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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체의 방랑자 집시, 집시의 춤 플라멩고 파이RNA

와 유동인자 사이의 연결고리
2009년 09월 03일(목)












미르(miR) 이야기 2003년, 초파리의 발생과정을 조사하던 한 연구팀이 우연히 미르와는 별개로 보이는 꼬마RNA들의 존재를 발견한다. 발견의 역사는 언제나 우연이 강력히 지배하는 공간이다. 원래는 협심증 치료제를 개발하려던 어떤 회사의 연구진은 임상치료과정에서 한 약물이 발기부전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고 이 상품으로 일약 대기업으로 성장한다. 비아그라(Viagra)의 탄생설화다.

물론 파이RNA의 발견과 비아그라의 발견에는 연구과정에서 혼탁해지고 누적되어가는 데이터들을 놓치지 않고 주도 면밀하게 파고든 연구진의 노력이 숨어 있다. 자연이 과학자들에게 선사하는 수줍은 신비의 가능성을 놓지 않고, 약간의 우연과 행운을 바라는 것, 아마도 그것이 과학의 역사에서 자주 우연으로 보이는 발견이 나타나는 이유일지 모른다.

DNA 서열 명명에서 빛나는 미학적 감수성

앞에서 파이RNA에 대한 연구는 트랜스포존, 즉 염색체의 여기저기를 자유롭게 이동하는 유동인자의 존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말했다. 파이RNA가 유동인자의 이동을 조절하리라는 최초의 실험적 근거는 '집시(gypsy: 초파리의 돌연변이 명칭은 모두 이탤릭체를 사용한다)'인자(element)라는 유전자좌에 대한 연구로부터 나왔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유전학자들은 표현형의 특징에 따라 독특한 작명을 하기로 유명하다. 집시는 무척추동물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역전사바이러스에 붙여진 이름이다. 집시란 원래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유랑민족을 칭한다. 숙주에 기생하면서 숙주가 죽을 때까지 생을 함께하는 역전사바이러스이자, 그 유전체는 역전사유동인자이기도 한 DNA 서열에 집시라는 이름을 붙여준 학자의 미학적 감수성은 참으로 탁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 파이RNA의 발견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돌연변이들의 이름은 집시와 플라멩고다. 유랑생활을 하는 집시는 염색체 이곳 저곳을 유랑하는 유동인자, 트랜스포존에 대한 비유로 명명되었고. 플라멩고는 집시들이 추는 이름을 본따 명명되었다. 유전학자들은 무미건조한 사람들이 아니다. 미학적 감수성을 타고난 인물들이다. 
초파리의 강력한 유전학적 스크리닝으로 1995년 집시인자의 유동성을 조절하는 염색체의 영역이 발견된다. X염색체상에 존재하는 이 유전자좌를 연구진은 플라멩고(flamenco)라고 이름 지어주었다. 플라멩고는 집시들이 추는 춤의 이름이다. 과학자들은 아니, 적어도 초파리 유전학자들은 결단코 무미건조한 사람들이 아니다.

실제로는 해당 유전자좌가 발견된 것이 아니고, 해당 유전자좌에 돌연변이나 결손이 있는 초파리 계대에서 집시유동인자의 유동성이 증가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유전학에서 돌연변이의 표현형적 명칭은 대부분 유전자의 이름으로 사용되곤 한다. 유전자복제 기술이 발달하기 이전부터 모건에 의해 유전학의 연구재료로 사용된 초파리의 세계엔 여전히 매우 혼동되는 개념이 많다.

비록 표현형적 돌연변이로 유전자의 이름이 명명되곤 하지만, 결국엔 그 표현형이 한 유전자에 의해 나타난 것이 아니었음이 밝혀지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실제론 해당 돌연변이가 생긴 위치에서 아무런 RNA도 전사되지 않을 경우도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유전학이라는 분야에서 유전자라는 개념은 처음부터 모호한 것이었다.

