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010.05.24 18:32

삶의 아이러니

조회 수 2362 추천 수 0 댓글 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부제: 이창동의 <시>를 본 후 닷새



 스무살 인호는 4일전 나를 두고 오늘따라 우울해보인다는 이야기를 했고, 15년지기 친구는 토요일 아침 간밤 꿈자리가 어수선했다며 안부를 물어왔다.



 황금종려상을 탈꺼라 부화뇌동했던 언론들과 평론가들의 기대 속에 이창동의 <시>가 오늘 아침 각본상을 탔다. 발칙스럽게도 아무 상도 못탈 것이라 예상했던 나는 각본상이라는 말에 무릎을 탁 쳤다.



 아이러니하게도 작년에 친정부 성향의 영진위 위원장이 이 각본에 0점을 준 일이 떠오른다. 시나리오답지 않고 소설형식이라 그랬다는 주장은 듣보잡 국내용 영진위원장이 세계적 거장을 향해 할 수 있는 변명은 아니었다. 추측컨대, 극 중 '희진' 혹은 '미자'가 다리에서 뛰어내린다는 암시를 두고 작년 이맘때 봉하에서 서거하신 '그분'의 반정부적 이미지를 떠올리곤 심히 불쾌했기 때문이리라. 참여정부에서 문화부 장관을 했던 감독일테니,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이창동의 <시>속 내러티브에는 사회반영적인 서브텍스트를 확고히 깔고 있었다! 모든 위대한 예술작품들은 그 작품들이 살아온 시대를 치열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위대한 것 아닐까. 듣보잡 영진위원장이 <시>의 각본을 읽으며 그분을 떠올렸듯 깐느의 엘리트 심사위원들도 그분을 떠올렸으리라. 나 혼자만의 즐거움에 빠져 살던 나는 이제서야 <그분>을 떠올렸다. 남의 죽음을 두고, 국격을 떨어뜨린 자살이라느니 지금도 시끄럽다.



  천안함을 두고도 말이 많다. 선거운동 개시일에 딱 맞춰 어뢰를 보여주었다. 천안함을 정치적으로 이용 안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어디 갔나. 비명속에 목숨을 잃은 천안함 장병들을 떠올리면 어찌 그럴 수 있을까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또한 앞서 언급한 '그분'의 죽음을 선거에 이용한다.




  영화 속에서 그 누구의 슬픔과 아픔도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즐거움에 빠진 미자라는 인물에 대해 감독은 시를 못쓰게끔 설계해 놓았다. 그런 상태에서 쓴 시야말로 거짓시일 뿐이지 않느냐고 감독은 반문한다. 




  남의 죽음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이라는게 극중 '미자'마냥 '아무개가 죽었대요~ 그 엄마를 봤는데,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라고 말하면서도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몸을 씻겨주고 1만원 받았다고 즐거워하는 모습이나, 희진 죽음에 가해자의 보호자로서 합의금을 빌리러 다니는 꼴이다. 그렇게 불완전하고 퇴화된 오늘날의 인간군상의 모습을 이창동의 <시>는 차갑게 고발하고 있었다. 메세지가 좋은 영화였다. 그 외 평론가들처럼 이 영화의 다른 이유를 들어 걸작의 대열로 볼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영화 <시>를 통해 알 수 있듯, 타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이 슬픔과 우울을 문학과 예술을 통해 승화시키는 일은 충분히 가치 있다고 느껴진다. 엊그제 다녀간 강한솔씨의 혼과 힘을 다한 열정적인 연주 속에 나는 예술과 현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을 봤다. 강한솔씨의 연주가 내게 위로가 되주었던 까닭은 내 마음 속의 갑갑함과 분노가 건반을 향해 내려꽂는 힘찬 진실과 일체됐기 때문이었다.




  극 말미의 '미자'마냥 웃지 못해 나도 이 글을 쓴다. 역량상 위대한 예술작품마냥 내안의 우울과 분노를 승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겠지만, 걷고자하는 그 길 위에서만큼은 성실하게 찾아야겠다. 앞만 보고 가던 삶을 또 다시 멈춰 세우고 온 길을 돌아보게 해주었던 <시>...




  <시>를 보고난 닷새, 그렇게 사람들을 둘러보며 나 자신도 둘러본다. 아울러 국내에서는 각본점수 빵점 받고 깐느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시>의 이창동 감독님께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 ?
    변정구 2010.05.24 18:32
    영화 <밀양>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각자가 느끼는 감회의 깊이는 그 사람이 겪은 삶의 농도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좋은 영화란, 일생을 살면서 문득 반추하면서, 그 의미를 되짚어 보고, 슬쩍 주인공의 자리에 "나"를 대입해보곤 하는 영화일 것입니다. 언젠가 영화<시>를 보게 되겠지요. 그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런지...살아가면서 문득 영화<밀양>을 떠올리듯이, 영화<시>를 가끔씩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 ?
    전광준 2010.05.24 18:32
    말씀하신대로 좋은영화, 거장의 영화를 보면 볼 때마다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움이 숨겨 있습니다. 그 날카로움은 때로는 부드러운 손길이 되어 위로해주곤합니다. 매번 다짐하곤 하지만, 참으로 신중하게 살아가야겠습니다. 요즘 보았던 많은 영화들이 좋은 스승이 되어줍니다.
  • ?
    송은경 2010.05.24 18:32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 예매하려다 말고 그랬는데 호기심이 생기네요
    영화 보고 나서 이 글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
  • ?
    이병록 2010.05.24 18:32
    영화를 보고서야 올린 글을 이해할 수 있겠군요. 좋은 영화 추천 감사합니다.
  • ?
    전광준 2010.05.24 18:32
    이병록 운영위원님, 영화까지 보시고 제 글을 이해해주신다고 말씀해주시니, 오히려 감사드립니다! ^^ 보람 느끼게 해준 댓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인공이 그렇게 시를 쓰고자 했을 때는 정작 시가 안 나오고, 돈3천만원으로 합의해 마무리지으려 했던 희진의 죽음에 대한 부채감과 슬픔을 주인공이 느꼈을 때 시가 나오는 아이러니함... 외압주고자 <시>각본에 0점 준 영화진흥위원장, 그리고 깐느에서의 각본상 쾌거의 아이러니... 생각해볼게 참으로 많았습니다.
  • ?
    양초순 2010.05.24 18:32
    영화 시를 보고 뭔내용이여~ 하고 생각했을뿐인데~
    많은 가르침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1. 삶의 아이러니

  2. No Image 21May
    by 문경수
    2010/05/21 by 문경수
    Views 2034 

    귀환-1

  3. Let it be

  4. 침팬지가 느끼는 동료의 죽음

  5. 시공을 생각함.

  6. 실연 失戀

  7. 봄밤에

  8. 사람이 없다

  9.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기어려워요(6)

  10.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기어려워요(5)

  11.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기어려워요(4)

  12. 저자에게 드리는 글

  13. 너와 나의 고향

  14. 욱쓰의 나누는 삶, " 이해인 수녀님의 ≪ 슬픈 사람들에겐 ≫"

  15. 치열한 극단의 삶 혹은 도피, 그 은밀한 유혹

  16. 구식 시 몇편

  17. 이해의 선물

  18.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기 어려워요. 3

  19.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기 어려워요. 2

  20.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수정- 추가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 11 Next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