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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외나로도 생활 1년을 돌아보며...(마무리)

by 서윤경 posted Mar 3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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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외나로도에서 함께 생활했던 동료와 저녁을 함께하면서 내일 결혼하는 다른 동료의 축의금을 대신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돌아오는 동안 문득 생각난게 아... "외나로도 생활 1년을 돌아보며"의 2부를 올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정신이 없기도 했거니와 많이 망설였던 이유가...혹시나 의도한 바는 결코 없었지만 내 글이 떠나온 곳에 대한 안 좋은 느낌을 전달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 회원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런 왜곡된 시각으로 보는 이는 없으려니 하는 맘에서 2부를 올리고 마무리 짓고자 한다.

<2부 시작>

근무지내 숙소로 거처를 옮기면서 매주 내 차를 가지고 대전~외나로도를 왕복하던 생활에서 벗어나 직장에서 제공해주는 출퇴근 버스를 이용하게 됐다. 잠깐 오해마시라...출퇴근이라하여 매일 오고가는 것이 아니라 월요일 이른 아침 6시에 대전에 있는 본원에서 출발하여 금요일 저녁8시 무렵에 다시 대전에 내려 주는 주 단위의 왕복 버스였다. 처음엔 이것도 어딘가 싶었다. 매주 새벽 운전을 하며 조는건 기본이었고 겨울철이라 길이 살짝씩 얼어있어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도 더러 있었고 갑자기 눈보라를 만나면 가까운 휴게소에 멈춰 눈이 잦아지기를 마냥 기다리며 다니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호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인간은 간사하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 했거늘...내가 아닌 다른이가 운전해주는 버스를 타고 4시간 동안 실컷 자면서 가는것도 몇번 해보니 역시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였다. 나도 멀쩡하다가 이상하게 버스만 타면 멀미를 하는 통에 외나로도에 도착하면 바로 화장실로 직행하기가 일쑤였다. 그리고 버스에서의 수면으로 인해 머리는 제비집을 짓거나 뒷통수는 판판하게 눌리고 얼굴들은 푸석푸석...그렇게 매주 월요일을 맞았다.

금년 달력을 받고서 얼른 살펴본 것은 금년 휴일이 어떻게 되나 였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순간 느꼈지만 예전의 기억에 자동적으로 내 머리가 반응한 것이리라. 이유는 작년의 경우엔 국경일과 같은 금쪽같은 휴일이 주로 주 중간에 끼어있어서 오히려 성가셨기 때문이다. 달랑 하루뿐인 휴일을 집에서 보내기위해 왕복 8시간을 길에 허비하며 다녀오기도 그렇고 숙소 방에 혼자 덩그러니 널부러진채 지내기도 곤란한 상황에서 그렇게 몇번의 국경일을 보내야 했기에 말이다. 솔로들의 경우엔 그나마 집에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애시당초 접고 즐기는 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직장 주변 뒷산 삼나무 숲으로 물통과 약간의 과자를 들고서 산보를 가기도 했고 2시간 정도 떨어진 보성~순천~여수 주변의 관광지를 둘러보기도 했다. 

보성차밭, 낙안읍성, 순천만, 송광사, 선암사, 여수오동도, 돌산대교, 향일암.... 

이외에 연휴가 좀 끼게 되면 좀 더 멀리 남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강진 다산초당, 백련사, 해남 땅끝마을, 보길도....



<사진설명 : 뒷산 삼나무숲의 삼나무. 대부분 일제시대부터 심겨져 있던 나무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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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순천만 가는 길목에서 펼쳐진 허수아비 축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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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여수 돌산대교 공원쪽에서 바라본 해질녘 여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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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함께 여행을 다니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던 동료들과는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동료애 이상의 끈끈함이 생기기도 했다. 정이라고나 할까...한번은 친하게 지냈던 동료중 한명의 생일이란 것을 알았는데...문제는 생일 케익을 조달할 방법이 없었다. 근무지에서 차로 15분정도 떨어진 항구 마을에 딱 하나있는 제과점에 먼저 들러보았으나, 눈에 비쳐진건 언제부터 냉동실에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느낌의 크림 케익이라 결국 그 동네에서 가장 흔하게 볼수 있는 광어회 감성돔 등등의 횟감을 하얀 스치로폼 박스에 담아다가 나름 생일 잔치상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동료 생일때는 아예 1시간 거리의 고흥군에 한 명이 대표로 나가서 조달해와 항구 마을의 어느 한 허름한 중국집에서 짜장면, 짬뽕과 함께 케익을 자르기도 했다. ^^ 비록 대도시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시끌벅적하게 보내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 순간 우리는 행복한 정을 나누었다고 기억한다.

 



지금 나는 그곳을 떠나왔다. 한동안 접은채 어쩌면 포기하고 있었던 목표들에 다시금 도전해 보고자하는 마음으로 그곳을 떠나왔지만, 아직 그곳에는 나와 친했든 안 친했든 예전의 동료들이 근무하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새벽잠을 떨치고 월요일 아침이면 외나로도행 버스에 올라탈 것이고 매일 창문을 통해 바다만 바라보이는 곳에서 지내다 금요일이면 다시 가족들과 조우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난 그들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무엇을 바라면서 그곳에서 생활하는지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이것 한가지는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그곳에서 감내하는 고생이 있기에 우리나라 우주분야 역사 하나가 쓰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저녁 식사를 함께한 동료와 해무가 잠시 걷힌 외나로도 밤하늘을 보며 사진 촬영했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중 하나일 것이다. <끝>


<사진설명 : 떠나오던 날 동료들이 선물해준 추억이 담긴 사진과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