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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의 시대를 알리는 화두, 통섭(統攝)


용어 선정만큼이나 쉽지 않은 앞으로의 과제 2009년 10월 05일(월)






과학서평 최근 들어서 융합이니 통섭이니 하는 용어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자연과학과 인문학 등 학문의 각 분야뿐 아니라, 예술의 여러 장르와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널리 이 용어들이 쓰이다 보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시대적 조류이자 중차대한 과제가 된 느낌이다.

우리나라에서 융합과 통섭이 강조되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2000년대 초반 이후인 듯한데, 개별 학문 간의 간극과 장벽이 너무 높았다는 반성과 함께 여러 대학에서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만남’과 관련 학술대회 등이 추진되곤 하였다. 이 시기에 또한 인문학의 위기가 고조되고 과학기술계 역시 안팎의 제반 문제들에 직면하면서, 학문 간의 통섭 등에 의해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해보자는 의도도 작용했을 것이다.

시대의 화두를 던진 통섭 관련 서적들







이러한 분위기 하에서 <새로운 인문주의자는 경계를 넘어라(고즈윈, 2005)>,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소소, 2006)> 등의 책이 발간되어 관심을 모으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 도서들은 본격적인 지식의 통섭을 논했다기보다는, 자연과학의 최신 연구 성과물들을 인문학 쪽에 소개하고 계몽하려는 측면이 강함을 부인할 수 없다.

<새로운 인문주의자는 경계를 넘어라>는 이름 있는 국내 과학필진들이 여러 분야별로 저술한 것을 엮은 것이다. ‘자신 안에 갇혀 있는 지식인에게 던지는 과학논객들의 제언’이라는 부제가 알려 주듯이, 인문,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공학 간의 경계를 허물고 상호 교류할 것을 권하고 있되, 첫 글이 ‘담장 높은 인문학자의 연구실’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것은 나름 시사하는 바가 있는 듯하다.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는 존 브록만이 외국의 필자들의 글을 엮은 것을 번역한 책으로서, 원제는 <The New Humanists>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로드니 브룩스, 한스 모라벡 등 저명 저술가나 과학자들의 글을 포함하고 있는 이 책은, 주로 진화생물학, 인지과학, 컴퓨터과학과 사이버네틱스, 우주론 등의 분야에서 최신 연구 성과들을 소개하면서, 인문학이 이를 어떻게 수용해야하는지 타진하고 있다. 상당수의 글들은 ‘에지(edge)’라는 이름으로 엮은이가 운영하는 일종의 전문가 토론 공간인 웹사이트 포럼에 발표되었던 것이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하나로 묶는다

아무래도 통섭이라는 화두를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던진 책은 <지식의 대통합 - 통섭(사이언스북스, 2005)>일 것이다.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의 저서 <Consilience>를 그의 제자인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 등이 번역한 책이다.







원 단어인 Consilience이든, 번역어인 통섭이든, 용어부터 조명할 필요가 있을 듯한데, 옮긴이 스스로도 서문에서 이 단어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책의 절반을 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언급한 바 있다. 에드워드 윌슨은 19세기 자연철학자인 윌리엄 휴얼이 처음으로 사용한 consilience 개념에서 이 용어를 가져왔는데, 이는 라틴어의 ‘consiliere’에서 유래한 것으로 ‘함께 뛰어 오르다’ 즉 ‘jumping together’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의역하자면 ‘더불어 넘나들다’ 정도가 되겠는데, “서로 다른 현상들로부터 도출되는 귀납들이 서로 일치하거나 정연한 일관성을 보이는 상태”라고 풀이할 수 있다.

역자인 최재천 교수는 이 단어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오래 고민한 끝에 결국 ‘통섭(統攝)’으로 하기로 했는데, 불교와 성리학, 즉 원효의 화엄사상과 최한기의 기(氣)철학까지 훑어본 끝에 찾아낸 용어라고 한다. Consilience든 번역어인 통섭이든, 일부러 희귀한 단어를 택한 것이 도리어 의미의 정확성을 보전한 것이라는 저자와 역자의 견해는 나름 타당성이 있어 보이며, ‘지식의 통일성’을 의미한다는 측면에서도 모두 괜찮은 용어 선택으로 보인다.







