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공지
2008.01.12 06:52

눈이 왔다

조회 수 3644 추천 수 0 댓글 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아침에 눈을 뜨니, 생각지도 않은 엄청난 양의 가루눈이 퍼붓고 있었다.

 

어린 시절, 눈이 오면 참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눈사람도 만들어야 하고, 새하얀 눈밭에 누워 보기도 해야 하고, 아무도 밟지 않은 곳을 골라서 처음으로 발자국도 남겨야 하고. 가끔은 눈싸움도 했던가?  눈사람 두 개를 붙인 크기의 커다란 진돗개 눈사람을 마당 한가운데에 만들어서 그것을 타고 찍은 사진도 있었다. 지금 하라고 해도 참 귀찮을 것 같은(?) 작업인데, 초등학생 혼자서 무슨 지치지 않는 힘으로 그런 걸 다 만들 생각을 했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신기하기도 하고 슬쩍 웃음이 난다.

 

이런저런 놀이에 열중하다 보면, 맨손으로 눈을 만져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빨갛게 곱은 손을 보며 엄마가 "그러다 동상 걸린다!"고 겁을 주셨지만 전혀 개의치 않을 정도였다. 크리스마스에는 꼭 눈이 오게 해 달라고 매해 12월마다 빌었고, 나의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거의 실현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한두 번? 그나마도 전날이나 다음날 쯤, 정확히 24일이나 25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가 아니더라도 함박눈이 소복소복 쌓인 겨울 풍경은 아련한 낭만을 가져다 준다. 어린 시절 친구네 집에서 빌려 읽었던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큰숲 작은집' '초원의 집' 에는 긴긴 겨울, 눈에 갇힌 숲속 오막살이에서의 놀이와 삶이 무척 낭만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먹는 것에 무서운 집착을 보이는 나답게, 지금도 생각나는 장면들은 단연코 먹을 것과 관련된 것들이다. 커다란 호박들을 테이블과 의자삼아 앉아서 놀았다느니, 우유를 엄청나게 열심히 휘저어 버터를 만들어 먹었다느니, 단풍나무 수액(메이플 시럽?)을 열심히 졸여서 그릇에 꾹꾹 눌러 채운 눈에다가 떨어뜨리면 그것이 굳어서 그대로 사탕이 된다느니.. 아무리 먹을 게 좋아도 그렇지, 달랑 그런 장면들만 골라 기억이 난다고 하면 어쩌란 말이냐!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눈'이라고 하면 상당히 낭만적인 이미지를 꽤나 어른이 된 후까지도 오래오래 끌어안고 있었던 나였다.

 

하얀 떡가루같은 눈이 바람 따라 사선으로 퍼붓는다.

아, 오늘은 절대 밖에 나가지 말아야지. 넘어지기라도 하면 고생해.

내일 서울 가야 하는데, 길이 얼어 있으면 위험한데 어쩌지?

이상하다, 이 정도 많은 눈이면 예전 같으면 예쁘다고 한참 감동했을 텐데, 아무 감흥이 없네.

 

덕분에 집 안에서 종일 이것저것 맛있는 것들은 많이 해 먹었다만 ^^

내 안의 낭만이, 이젠 거의 사라지다 못해 거의 종적을 감추어 가나 보다.

작년만 해도 이렇진 않았는데.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08-01-18 16:40:03 회원게시판(으)로 부터 복사됨]
  • ?
    전지숙 2008.01.12 06:52
    저도 어렸을적 힘들줄 모르고 눈밭을 구르고..눈사람을 만들전 기억이 나네요
    눈이 온다는 그 자체가 너무 행복했는데.이제는 눈이온다는 소리만 들어도 다음날 길막히고 녹으면 질척할텐데하는 걱정부터할 나이가 되다니.그래도 이번눈내리는날에는 새벽에나가 눈싸움도하고 눈쌓인 나무도 흔들고 즐겁게 놀았답니다.
  • ?
    김미순 2008.01.12 06:52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변치 않고 있는것은 눈 을 좋아 한다는 것입니다. 녹아 내리기 시작하면 질척거림에 싫을때도 있지만, 눈 내리는 풍경은 여전히 내게 설레임과 기쁨을 가져다 주기때문입니다. 광주는 지금 비가 옵니다. 신년에 이곳에 눈 이 무척 많이 내려 무등산의 서석대를 갔었지요. 그 아름다웠던 풍경들이 지금도 아른 거립니다. 눈 을 마음껏 즐기세요~
  • ?
    임석희 2008.01.12 06:52
    사람들은 왜 눈이 오면 좋아할까?
    개들은 눈이 오면 왜 뛰어다닐까?
    왜 동물은 눈이 오면 뛰거나 좋아하거나... 할까???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87 창디 총무로서 섣부른 고해성사 8 전광준 2010.05.26 2474
186 진화, 다양성 그리고 독감 4 정인성 2009.04.30 2571
185 공지 진짜 리더 4 강신철 2008.01.09 3660
184 지하철에서 책으로 만난 인연 2 이정원 2012.10.15 1751
183 공지 지적 쾌감, 그 근원과 나의 길 3 임석희 2008.01.30 4152
182 지역 감독들과 함께 한 8시간 6 전광준 2009.05.19 2528
181 일반 지무재수필을 읽고 2 산에꽃 2020.11.18 390
180 좋은 글 6 이중훈 2012.04.01 1787
179 조정권 시인의 유럽여행과 예술이야기 2 박성일 2012.10.22 1852
178 정월 대보름에 생각하기 12 이병록 2012.02.06 1799
177 전역병의 편지 8 이병록 2012.03.09 1996
176 적정기술 이중훈 2012.08.23 1692
175 저자에게 드리는 글 2 이병록 2010.01.12 2291
174 잠시 활동을 접으며... 9 임석희 2012.08.29 1707
173 공지 자작나무 4 박문호 2007.11.16 4093
172 공지 자연은 배가의 법칙을 사용한다 4 전동주 2008.08.14 3832
171 공지 자연속에서 울다. - 황룡골 기행 - 10 임석희 2008.05.02 5693
170 임진년 새해인사 5 이병록 2012.01.01 2037
169 임상역사의 중요성 1 이중훈 2013.03.16 1919
168 일한다는 것에 대하여 6 이기두 2012.08.06 172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1 Next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