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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기대하지 마라

by 강신철 posted Dec 0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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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읽은 책들의 공통적인 주제 가운데 하나가 "믿음"이라는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그렇고, 루이스 월퍼트의 '믿음 엔진'이 그렇다. 그 밖에도 생명공학, 심리학 관련 서적들 등, 특히 종교관련 서적들이 공통적으로 '믿음'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쓰여진 책들이다. 

 우리 인간은 무언가 믿고 싶어하는 성향이 있고, 그것은 어찌보면 생명체로서 다양한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한 방편이고 우리 삶의 일부이다. 우리가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신에서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사건과 물체 등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논의의 대상을 인간관계에 국한시키고자 한다.

 인간관계의 대부분은 믿음을 전제로 한다. 그 믿음이 깨어지면 배신감을 느끼고 인간성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된다. 인간은 만나는 순간부터 믿음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우리는 사람에 대해 믿음을 쌓아간다. 가족들간의 믿음, 직장 동료들과의 믿음, 친구와의 믿음, 애인과의 믿음, 스승과 제자간의 믿음...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믿음의 종류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순진할수록, 사회경험이 부족할수록, 나이가 어릴수록, 이러한 인간관계에 대한 믿음의 강도는 높은 것 같다. 남을 잘 믿는 사람을 우리는 보통 '순수'하다고 한다. 순수하다는 말은 어리석다는 말하고도 통한다. 대개 이 순수한 부류의 사람들은 무턱대고 남들을 믿었다가 배신당하고 손해보는 한이 있어도 일단 사람을 잘 믿는다. 나도 남을 잘 믿는 부류에 속한다. 그런데 이 믿음 속에는 기대심리가 들어있다. 믿어 준 댓가로 뭔가를 기대하는 것이다.

 믿음에는 관성이 있어서 쉽게 방향이 바뀌지 않는다.  일단 어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쌓이면 그 사람이 어떤 비난을 받을 짓을 하더라도 쉽게 믿음을 바꾸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직접 그 믿음에 반하는 경험을 해야 비로소 믿음을 거두어들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믿음의 관성은 나하고 직접 관련도 없는 사회적 인사에 대한 믿음에서도 나타난다. 요즈음 이모 대통령 후보에 대한 국민들의 막연한 믿음도 온갖 네거티브에도 불구하고 식을 줄을 모른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직접 연관이 적을수록 이 믿음의 관성은 강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다른 사람을 쉽게 믿기는 해도 기대는 하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믿었다가 배신을 당하더라도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 상할 일도 없고, 또 기대를 크게 하지 않으니 믿었다가 손해볼 일이 생겨도 그리 치명적이지 않아서 쉽게 지나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모두 불신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들의 진심을 믿어 주되 그 믿음에 대한 댓가로 아무것도 기대를 하지 않을 뿐,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하면, 타인에 대한 믿음에 상응하여 사랑이든 우정이든 재물이든 내가 줄 수 있는 만큼 주고 아무런 댓가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살면서부터 세상사람들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도 마음을 상하지 않게 되고, 배신감을 느끼는 횟수가 대폭 줄어든 것 같다. 기대하지 않는만큼 마음이 편해진 것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라!' 한번 해볼만한 게임이 아닌가?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07-12-08 17:46:11 회원게시판(으)로 부터 복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