대신
산지기가 되기를 청했습니다.



 



그렇게
손으로 흙을 파고, 마음으로 심는 일입니다.



나무가
이 되고



나무들이
되어갑니다.



 



산은
찾아 드는 나그네들에게



삶의
한숨 대신, 쉴 그늘과 착한 바람 한줄기를,




대신, 시원한 샘 한 모금을,



달콤한
지혜의 꽃향기를




줌 대가 없이 나눕니다.



 



나그네뿐인
이 산에는 주인이 없습니다.



주인은
주인들인 줄도 모릅니다.



그렇게
말 없이 산지지는




산을 기르고, 나무를 키웠습니다.



 



언젠가는



산에
처음 주인이 왔었습니다.



나무를
베어갑니다.



피지
않은 꽃을 뽑습니다.



그렇게
파고 패고서 훌훌 떠나 갑니다.



 



산지기는 울지 않고



붉게
멍든 밑둥에는 술을 붓고,




옆에 비석대신 새로운 어린 묘목을 심었습니다.



 



어느
여름엔가



산에
반가운 철새가 왔었습니다.



여기저기
열매를 따고 부러뜨리고, 새 따라 한 철은 날아갑니다.



 



산지기는
웃지 않고,



끊어진
가지 동여매고,



아프지
않게 새로운 꿈의 싹을 접붙입니다.



 



길지
않은 10년의 겨울이



묵언의
가막살이 하듯 지나갑니다.



 



어느
날 아침이었네요.



산에서
올망졸망 소리가 들려 옵니다.



나무가
나무인 줄을 알고, 꽃이 꽃인 줄을 알고



샘이
제가 샘인 줄을 다시 기억해 내는



봄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



산지기는
산을 내려옵니다.



얼굴에
난 수염마냥 덥수룩한



엉겅퀴가
발목 붙드는 덤불의 길을 걸어갑니다.



가시나무
새를 헤치고 이제 건너편 사막의 언덕으로 힘겹게 갑니다.



 



멀리
사라져 갑니다.



작은
점이 되어 뒤돌아 봅니다.



知己는 산과 숲을 굽어 봅니다.



이제
비로소, 빙긋 웃는 것 같습니다.



비로소
주인 된, 저희도 따라 웃습니다.


※ 강신철 교수님 백북스에 대한 애정과 헌신에 감사합니다.
    잘 다녀 오십시오.

※ 시는 코드가 없어야 하겠지만,
    이 글은 백북스의 코드와 시퀀스를 밑그림으로 하기에
    시라고 할 수는 없네요.
    그 형식만을 빌어, 마음을 담았습니다.
    부족한 글이 고귀한 시의 세상에 누가 되지는 않기를 걱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