비교할만한 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저명한 과학사학자 토마스 쿤이 자신의 명저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에서 소개했던 ‘Paradigm’이라는 당시로서는 꽤 생소했던 용어 역시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결국 우리말로는 그대로 ‘패러다임’으로 번역된 바 있었다.

에드워드 윌슨은 탁월한 사회생물학자답게 이 책에서 현대 생물학의 핵심 개념들과 최신 연구 성과들을 활용하여 인간의 마음, 유전자, 문화, 예술, 윤리와 종교, 사회과학 등을 나름대로 폭넓게 조명하면서 학문의 통합을 시도하였으나, 이후 숱한 비판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윌슨의 통섭과 관련해 가장 논쟁이 되고 있는 것은, 그가 자연과학과 인문학 등의 통섭을 추구하면서도 다분히 ‘환원주의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점이다. 이는 상당수의 인문, 사회과학자들에게 오해와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 미국 등지에서 많은 논쟁을 야기했고, 통섭에 관심을 보이는 국내의 인문, 사회과학자들에게도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하는 듯하다.







최재천 교수 등이 이후 통섭에 대한 국내 학자들의 관련 글들을 엮어서 펴낸 <지식의 통섭 - 학문의 경계를 넘다(이음, 2007)> 역시 읽어볼만한 책이다. 1부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프랜시스 베이컨, 최한기 등 동서양 학자들의 사상을 통섭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2부에서는 진화론적 경제학, 복잡계 네트워크 과학, 사회과학에서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 등 통섭을 꿈꾸는 학문들도 훑어보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3부의 두 글, 즉 국내의 철학자와 과학기술학자가 ‘통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보는 관점은 윌슨의 환원주의적 통섭에 대해 역시 매우 비판적이다.

그 이유는 인문, 사회과학 전반이나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현대 철학사조에 대한 윌슨의 이해가 깊지 못했거나, 윌슨의 통섭 원본이 미국에서는 이미 1998년에 출판된 관계로 통섭과 관련 있는 이후의 최신 연구 성과들을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통섭 자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거나 경계하는 인문, 사회과학자들의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

통섭은 서로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아무튼 환원주의와 통섭은 처음부터 조화되기 어려운 개념으로서, 앞으로 자연과학과 인문, 사회과학이 진정한 통섭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대단히 중요하면서도 여전히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본격적인 통섭에 앞서서, 서로 상대방을 보다 잘 이해하려는 태도와 노력 등의 사전 작업이 아직 더 많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측면에서 인문, 사회과학 전공자들이나 일반인들도 흥미 있게 읽을 만한 책으로서, 국내의 대표적 과학저술가인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이 쓴 <지식의 대융합(2008, 고즈윈)>을 꼽을 수 있다. 각종 융합학문들과 새로운 관련 연구 분야 전반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점이 돋보인다.







구체적으로 통섭을 논한 책은 아니지만, 통섭을 언급할 때마다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책이 하나 있다. 바로 영국의 작가이자 과학자였던 스노우(Charles Percy Snow, 1905-1980)가 1959년에 낸 <두 문화(Two culture)>이다.

그는 인문, 사회과학을 전공한 사람들과 자연과학을 전공한 사람들 사이의 괴리와 상호 몰이해, 의사소통의 단절 등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단절이 현대 서구문명의 중대한 장애물이자 심각한 위협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스노우의 책과 강연은 당시 영국 사회의 한 단면을 날카롭게 분석한 것이었지만, 그 후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반향과 논란을 일으키면서, 나중에 통섭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계기를 일찍부터 제공했다고 하겠다.

오늘날 통섭이 범세계적으로 중요한 과제이겠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것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져 상호 간 괴리를 심화시키는 교육과정, 인문,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공학 사이의 장벽 뿐 아니라, 같은 학문 분야 내에서마저 경계와 영역 다툼이 여전히 심한 우리의 풍토에서, 통섭의 자세는 학문의 후속세대와 이 땅의 지식인, 교양인들이 앞으로 반드시 갖추어야할 필수 덕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저작권자 2009.10.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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