1995년 플라멩고가 발견된 후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플라멩고 돌연변이에서 결손이 일어난 부위에는 유동인자를 억제할 수 있는 염기서열이 발견되기는커녕, 오히려 또 다른 종류로 보이는 다양한 유동인자들의 염기서열만이 밝혀지곤 했다. 2004년이 되어서야 한 연구팀에 의해 플라멩고에 의한 집시 유동인자의 억제에 피위(PIWI)라는 단백질이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없이 많은 교배와 분석을 통한 초파리 유전학의 강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광대한 돌연변이 계대를 보유한 초파리 유전학은, 주의를 기울이고 시간을 투자하면 반드시 유전자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다만 필요한 것은 끝없는 교배와 표현형 분석뿐이다. 그래도 초파리 유전학자들의 교배를 통한 스크리닝은 존 설스턴이 예쁜꼬마선충의 세포지도를 그리기 위해 1년 반 동안 암실에 틀어박혀 있었던 것보다는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과학자의 일상의 대부분은 획기적인 결과를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인 경우가 많다. 아마도 그래서 과학자들의 일상이 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 P-인자를 제거하기 위해, 파이RNA는 피위와 아고3라는 두 종류의 단백질을 이용해 무한루프를 돌린다. 그만큼 생식세포에서 유동인자의 무분별한 복제가 위험하다는 뜻이다. 

파이RNA와 유동인자의 연결고리

2003년 파이RNA가 발견되고, 2007년에 이르러서야 파이RNA를 전사하는 유전자좌의 상당수가 플라멩고 유전자좌의 염기서열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염기서열의 일치 결과는 간접적인 증거에 불과하다. 같은 해 브레네케(Brennecke)를 비롯한 연구진이 파이RNA 유전자좌가 피위 단백질을 경유해서 플라멩고의 유동성을 조절한다는 믿을만한 결과를 내놓음으로써 파이RNA가 유동인자의 무절제한 복제를 조절하고, 이러한 조절에 피위 단백질이 함께 한다는 가설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결정적인 증거는 플라멩고 돌연변이에서는 파이RNA의 발현량이 줄어들고, 반대로 집시유동인자의 발현은 늘어난다는 점이었다. 플라멩고 유전자좌는 집시처럼 무절제한 유동인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파이RNA들의 저장고였던 셈이다.

브레네케를 비롯한 연구진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더욱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염색체의 말단에는 텔로미어(telomere)라고 불리는 부위가 존재하는데 DNA 복제가 거듭될 수록 염색체가 짧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뚜껑인 셈이다. 초파리의 X염색체 텔로미어와 인접한 부위에는 X-TAS라고 불리는 유전자좌가 있는데, TAS라는 반복적염기서열로 도배되어 있는 부위다. 이들은 파이RNA의 상당수가 이 부위의 염기서열과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흥미로운 것은, X-TAS의 일부분은 예전부터 초파리의 트랜스포존인 P-인자의 유동성을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는 점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파이RNA가 전사되는 것으로 보이는 유전자좌 근처에 트랜스포존인 P-인자가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P-인자는 트랜스포존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프로모터로도 사용되는데 프로모터란 DNA에서 RNA가 전사되는 시작점을 뜻한다. 즉, P-인자의 무분별한 복제를 막는 파이RNA들이 P-인자에 의해 전사되는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지는 셈이다.

P-인자의 난입과 초파리의 대응

P-인자는 현재 초파리 돌연변이의 대부분을 만들 수 있도록 해준 고마운 트랜스포존이다. 방사선을 쪼이거나 화학약품을 처리해 돌연변이를 만들던 모건의 시대를 거쳐, 이제 유전학자들은 P-인자를 염색체 이곳 저곳에 끼워 넣어 돌연변이를 만든다. P-인자의 발견과정과 이를 둘러싼 진화적 군비경쟁의 이야기도 흥미로운데 일단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자. 중요한 것은 Drosophila melanogaster라고 불리는 노랑초파리 일족에 치명적인 돌연변이를 유도하는 P-인자가 전염된 것이 채 50년도 되지 않은 일이라는 점이다.

