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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A 타이 클럽과 술 마시는 과학자들, 그리고 통섭

낭만적인 과학자들의 삶에 대해...
2009년 07월 09일(목)




미르(miR) 이야기 이중나선의 구조를 발견한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의 별명은 ‘쓰레오닌’과 ‘프롤린’이다. 재치 넘치는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글라이신’이라고 불렸다. 파지그룹을 만든 물리학자 출신의 생물학자 막스 델브뤽은 ‘트립토판’이었고, 선충연구로 생물학의 새 장을 개척한 시드니 브레너는 ‘발린’이었다.

1950년대를 주름잡았던 생물학자들과 물리학자, 화학자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이들에게 우스꽝스러운 별명을 지어준 인물은 이론 물리학자 조지 가모프(George Gamow)였다. 가모프 자신은 ‘알라닌’이라고 불렸다.

빅뱅이론을 만든 낭만적 물리학자

이미 눈치챈 독자들도 있겠지만, 가모프가 과학자들에게 지어준 별명은 기초 아미노산의 이름들이다. 가모프는 위트가 넘치는 과학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당시 생명체를 구성하는 주요 아미노산 20개에 한 명씩의 과학자들을 배정하고, 이들을 ‘RNA 타이 클럽(RNA tie club)’이라고 불렀다. 이 외에도 DNA를 구성하는 4개의 염기에 해당하는 원로 과학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각자의 별명을 새긴 넥타이를 제작했고 모임이 있을 때마다 넥타이를 매고 나타났다.







▲ 'RNA 타이 클럽'이 아미노산의 약자로 이루어진 별명과 그 구조를 그린 넥타이를 하고 모였다. 왓슨과 크릭의 모습이 보인다. 

1953년 4월 네이처지에 ‘DNA 이중나선의 구조’를 발표한 왓슨과 크릭은 같은 해 5월 30일 ‘DNA 구조의 유전학적 함축’이라는 논문을 네이처지에 재발표한다. 이 논문엔 “정확한 염기서열은 유전정보를 갖고 있는 암호”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이 논문을 읽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루이스 알브레즈(Luis Alverez)가 가모프에게 이 논문을 건내줌으로써 RNA 타이 클럽의 역사가 시작된다.

조지 가모프는 현재 빅뱅 이론이라고 불리는 우주 창조의 가설을 최초로 창안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04년에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레닌그라드 대학에 입학한 가모프는 1928년 알파붕괴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론을 만들면서 물리학자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그는 1933년 브뤼셀의 원자물리학회에 참석한다는 명분으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던 러시아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했다.

1948년에 이르러 그가 제자인 랄프 알퍼(Ralph Alpher)와 함께 발표한 이론이 현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빅뱅이론의 효시가 된다. 가모프의 재치는 이 논문에서도 빛을 발한다. 논문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그의 친구 한스 베테(Hans Bethe)를 공저자로 넣은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들의 이름을 연결하면 ‘알퍼-베테-가모프’가 되는데, 가모프는 그의 이론이 ‘알파-베타-감마’ 이론으로 불리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 정도면 과학을 가지고 노는 낭만주의자라 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RNA 타이 클럽의 탄생

왓슨과 크릭이 논문을 발표했던 시기에 이미 가모프는 저명한 물리학자였다. 특히 그는 파지그룹을 만들고 분자생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물리학자 막스 델브뤽의 친구이기도 했다.

이미 양자역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닐스 보어가 ‘빛과 생명’이라는 주제로 그의 생물학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것이 1932년이었고, 보어와 마찬가지로 양자역학의 주된 공헌자 중 한 명인 슈뢰딩거가 저 유명한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던 것이 1942년이었으니, 막스 델브뤽이라는 이단적 물리학자를 친구로 두고 있던 가모프의 생물학에 대한 관심은 조금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유전암호의 해독이 눈앞에 다가선 시점에 가모프가 생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은 생물학자들에게는 행운 그 이상이었다. 가모프는 왓슨과 크릭의 논문을 본 즉시 그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왓슨과 크릭 박사에게

