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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를 버리고 10달러를 얻어라

by 김민경 posted Nov 2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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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었다 놓았다를 잘 하는 데 인생의 묘미가 있다.

-헤이브록 엘리스

 

 


  엊그제 빌려 왔던 책 '혼자인 사람들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에서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한 여인이 목사님의 설교에서 얻었다는 교훈이었다.



  목사님이 예배 시간에 아이들을 앞으로 불러 모아 모두에게 1달러씩을 주고는 다른 주머니에서 10달러 지폐를 꺼냈다. "여러분은 이것도 가질 수 있어요. 하지만 이걸 가지기 위해선 이미 갖고 있는 돈을 놓아야만 해요." 더 좋은 것을 준다는데도, 놀랍게도 아이들 중 누구도 1달러를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1달러를 내 놓는 사이 목사님이 마음이 바뀌어서 10달러를 안 주시면 어떡하지? 차라리 이 1달러라도 가지고 있는 편이 안전하지 않나? 망설이는 아이들의 마음이 손에 잡힐 듯이 읽힌다.

 




  이 에피소드가 나에게 깊이 와 닿았던 이유는, 역시 마음에 짚이는 구석이 많아서겠지? 생각해 보면, 사소한 욕심이 눈을 가려서 정작 큰 것을 놓쳐 버리고 말았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타인의 눈에는 부질없는 욕심인 것이 빤히 보이는데도, 왜 내 눈에는 그것이 끝까지 보이지 않는 것일까. 늘 지나고 나서야 깨닫고, 다음 번에는 그러지 말자고 반성하지만 막상 상황에 빠져들면 객관적인 판단이 쉽지 않다.

 




  한 때, 무언가를 사는 것이 그렇게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물건을 고르는 안목은 자신이 있었고, 내 심금을 울리는 물건이 눈 앞에 보이면 사지 않고는 도저히 지나갈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물건에 둘러싸여 사는 것은 곧 행복이니까. 사지 않고 두고두고 꿈에서 보면서 후회하느니 돈을 지불하고 내 옆에 두는 것이 나았다. 자본주의의 혜택, 향유하는 즐거움을 포기해야 할 이유도 딱히 없었다. 비슷한 물건 많아지면 좀 어때, 다다익선이라쟎아.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면서 '풍요로움으로 가득찬 생활 태도'를 버리려 하지 않았다.

 




  그런 나의 가치관이 수정된 것이, 수 년 전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오면서였던 것 같다. 평소 운동을 즐기지도 않는 데다가 체력도 약한 나에게는 10킬로 용량의 배낭이 버겁도록 무거웠다. 패션성을 포기하고 옷을 줄여 꼭 필요한 짐들만 남겼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가이드북 두 권에 미술관 관람용 참고도서, 비상용 음식 등이 워낙 무거워서 그렇기도 했겠지만 중간중간 짐은 슬쩍슬쩍 불어났다. 할 수 없이 덜 중요한 것들은 버리기도 하고, 집에 소포로 부치기도 하면서 짐의 무게를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했었다. 가뜩이나 이미 추리고 추려진 짐을 앞에 놓고서 매일 '어느 게 버려도 되는 짐이고, 어느 게 꼭 필요한 짐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일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물건이란 게, 사실 그렇게 많지도 않구나.'

 




  실제로, 짐을 몽땅 도둑맞고 여권과 지갑에 비닐봉지 하나 분량의 짐만 달랑 가지고도 여정을 끝까지 마쳤다는 배낭여행객을 보기도 했었으니까. 배낭 한 짐 분의 물건들, 그것만 가지고도 한 달 여를 생존하는 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는데, 왜 내 방에는 그토록 많은 물건들이 꽉꽉 들어차 있는 걸까.

 




  결국 내 취향이란 것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서, 비슷한 물건들을 중복 구매하는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 무언가가 갖고 싶으면 이성적인 충동 제어에 들어갔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의외로 하다 보니 할 만했고, 나중에는 '참는 즐거움'까지 느끼기 시작했다. 강렬한 충동을 이기고 결국 구매의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고 나면, 일종의 자신과의 게임에서 이긴 듯한 기분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지금의, 소비에 다소 무심하면서도 여백의 미를 즐기는 전혀 다른 인물처럼 되어 버리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다.

 




  이런 식으로, 내 안의 욕심을 상당히 걷어 냈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직도 난, 손에 쥔 1달러를 놓아야 할 때를 제대로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 되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걷어야 할 욕심과 그렇지 않아야 할 욕심을 구별하는 일도 서투른 것 같다. 물건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간소한 삶을 선택하는 것, 여기까진 어렵지 않았다. 더 현명해지고 싶고, 똑똑해지고 싶은 마음. 이것은 내버려 두어도 좋은 욕심이겠지? 그렇다면, 부자로 더 잘 살고 싶은 욕심과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심은? 성공하고 싶은 욕심은? 어느 포인트에서 욕심을 챙기고, 어느 포인트에서 과감히 놓아 버려야 하는지.. 1달러와 10달러를 예로 둔 우화에서는 그렇게나 쉽고 명료하게 보이는 명제인 것이, 막상 내 인생의 온갖 문제에 접목시켜 보려 하면 가치 판단이 쉽지 않고 혼란스러워진다. 결국, 나는 적당한 균형감각을 익히지 못한 채 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비우고 버리기 위해 애쓰면서 살아가게 될 지도 모르겠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07-11-28 01:40:23 회원게시판(으)로 부터 복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