이 말인즉슨, 초파리의 생식세포에서 무분별한 복제를 일으키는 일종의 병원균인 P-인자가 발생한지 채 50년도 되지 않아서, 초파리 개체군내에서 이에 대항하는 파이RNA들을 P-인자에 의해 전사되도록 배치했다는 뜻이다. 기생체와 숙주간의 진화적 군비경쟁이 얼마나 역동적이고 빠른 시간 안에 일어나는 과정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P-인자가 생식세포에 난입하는 질병은 초파리들에게는 에이즈와 같은 무서운 병이다. 아마도 초파리라는 종에게 P-인자의 출현은 인류가 흑사병으로부터 살아남았던 역사와 비견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파이RNA를 이용한 유동인자의 억제에는 강력한 증폭과정이 수반된다. 파이RNA는 처음에 전사되면 표적으로 삼는 유동인자와는 안티센스인 상태가 된다. 예전에 배운 것을 다시 복습하자면 안티센스란 AGTC로 이루어진 염기서열이 서로 마주보고 염기짝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5'-AGTC-3' 의 안티센스는 5'-GACT-3' 이 된다. 이 상태의 파이RNA에 피위 단백질이 달라 붙어서 파이RNA를 표적까지 인도하고 파이RNA와 염기짝을 이룬 유동인자 염기서열의 앞뒤를 자른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siRNA의 작용기작과 동일하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잘린 유동인자의 염기서열이 아고3(AGO3)라는 단백질과 다시 달라붙는다는 점이다. 피위에 의해 잘린 표적 유동인자의 염기서열은 파이RNA의 센스 형태일 것이 틀림없다. 아고3는 이처럼 잘린 센스 형태의 새로운 파이RNA, 즉, 피위에 의해 잘리기 전에는 그저 유동인자의 전사체였던 RNA를 자신의 몸에 붙이고 이번에는 이 RNA에 대한 염기짝을 찾는 여행을 떠난다.







DNA는 이중나선이고 양방향으로 전사가 가능하므로 이론상으로는 파이RNA 유전자좌도 센스와 안티센스 두 종류의 전사체를 만들 수 있다. 아고3는 처음에 피위와 달라붙었던 파이RNA 전사체와는 반대방향에서 전사된 전사체를 찾아, 자신이 데리고 있던 센스 형태의 파이RNA를 결합시킨다. 그리고 피위가 했던 것처럼 염기쌍을 이룬 RNA 이중나선의 앞 뒤를 잘라낸다. 앞의 과정과는 정반대로 이번엔 처음 피위와 달라붙었던 것과 같은 안티센스 형태의 파이RNA가 만들어진다. 이 파이RNA들은 당연히 피위와 결합하고 다시금 유동인자를 찾아 나선다. 이 과정이 무한 반복된다. 유동인자가 만든 전사체가 사라질 때까지.

유기체의 유전자조절회로에는 이와 같은 무한루프가 준비되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 예를 들어 박테리아에 의해 피부가 감염되었을 때, 면역세포들은 전사인자를 발현시키고, 전사인자는 염증반응을 촉발시킬 수 있는 분비단백질을 급하게 생산한다. 면역세포에서 분비된 분비단백질은 주변세포나 스스로를 자극시켜 해당 전사인자를 활성화시키는 신호전달경로를 자극한다. 이러한 식으로 박테리아가 사라질 때까지 무한루프가 돌아가는 것이다.

초파리의 생식세포를 공격해서 수컷을 불임으로 만드는 P-인자의 등장은, 50년도 채 안 되는 시간 만에 P-인자의 바로 곁에서 P-인자가 활성화될 때 함께 활성화되어 P-인자가 사라질 때까지 무한루프를 반복하는 파이RNA라는 방어기제를 만들어냈다. 자연이란 경이로운 것이다. 특히 진화의 가속페달을 밟는 기생체와 숙주 사이의 군비경쟁과 성선택은 다윈이 그러했듯이 놀랄만한 생명의 경이다.






김우재 UCSF 박사후 연구원 | korean93@postech.ac.kr


저작권자 2009.09.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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