나는 생물학자가 아니라 물리학자입니다. 하지만 이번 5월 30일자 네이처지에 실린 당신들의 논문을 읽고 매우 흥분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 논문이 생물학을 ‘정확한’ 과학의 일원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9월까지 영국에 머물 계획인데, 당신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 전에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각 유기체가 숫자 1,2,3,4로 표현될 수 있는 각기 다른 4개의 염기에 의해 규정되는 그런 것이라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건 대수학의 조합론을 이용한 이론적 연구가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되거든요. 아주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유전자 암호의 해독, 과학에서 이론과 실험의 상호작용

가모프는 유기체를 구성하는 물질들의 기저에 4개의 유전자 암호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이 암호의 조합으로 각각의 유기체가 가진 개성이 드러난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던 것 같다. 게다가 4개의 염기가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생명을 지배하는 유전자의 비밀이 드러난다고 하는 디지털적 관점은, 이론 물리학자였던 가모프가 생물학에 뛰어들기엔 최적의 조건으로 보였던 것이다.

사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히기는 했지만, 왓슨과 크릭 모두 유전자 암호가 어떻게 단백질로 번역되는가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둘은 가모프의 편지에 당황했다. 가모프는 즉시 ‘다이아몬드 코드’라는 아이디어로 유전자 코드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 가모프가 최초로 제안했던 '다이아몬드 코드'의 개요. 비록 틀린 것으로 판명나긴 했지만, 가모프의 낭만적이고도 진지한 생물학으로의 접근은 통섭을 이야기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의 안쪽에 존재하는 틈에 20개의 아미노산이 직접 결합하는 방식으로 단백질 합성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제안이었다. 물론 그 이론은 틀린 것으로 밝혀졌지만 4개의 염기와 20개의 아미노산만으로 생명의 비밀을 풀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과학자들에게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물론 유전암호가 해독되는 과정은 매우 험난했다. ‘미르 이야기’의 처음에 이미 언급했듯이, 유전암호의 완전한 해독은 1961년부터 니렌버그 그룹이 실험을 통해 밝힐 때까지 요원한 일로 남아야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자들, 특히 가모프나 크릭과 같은 이론과학자들이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가모프는 이후 ‘조합 암호’라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다. 염기들의 순서가 아니라 조합에 의해 아미노산의 서열이 결정된다는 아이디어였다. 가모프만이 아니었다. 4개의 염기로부터 20개의 아미노산을 결정하는 다양한 이론들이 제안되었다. 결국은 모두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많은 과학자들이 이 난제에 달려들었다. 가모프가 이러한 열광적 노력들의 불씨를 댕겼다.

유전암호의 해독과정은 과학에서 이론과 실험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아주 좋은 예이다. 특히 이론이 일종의 지침서 기능을 하고, 다시 실험이 이론에 수정을 요구하는 식의 상호작용을 알 수 있는 좋은 예가 된다. 4개의 염기와 20개의 아미노산이라는 단순한 사실로부터 엄청난 이론과 가설들이 등장했다는 말은, 측정량과 이론이 연결되는 방식이 다양할 수 있음을 반증한다.

또한 이 모든 이론들이 결국 니렌버그의 실험에 의해 폐기 처분되는 과정은, 이론이 측정량에 의해 제한 받는다는 과학의 소박한 세속화 과정을 보여준다. 이론도 실험도 독립적으로는 완벽하지 않다. 이론과 실험은 복잡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한다.

술 마시는 과학자들, 그리고 한국의 과학문화

가모프의 암호이론이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가모프가 RNA 타이 클럽을 이끌어간 방식이다. 가모프는 어떤 정형화된 세미나를 통해 클럽을 운영하지 않았다.

한국의 권위적이고 유교적인 문화에서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가모프는 클럽의 멤버들을 모아놓고 테이블에 둘러 앉아 시가를 모두 입에 물고, 보드카를 마시며 카드를 치면서 유전암호의 해독을 논의했다. 어찌 보면 과학자들끼리 모여 논다고 비난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생물학의 운명을 바꾼 두 과학자가 나온 서구에서는 그런 낭만이 허용되었다.

가모프는 술을 과학적 아이디어를 위한 자양분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는 위스키를 특히 좋아했고, 언제나 술을 달고 다니는 인물이었는데 그의 별명은 ‘위스키-트위스티’였다.

