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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는가?

by 강신철 posted Nov 1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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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인에서 어떤 젊은이가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해온적이 있었지요. 아래 글은 그 젊은이에게 준 대답을 옮긴 것입니다.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사후에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이런 질문에 휩싸이면 더구나 광활한 우주를 생각하면 자신의 존재가 더 보잘 것 없어 보이고 두려움까지 엄습합니다.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에 의하면 원래 인간의 두려움은 크게 세가지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분리의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신에 대한 두려움.

분리의 두려움은 엄마의 자궁에서 분리되어 독립된 개체로 자라면서 점차 고독감이 심화되고 사춘기에 절정에 달하지요. 이때를 전후해서 많은 청소년들이 엄마가 죽는 꿈을 많이 꾸고 자신이 죽으면 엄마가 얼마나 슬퍼할까 생각하며 혼자 외로움에 휩싸여 자살충동까지 느끼는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상당히 위험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지요. 이러한 분리에 대한 두려움은 성인이 되어야 정신적으로 성장하여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가 형성되면 모체로부터의 분리를 더 이상 두려워 하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분리됨으로써 얻는 댓가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죽을 때까지 분리에 대한 두려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인간은 다시 가족이나 사회에 소속하여 분리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군중 속에 있어도 다른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가 없으면 소위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게 되며 삶의 의미를 상실하곤 합니다. 정신적으로 미숙하다는 증거입니다.

인간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본능적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어린아이가 살의가 느껴지는 무기나 험악한 인상의 표정을 보면 우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 학습이 없이도 형성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죽음에 대한 공포는 다른 사람이나 동물이 죽는 모습을 보거나 소설, 영화 속에 묘사된 죽음의 장면들로 인해 더욱 강화됩니다. 다행히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평상시에는 죽음을 잊고 삽니다. 그러나 자신만의 시간으로 돌아와 혼자 있을 때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합니다. 무한한 우주를 생각하면 인간이 무가치하게 느껴지고 내가 죽는다고 해도 우주에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 같은 허무감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 만큼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인류역사 이래 우리 인간이 마음을 괴롭혀 왔던게 사실입니다.

이와같은 분리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에게 의존하려는 심리적 결과로 나타난 것이 종교입니다. 원시시대의 인간은 자연의 재해에 대해 속수무책이었고 무형의 강력한 절대자에게 의지하여 보호를 받으려는 욕망에서 생각해 낸 것이 신이라고 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의 의식수준이 발달하면서 신의 개념도 진화하였고 지금부터 2~3000년 전 힌두교의 크리슈나, 불교의 석가, 기독교의 예수, 이슬람교의 마호메트 같은 성인의 시대에 이르러 신의 개념은 완성이 됩니다. 인간이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능력과 감정과 욕망을 모두 결합하여 신이라고 하는 절대자를 창조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 절대자에게 우주와 자연을 모두 맡기고 더 이상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초능력적 존재로 만들어 버린 것이지요. 그래서 어느 한 개인도 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속성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지요. 그리고 이제는 그 신에 귀속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종교지도자들은 보통 사람들에게 새로운 두려움을 강요하기에 이르렀지요. 서울역 지하철 입구에서 신의 심판이니, 지옥에 떨어지느니, 파수대니 하는 등의 협박이 바로 있지도 않은 두려움거리를 만들어서 보통 사람들을 괴롭히는 한 예이지요.

그러면 이러한 세가지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까요? 나는 크게 두 가지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주의 원리와 생명의 근원, 죽음의 의미 등을 이해하고 분석해서 더 이상 내가 두려움의 피동체가 아닌 두려움을 극복하는 능동체로 만들기 위해 지식을 쌓는 방법입니다. 철학이든 종교든 문학이든 예술이든 종류를 가리지 않고 시간을 내서 독서를 합니다. 한가지 한가지 깨달을 때마다 쓸데없는 두려움이 하나 둘씩 사라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두번째 방법은 자연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 무심히 밟고 다니는 한 포기 풀, 밤하늘의 달, 별, 그리고 길가에 선 나무를 유심히 바라보며 내 마음을 자연과 합일시켜 보려고 노력합니다. 무심히 산기슭에 앉아있는 바위를 친구 삼아 이야기도 나누어 봅니다. 흐르는 냇물에서 음악을 발견하고 여름날 반딧불의 향연을 보고 피카소 보다 위대한 미술작품을 감상합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있는 일인가. 내가 생명체로 존재하면서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한 일인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지도록 나를 존재하게 해준 엄마 아빠 (이제 내나이 오십이 되었지만 아직도 엄마라고 부릅니다)에게 무한한 감사의 눈물이 흐르고, 나를 믿고 살아가는 내 아내와 아이들이 무한히 사랑스럽고 고맙고... 자연과 친해지려고 노력해 보세요. 생명의 존귀함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내가 살아있다고 하는 사실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절감하게 됩니다.

우주에 시간이 아무리 흐르고 공간이 아무리 넓어도 나는 하나입니다. 내가 곧 우주이고 자연이고 신입니다. 너무나 소중하고 위대한 존재입니다.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나의 육체는 살아있든 죽어 있든 (형태는 다르겠지만) 공간을 차지할 것이고 지금 이 순간 육체를 만들어 주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 모든 존재와 에너지에 감사하면서 현재의 나를 마음껏 격조있게 즐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두려워 할 것 없이 현재의 위대한 나의 가치를 높이는 데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몰입할 수 있다면 나는 더 없는 쾌감과 희열을 맛보면서 우주의 한 시간대를 수놓는 인생을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느 특정 종교에 빠지기 보다는 다양한 독서와 사고를 통해 우리의 근본적인 질문,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사후에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에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면 할수록 인생은 참 살만한 것이구나 하고 느낄 것입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07-11-28 01:32:30 회원게시판(으)로 부터 복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