과학자는 영화에서는 미친 사람으로, 현실에서는 진지한 인물로만 그려지기 일쑤다. 아마도 그건 과학자들의 문화, 과학이 하나의 문화였던 유럽과 서구의 그 문화적 파장이 과학 이외의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거나,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아예 전달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과학계는 너무나 진지하기만 하다.

사실 가모프만이 아니다. 통계역학의 창시자였던 루드비히 볼츠만은 연구를 마친 저녁엔 거의 선술집으로 가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즐겼다고 한다. 그곳에서 많은 아이디어들이 솟아나왔고, 또 그가 적이라고 생각한 에너지 일원론자들이 술집에 등장하면 전쟁과 같은 논쟁을 즐겼다고 한다. 그런 낭만적인 과학자들의 삶이 19세기엔 살아 있었다.

게임이론을 확장시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도 내쉬와 동료들이 술집에 모여 '아담 스미스'를 연호하며 잔을 부딪히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를 주의 깊게 본 독자들은 기억이 날 것이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 내쉬는 술집에 들어오는 여자들과 동료들의 부킹을 바라보며 '내쉬 균형'에 관한 기본 틀을 세우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놀랍지 않은가? 술집에서의 노벨상 아이디어라니.

필자도 왓슨이 세운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에서 열린 학회에서 이런 분위기를 경험해 본 적이 있다. 그곳의 작은 펍은 밤늦게까지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학자들로 언제나 붐볐다. 교수와 학생의 구분도 없고 모두가 한데 모여 너무나 자유롭게 스스로의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렇다고 과학자들이 술을 마셔야만 한다는 말은 아니다. 공자의 말처럼, 즐기는 것이 좋아하는 것을 이기는 법이라는 말이 대한민국의 과학계에서는 참으로 어렵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대한민국 과학계엔 낭만이 없다. 과학문화란 대중들이 과학을 이해하는 문화가 아니라, 먼저 과학자들이 과학을 즐길 수 있는 그런 문화적 기반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가모프와 통섭

가모프가 보여주는 학제간 연구 방식은, 통섭이 화두가 된 요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사실 가모프의 시대를 돌아보면, 이제서야 통섭이라는 말로 학문의 융합을 말하는 우리의 현실은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물론 통섭이라는 말이 인문학과 과학이라는 ‘두 문화’ 사이의 간극을 메우겠다는 시도로 이해되고 있지만, 사실 이질적인 두 문화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일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게다가 가모프와 같은 과학자에 의해 주도된 과학 간의 융합의 역사조차 부족한 우리에게 통섭은 너무나 섣부른 시도일지도 모른다.

두 문화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서구의 과학자들은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과 심리학, 화학과 생물학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런 연습과정을 거쳤다. 학제간 연구라는 개념도, 통섭이라는 개념도 모두 서구에서 만들어져 수입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 김우재 UCSF 박사후 연구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앞서 있는 그 문화를 황새 따라가는 뱁새처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기초를 다시 건설하는 것이다. 통섭보다는 과학의 분과들 간의 대화가, 가모프와 같은 인물에 의해 시작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대한민국의 과학계엔 가모프와 같은 낭만주의자가 좀 필요하다.

가모프에 대한 이야기를 다 풀고 나니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다. 도대체 왜 클럽의 이름을 ‘RNA 타이 클럽’이라고 지었을까? 가모프가 클럽을 만든 1954년엔 DNA에서 단백질로의 정보전달 과정을 매개하는 RNA의 기능이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던 때인데 말이다.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가모프가 생물학을 잘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재미있는 우연이다. RNA 타이 클럽의 꿈은 이미 이루어졌고, 이제 생물학은 다시금 RNA라는 물질을 재발견하고 있으니 말이다.






김우재 UCSF 박사후 연구원 | korean93@postech.ac.kr


저작권자 2009.07.09 ⓒ ScienceTimes
  • ?
    정수임 2009.07.10 20:52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읽고 또읽고 계속읽어야겠습니다.
    ^^
  • ?
    이유경 2009.07.10 20:52
    통섭을 위해서 7월부터 - 12월까지
    대구백북스 스타디 일정이 나왔습니다
    좋은 의견주시면 참고하여 조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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